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상가에선 악기들만 파는 줄 알았지 '서울아트시네마'라는 영화관이 있는 줄도 몰랐다. 훌륭한 친구를 둔 덕분에 <호수의 이방인>라는 프랑스 영화를 거기서 봤다. 영화는 사실 평범했다. 에로스와 섹스, 폭력과 살인, 도주와 추격으로 흘러가는 전형적인 3류 스릴러. 그럼에도 이 영화가 결코 스테레오타입에 머물 수 없는 결정적 지점은 공간적 배경 설정에 있었다. 사건이 펼쳐진 호숫가는 남성 전용 누드비치로 등장인물들이 경찰을 제외하고는 모두 발가벗은 남자들이었던 것. 평범하다 못해 진부하고 식상하기까지 한 줄거리가 퀴어적 설정 아래 낯설고 신선한 이야기로 변모했다.
이 영화는 기존의 익숙한 성역할 체계가 전도된 가상 사회를 설정하여 가부장제 사회의 모순을 보여주는 페미니즘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게르드 브란튼베르그, 황금가지)을 연상시킨다. <이갈리아의 딸들>의 퀴어 버전 쯤 되려나.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을 고전주의적 구도로 잡아내되 그것을 점묘법이라는 새로운 화법으로 묘사함으로써 미술사에 길이 남을 독특한 이미지를 만들어낸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떠올려 보는 것도 좋겠다. 이 영화의 예술적 성취는 아마도 그 즈음이라고 생각된다.
호수의 이방인은 누구일까. 평화로운 호숫가에 난데없이 나타나 살인을 저지른 옴므파탈 사이코패스인가. 살인이든 동성 섹스든 누드비치 그 세계 나름의 질서에 권위를 위시하며 함부로 간여하는 경찰인가. 아니면,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를 기이하고 색다른 영화적 체험으로 받아들인 나 자신인가. 아, 솟구치는 질문들로 머릿속이 기분좋게 헝클어지는 이런 퀴어 영화가 앞으로 더욱 더 많이 나오기를. 모두가 식상해져버릴 때까지 계속해서 나오기를. 모두가 식상해져버리는 순간 퀴어 영화는 더 이상 장르로서의 의미를 잃고 사라져 버리겠지만, 사실상 퀴어 영화의 최종목표는 자기소멸, 바로 그 지점에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