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 혁명 종말 ‘美는 어디로 가는가’
입력: 2006년 11월 23일 18:27:57
 

미국은 어디로 가는가.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꽃을 피운 미국의 보수주의 혁명은 조지 W 부시 행정부를 거치며 종말을 맞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12년 만에 상·하원 다수당 지위를 되찾은 민주당이 미국사회의 새로운 지표를 내놓을 준비가 돼 있다는 징표는 아직 없다.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기존의 방식으로는 곤란하다는 막연한 공감대만 형성돼 있을 뿐이다.

미국 내에서는 이념으로서의 보수와 진보의 경계가 갈수록 희미해지는 상황에서 지난 7일 중간선거 이후 미국사회의 향방을 가름하는 논의가 한창이다. 새로운 정치실험의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판단에서다. 미 온라인 정치평론 매거진인 ‘슬레이트’ 편집장 제이콥 와이스버그가 23일자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한 ‘방향을 모색하는 미국 정치’ 제하의 칼럼에서 부시 행정부에 들어 보수혁명은 종말을 고했다고 분석했다.

부시 행정부 출범과 함께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 전위에 나서면서 보수혁명은 변질됐다. 하지만 보수 혁명의 맹아는 지난 64년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배리 골드워터 캠프에서 싹텄다는 게 정설이다. 미국 전역을 휩쓸었던 신앙부흥운동과 맥을 같이하며 등장한 뉴라이트(신우파)가 1차 꽃을 피운 것은 레이건 행정부 시대다. 작은 정부와 낮은 세금 및 안보를 중시하며 ‘악의 제국’인 소련에 대해 더욱 공격적인 대외정책을 펼쳤다.

사회정책에서 개인의 책임을 중시했고 당연히 강력한 범죄소탕으로 이어졌다. 공립학교에서 기도 허용을 확산하기도 했다.

보수의 큰 흐름은 민주당 빌 클린턴 대통령의 첫 임기 2년 동안 짧은 휴지기간을 거쳐 94년 공화당의 상·하 양원 장악과 함께 변화의 중심에 섰다. 공화당 하원의장의 이름을 딴 이른바 ‘깅리치 혁명’이 뉴라이트의 두번째 점화인 셈이다. 클린턴 스스로 “큰 정부의 시대는 끝났다”면서 보수주의와 가치와 정책을 섞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당선 이후 스스로 보수주의의 가치들을 훼손했다는 게 와이스버그의 진단이다. 부시 대통령은 무엇보다 공화당 지지자들에게 성탄절 양말을 돌리듯이 무절제한 예산집행으로 재정·무역에서 역사상 최고 호황을 누렸던 클린턴 시대를 닫았다. 재정적자는 쌓였고 늘어난 정부지출은 ‘작은 정부’의 명분을 무색케 했다.

사회정책에서 부시는 더욱 오른쪽으로 전환, 비종교적이고 자유주의적인 공화당원들과 거리를 뒀다. 이라크 침공으로 대표되는 부시 대통령의 변덕스러운 군사개입은 국내에선 신뢰를 잃었고 국외에선 ‘슈퍼파워 피로증’을 낳았다. 부시 행정부 집권 6년 동안 보수연합은 깨지고 에너지는 소진됐으며 핵심 가치는 보수의 품을 떠났다는 것이다.

물론 중간선거 결과를 좌우한 것은 민주당이 잘했다기보다는 공화당이 못했다는 설명이 주류다.

이라크전쟁과 함께 공화당 및 정치권의 부패, 갈수록 벌어지는 빈부격차와 중산층의 실망이 어우러져 빚어진 것인 만큼 보수시대가 끝나기는 했지만 새로운 시대는 앞이 안보인다.

향후 미국의 진로에 대해 와이스버그는 4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우선 새로운 진보주의의 출현 가능성이다. 민주당이 내친김에 2008년 대선까지 승리로 이끌고 의회 지분을 더 늘릴 경우 지난 93년 클린턴 행정부가 중단했던 짧은 ‘진보실험’이 새로운 형태로 시작될 수 있다는 가정이다.

그 핵심은 세계화의 폐단에 대한 수술작업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임금적체와 벌어지는 빈부격차, 중산층의 불안정에 대한 대책 마련이 주 내용이다.

민주당 존 에드워즈와 앨 고어 전 부통령, 바락 오바마가 이런 성향의 정치인으로 지목된다.

두번째는 클린턴주의의 부활 또는 뉴클린턴주의다. 이는 온건한 공화당원과의 적극적인 공조를 통해 중도세력의 폭을 넓혀나가는 시나리오다. 클린턴이 실패했던 의료보험개혁을 다시 추진하는 등 점진적인 개혁을 지향하는 이런 경향에는 힐러리 클린턴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세번째는 ‘혼동의 중도’로 당분간 특별한 정치적인 지향점이 없는 시대가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사회·경제적인 불안정을 완화하되 미국내 점증하는 경제적 포퓰리즘과 맞물려 좋게 말해 양당정치의 부활이지만, 굵은 흐름을 찾을 수 없는 상태다. 공화당의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과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아널드 슈워츠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 및 조지프 리버만이 대표한다.

마지막으로 ‘부시 없는 부시이즘’의 출현 가능성이다. 부시는 갔지만 그가 내놓았던 감세와 안보지상주의의 명제가 살아남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과 사법 보수주의는 계속될 것이며 경제적으로는 다소 규율이 잡힌 레이거노믹스의 부활이 예상된다.

예산낭비를 혐오하고 비종교적인 세속정치적인 개혁을 주창하는 공화당의 차기 대선주자 존 매케인이 대표주자다. 그는 이라크에서 미국 젊은이들이 죽는 것에는 반대하지만 압도적인 승리만이 결론이라고 주장한다.

와이스버그는 마지막으로 이도 저도 아닌 새로운 정치형태가 출현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이 어떤 길로 접어들지 점치기 쉽지 않은 국면이라는 얘기다.

〈워싱턴|김진호특파원 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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