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음달이면 둘째를 낳게 될 나의 초중고 동창 (이러기도 쉽지 않다..)에게 안부 전화를 걸었다.
저녁시간, 왁자지껄한 소음이 들려왔다. 밖인걸까?
내 친구네 부부는 맞벌이다. 남편은 외동아들이고 시부모님의 강력한 요구로 신혼초 한 달만 따로 살고 곧바로 함께 살기 시작했다. 사실 그렇게 된 과정도 참 길다. 처음에는 분가를 한다고 집까지 따로 구해서 사고 했건만 알고보니 그건 그냥 겉치레에 지나지 않았고 금방 합칠 계획을 이미 가지고 계셨던듯 하다. 시집살이 하지 않을줄 알고 있던 내 친구네 부모님은 펄쩍 뛰셨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지고, 그래서 결국 함께 살게 된것. 여튼 그 친구가 아들을 낳고 돌이 지나고 나자 연년생으로 둘째가 들어선 것이다.
수화기 너머 친구는 다음달 정도에 출산 휴가를 낼 예정이고 오늘은 휴무일인데 시부모님에게는 휴무라는 말을 안하고 친정에 와서 쉬다가 남편 퇴근 시간에 맞추어 만나 영화 한 편 (<외출>)을 보고 같이 저녁 먹고 있다고 했다. 남편과 함께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것.
친구네 시어머니는 외동아들 둔 옛날 분 답게 오로지 아들아들 하시는 전형적인 스타일이다. 친구가 첫째로 아들을 낳자, 이제 너도 아들 키워봐라. 얼마나 든든한지, 내가 왜 아들만 보고 사는지 알거다. 이제 둘째는 딸 낳아도 된다 하신 분이시다.
내 친구는 첫째를 가지고 만삭이 다 되어 배가 잔뜩 부른채 직장을 다니며 시집살이를 했다. 친구의 시어머니께서는 며느리의 부른 배 때문에 저녁 설겆이가 힘들어 아들이 돕고 있는 모습을 보고 발끈하여 문을 쾅 닫고 들어가시고, 그러다 또 나와서 싫은 소리를 하시는 분이다.
뭐, 저것은 그냥 하나의 에피소드일 뿐이고 그 이외에도 말하자면 너무나 많은 일화가 있으나 그걸 여기다 옮기려고 글을 시작한게 아니므로 그만 접기로 하자.
그런 사정을 잘 알기에 나는 그들 부부의 시어머니 속이기(물론 시아버지도 속인것이나 주 목적은 시어머니를 속이고자 한 것이므로..)를 듣고 놀라거나 뭐라 한 마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난 뒤 그 씁쓸한 기운은 한동안 내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아들과 며느리에게 속임을 당한 시어머니도 불쌍했고, 그렇게 해가면서라도 쉬어야 하는 내 친구도 안쓰러웠고, 아내를 이해하기에 어머니를 속여가며 만삭인 아내를 쉬게 하는 남편도 불쌍했다.
한 발만 이해를 했으면 좋았을텐데. 당신 속 불편하고 아들이 손에 물묻히는게 울화가 치밀더라도 매일도 아닌, 며느리가 만삭인 그 기간만이라도 설겆이를 같이(남편 혼자 하는것도 아니고 같이다..)하는걸 그냥 용인해주셨더라면 아들과 며느리가 이렇게 거짓말까지 해가며 밖에서 시간을 보내지는 않을텐데 싶었다.
한편으론 내가 만일 친구가 아니라 시누이였다면 어땠을까 싶었다. 그래, 우리 엄마 별나시지. 더구나 오빠(혹은 남동생)도 이해가 가니까 저렇게 하게 두겠지. 이러고 말까? 아니면 열불이 나서 소리지르며 둘다한테 그러는거 아니라고 화를 냈을까? 모를 일이다.
나는 친구의 시어머니가 아주 유별나고, 성품이 고약한 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 이 시대를 사는 내 나이 또래와는 꽤 차이가 나는 사고 방식을 가진 분이라는 것.
그래서 더욱 씁쓸하다. 이런 가정이 한둘이 아닐거라는 생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