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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 아나토미 시즌 1 - Grey's Anatomy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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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세상의 모든 방면의 테크니션들에게 존경보다는 차라리 경멸과 거부감을 품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지적 기형에 대해 냉소하고 연민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내 직업의 어떤 부분에서 오는 자괴감에서 비롯한 것이기도 했고, 제너럴리스트가 되고 싶다는 개인적인 허영심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보고 마음을 조금은 고쳐 먹게 된 것 같다. 어떤 한 분야에서 능숙한 처신과 유능한 기술을 보여주는 사람의 모습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멋지고 아름답다. 다만, 그가 자신의 일이 세계의 모든 가치로운 것들의 전부라고 착각하지 않는 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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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생크 탈출 - The Shawshank Redemptio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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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적 수명에 있어서나 사유의 지평에 있어서나 유한성을 자각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감옥을 체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감옥은 본질적으로는 거대한 슬픔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감옥 안에서 생각보다 많은 일을 저지를(!) 수 있다. 고은 시인은 장장 30권 분량의 대서사시 '만인보'의 첫 구상을 감옥에서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몇번의 군법회의 검찰심문이나 재판을 위해 상피고인 문익환과 한 소송차에 실려 가면서도 대화가 금지되었다. 이런 사정이므로 감방의 시간은 훨씬 더 주관적이었다. 길고 길었다. 만인보는 그 긴 시간 속에서 태어난 뜻밖의 훨훨 나는 나비떼였다. 그 나비들은 내 기억의 용량을 확대시켰으며 기억의 이면인 상상의 고도도 섶에 불닿듯이 겁없이 높여주기 시작했다."  -고은, 만물 혹은 만인, 창비 148호, p.315 

이 영화 중반부에서 주인공은 감옥 방송실을 무단점거하고 모차르트 오페라를 내보냈다가 2주간 독방 신세를 지고 나온다. 2주간 견딜 만 했느냐는 동료의 물음에 그는 모차르트가 친구가 되어주었다고 말한다. 독방에 있는 내내 (마음 속으로) 모차르트를 들었다는 것이다. "마음속의 그 어떤 건 아무도 빼앗지 못하고 손댈 수도 없지. 자신만의 것이라고." 이 영화는 교훈적이고도 실용적이다. 감옥에서의 삶의 바람직한 표본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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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Memento)
기타 (DVD)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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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탈하고도 진지한 실소를 자아내는 영화. '정상인'과 '단기기억상실 환자'와 '미친놈'의 차이란 대저 얼마나 미미한 것이냐. 그것은 단지 정상인의 관점에서 자의적으로 분류한 것일 뿐, 원거리에서 보면 그놈이 그놈 아닌가. 더없이 부실하고 허술한 한 인간이 세계를 파악하고 자기를 인식하기 위해 벌이는 이 치열한 고투. '앎'이라는, '인식활동'이라고 하는 이 거대한 삽질. 도저한 희극. 잔혹한 코미디. 이 영화의 주인공은 사실상 우리 자신이 아닐까. 인간이라고 하는 이 자신감 넘치는 종족 말이다. 

"나는 무엇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남들보다 늘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대신에 나에게는 곰곰이 끈덕지게 생각하는 습관이 있으니 이것을 내 장점으로 삼아도 될 것이다. 또 나는 깨우친 것을 금방 잊어버리기도 잘 하지만, 내게는 생각한 바를 글로 남길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또 한편으로 니체에 따르면 그때그때 잊어버리는 것이야말로 놀라운 능력이라고 하므로 기실 걱정할 바가 못 된다."

 

어제 나는 문득 대단한 걸 깨달은 양 기쁨에 들떠 위와 같은 글까지 적었는데... 그러니까 나는 이 영화를 보기도 전에 이미 영화의 주인공이 내뱉을 만한 대사를 진지하게 읊고 있었더란 말인가. 여기서 나의 진지한 실소는 정점을 찍는다. <메멘토>는, 영화란 으레 피자나 씹으면서 반쯤 널부러진 자세로 침 좀 흘리면서 보다가 지루하면 그대로 자버리면 되는 거라는 신조를 가진 나 같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세를 고쳐 앉고 침을 닦고 참회하게 만든다. 놀란 감독의 영화는 앞으로 절대 방심한 채로 보면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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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크라임 - An American Crim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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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아동학대사건을 다룬 영화. 이 영화에서 아동학대의 주범으로 나오는 거트루드라는 여자는 생활고에 시달리며 여섯명의 아이들을 키우는 과부인데, 양육비를 받고 잠시 돌보게 된 남의 집 딸을 지하실에 감금하여 상습적으로 학대하다 결국에는 죽여버린다. 그녀의 아이들 역시 집단 광기에 사로잡혀 엄마를 따라 적극적으로 폭력과 살인에 가담한다.   

거투르드와 그녀의 아이들이 벌이는 잔혹극은 야만과 광기로 충만한 원시 사회의 모습을 빼닮았다. 관능미와 카리스마와 특유의 몽롱한 분위기까지 두루 갖춘 거트루드는 흡사 원시 부족의 여사제 같고, 그녀와 그녀의 아이들이 벌이는 파렴치한 범죄행위는 인간을 제물로 바치던 시절의 신나는 축제를 연상케 한다. 거트루드의 가족에게서는 인간의 잔혹성이 극도로 천진하고 솔직하고 무구하게 발휘될 때의 어떤, 끔찍한 원시적 건강성이 읽힌다. 단순히 윤리적 비분강개로만은 끝낼 수 없는 이상야릇한 영화다.   

이 사건으로 거트루드는 징역 몇 십년을 구형받았고, 살인에 가담한 몇몇 아이들 역시 소년원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 점 역시 도덕의 잣대를 떠나 현대사회의 처벌 제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들을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거트루드의 아이들은 그저 지극히 동물 본연의 자세에 충실했을 뿐인데, 어쩌면 너무나 동물적이었던 나머지 현대 사회의 규율을 미처 습득하지 못한 점이야말로 그들이 저지른 유일한 죄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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