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가 독자에게 /

우리는 압제에 저항해서 싸우는 일에는 영웅적인 용기를 보여준 겨레이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일에는 너무도 게을렀다. 우리는 억압의 사슬을 끊어내고 이 나라의 주인이 되었을 때, 어떤 세상을 만들어야 할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다만 싸우고 또 싸워왔다. 하지만 막상 우리에게 권력이 주어졌을 때, 우리 머리 속에는 참으로 새로운 우리들 자신의 세계상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지도도 설계도도 없이 자기 세계를 형성하고 자기 집을 지어야 했으나, 남이 만들어놓은 세계상에 의존하는 것 말고 달리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런즉 지금 우리가 눈앞에 보는 민주주의의 위기는 사유의 빈곤이 낳은 필연적인 결과인 것이다.

김상봉 교수가 새 책 <서로주체성의 이념>(길)에서 진단한 최근 한국 민주주의 위기의 본질이다. 그의 처방은 비장하면서도 명쾌하다. 매판사대주의, 식민사관의 늪에서 헤어나 자신의 머리로 자기 집을 짓되 지배 엘리트가 아니라 억압받는 민중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저항하고 싸우라, 정신의 노동을 멈추지 말라, “오직 근면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매판적 현실에서, 무슨 짓을 하든 돈벌고 출세하는 “성공이라는 강요된 신화”를 거부하는 8명의 ‘미친 놈’들을 만난 김택환의 <스무살, 너희가 별이야>(삼인)도 그와 상통한다. “운동은 말이야, 거리에 나가서 돌 던지고 데모하는 걸 말하는 게 아냐. 삶으로 하는 거지. 운동성, 난 ‘운동’이라기보다 ‘운동성’이라고 말해. 운동성을 몸에 지녀야 한다고. 현실의 물결은 생각보다 거세고 나이가 들다보면 세상과 타협하고 안주하게 돼. 진짜 운동은 그때부터 시작인 거야.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불의를 보면 문제제기하고,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는 일. 만약 너도 운동을 하고 싶다면 진짜 운동을 해. 네 나이가 서른, 마흔이 돼도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저항과 용기를 몸으로 실천해.”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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