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의 역사> 다섯 권이 마침내 완간되어 나왔다.

 

필립 아리에스와 조르주 뒤비의 책임 편집 하에 일급 역사학자 40명이 집필에 참여하여, 모두 5천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텍스트와 3000여 점의 삽화로 엮어낸 이 책은 실로 기념비적인 대작.

지난 2002년에 1권 <로마 제국부터 천년까지>, 3권 <르네상스부터 계몽주의까지>, 4권 <프랑스혁명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가 번역되었다가, 이제 2권 <중세부터 르네상스까지>와 5권 <제1차 세계대전부터 현재까지>가 마저 출간되어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2천년 역사의 장대한 흐름이 완결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공공성 강화될수록 사생활 소중

사생활의 역사의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한 사람은 아리에스였다. 따라서 이 책 다섯 권 전체를 관통하는 기본 원칙을 이해하려면 우선 제3권에 나오는 아리에스의 글을 유의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설명을 간단하게 하기 위해 그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두 시대를 대조한다. 하나는 개인이 공동체적인 제도와 집단행위 속에 완전히 녹아들어가 있는 중세시대이고, 다른 하나는 반대로 그러한 공동체 제도와 집단행위로부터 개인이 분리되어 있는 ―그의 표현을 옮기면 “타자의 시선으로부터 보호받는”― 19세기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유럽사는 인간의 삶이 전적으로 공동체 속에서 영위되던 시대로부터 ‘나’의 행위, ‘나’의 느낌, ‘나’의 삶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로 이행해 간 과정으로 이해된다. 그런 발전이 정점에 도달했던 시기가 19세기로서 이때는 ‘프라이버시’의 황금기 혹은 개인주의의 황금기였다. 그러나 이때의 개인주의를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면 ‘가정 중심의 개인주의’라 부를 수 있다. 이 시기에 가정은 세상의 거친 흐름 가운데에서도 애틋한 정을 나누며 행복을 일구어내는 따뜻한 곳, 타인이 침범할 수 없는 성(城)과 같은 곳이 되었다.

» 프랑스 혁명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 다룬 <사생활의 역사4>에 실려있는 그림으로 앙리 제르벡스의 <마튀랭 모로의 결혼>(1881년·파리)이다. 실존 인물인 모로씨의 아들이 결혼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으로 당시 결혼식 모습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사진 새물결 제공
그렇다면 왜 공동체보다는 가족이 그토록 소중해졌는가? 왜 사생활에 그토록 높은 가치를 두게 되었는가?

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공공 영역이 도처에 강력하게 존재하며 사람들을 압박하기 때문이다. 근대 이후 가장 뚜렷하게 발전한 현상은 다름 아닌 국가기구의 강화였다. 사실 근대사의 주요 내용은 대부분 국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이다. 조세 수취와 군사의 강화, 국가 간의 치열한 전쟁, 행정 조직의 비대화·관료화, 그리고 이런 것들에 대한 민중들의 저항 등이 기존 역사학을 구성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던가. 이런 근대적인 ‘발전’은 사람들에게 자유를 억압하고 존재를 왜곡시키는 외부의 힘으로 작용하였다. 공공성이 강력해질수록 거기에 비례해서 위협받는 개인의 독자성, 혹은 내면의 가치를 지켜내야 할 필요 역시 커진 것이다. 결국 프라이버시의 중요성은 공공성의 강화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그러므로 사생활의 역사는 정확히 말하면 공공성과 사생활 간의 ‘관계’의 역사여야 한다.

사생활의 역사는 보수성과 혁신성이 교묘하게 중첩되어 있다.

이 책에서 조명하는 사람들은 일반 서민들보다는 주로 사회 상층, 즉 귀족이나 부르주아들이다. 대체로 이런 사람들이 자신의 주체성과 내밀한 감수성을 지켜나가고 또 그런 것들을 사료로 남길 여유를 가졌기 때문이다. 비좁은 오두막집에서 삼대가 함께 잠자리에 드는 농민들 입장에서야 무슨 사생활이 가능하며 무슨 회고록을 집필하겠는가. 자연히 이 책은 근대적인 프라이버시가 상층에서 하층으로, 또 도시에서 농촌으로 확산된다고 본다는 점에서 보수적인 면모를 띨 수밖에 없다.

