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스테르 그림은 왜 할스의 작품으로 둔갑했을까?
그녀는 작품에 자신의 이름 이니셜 ‘JL‘과 별 마크로 구성된 모노그램을 남겼지만, 정작 그림은 화가였던 남편 얀 민세 몰레나르 Jan Miense Molenaer나 프란스 할스 Frans Hals 작품으로 팔려나갔다. 여성의 예술적 전문성이 남성보다 현저히 떨어진다고 인식됐던 시대이니 금전적 이익을 위해 여성 화가의 작품이 남성 화가의 작품으로 둔갑하는 일이 많았던 것이다. 이것이 그녀의 이름이 사망 후 미술사에서 사라졌던 결정적 이유이다.
- P60

그러기 위해서는 인체 근육 묘사에 능숙해야 했으므로누드 데생 수업은 필수였다. 그러나 남성 화가들이 남자 누드모델을 앉혀놓고 직접 드로잉하는 실기 수업에 앙겔리카 카우프만과 메리 모저는 아카데미 회원임에도 불구하고 여자라는 이유로 배제되었다. 이것이 의과생이 인체를 해부하며 의학을 연구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여성 화가들이풍속화, 풍경화, 정물화 등 회화의 군소 영역으로 밀려나야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 P72

어머니와 아이를 그린 작품들은 마치 마돈나와 아기 예수를 그린 종교화의 구도를 연상시키는데, 이것은 카사트가 육아를 여자라면 누구나 쉽게 해내는 그림자 노동으로 보지 않고고귀하고 가치 있는 일로 생각했음을 드러낸다. 남자의 사회생활만큼 존중받아야 할 일 말이다. 르네상스 시대 자애로운 마돈나의 모습과 카사트의 그림 속 어머니가 다른 점이라면 이상화되지 않은, 현실적이고 정직한 일상의 어머니라는 점일 것이다.
모리조는 인상파 그룹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급진적이고 현대적인 미술 실험에 동참했다. 사실 마네에게 옥외에서작업하고 좀 더 다채로운 색채를 사용하도록 조언한 것도 모리조였다. 그녀의 작품은 결코 남성 인상파 화가의 작품보다 덜혁명적이지 않은데도, 여전히 섬세하고 우아한 여성성을 표현했다는 비평이 지배적이다. 카사트와 마찬가지로 그림 소재 때문에 빗어진 편견이다.
- P99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Artemisia Gentileschi, 1597~1651는 최초의페미니스트 화가로 불린다. 젠틸레스키는 17세기 여성으로서는 아주 독립적이었고, 전문 직업인으로도 성공했으며, 작품역시 강인한 여성상을 묘사했다. 젠틸레스키가 한 고객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기도 했다.

"나는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입니다. 당신은 한 여자의 영혼에서 시저의 정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 P131

그런데 남성 화가들이 목욕하고 있는 수잔나의 성적 매력에 초점을 맞추고, 심지어 장로들의 희롱을 은근히 즐기는 수잔나를 그렸던 데 반해, 젠틸레스키는 매우 다른 시각으로 이주제를 다루었다. 즉, 남자들이 자신을 관음적 시선으로 훑고희롱하는 것에 고통을 느끼는 수잔나를 보여준 것이다. 이는 자신의 경험에서 온 트라우마를 표현한 것인지도 모른다.
- P137

그런데 그녀의 정물화에는 흥미롭게도 숨은 그림이 곳곳에 있었다. 바로 정물화 속 백랍 주전자 위, 황동색 금속 고블릿 등에 자화상을 그려 넣은 것이다. 마치 언젠가 사람들이 정물에 숨은 자신의 얼굴을 발견하고 그 존재를 알아봐주길 수백년 동안 기다린 듯 느껴지지 않는가?
페테르스는 포도주잔, 접시, 동전, 식기 등에 반사된 빛에 특히 매료되었다. - P147

정물화에서는 이런 세속적인 향락 문화와 더불어 바니타스의 개념이 혼재되어 나타났다. 물질적 소비를 즐기는 동시에세속적 재화의 공허함을 드러낸 것이다. 이것은 당시 사회에 상반된 생각이 공존했음을 보여준다. 즉, 바니타스 정물화는 16~17세기에 싹을 틔운 근대 자본주의 정신과 중세 금욕적 전통의갈등을 보여주는 동시에 근대 물질주의 사회로 나아가는 과도기를 드러낸 미술 장르였던 셈이다. 금욕적인 신교의 교리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현세적 쾌락을 즐기고 부를 과시하고 싶었던 사람들의 바람을 정물화가 절묘하게 만족시킨 것이다.
- P159

