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시간 미처 잠에서 깨지 못한 사람은 미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그냥 고스란히 타죽었어.”

인천 상륙작전 직전인 1950년 9월13일 아침 7시께 미국 공군기의 폭격으로 인천 월미도 어촌마을(지금의 월미공원 사무실 터)은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했다. 정아무개(63)씨는 “미군의 폭격 뒤 마을로 들어갔을 때 마을이 잿더미로 변해 있었고, 사람들도 불에 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며 “금니를 한 아버지(당시 35살) 시신을 거둬 인근에 가매장해 놓았지만 이틀 뒤 미군이 상륙작전을 하면서 탱크로 뭉개는 바람에 56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골도 찾지 못하고 있다”고 울먹였다. 진아무개(88·여)씨는 “당시 월미산에 주둔한 인민군의 방공호 공사에 동원돼 야간에 일을 하고 하루하루 배급을 받아 먹고살던 40여가구가 잠을 자다 몰살돼, 사망자는 200명이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지역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위원회’가 30일 마련한 기자회견에서 나온 민간인 학살 사건 유족의 증언들이다. 이 단체는 “지난 1월부터 문헌자료와 유족들의 증언이 일치하는 12건을 중심으로 살펴본 결과 2만명 안팎의 민간인이 집단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인천은 국군과 인민군 양쪽에 의해 한국전쟁 최대의 민간인 피해가 일어난 지역”이라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이날 인천시를 통해 민간인 학살 사건 12건의 조사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요청하고, 인천 전 지역을 대상으로 직권조사를 해 줄 것도 함께 요구했다. 조사를 요청한 개별 사건은 △인천 보도연맹원 학살 △간석동 원통고개 학살 △미 공군의 민간인 주택 폭격 △인천 상륙작전 전후 섬지역 학살 △월미도 네이팜탄 공습 △월미도 해상 수장 학살 △인천 상륙작전 직전 우익인사 집단 학살 등이다. 인천/김영환 기자 ywkim@hani.co.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