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사상 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이토록 막가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지명철회의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국가를 책임진 집권세력으로서의 막중한 사명의식은 간 데 없고, 상대방을 겁박하고 모욕하기를 서슴지 않는 그야말로 갈 데까지 간 모습을 노정했다. 집권 여당 의장의 거듭된 면담 요청은 대통령에 의해 번번이 거절돼 ‘모욕’으로 돌아왔다. 여당 지도부는 이에 ‘복수라도 하듯’ 국정 현안을 협의하기 위해 대통령이 제안한 청와대 만찬을 거부하는 초유의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치고받는 대립과 공방 속에서는 만신창이가 된 국정이나 걱정스러운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국민에 대한 책임이나 고민은 한 움큼도 찾아보기 힘들다. 오로지 배신감 등 저차원적 감정만 적나라하게 노출하고 있을 뿐이다. 급기야 노대통령은 국무회의 석상에서 “당적을 포기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거나 “임기를 다 마치지 않는 첫 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특유의 극단적 언술을 쏟아놨다. 이제 당적은 물론 대통령직을 갖고 1차적으로는 여당과 정치권, 결과적으로는 국민을 상대로 마치 ‘치킨 게임’(마주 보고 자동차를 몰다 먼저 피하는 쪽이 지는 게임)을 벌일 수도 있다는 식의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다.
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이런 식의 싸움을 계속한다면 골병드는 것은 민생뿐이다. 산적한 국정의 현안들이 제대로 조율되고, 집행되고, 관리될 리 만무하다. 선거에서 국가를 책임지겠다며 국민의 선택을 호소해 집권한 세력들이 저마다의 도생(圖生)만을 꾀하고, 국민과 국정을 담보로 한 자존심 싸움을 벌이는 것은 이만저만한 직무유기가 아니다.
열린우리당은 국정의 책임은 자기들과 상관 없다는 자세, 오로지 대선공학과 연명을 위해 대통령과 각을 세우고 차별화하는 기회주의적 태도를 버려야 한다. 열린우리당은 분명 참여정부의 공과에 대해 책임을 공유하고 있고,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노대통령 역시 툭하면 대통령직 운운하는, 여당이나 국민을 대상으로 정치도박을 불사하겠다는 유의 언어와 발상은 아예 거둬야 한다. 설령 지지율이 0%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국민이 부여한 임기의 마지막 날까지 국정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고 최선을 다해 이를 수행하는 것은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도리, 아니 포기될 수 없는 의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