파울라 모더존 베커는 서양 미술사에서 최초의 누드 자화상을그린 여성 화가이다. 미술의 역사에서 여성의 몸은 오랫동안 남성의 시각적 쾌락을 만족시키는 대상으로 그려져왔다. 남성 화가의 모델이 된 여성들은 아름답게 보여야 하는 대상물이었을뿐 그 자신이 주체적 인격을 가진 존재로 대우받지 못했다.
모더존 베커가 자신의 누드를 그리며 최대한 형태를 단순화하고자 했던 것은 여성의 몸이 표현하는 이러한 관능성을제거하기 위해서였다. 
- P199

이제 21세기다. 이쯤이면, 여성 미술가를 얕보고 비우호적으로대우했던 과거 성차별을 인식하고 수정해야 할 시기가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러한 시도는 여성이 주체가 되어야한다. 인간 사회의 부조리와 불평등을 혁신하려고 했던 어떤 급진적인 정치 · 사회적 운동도 남성들이 주도하는 한, 여성 문제에관해서는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잣대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나 회흐가 작품에 담은 메시지가 의미 있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회흐는 작품을 통해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을 고발하고여성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애썼다. 미술계, 그리고 모든 분야의성차별은 비단 여성만의 문제는 아니다. 성평등을 비롯한 인간평등은 문명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이기때문이다. 여성이 사회에서 차별받지 않고 동등한 권리를 누릴때, 남성 역시 진정한 해방과 자유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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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이라는 이 낯선 작가의 글을 읽은건 순전히 제목 때문이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수 없다면이라니! 너무 당연한것을 당연하지 않은 듯 붙인 제목은 강렬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발견한건 아 난 역시 이야기가 좋아라는 것. 사랑이라는 흔해빠진 주제를 이렇게도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는 이야기의 힘이 끝까지 긴장을 놓치지 않게 독서를 이끌어 간다. 아마도 나는 이 작가를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책을 읽고 나서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찾아볼때가 있다. 내가 느낀 것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느끼나 보고싶은 것도 있고 이 작가가 내가 지켜보고싶은 젊은 신인작가이기에 그에 대한 다중의 평을 보고싶기고 해서인데 좀 거슬리는 면들이 있다.
왜 이 작가를 자꾸 테드창과 비교하는가이다. 단순히 SF소설 또는 과학 소설이라는 소재때문에 그러하다면 지나치게 부당한 평가가 아닌가 싶다. 세상의 SF 과학 소설의 기준이 테드 창은 아니지 않는가? 나 역시 테드 창을 좋아하고 그의 소설을 인상적으로 읽었지만 테드 창은 테드창일 뿐이다. 다른 누군가의 기준이 될것은 아니다. 더더군다나 나는 이 소설집에서 작가가 테드 창을 의식해서 쓴 부분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테드 창의 글들은 과학 또는 sf라는 소재를 통해서 인간과 종교의 관계라든지 인간과 세계의 소통가능성의 문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제기하고 있다. 그를 위해 문과생이라면 상당히 골치아픈 수학적 과학적 소재들을 끌어쓰는 방식으로 그 어려움을 표현한다.

김초엽 작가에게 sf 과학은 인간의 다양한 존재양상을 보여주기 위한 소재로 활용된다. 현재의 사회적 차별에 의해 배제되는 다양한 존재들을 자연스러운 인간의 존재형태로 순응하기 위한 장치로 미래 공간을 활용한다. 그속에서는 여성이나 장애인, 이주민, 비혼모들도 좀 더 자유롭다.

결론적으로 SF, 과학이라는 소재는 테드창에게는 인간과 세계와의 관계를 보여주기 위한 소재라면 김초엽에게는 인간사이의 관계를 보여주기 위한 소재로 명확하게 다르다.


작가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것으로 테드창에 못 미친다라는건 글쎄.... 어떤 이야기가 또는 작가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고 취향이 아닐 수 있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에게 넌 왜 테드창처럼 쓰지 않냐고라고는 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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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07-20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이게 누구십니까!!! 넘 오랜만이에요!!!! (저 예전 나비;;)
잘 지내셨나요? 다시 돌아오셔서 넘 기뻐요!!ㅠㅠ(근데 왜 울;;;ㅎㅎㅎ)

바람돌이 2020-07-20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비님이시군요. 오랫만에 뵈서 저도 반가워요. ^^ 가끔 낙네임을 바꾼분이 계셔서 인사를 못하게 되기도 하더라구요.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저자는 자신이 한 실수 - 결정장애란 말을 혐오표현에 대한 토론에서 아무 생각없이 썼던 경험 -에서 책의 서두를 시작한다. 사실 이 경험에 이 책의 주제가 모두 들어 있다. 가치 중립적으로 보이고 대부분의 사람이 일상적으로 아무렇지 않게 쓰이는 이 용어가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 있다는 것을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이 무심결에 지나친다. 더 나아가서는 문제제기에 대해 그거 지나치게 예민한거 아니야라고 생각하기 일쑤다. 하지만 이 말을 듣는이 중에 장애우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에게는 결정장애라는 단어 중에 장애라는 단어거 더 크게 울릴것은 자명하다.

