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그가 죽이고 싶었던 것은 그 자신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도 나의 행복, 나의 예술, 나의 사랑이었던 게 분명하다. 그가 되살아날 수 없는 것처럼 나도 회복하지 못했으면 하는 집요한 의지의 실행이었다.(178페이지)


박원순시장은 내가 정말로 좋아하던 몇 안되는 정치인 중 한명이었다. 지금 이렇게 과거형으로 쓸수밖에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울 정도로.....


며칠전 발표된 피해자의 편지에서 ˝사과 받고 싶었습니다.... 용서하고 싶었습니다˝라는 두 문장이 가슴을 치받았다. 그 두 마디에 녹아있는 간절함이 너무도 절절해서.


그가 자살하지 않고 죄값을 받고 진심어린 사과를 했더라면 피해자인 그녀는 용서할 수 있었을까? 알 수 없다. 가보지 못한 길이기에.... 그럼에도 그럼에도 말이다.


박원순은 살아서 사과했어야 했다.
죽음이 사과라고?
아니, 그것은 피해자를 향한 또 한번의 폭력이고 가해일뿐이다. 그것도 최종적이고 완전한 폭력.


나는 박원순 시장이 살아 뉘우치고 끊임없이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먼 훗날 그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 비록 치명적인 잘못을 한적도 있지만 그래도 당신이 한 일에 우리 사회가 많은 빚을 졌다며 그의 죽음에 애도를 보낼 수 있었을 것도 같다.


하지만 무책임한, 피해자에게 또 한 번의 상처를 줘버린 그의 자살앞에서는 감히 그의 죽음을 애도할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리에게 친절한 사람들이 사람에겐 친절하지 않다는 게 이상 - P115

폭력은 사람의 인격을 조각한다. 조각하다가 아예 부숴버리기도 하지만, 폭력에서살아남은 사람은 폭력의 기미를 감지할 수 있게 되는데, 그렇게얻은 감지력을 유용하게 쓰는 사람도 있고 절망해 방치해버리는사람도 있어서 한 가지 결로 말할 수는 없다. - P126

한빛은 그렇게 느낄 수 있다. 규림은 자신의 해명이 힘도 없고중요하지도 않음을 이해했다. 화수에게 일어난 일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죽은 남자가 사촌 큰누나에게 염산을 던졌을 때, 가해자가 피해자인 척할 때의 역겨움을 온 가족이 똑똑히 이해할 수밖에없었고 규림 자신은 도저히 같은 짓을 할 수 없었다. 가해와 피해의 스펙트럼에서 스스로가 가해에 더 가까웠음을 인정해야 했다. - P173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그가 죽이고 싶었던 것은 그 자신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도나의 행복, 나의 예술, 나의 사랑이었던 게 분명하다. 그가 되살아날 수 없는 것처럼 나도 회복하지 못했으면 하는 집요한 의지의실행이었다.
- P178

우리가 이천 년 가깝게 사랑해온 땅들은 플랜테이션 농장이 되었어요. 백인 선교사의 자식들이 그 농장을 차지했습니다.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대거 바다를 건너왔고요. 농장주들이 관세를 피하기 위해 미국에 합병을 한 겁니다. 아무것도 우리가 원한 것은 없었습니다. 우리의 정신과 문화가 희석되는 걸 막기 위해 지극한 노력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말이 살아나고 훌라가 살아났지만 갈 길이 멀어요. 우리를 그저 관광상품으로 대상화하면 안됩니다. - P213

빛나는 재능들을 바로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누군가는 유전적인 것이나 환경적인 것을, 또는 그 모든 걸 넘어서는 노력을 재능이라 부르지만 내가 지켜본 바로는 질리지 않는 것이 가장 대단한 재능인 것 같았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면서질리지 않는 것. 수십 년 한 분야에 몸을 담으면서 흥미를 잃지 않는 것. 같은 주제에 수백수천 번씩 비슷한 듯 다른 각도로 접근하는 것.
- P288

즐거워하면서 일하는 사람은 드물다. 질리지 않았다는 것이 정확하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어떤 일에 뛰어난 것 같은데 얼마 동안해보니 질린다면, 그 일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당장 뛰어난 것같지는 않지만 하고 하고 또 해도 질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시도해볼 만하다.
- P28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린 시절 그 그림에 반해화가에 대해 알아보았다가 누군가의 부인이란 설명이 먼저 오는것에 아연함을 느꼈었다. 이렇게 대단한 걸 그려도 그보다 중요한정보는 남성 화가의 배우자란 점인지, 지난 세기 여성들의 마음에절벽의 풍경이 하나씩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최근에 더욱 하게 되었다. 십 년 전 세상을 뜬 할머니를 깨워, 날마다의 모멸감을 어떻게 견뎠느냐고 묻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떻게 가슴이 터져 죽지않고 웃으면서 일흔아홉까지 살 수 있었느냐고,
- P15