인간에 대한 새삼스런 재발견

그러나 이 책은 기존 역사서와는 분명 다른 혁신적인 면모를 띠고 있기도 하다. 왕조, 국가, 자본주의, 산업화 등의 거대한 흐름만 주목하다 보면 자칫 인간을 획일적으로 파악하기 십상이다. 제1권의 첫머리에서 뒤비는 “기술 및 국가 통제의 급속한 발달과 더불어 개인이라는 존재를 방대하고 두터운 데이터뱅크 속에 들어있는 숫자로 만들어버리고 말 위험”을 경고하였다. 인간은 거대 서사를 구성하는 한낱 부속품같은 존재는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근대성의 발전의 이면에 눈을 돌려서 인간의 다양한 존재 양태를 살핀다는 것은 표면적인 느낌보다 훨씬 더 진지한 문제제기일 수 있다. 사생활의 역사의 심층적인 의도는 인간에 대한 새삼스러운 재발견이며, 달리 말하면 인간의 본질을 되찾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생활’ 혹은 ‘프라이버시’의 정확한 정의는 무엇인가?

이 책의 중대한 문제점으로 흔히 지적하는 것이 바로 이 핵심 개념의 모호성이다. 이 책은 사생활이 무엇인가를 적극적으로 규정하기보다는 ‘국가 혹은 공공성과 관련이 없는 것’ 식으로 네거티브 방식의 접근을 취한다. 그러다 보니 ‘사생활의 역사’를 구성하는 구체적인 내용들은 시대마다 다르고 같은 시대라도 지역마다 다른 결과가 되었다. 이는 한편으로 큰 단점이지만 다른 한편 이 책의 장점으로도 작용한다. 각 연구자들은 음식, 가옥과 가구와 같은 기초 생활 요소들, 마을의 관습, 개인의 독서 경험, 성생활과 내면의 예민한 감수성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전공으로부터 풍성한 이야기거리들을 길어온다. 이 책은 그 동안 다양하게 발전해 온 프랑스 사학의 성과들을 기초로 하고 있다. 즉, 일상사, 심성사, 미시사, 역사인류학, 풍속사, 건축사, 미술사 등의 여러 분야에서 성취한 내용들이 개성있게 빛을 발하면서 전체적으로는 느슨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보여준다’는 말이 이 책보다 더 잘 들어맞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수없이 많은 인상적인 그림들은 단지 텍스트의 보조 자료가 아니라 때로는 수백마디 말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내용을 전달해 주곤 한다. 텍스트들 역시 흥미진진하여 그야말로 눈앞에 그림이 그려지게 만든다. 이 책은 정말로 읽고 보는 것이 즐거운 경험이 된다.

뒤비는 서론에서 이 책이 ‘광범위한 일반층’을 대상으로 한다고 이야기하였다. 전반적으로는 이 주장이 타당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충분히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뒤비 자신이 다른 곳에서는 이 책이 전문 역사가들의 흥미를 북돋우고 다른 연구를 자극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한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상당한 역사 지식과 기존 연구서들에 대한 정보를 필요로 하는 부분도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일반 교양층과 전문 연구자 층을 매개하는 중간 수준이라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 복고 왕정 시대에 낭만적 사랑의 기호 체계가 드러나 연인들 사이의 순결한 감정 토로를 자극했다.그림은 <연인들의 은밀한 이야기>(1820년경. 파리. 장식예술도서관). 사진 새물결 제공
공과 사의 관계에 성찰 제시

오늘 우리가 이 책을 읽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해서는 이번에 출판된, 20세기를 다룬 마지막 5권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원래의 아리에스의 개념을 따르면, 국가기구가 강화되고 그에 대한 대응으로 사생활이 강화된 현상, 즉 공(公)과 사(私)가 대립되는 현상은 19세기에 정점에 달했다. 그 이후 오늘날 우리 시대에는 여기에 다시 한번 변화가 일어났다. 사생활은 자신의 거처인 가족을 떠나 공공 영역으로 확산되어 가는가 하면 반대로 공공성이 거침없이 우리의 집안으로 밀고 들어온다. 이전의 네 권은 거의 전적으로 프랑스를 연구 대상으로 했던 반면 5권에서는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비교적 많이 포함하는데, 이런 연구를 통해 유럽 여러 지역에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직장은 갈수록 가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예컨대 생일은 직장 동료들이 다 알고 축하하는 공개사항이다), 반면 바깥 세계에 속하는 시장과 정치권의 일들이 텔레비전을 통해 곧바로 거실에서 논의된다. 공공성과 프라이버시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항시 변동한다. 아마도 우리 사회야말로 컴퓨터 통신의 발전으로 사생활의 공공화가 가장 빨리 진행되고 있는 곳이 아닐까?

우리 삶을 구성하고 규정하는 공과 사의 거대한 두 축이 빚어내는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 갈 것인가? 이 책은 이런 문제에 대해 명백한 답을 주지는 않는다. 다만 저자들은 그들 나름의 진지한 성찰의 사례들을 우리에게 제시함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문제들을 제기하였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답을 찾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주경철/서울대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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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2 14: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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