나는 다른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착각이고 신화일뿐이라는 것을 논증하는 것, 그래서 차별받지 않는 나에서 나아가 차별하지 않는 나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나라는 존재는 수많은 사회적 관계망 속에 존재하고 어떤 경우에는 때로는 차별받는 위치에 있지만 때로는 차별할 수 있고 차별하는 위치에 존재한다. 통행에 불편함을 모르는 나는 장애인의 통행권에 무관심하며, 국민이라는 범주에 안전하게 안착한 나는 난민의 권리에 무감하다.

일상생활에서 내가 얼마나 많은 차별에 대해 무감각한지를 돌아보기에 좋은 책으로 많은 이들이 함께 읽고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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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의 글머리에 인용한 아서 골드버그 대법관의 말을 다시 새겨보자. "차별은 단순히 지폐나 동전이나, 햄버거나 영화의 문제가아니다. 누군가에게 인종이나 피부색을 이유로 그를 공공의 구성원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할 때, 그가 당연히 느낄 모멸감, 좌절감, 수치심의 문제이다." 바로,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문제다.
- P133

공공의 공간에서 거절당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사람을 소수자 minorities 로 만드는 중요한 성질 가운데 하나다. ‘소수‘라는 건 수의 많고 적음으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여성처럼 숫자로는 많아도 어쩐지 공공의 장에서 보이지 않는사람들이 있다.
- P137

성소수자에게 "왜 굳이 축제를 하나요?" "왜 굳이 커밍아웃을 하나요?"라고 묻는 질문 속에는, ‘성소수자‘라는 기표가 아고라에 입장할 자격이 되지 못한다는 전제를 품고 있다. 이들을 향해 너희는사적 영역에 남아 있어야 하며 공공의 장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로있으라는 요구다.
그렇기에 역으로 성소수자가 축제와 커밍아웃을 하는 이유가 더분명해진다. 보이지 않는 성소수자에게 축제와 커밍아웃은, 보이는 존재로서 평등한 세계에 입장하고 민주적 토론에 참여하기 위해 낙인이 찍혀 있는 사적 기표를 공공의 장에 노출하는 행위다.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어떤 사적 특성이 공공의 장소에서 받아들여지는가? 공공 공간의 주인은 누구인가? 공공 공간에 입장할자격은 누가 정하고 통제하는가?
- P141

마이클 왈저 Michael Wazer는 영토 안에 권리가 적거나 없는 계층이존재하는 것 자체가 이미 민주주의에 반하는 "폭정"tyranny 이라고말한다. 민주주의가 실현되려면, 기본 전제로 그 안의 모든 구성원이 평등한 관계를 가지고 동등한 입장에서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국적이 다르다고 사람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지울 수 있을까.우리는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윤리를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만 은폐된 불평등을 전제로 평등을 누렸던 그리스의 폴리스와는 다른, 진정한 민주주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P151

모두에게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다수자와 소수자의 자유는 같지 않다. 존 스튜어트 밀lohn Start Mill이 『자유론,
에서 지적하듯, 다수자는 소수자의 의견을 거침없이 공격할 수 있다. 반면 소수자는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표현을 순화하고, 상대방에게 불필요한 자극을 주지 않도록 극도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요구된다. 다수자는 소수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서 잘말하라고 요구한다. 그렇게 사실상 침묵을 강요한다.
- P171

불평등한 사회가 고단한 이유는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노력으로해결하도록 부당하게 종용하기 때문이다. 불평등이라는 사회적 부정의에 대한 책임을, 차별을 당하는 개인에게 지우는 것이다. 그래서 삶이 불안하다. 아프거나 실패하거나 어떤 이유로건 소수자의 위치에 놓이지 않도록 끊임없이 조심해야 한다.  - P187

그러니 내가 모르고 한 차별에 대해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몰랐다" "네가 예민하다"는 방어보다는, 더 잘 알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는데 미처 생각지 못했다는 성찰의 계기로 삼자고 제안한다.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우리들은 서로에게 차별의 경험을이야기해주고 경청함으로써 은폐되거나 익숙해져서 보이지 않는불평등을 감지하고 싸울 수 있다. 우리가 생애에 걸쳐 애쓰고 연마해야 할 내용을 차별받지 않기 위한 노력‘에서 ‘차별하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옮기는 것이다.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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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둘러싼 말과 생각들을 하나하나 훑는 작업은 마치 세상을다시 배우는 느낌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착각이고 신화일 뿐이었다. 누군가를 정말 평등하게 대우하고 존중한다는 건 나의 무의식까지 훑어보는 작업을 거친 후에야조금이나마 가능해질 것 같았다.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나를 발견하는 일 말이다.
- P10