그럴 때마다 생각합니다. 죽음으로, 죽음으로 향하는 내 안의 나선 경사로를 어떻게든 피해야겠다고, 구부러진 스프링을 어떻게든 펴야겠다고, 스스로의 비틀린 부분을 수정하는 것, 그것이 좋은 예술가가 되는 길인지는 몰라도 살아 있는예술가가 되는 일임은 분명합니다. 매혹적으로 보이는 비틀림일수록 그 곁에 어린 환상들을 걷어내십시오. 직선으로 느리게 걷는것은 단조로워 보이지만 택해야 하는 어려운 길입니다.
- P30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려면읽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죽음에 대항할 수 있는 가장 간편한 행위는 읽기라고, 동의할 만한 사람들과 밤새 책 이야기나 하고 싶었다.
- P72

이승만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승만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로 첨예하게 반분되어 있던 한인 사회는 세대를 내려가며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들었다. 끝내는 익숙해질 수 있었을까? 아니면 그가 망명한 집에 밤에 몰래 가 유리창이라도 깼을까? 평행하는 세계에 대해 읽어보았지만 역시 그런 게 없었으면 한다.
- P93

그리고 피해자들이 민사를 막 시작하려고 할 때 자살했다. 염산을 쓰지는 않았고, 욕실수건걸이에 목을 매달았다.
죗값을 치르지 않고 도망쳤다. 그건 도망이었다. 화수는 잊을수 없었고 늘 화가 나 있었고 이제 그 화는 화수만을 해쳤고 - P1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재갈에서 풀려날 때, 야백은 사람의 밥을 벌고, 사람이 걸어주는 장신구를 붙이고, 사람을 태우고 달린 생애의 시간이몸속에서 소멸하는 것을 느꼈다. 지나간 시간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시간이 아직 오지 않아서 이 빠진 자리는 빈 채 서늘했다 - P146

젊은 농부가 죽은 딸의 머리맡에 묻은 돌은 이 악기를 본떻것인데 어려서 죽은 월의 아이들은 모두 이 악기를 선물로 지니고 갔다. 사람들은 들짐승이 무덤을 파헤치지 못하도록 돌로 무덤을 덮어놓았는데 돌에 구멍을 뚫어서 무덤 속 아이와별이 서로 쳐다볼 수 있도록 했다.
- P178

사람이 땅에 들러붙으면, 땅은 그 위에 들러붙은 자의 것이 되는데 그위에 기둥과 지붕을 세우고 그 안에 들어앉은 자들의 어두움을 표는 상양성에서 알았다. 초원에서 창세 이래로 전개된 싸움은 세상에 금을 긋는 자들과 금을 지우려는 자들 사이의 싸움이었고, 초원 끝까지 나아가서 금을 지우면, 그 뒤쪽에서다시 금이 그어져서 싸움은 끝이 없었다.  - P191

초원의 봄은 땅속에서 번져 나왔다. 봄에 초원은 벌렁거렸다. 눈이 녹아서 부푼 흙 속에서 풀싹이 돋아나고 벌레들이깨어났다. 벌레들은 땅속에서 올라오고 숲에서 살아났다.
벌레들은 가을에 모두 죽어서 없어지고 봄이 오면 새로운벌레들이 초원에 나타나서, 모든 벌레는 작년에 죽은 벌레의자식이 아니며, 이 세상에 처음으로 태어나는 새로운 벌레이고, 벌레들이 다 죽어도 벌레들의 초원에는 죽음이 없다고 무녀는 연에게 말해주었다.  - P22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는 산 자들의 나라였다. 초나라에서 죽음과 죽은 자들은 금세 잊혔다. 죽은 자들은 마을에서 먼 강가나 초원의 먼 가장자리에 묻었다. 묻은 자리를 꾸미지 않고 흙이 들뜬 자리에풀을 옮겨 심고 가랑잎을 덮어서, 무덤이 늘어나도 초원은 평평했고 별일 없어 보였다. 죽은 자를 묻는 일도 별것이 없었다. 죽은 자들을 벌거벗기고 겨드랑이와 사타구니를 벌려서햇볕에 말렸다가 들것에 신고 초원으로 갔다. 가죽옷을 벗기고 햇볕을 쬐어주는 가벼움은 죽음이 가져오는 사치였다. 사체를 실어낼 때 촌장이 대열을 인솔했고, 그 앞에서 수탉이높이 울어서 죽은 자의 퇴거를 나하에 고했다. 선왕들의 정벌과 치적의 일부가 후대에 구전될 뿐, 초나라 사람들은 죽은자의 살았을 적 일을 입에 담지 않았고, 죽은 자를 위해 돌을쌓지 않았고, 죽어서 땅에 묻히는 일을 슬퍼하지 않았다. 축음은 산 자의 마을에 얼씬댈 수 없었다.
- P15

