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거로 다시 돌아가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거야'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다시 돌아가는 일 자체가 말도 안되는 것이지만 여하튼 그렇다고 가정한들 다시 돌아가도 여전히 나는 나라서 그렇게 하는 것 밖에는 달리 어쩔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오만하기 때문에 후회를 안하는게 아니라 그나마 내 깜냥을 알아서 굳이 후회 안하는 것.  

뭐랄까,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은어떼가 몰려오는 것마냥 자꾸 회귀의 물결에 휩쓸린다. 그것은 나를 온통 뒤흔들어 놓고 언제 그랬냐는 듯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다. 폐허가 된 한복판에 주저앉은 나는 망연자실. 그런 일이 있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한번 지난날의 은어가 내 앞에 힘차게 헤엄치며 물길을 거슬러 올라왔다. 

은어가 두 눈을 껌뻑이며 내게 말했다.  

용서해 줄 수 있겠느냐고, 다시 한번 기회를 줄 수 있겠느냐고. 지난날의 모습보다 현재는 그래도 더 나아졌다고, 앞으로 계속 노력해서 더 나아지겠다고.  

문득, 얼마전 나를 휩쓸고 지나간 회귀의 물결이 남긴 폐허가 떠올랐다. 더불어 지금 내 앞에서 두 눈을 껌뻑이고 있는 이 은어가 가슴 속 깊이 새겨넣은 상처가 여전히 욱신거리고 있음을 느꼈다. 대답은 궁색했고 침묵이 흘렀다. 

용서라는 표현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컴퓨터를 부팅할 때 보는 그 친숙한 '새로운 시작'을 선택하느냐 마느냐 정도가 어울렸다. 뭉게뭉게 의심과 불안의 연기가 피어올랐지만 어차피 연기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생각이 너무 많아도 그르치게 되고, 너무 덜해도 그르치게 된다. 더구나 어떤 일의 경우는 생각한다고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노력을 하는것이 더 먼저일 때도 있다. 

노력한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참 아름답게 느껴지는데, 요 며칠은 특히 그렇다.  

요즘 내 인생은 회귀가 유행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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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던 일이 엎어지고(미국탓이다) 

느닷없이 다른 일을 맡아 정신없이 맨땅에 헤딩하면서 

내 바닥이 참으로 낮구나 새삼스러울 것 없이 깨닫고 또 깨닫고  

그래도 얼굴에 철판깔고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 피딱지 굳기도 전에 또 헤딩하고 있다. 

다섯시간 이상 자고 살아봤으면 하는 한 주일이 지나가면서 극도로 지친 몸과 마음에 오기를 부려 무리한 일정으로 공부까지 같이 해나가고 있다.  

결국, 몸은 고장이 나버렸고 학원에서는 과정 이수 테스트에서 떨어져 리핏판정을 받고야 말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인 것 같다. 욕심이 스머프라는 별명처럼 나는 언제나 과욕형 인간이므로 이렇게 파닥거리며 사는게 어울릴지도. 

일도, 공부도, 우정도, 사랑도 모두모두 중요한데 어쩌란 말이냐! 

남들은 황금연휴라며 놀러갈 계획도 세우고 들뜬 모양인데 난 마감 걱정에 딴 생각이 안난다. 돈 굳고 좋은거, 라고 어거지로 긍정적인 마인드를 만들어 보려 노력중이다. 

비오는 프라이데이 나잇을 그냥 보내기 미안해서 기념으로 잭 다니엘과 아이스하우스, 호가든으로 밤을 불태워버렸다. 덕분에 새러데이 나잇에는 돈만 홀랑 내고 그 많은 와인 한 잔 입에도 못대고 시원한 생맥도 눈으로 구경만 하다 돌아와서 기절해버렸다.  

요즘 다시 느끼는 건데, 삶의 의외성은 이 지독한 일상을 견디게 해주는 유일한 탈출구 같은 거다. 지루함이 패션의 죄악인 것과 같다.

그것이 좋은 쪽이건 그렇지 않건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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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9-04-26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잭다니엘..호가든...제가 좋아하는, 그러나 지금은 마실 수 없는..술들이네요. ㅋㅋ -_ㅠ
맞아요. 중요한 게 너무 많은데 시간도 없고, 몸은 하나라 늘 고민이죠.
그래도 욕심이 없는 사람보다 욕심 있는 사람이 현재는 힘들어도 미래에는 웃게되는 것 같아요. 마음을 미래에 두시면 좀 힘이 나지 않을까요? ^^

이리스 2009-04-27 19:57   좋아요 0 | URL
이크, 어쩐지 염장 포스팅이 된듯한;;
네, 마음을 미래에 두어보겠습니다. 나아지겠죠! :)

kimji 2009-04-27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가든.. 은 저도 벌벌 떨립니다;; 크헉;;

이리스 2009-04-27 19:58   좋아요 0 | URL
으하... 그언젠가 호가든을 배터지게 --; 드실 날이..
^_^
 

 

스트레스에 쩔어 노화 촉진중인 나를 가엾게 여긴 하늘이 

크나큰 선물을 내리셨으니... 

 

오, 알흠다운 꽃미남께서 내게 와인을 따라 주셨다. 

