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르노빌의 노동자들. 사진/ I. 가브릴로프. <북폴리오> 제공
체르노빌의 노동자들 = 1986년 체르노빌이 폭발 사고로 황폐화된 지 8일이 지난 뒤 노동자들이 핵발전소의 파괴된 원자로에서 자신들을 밖으로 실어 나를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수습팀이 훈련도 받지 않고 허술한 얼굴 가리개만 쓴 채 체르노빌에 투입되었다. 방사능 수준이 너무 높아서 버스 운전사들은 발전소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고 했다. 수습팀은 자신들이 겪고 있는 위험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들이 고향지역으로 돌아와 아파 드러누웠지만 연락이 잘 안 되어 지역 병원들은 자신들이 방사능 오염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 소년 피오네르들. <북폴리오> 제공
소년 피오네르들 = 이들은 “콜호스 수확의 최우수 전사”가 되어 부상으로 배지를 받았다. 당은 예전에 교회가 그랬듯이 아주 어린 아이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 볼가 강의 짐꾼들. <북폴리오> 제공
볼가 강의 짐꾼들 = 볼가 강의 짐꾼들이 차와 빵을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차는 각설탕에 적셔 빨아 마셨다. 전쟁 전 차르 시대의 기준에서 볼 때 음식과 신발이 형편없던 이들은 볼셰비키 체제하에서 이와 같은 배급품을 받고 기뻐하게 될 것이다. 일인당 곡물 생산은 1960년대 중반에 이르도록 1913년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 바쿠 유전지대. <북폴리오> 제공
바쿠 유전지대 = 1933년에도 지금처럼 환경에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스탈린은 외국 석유회사들이 이권을 착취하던 제1차 세계대전 전에 바쿠에서 볼셰비키 선동가로 활동했다. 이 나라의 거대한 석유 및 광물 자원은 당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이후 소련은 세계에서 가장 큰 석유와 가스 생산국이 된다.

» 아버지와 아들. <북폴리오> 제공
아버지와 아들 = 러시아의 지방 거리에서. 지방에서는 달 표면처럼 어떤 사건이나 변화도 없었다. 봄이나 가을에 진흙을 피하려고 깔개를 깔았다. 여름에는 모든 행인들이 뒤에 작은 흙먼지 구름을 달고 다녔다. 겨울이면 거리는 온통 얼음투성이었다.

» 여성 농민. <북폴리오> 제공
여성 농민 = 경제가 붕괴하면서 식량을 찾아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많은 여성들 중 한 명. “해방자” 차르 알렉산드르 2세는 1861년 농노를 해방했다. 70년 뒤 스탈린이 새로운 형태의 농노제를 도입했으며, 이에 따라 러시아 농촌 여성은 “노예의 딸, 노예의 어머니, 남편의 노예라는 삼중 노예 상태”의 전통적인 운명을 다시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 집단농장의 점호. <북폴리오> 제공
집단농장의 점호 = 모스크바지역의 한 농장. 집단농장들이 과학적으로 경영되고 고도로 기계화되었다고 선전했지만 실제로는 착취당하는 여성 농민들의 원시적인 힘에 의존했다.

» 낙천적인 러시아인들. 사진/F. 구바예프. <북폴리오> 제공
낙천적인 러시아인들 = 러시아인들이 결혼식 피로연에서 집에서 만든 보드카로 미래를 위해 건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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