불평등과 차별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학자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가진 특권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발견‘인 이유가 있다. 일상적으로 누리는 이런 특권은 대개 의식적으로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조건이라서 많은 경우 눈치채지못하기 때문이다. 특권은 말하자면 ‘가진 자의 여유‘로서, 가지고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상태이다.
- P28

고정관념은 일종의 착각이지만 그 영향은 꽤 강력하다. 일단 마음속에 들어오면 일종의 버그처럼 정보처리를 교란시킨다. 사람들은 자신의 고정관념에 부합하는 사실에 더 집중하고 그것을 더잘 기억한다. 결과적으로 그 고정관념을 점점 더 확신하는 사이클이 만들어진다. 반면 고정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사실에는 별로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고정관념과 충돌하는 사례를 보더라도고정관념을 바꾸지 않는다. 대신 전형적이지 않은 특이한 경우라고 여기며 예외로 치부한다. 고정관념이 활발하게 작동하는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반증 사례를 아무리 제시해도 별 효과가 없는 이유이다.
- P48

‘우리‘와 ‘그들‘ 이라는 감각의 차이는 두 집단을 가르는 경계에서 생긴다.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은 자신이 속하지 않은 다른 집단,
즉 그들을 쉽게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다. 상대적으로 자신이 속한 내부 집단은 복잡하고 다양하고 더 인간적이라고 느낀다. 반면외부 집단은 훨씬 단조롭고 균질하며 덜 인간적으로 보인다. 내부집단과 외부 집단의 차이를 과장하여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게 나를 중심으로 집단을 가르는 마음의 경계를 따라 ‘그들‘ 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이 만들어진다.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도 이 마음의경계에 따라 달라진다.
- P51

여성이 남성과 같은 일을 하면서 남성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상황은 직관적으로도 부당한 차별로 여겨진다. 하지만 여성이 애초에 임금이 낮은 직종에 진출하는 상황은 다르다. 어떤 면에서 여성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노동시장으로 자발적으로 진입한 셈이 되었으니, 여성이 스스로 책임져야 할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것이다.
구조적 차별ystemic discrimination 20 은 이렇게 차별을 차별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미 차별이 사회적으로 만연하고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어서 충분히 예측 가능할 때, 누군가 의도하지 않아도 각자의 역할을 함으로써 차별이 이루어지는 상황이 생긴다.  - P74

그래서 의심이 필요하다. 세상은 정말 평등한가? 내 삶은 정말차별과 상관없는가? 시야를 확장하기 위한 성찰은 모든 사람에게필요하다. 내가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지적해주는 누군가가 있다.
면 내 시야가 미치지 못한 사각지대를 발견할 기회이다. 그 성찰의시간이 없다면 우리는 그저 자연스러워 보이는 사회질서를 무의식적으로 따라가며 차별에 가담하게 될 것이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평등도 저절로 오지 않는다.
- P79

소수자에 대한 잠재된 거부감이 혐오표현을 통해 방출되는 것이라면 최근 한국사회는 그 적나라한 모습들을 보았다. 범람하는 혐오표현을 통해 편견은 더욱 자유롭게 소통되며 차별을 정당화하는
‘규범‘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평등에 관한 규범이 모호한현실과 관련 있다.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는 확립된 규범이 없는상태에 기생하는 유머들인 것이다. 차별금지의 규범이 사회적으로확립되기 전까지 유머를 통해 누군가를 비하하고자 하는 욕망은계속 표출되고 증폭될 수 있다.
- P93

그래서 어떤 소수자 집단은 낙인이 부착된 단어를 그들 스스로전유reappropriation 해버리기도 한다. 아예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호명하는 단어로 사용하면서 긍정적 의미를 부여해버리는 전략이다.
대표적인 단어가 성소수자를 지칭하는 ‘퀴어‘다. 퀴어는 본래기괴한‘ 이란 뜻으로, 성소수자를 조롱하는 용어였다. 그런데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이 단어를 전유해버렸다. ‘기괴하다‘는 뜻은 그대로 가져가면서, 기괴함은 나쁜 것이 아니라 특별하고 독창적인 것이며 다양성을 드러내는 것으로서 오히려 자랑스러운 특징이라고 선언해버렸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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