므흣한 마음으로 홀짝이며 담소를 나누던 중 대화의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아마도 88 올림픽이 열렸던 그 해에 태어나지 않았을까 싶어 나이를 물었더니 

아니란다.  

 

1990년에 태어나셨단다. 

입안에 머금고 있던 와인을 하마터면 뿜을 뻔 했다.  

1990년대에 태어난 분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와인을 마시고 게임도 했다고 하자 

동년배 녀성분들이 모두 불을 뿜으며 하악하악. -_-;; 

 

외계인이라도 본듯한 우리의 호들갑은, 그러니까 

늙었다는 증명. 

 

하늘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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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04-19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이시여~ 2

이리스 2009-04-20 20:41   좋아요 0 | URL
크하하하핫~~ ㅎㅎ
 

꽃비 내리는 그 어딘가에서 낮술을 홀짝이고 싶은데 

그럴 날이 오려는지 모르겠고..  

 

사람 앞일 참 모르는 것이긴 한데 

난데없이 부천과 분당을 주구장창 오가는 일이 생겨서 당황스럽고 ..  

 

봄날이 다 가기 전에 봄바람에 마음을 실어 보내려고 

와인과 재즈에 지친 몸과 마음을 푹 담갔던 주말이 다 갔습니다.  

 

* 어제 모처에서 타로점을 보았습니다. 그 점괘대로 된다면 죽어도-_- 여한이 없을텐데말이죠. 노력해야지, 하고 골똘히 생각하다가 나름대로 뭔가 노력이랍시고 했는데 잘 될지 모르겠어요.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리라 믿고 그 옛날의 나처럼 다시 그렇게 돌아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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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09-04-12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주말에는 맥주와 재즈에 몸을 담그고 있었는데 ㅎ
이리스님이 바라시는 일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잘 될꺼예요!

이리스 2009-04-12 20:40   좋아요 0 | URL
주말이 행복하셨겠어요.
저는 지난주 말로 콘서트에 이어 이번주말도 재즈 라이브로 연짱~
잘 되길 바라주셔서 감사해요. *^^*

무해한모리군 2009-04-12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소주에 몸을 푹 담궜습니다. ^^

이리스 2009-04-12 22:11   좋아요 0 | URL
으하~ 화끈하셨겠어요. :)

무해한모리군 2009-04-12 22:17   좋아요 0 | URL
아 이젠 옮겨타 경주법주에 담그고 있습니다.

이리스 2009-04-12 22:22   좋아요 0 | URL
어우어어.. 경주법주..
저도 일잔 주세열~~ ㅋㅋㅋ
 

 

 

 

 

 

 

 

삼십대

 나 다 자랐다, 삼십대, 청춘은 껌처럼 씹고 버렸

다, 가끔 눈물이 흘렀으나 그것을 기적이라 믿지 않

았다, 다만 깜짝 놀라 친구들에게 전화질이나 해댈

뿐, 뭐 하고 사니, 산책은 나의 종교, 하품은 나의 기

도문, 귀의할 곳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 공

원에 나가 사진도 찍고 김밥도 먹었다, 평화로웠으

나, 삼십대, 평화가 그리 믿을 만한  것이겠나, 비행

운에 할퀴운 하늘이 순식간에 아무는 것을 잔디밭에

누워 바라보았다, 내 속 어딘가에 고여 있는 하얀 피,

꿈속에, 니가 나타났다, 다음 날 꿈에도, 같은 자리

에 니가 서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너랑 닮은 새였다

(제발 날아가지 마), 삼십대, 다 자랐는데 왜 사나,

사랑은 여전히 오는가, 여전히 아픈가, 여전히 신열

에 몸 들뜨나, 산책에서 돌아오면 이 텅 빈 방, 누군

가 잠시 들러 침만 뱉고 떠나도, 한 계절 따뜻하리,

음악을 고르고, 차를 끓이고, 책장을 넘기고, 화분에

물을 주고, 이것을 아늑한 휴일이라 부른다면, 뭐,

그렇다 치자, 창밖, 가을비 내린다, 삼십대, 나 흐르

는 빗물 오래오래 바라보며, 사는 둥, 마는 둥, 살아

간다
 
 
*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시집을 읽고 지낸다. 사람들이 상상을 뛰어넘는 형태로 구겨져 실린 버스 안에서 용케 자리를 잡고 앉아 음악을 들으며 시집을 펼친다.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은 시집으로 구원받는다. 다 자란 삼십대는 여전이 아픈 사랑이 올 것을 믿으며 사는 둥 마는 둥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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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 2009-03-30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며칠 전에 이 시 일기에 적었었는데 깜놀햇네요ㅎㅎ 몸으로는 아직 4,5년 남았으나 이미 마음은ㅠ

이리스 2009-03-30 15:34   좋아요 0 | URL
아, 저는 몸도 마음도 ㅎㅎㅎ
깜놀할 일이 의외로 종종 있는 세상이더라구요~ ^^;

이잘코군 2009-03-30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0대는 제2의 사춘기... -_ㅠ

이리스 2009-03-30 15:35   좋아요 0 | URL
ㅋㅋㅋ 그럴지도 몰겠수.

무해한모리군 2009-04-10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우 한달에 한권을 읽어내는 시집
이번달은 이녀석입니다.

이리스 2009-04-12 19:38   좋아요 0 | URL
한달에 한권이면 일년에 열두권!!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