모든 휘두름은 닥쳐오는 휘두름 앞에서 덧없다. 수와 공은 다르지 않고 공과 수는 서로를 포함하면서 어긋난다. 모든 공과모든 수는 죽음과 삶 사이를 가른다. 그러므로 공에서 수로,
수에서 공으로 쉴 새 없이 넘나드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이엎어지고 뒤집히는 틈새를 사람의 말로는 삶이라고 부른다.
고 시원기』에 적혀 있는데, 수네 공이네 죽음이네 삶이네 하는 언설들은 훨씬 게을러진 후세에 기록된 것이다. - P23

산맥 위로 초승달이 오르면, 말 무리는 달 쪽으로 달려갔다. 밤은 파랬고, 신생(新生)하는 달의 풋내가 초원에 가득 찼다. 말들은 젖은 콧구멍을 벌름거려서 달 냄새를 빨아들였고,
초승달은 말의 힘과 넋을 달 쪽으로 끌어당겼다. 초승달이 뜨면 젊은 수말들은 몸을 떨면서 정액을 흘렸다.
- P48

추는 오리나무 밑동에 말고삐를 묶었다. 추가 말의 엉덩이를 두드리자 말은 무릎을 꿇었다. 추가 칼을 뽑았다. 백산 쪽 하늘에 초승달이 걸려 있었다.
총총은 고개를 들어서 초승달을 바라보았다. 총총의 이마에박힌 초승달 무늬가 하늘의 초승달을 향했다.
추는 칼로 총총의 목을 내리쳤다. 칼 지나간 자리에서 피가솟구쳤다. 총총은 쓰러져서 네 다리로 허공을 긁었다. 총총의머리는 세 번 칼을 받고서 떨어져 나갔다. 추는 웅덩이 물에칼을 씻었다.
- P63

춘분날 열병식에서 토하가 왕자 표를 태우고 목왕 앞에 나갔을 때 왕은, 말을 타고 달리는 자는 세상을 안다. 세상은 넓고 세상은 좁다는 것을 안다. 세상이 좁아서 멀리 달려가면세상은 넓어지고, 거기가 또 좁아서 더 멀리 달려간다. 말에올라타면 비로소 세상이 보이는데, 세상의 끝은 보이지 않고출발한 자리도 보이지 않는다, 라고 말했다.
- P82

금칠로 바다의 저녁 빛을 끌어들여 어둠을 휘젓는 소행을목왕은 추하게 여겼다. 저녁이 어둡지 않으면 저녁이 아니고들뜬 빛에 별들이 주눅 들고 풀과 말의 잠이 어수선해서 초원은 무너질 것이었다. 목왕은 초원의 어스름 속에 번뜩이는 빛을 더럽게 여겼다. 목왕은 여생의 짧음을 한탄했다.
- P86

서물은 전하지 않지만 그 문장을 읽은 자들의 기억의 파편몇 개가 후세에 전한다. 「토만평양육서」의 골격은 나하를 야만의 남진(南進)을 막아주는 은혜의 강물로 신성시하면서, 나하를 또한 세상을 둘로 갈라놓은 단절의 강물이었다고 쓰고,
이제 단의 상서로운 힘이 산하에 가득 찼으니 물 건너 북쪽에서 삶을 땅 위에 앉히지 못하고 인간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서 금수 축생으로 떠도는 무리를 무로 평정하고 문으로 쓰다듬어서 왕의 은혜로 목욕시켜 새롭게 태어나게 하니, 나하는 비로소 가지런한 세상의 줌심을 흐르게 되는 것이라고 하는데, 언사가 낡았고, 옛글의 조각을 끌어모아서 꿰맨 자리가 여기저기 널려있었고, 꿰맨 솔기가 터져서 너덜거렸다. - P96

기록들은 쓴 자들의 마음에 쏠려서 허무했고, 후세에 쓴 글들은 서로 부딪쳐서 옮길 만한 문장이 없었으나, 이야기들은팔풍원의 꽃씨처럼 바람에 날려서 초원과 산맥에 흩어졌다. 홀어진 자리에서 돋아나고 퍼져 나가서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 P1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