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큰 나무가 죽으면 옆의 작은 나무도 죽을까.” 어느 휴일날 노무현 대통령은 부인 권양숙 여사와 경복궁 산책을 하다 불쑥 이런 말을 던졌다고 한다. 즉시 참모들 사이에 비상이 걸렸다. 사퇴 이후를 고민할 정도로 노대통령이 진지하게 사퇴를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 날 이후 참모들은 대통령직에 의욕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려 무던히도 애를 써야 했다고 한다.

참모들의 노력이 실패한 것일까.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지명을 철회한 노무현 대통령이 어제 또 사퇴이야기를 했다. “임기를 다 마치지 않는 첫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번의 어법은 좀 다르다.

물러나지 않게 해달라는 주문형이다. 누가 물러나라고 했는가. 그동안 물러나겠다고 말한 이는 대통령 자신이었다. 그는 취임한 지 3개월 만에 “대통령직을 못해먹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취임한 지 8개월이 되어서는 국민투표로 재신임을 묻겠다고 했다. 취임 10개월째는 불법대선자금이 야당의 10분의 1이 넘으면 대통령자리를 내놓겠다고 했다. 취임 2년6개월째는 대연정을 주장하며 권력을 통째로 내놓을 수 있다고 했다. 취임 3주년 때는 “임기 5년이 길게 느껴진다”고 했다. 출근하는 어느 날 아침 대통령 사임 소식을 들을까 노심초사했던 시민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리는 대통령이었다면, 이런 말도 한 두번에 그쳤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물러나지 않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식이라니, 시민들을 겁주려는 것인가. 대통령 사퇴를 바라지 않으면, 국정혼선이 있다고 해서 너무 따지거나 불평하지 말고 고분고분 따르라는 압력인가. “대통령 인사권이 사사건건 시비가 걸리고 있어서 대통령의 권한 행사가 대단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대통령은 자신의 무기력증을 위로받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위로받아야 할 쪽은 대통령이 아니라 그를 최고 지도자로 선출한 대가로 고통받고 있는 시민들이다.

대통령은 자기 직무를 성실히 수행할 의무만 있다. 헌법의 명령이다. 다른 방법은 없다. 그렇게 해야 공무원들이 움직이고 정부가 작동되고 시민들이 기꺼이 세금을 낸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대통령이 ‘부당한 횡포’를 고발하고, 그 횡포에 ‘굴복’했다고 선언했다. 제대로 된 나라가 아니다.

대통령이 ‘헌재소장 표결 방해’를 헌법위반의 불법행위 및 부당한 횡포로 규정하고는, 그 불법에 “대통령이 굴복했습니다”라고 광고를 하는 나라가 있다니. 그런 대통령이 지휘하는 정부를 누가 믿고 따를 것이며, 그런 정부의 정책에 누가 신뢰를 보낼 것인가.

지금 우리는 대통령으로부터 나올 수 있는 최악의 발언을 들었다. 그는 왜 “국민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겠습니다”라고 함으로써 대통령, 정부, 국민이 모두 이기는 길을 택하지 않았을까. 그는 왜 ‘굴복’을 선택함으로써 대통령과 정부, 국민들이 모두 패배자가 되는 길로 갔을까.

〈이대근 정치·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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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6-11-29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민들이 어르고 달래줘야 하나.
딸랑이라도 하나 던져 줬으면 좋겠구만.
미췬 놈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