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동 1985
정지영 감독, 이경영 외 출연 / 루커스엔터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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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를 보고나서 난데없이 소설 <칼의 노래>의 이순신이 떠올랐다. <남영동 1985>의 이근안과 <칼의 노래>의 이순신은 숭고미마저 느껴지는 극단적인 충직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놀랍게도 겹쳐진다. 그들(무인들이라고 해야 할까)은 근본적으로 세계를 부정하지 않는다. 데카르트처럼 회의하지도, 사르트르처럼 구토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세계 자체에 대해서 무심하다. 그것이 뼛속 깊은 무력감과 냉소를 동반하는 무심함이든, 순수한 무지에서 비롯한 무심함이든. 내가 왜 <칼의 노래>에 완전히 빠져들 수는 없었는지, 무사가 칼을 휘두르듯 쳐내려가는 그 짧은 호흡의 문장들이 왜 끝내 껄끄러웠는지, 오늘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확실히 알았다. 그들에게는 신경증자의 불안 같은 게 없다. 설령 있더라도 그것은 자기로부터 소외되고 억압된다. 아, 그러고 보면 불안이란 얼마나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  

 

2 고문을 비롯한 신체형이 퇴조하고 그를 대신하여 감금형 및 노동형이 등장했던 게 근대 이후 유럽의 새로운 처벌 문화였음을 떠올려보면, 한국은 80년대에도 여전히 근대 세계에 진입하지 못한, 무늬만 근대인 나라였던 셈이다. 영화가 이를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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