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를 체현하는 육체 여성학 강의 3
쥬디스 버틀러 지음, 김윤상 옮김 / 인간사랑 / 2003년 2월
평점 :
품절


학교 도서관에 딱 한 권 있는 영어본을, 어느 교수님이 빌려갔는지 6개월 동안이나

빌려간 채 반납하지 않는 바람에, Bodies That Matter를 꼭 읽어야했던 나는 우선

이 한글본을 보고 공부하기로 했다.

하지만 한글본을 다 읽고 정리까지 끝낸 시점에서 드디어 도서관에 반납된 그 책을 빌려서

영어원본과 대조해보던 날밤, 나는 혈압 올라서 쓰러지는 줄 알았다.

이 한역본은, 한마디로, 성의없음과 불성실과 건망증의 극치인 번역으로 이루어진 책이었음이

영원본과의 대조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에.

이 책은 안 좋은 번역본이 가지고 있는 모든 단점들을 다 가지고 있다:

1. 번역을 빠뜨린 문장들이 너무 많다

        - 아무리 '번역'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말을 다른 말로 옮긴다는 것 자체가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이

          진실이라 하더라도, 적어도 성실한 역자라면 원본에 써있는 문장들을 모두 옮기려는 노력은

         해야할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 번역은, 번역하다가 너무너무 귀찮다 싶으면 마지막 문장 하나

        휙 빼먹어버리는 식으로, 번역 안 된 문장들이 너무 많다.

2. 번역이 잘못된 문장들, 단어들이 너무 많다.

      - 원래 버틀러가 글을 난해하게 쓰기로 유명하며, 특히 쉼표 따위를 너무 많이 사용하고 한문장이

       너무 긴데다 쓸데없이 의문문을 남발하는 건 기본이요 끝까지 다 읽지 않으면 갈피를 잡기 힘들게

       자신의 사유과정을 그대로 적어내려가는 학자로 악명 높긴 하다. 버틀러를 공부하려는 사람들은

       먼저 그 불친절한 영어문장들에 진저리를 치니까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유일한 한글번역본으로 나왔다면, 기본적인 문법들까지 틀려가면서, 문장의 순서와

      인과관계를 뒤죽박죽으로 만들면서 번역료를 받는다는 것은 정말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이 든다.

      한역본으로 읽으면서 파악했던 버틀러의 주장이, 영역본을 봤을 때 반대로 되어있다면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게다가  버틀러는 페미니즘 이론가이자, 정신분석 이론과 데리다 및 구조주의언어학 이론들,

      퀴어 이론들을   종횡무진하며, 그 자신이 철학전공인만큼, 전문적인 철학지식들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이 책의 번역을 보면 페미니즘의 최신이론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사람이 번역했구나...

      하는 말밖에 할 수 없는 부분들이 계속 걸린다.

      게다가 정신분석용어들의 번역을 보면, 하나같이 다 문제가 많다. articulation을 단순히 '정교화'로

      번역해버린다던가, trauma를 '외상'이라는 널리 쓰는 번역은 왜 놔두고 '징후'로 번역해놓으면서

     '징후'로 번역되는 다른 단어들과 혼동되도록 만들어버린다던가, foreclosure를 '권리박탈'로 번역한

     다던가, 치환 전치 대체 등등의 용어들을 마구 섞는다든가 등등등, 한글본만 봐서는 정확히 이 말이

     뭘 얘기하려는 문장이었는지 알 수 없게 만들어놓은 것이 한 두개가 아니다. (한글본과 영역본을

     나란히 놓고서 읽으면서 파란펜으로 수정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한글본이 거의 한줄 건너 한줄로,

    심하면 한 단락 몽땅   파란펜으로 도배되어 있다. 이 정도면 거의, 버틀러가 뭔말을 하려고 했는지

    잘 모르게 된다고 결론짓는 편이 낫다)

    그러면서 정작 번역이 어려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 문장은, 한글본을 들여다보면 여지없이

    비문으로 되어있다-번역자도 문장의 주어를 모르게 되고마니까 그냥, 주어를 빼버린 것이다.

    it으로 받아낸 단어들을 엉뚱한 단어로 번역해놓는 경우도 당연히 있다.

3. 편집도 실수가 잦다

    - 버틀러는 자신의 글에서 강조해야할 부분이 있으면 이텔릭체로 표기해놓았다.

      한글책에서는 그 강조부분을 굵은 글씨로 표시해놓았다...문제는, 엉뚱한 곳에 표시되어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버틀러의 원문에서는 이 문장의 of가 이텔릭체로 강조되어있는데, 번역본에서는

     엉뚱하게 그다음 문장에 있는 of에 강조가 되어있는 식이다. 이런 실수가 한 쳅터당 열댓 개씩은

     있으니, 읽다가 그 한심함에 혈압이 오를 정도이다.

4. 각 쳅터마다 다른 사람이 번역한 것인지, 이 장에서는 이렇게 번역되었던 단어가 다른 장에서는 다른

   말로 번역이 되어 있다

     - 단어의 뜻이 많아서 이럴 땐 이 뜻으로, 저럴 땐 저 뜻으로 번역하기 위해서 그런 수고를 들인 거라면

       몰라도, 이 장에서도 저 장에서도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며 앞장과의 연결성을 강조하는 단어임

      에도 번역이 틀린 것이다. 이쯤 되면 한 사람이 쭉 번역한 것이 맞는지,

    아니면 유명한 역자의 이름 하에 다른 사람들이 번역해서 올린 것인지 의심갈 정도이다.

 

이외에도 문제점은 수없이 많으나 사실 저 4개 안에 모두 포함되므로, 그저 한 마디만 덧붙이고 싶다.

버틀러의 이 책은 구성과 본질론을 넘어서 물질과 물질성을 사유하게 해주는 매우 도발적이고

지적으로 흥분시키는 명저이다. 다만 버틀러를 공부하고 싶은 분은 절대 이 한글본 사서 읽지 마시길.

영어로 읽는 편이 훨씬 이해가 빠르다....영어 잘 못해서 한 장 번역에 한 시간 걸리는 나도, 영어로 보는게

내용 이해가 훨씬 빨랐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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