시누헤 1
미카 왈타리 지음, 이순희 옮김 / 동녘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어려서는 예의를 배우라.
젊어서는 스스로를 절제하라.
중년이 되어서는 공평하라.
노년에는 좋은 조언을 주라.
그리고 후회 없이 죽으라…    

- 키네아스의 묘에 새겨진 다섯 개의 금언..



시간이 흘러도 변함이 없는 것은 삶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그것의 불완전함일 것이다. 단속하고, 정리하고, 주의 깊게 살아가도 삶의 미련과 후회는 늘 따라다닌다.
오직 죽음만이 사하노라? 질곡의 세월이 남긴 상흔의 기억들을 어떻게 안고 살아갈 것인가…


역사인가, 철학인가 아니면 로맨스?
이 소설은 한 인간의 파란만장한 삶을 회고하는 한 의사의 서술로 시작한다. 기원전 1300년경 고대 이집트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며, 이집트의 민간 설화와 프로이트의 ‘모세와 유일신앙’(1939)을 치밀하게 혼합한 역사소설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특정’ 종교적 색채를 찾아내려는 노력은 무모하다. 이 소설은 사랑과 모험과 인생철학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삶과 상징이 하나의 실체를 이루었던 고대 이집트는 지적흥미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소재이다.
신이라 불리었던 사람이 절대왕권을 가지고 있던 시절, 살아있을 때보다 죽음을 더 가까이하고, 종교적 삶이 그 모든 것을 말하던 그 때는 분명히 요즘의 삶과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물론 그 차이로 인하여 초반에 몰입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하지만 차이가 주는 즐거움, 시대를 거슬러올라 맘껏 누리는 문화의 진풍경이야말로 역사소설의 매력 아닌가.

이집트 역사에 대한 무지로 인하여 이 소설에서 보여지는 역사적 객관성의 정도를 판단할 수는 없지만, 꽤 많은 부분은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한다. 아케나톤의 혁명성과 좌절, 투탕카몬의 죽음과 이집트 공주와의 혼인을 앞두고 살해된 히타이트 왕자, 호렘헵의 활약(?), 아이의 음모… 하지만, 사실성만으로 채워질 수 없는 부분은 작가의 상상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 대단히 깔끔하고 완성도 높은 소설이었다고 생각한다. 영원한 생명을 꿈꾸며 잠든 고대 이집트의 미이라에 ‘동안’을 찾아준 것마냥 사실적이었고, 흡입력 있는 스토리텔링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사상과 종교, 문화, 망탈리테를 투영하는 작가의 섬세함이 돋보였다.

등장하는 캐릭터의 성격 또한 분명하고, 개성이 강하여 소설의 재미를 한껏 더한다.
하늘의 이상을 땅 위에 심으려 했던 파라오 아케나톤, 전쟁으로 자아를 확인하려는 호렘헵, 광신에 찬 야심가 아이, 위험한 꽃 네페르티티, 네페르네페르네페르, 운명을 짊어진 홀로된 자 시누헤, 비참했지만 의젓하게 골로 간 아지루 왕, 깜찍한 노예 카프타 그리고 그가 사랑했던 여인들… 등장하는 인물들의 생동감은 살아있는 화석 실러캔스 같았다.


홀로된 자 시누헤, 그는 누구인가

소설은 전형적인 영웅신화의 구조를 띤다. 고귀한 혈통이었지만, 버려지고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여 정상에 오르는 과정까지만 그렇다. 그러나 결국엔 영웅이 아닌 평범한 인간이 되어 내려온다. 그가 찾으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깨달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찾아 나선 것은 지식이었다. 아니 진리였다. 크레타, 히타이트, 바빌론, 시리아의 신들을 알게 되었지만, 그가 깨달은 것은 실존적 신은 없었고 오직 인간만이 신의 목소리와 힘을 가지려 했다는 것이다. 욕망하는 인간들,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낸 탐욕의 운명을 확인한 것이다.

   
  나는 인간이 욕망하는 모든 것을 가졌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그렇듯이 더 많은 것을 욕망했다. 그리하여 지금 이 꼴이 되었다.” 12p  
   


누군가는 기록하려 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지우려 한다. 그것은 역사를 바꾸는 힘의 대결이며, 진리와 욕망의 충돌이다. 미이라로 남겨진 자는 영생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 믿었고, 재로 사라지는 것은 영원한 욕망의 소멸을 의미했다.
전쟁과 파괴, 죽음의 그림자가 늘 시누헤를 쫓아다녔지만 그는 살아 남았고 그것을 기록한다. 따라서 시누헤의 존재 자체가 기록이며 욕망의 본질을 말한다.

   
  왜냐하면 나 시누헤는 인간이니까. 나는 나보다 먼저 살았던 모든 사람들 속에서 살아 있었으며, 나보다 나중에 살아갈 모든 사람들 속에 살게 될 것이다. 나는 인간의 눈물과 웃음, 인가의 슬픔과 공포, 그리고 인간의 선량함과 사악함, 정의와 불의, 나약함과 강건함 속에 깃들어 살아갈 것이다. 나는 인간으로서 인류 속에 영원히 깃들어 살아갈 것이다.”  376p  
   



모두가 사라진 지금, 홀로 남겨졌기에 그는 홀로된 자인 것이다. 그것은 이미 운명이었다. 그리고 인간이 지닌 고독의 근원을 말하고 욕망의 운명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집트는 그러한 욕망을 말하기에 적절한 배경이었던 것이다.

시누헤는 영원히 인간 속에 살아있다.
그는 인간의 모든 욕망을 경험했고, 그것으로 깨달음을 얻었다.
죽음이 남긴 자취, 인간의 욕망이 벌인 일들...
한 권의 소설이지만 이것이 전하는 메시지와 성찰은 그리 가볍지 않다.

머리에 재를 뿌리고 통곡할 욕망이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있으니까.


   
  인생의 봄을 지나쳐 버린 외로운 사람에게는 참보다 거짓이 감미로운 법이지요.”  390p  
   


믿고 싶지 않은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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