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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 홍콩 - 시간에 갇힌 도시와 사람들
전명윤 지음 / 사계절 / 2021년 4월
평점 :
홍콩에 대한 단상은 두개의 시기로 나뉘는 것 같다.
우산혁명 이전의 홍콩과 이후의 홍콩
내게 우산 혁명 이전의 홍콩에 대한 기억은 모두 영화속 홍콩이다.
중학교 시절 성룡의 영화에 열광했던 것에서 시작해 홍콩 영화의 계보는 그 시절 우리 모두를 열광하게 했었다.
천녀유혼 속에서 충격적일 정도로 예뻤던 왕조현과 장국영, 주윤발을 시작으로 한 홍콩 느와르영화의 전성시대, 그리고 왕가위감독의 중경삼림, 해피투게더....
이 시절을 지나 온 이들은 누구라도 할 것 없이 홍콩영화에 대해 얘기하라고 하면 끝도 없이 떠들 수 있는 내공 한자락쯤은 모두 장착하고 있을만큼 홍콩은 영화속 세상이었다.
우산혁명 이후의 홍콩은 이런 판타지속의 홍콩을 느닷없이 현실로 내 앞에 훅 갖다놓았다.
사실상 내게 있어 홍콩의 현실 역사란 딱 홍콩역사의 시작점인 아편 전쟁과, 1997년의 중국 반환이라는 이 두 지점으로만 기억되는 곳이었다.
이 곳에서도 현실 사람들이 살아가고 어려움을 겪고 일상을 영위하고 있을 터인데 그 중간지점은 온통 판타지로만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판타지를 걷어내고 아편전쟁 이후부터 지금까지 홍콩이 걸어온 역사와 그곳에서 살고 있는 현실의 홍콩인들을 보여주고자한다.
홍콩에 대한 역사서술 속에 지금의 홍콩인들을 만나면서 들은 얘기들, 그들의 생각들이 같이 어우러져 진짜 홍콩을 만나고 대면할 수 있는 책이다.
서슴없이 별 5개를 이 책에 주는 이유가 바로 그 현실감과 홍콩에 대한 저자의 애정에 있다.
저자는 홍콩의 송환법 반대투쟁 시기에 취재를 위해 몇번이나 홍콩으로 가서 그들의 투쟁의 현장을 직접 겪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경험을 이 책 속에 녹아내었다.
정식 기자도 아닌 사람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여행가이드로 살아가면서 정말로 홍콩이라는 땅과 그 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라는게 책의 곳곳에 녹아있다.
관광지로서의 홍콩, 영화속의 홍콩이 아니라 현실의 홍콩을 만나는데 더없이 좋은 책이다.
또한 인구가 186배나 많은 너무나 버거운 저항대상-중국이라는 나라와 싸워야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지킬 수 있는 곳.
코로나때문에 저항운동이 멈추자 기다렸다는 듯이 국가보안법(우리나라 국가보안법과 거의 비슷한 수준)을 통과시켜 홍콩의 자치권을 완전히 박탈시켜 그야말로 중국체제에 편입되어버린 땅.
자신이 중국인인지 홍콩인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새로운 세대들.
식민지는 단순히 국가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자신의 자율적인 삶에 대한 결정권을 가로막는 그 모든 것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지금의 홍콩이다.
책 속에서 "한국은 어떻게 이겼어요?"라고 묻는 홍콩 소녀에게 "한국도 항상 이긴것만은 아니야. 항상 졌어. 항상 지면서 다시 용기를 내서 계속 싸운거야"라는 말이 그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