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아바
키란 데사이 지음, 원재길 옮김 / 이레 / 2001년 3월
평점 :
절판


일상은 누군가의 모방으로 가득 차 있다. 당신의 머리스타일을 하고 있는 자가 백만명, 당신의 패션은 누군가의 패션이고, 당신의 일은 어제의 일이고, 당신의 의견은 다른 사람의 의견이다. 개성은 자기만족의 한치 앞에 있을 뿐 대중성에 파묻혀 살아간다. 습관화된 평범성에서 벗어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으며, 조금의 변화에도 불안을 느끼게 하는 사회일수록 개인은 작아져 간다. 아니 작아져야만 한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작아질수록 커지려 하는 이율배반적 상황에 놓여있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행동에 지독한 관심을 가지며 살아간다. ‘세상에 이런 일이’를 가끔 보면 ‘세상엔 구경거리’처럼 보인다. 누군가가 돌을 씹어먹는다면 ‘구경거리’가 되는 세상인 것이다. 다른 사람을 발견하는 작업은 TV의 쇼비지니스의 영역에서 다뤄지는 부분이 된 것이다.
동질성의 안정과, 이질성의 불안을 동시에 느끼기 위해서. 그럼으로써 누군가는 더더욱 가까워질 것이고, 누군가는 더더욱 멀어질 것이다. 세상과 하나가 될 것인가, 또 다른 세상을 창조할 것인가. 결과는 ‘거룩’하거나 ‘코미디’가 된다.

이 소설은 두 가지를 모두 보여준다. 결국 웃기는 세상인 것이다.
나무에 올라간 남자를 구경거리를 만들고, 그것에 신성한 코미디를 부여한다. 특이함에 기이함을 더하니 신성이 된다. 작가는 그리고서 사회와 대중의 반응을 오히려 구경거리로 만들어 버린다. 성자의 나라, 종교적 가르침이 생활 속에서도 마구 일어날 것 같은 나라(누군가의 에세이의 역할이 컸다.), 인도의 실상을 검열 없이 벗겨버리는 소설인 셈이다.

비범한 어머니(비 오는 날에 머리에 꽃 한 송이가 잘 어울리는)에게서 태어난 ‘행운’이라는 뜻을 가진 ‘삼파드’의 비범함이 웃기기만 한 것은 아니다. 진정한 자유에 대한 욕망의 실패를 다시 보여줘야만 하기 때문이다. 결국 커다란 구아바가 되어  원숭이들의 세상으로 떠나버릴 수 밖에 없게 된다.

나른한 오후, 파리만 휘휘 날리고, 양은냄비처럼 달그락 거리는 일상, ‘인도’하고 거리가 먼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유쾌하게 그려낸 이 소설의 진정한 맛은 스스로를 연민하는 데에 있다. 하나 더 재미있는 부분을 추가한다면, 재치 있는 문장과 섬세한 묘사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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