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엔의 환율이 자꾸만 떨어지고 있다. 지금 일본의 단기 정책 금리는 0.25%다. 일본은 이렇게 금리가 낮은데도 불구하고 경기가 잘 살아나지 않고 있다. 지금 일본은 낮은 금리 그리고 낮은 환율 덕분으로 대외거래에서 흑자를 보고 있다. 이 힘으로 그 마나 일본 경제를 꾸려가고 있다.

일본 엔의 환율이 자꾸만 낮아지자 이를 두고 다른 나라에서 말이 많다. 특히 강세 통화인 유럽연합은 일본이 엔의 환율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미국은 유럽연합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미국 재무부 장관인 폴슨은 자신은 지금 일본 엔의 환율을 아주 많이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는데, 일본 엔의 환율은 시장의 힘에 의해 결정되고 있는 것이지 일본 정부의 개입으로 즉 정치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과연 어느 나라의 환율이 어디까지 정부의 영향을 받고 어디부터는 정부의 영향에서 독립되어 있는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예를 들면 일본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지 않는 것은 과연 정치적인 개입과 얼마나 다를까? 이는 별도로 두더라도 미국이 일본 엔의 약세를 두둔하고 나서는 것은 미국이 중국에게 위안을 강세로 유지하라고 요구하는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지금 미국의 달러는 길게 보아 낮은 수준에 있다. 그리고 시장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과연 언제 미국 달러의 가치가 크게 떨어질 것인지 지켜보고 있다. 이는 시장이 요구하는 사항이 아니라,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시장이 겁을 내는 일이다. 그래서 달러가 약세로 가지 않는 일이 일어나면 시장은 마음을 놓는다.

미국 달러가 약세의 압력을 느끼는 것은 당연히 미국의 높은 대외무역적자 때문이다. 즉 미국의 지나친 달러의 발행 때문이다. 미국의 무역적자로 해외로 나가는 달러는 흑자국들의 대외준비통화로 운용되고 있다. 미국은 무역적자를 줄이고 정부적자도 줄여야 한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이 미국 달러를 그들의 대외준비통화로 받아들이고 있는 한 미국은 쌍둥이 적자를 급하게 줄이지 않아도 된다. 이론적으로 보면 다른 나라들이 달러를 준비통화로 받아들이는 한 쌍둥이 적자를 무한하게 키울 수 있다. 달러에 대한 수요가 무한하기 때문에 달러 공급 또한 무한하게 늘릴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이 준비통화로 달러의 양을 지나치게 많이 가질 필요는 없다. 준비통화의 양이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면 서서히 준비통화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게 된다. 이는 달러 가치의 약세를 낳게 된다. 이때쯤이면 미국은 무역적자를 줄이고, 정부적자도 줄여야 한다. 그러나 이는 고통이 따르므로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달러의 가치 하락을 막고 싶어한다. 그러면서도 달러는 많이 찍어내고 싶어한다. 지나친 욕심일까? 어떻게 하면 종이 돈을 막 찍어내어 다른 나라들이 힘들게 만든 물건을 이 종이쪽지와 바꾸면서도 이 종이 쪽지의 가격을 떨어뜨리지 않을 수 있을까? 누가 이 문제를 풀수 있다면 노벨 경제학 상은 저리가라다. 지상천국의 왕이 되어 온갖 호강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어느 나라 통화의 가치 하락이란 상대적인 것이다. 다른 나라 통화의 가치가 달러보다 더 많이 떨어지면 상대적으로 달러는 강세가 된다. 즉 달러를 강세로 유지하는 한가지 방법은 굳이 달러에 주는 이자율을 올리지 않고, 엔을 약세로 유지하면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지금 엔화의 약세는 달러를 강세로 받쳐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폴슨이 엔의 약세를 그냥 내버려 두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까닭이 아닐까?

이런 현상은 이미 과거 역사에서 나타난 일이다. 1900년대 초 영국은 생산성의 하락과 전쟁 때문에 그 당시 준비자산이었던 금이 자꾸만 줄어들었다. 그 금은 새로 떠오르는 경제 신생국인 미국으로 모여들었다. 준비자산의 부족으로 통화 가치를 잃어가던 영국은 영국 파운드의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서 파운드 강세를 유지하고 싶어했다. 영국 파운드의 강세 유지를 도와준 것은 다름아닌 미국 달러의 약세였다. 어린 나라 미국은 스스로 달러가 세계 통화의 중심국이 되려고 하기 보다는 영국 파운드가 다시 힘을 얻고 이를 기초로 유럽 경제가 회복되면, 이것이 미국 경제에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국은 의도적으로 달러를 약세로 유지해서 파운드를 약세를 막아주었다. 1920년대에 이렇게 흘러 넘쳤던 달러는 결국 1929년의 주식시장 폭락으로 막을 내리고 세계의 중심통화는 결국 파운드에서 달러로 넘어갔다.
 
그럼 지금 일본은 왜 미국의 달러 약세를 막아주고 있을까? 여기에는 분명히 경제적인 이유가 있다. 일본 엔을 약세로 유지해야 일본이 수출에서 가격 경쟁력을 가진다. 그러나 이것뿐일까? 만약 달러가 약세로 간다고 하자. 그래서 미국이 달러 약세를 막기 위해서 금리를 올린다고 하자. 그러면 미국은 재정적자를 더 늘리기가 어렵다. 세계 힘의 균형에서 미국이 자기 자리를 유지하거나 확대하기 어렵다. 세금을 더 거두어 들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일본은 군사적으로 미국 주도의 국면이 지속되고 이 속에서 일본의 위치를 보호받고 있다. 일본이 홀로 서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최소한 이 시간을 벌기까지는 미국의 보호가 필요하고, 일본은 미국의 보호를 받고 있는 댓가로 달러의 약세를 막아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역사가 그대로 되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의 중심통화가 달러에서 엔으로 바뀐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달러는 경제의 힘에 의해서만 그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달러는 정치적인 통화가 되어 버렸다. 달러를 강세로 유지하기 위해서 엔이 많이 풀리고 있다. 이 엔 자금은 달러로 바뀌어 세계 곳곳으로 흘러 다니고 있다. 엔 자금이 다시 자기 고향을 찾아가는 날 힘이 약하고 규모가 작은 세계 어느 곳, 어느 자산은 쉽게 가격이 떨어질 것이다. 당연히 엔이 약세로 가고 있는 한 지금의 게임은 계속될 것이다. 이것은 지금의 시장이 바라는 일이다.
 
때로는 시장이 바라는 일과 경제의 법칙이 서로 어긋나기도 한다. 나중에 시간이 지난 후 나는 이 일을 어떤 심정으로 다시 뒤 돌아 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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