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무렵 홍콩에서 태어난 홍콩 거주민은 전체 인구의절반이 안 됐다. 만약 성인만 따로 분류한다면 홍콩 출신자의비율은 더 줄어들 것이다. 이 말인즉, 홍콩은 그곳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가 아니라 실향민들의 도시였다는 뜻이다. 고향으로돌아가지 못하고 갇혀버린 이들, 혹은 공산당을 피해 고향을 떠난 이들의 땅. 그들의 고향은 인민공화국이 들어선 중국이었고,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땅이 되었다.
- P36

국공내전과 중국 공산화의 여파로 수많은 중국인이 홍콩으로 왔다. 과거와 다른 점이라면 중국 공산화 이후의 난민은 단순한 피난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중에는 중국 제일의 상업 도시인 상하이와 닝보 출신의 자본가와 금융 전문가가 많았다. 대륙이 빠르게 공산화되는 가운데 재산은 챙겨오지 못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경험을 홍콩으로 옮겨왔다. 그들은 홍콩에 ‘시장 자본주의 체제‘를 이식했다. 그러자 홍콩 경제에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제조 공장과 은행이 문을 열더니 금융업이 날로발전했다. 오늘날 홍콩이 아시아는 물론 세계의 경제와 금융 중심지로 발돋움하게 된 배경에 바로 이 중국 출신의 자본가들이있다.
- P40

1967년 이전에도 개혁을 논의했지만 늘 자본가의 반대로지지부진했다. 그러나 이제는 자본도 개혁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좌파의 영향력이 축소되고 전투적 노조운동은 쇠퇴했다. 그리고 이것이 다음에 올 비극을 잉태했다. 앞으로 개혁이 정체되고 사회가 보수화될 때 다시 변화를 추동할 세력이 깡그리 사라졌기 때문이다.
- P55

‘전통문화의 계승자‘라는 홍콩인의 문화적 우월감을 본토의중국인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홍콩인을 수전노로 취급하는데, 사회주의 중국이 수십 년간 망가뜨린 전통을 지켜낸 곳이영국의 식민지인 홍콩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 P58

홍콩인은 특유의 사고방식 홍콩 사회에 기여하지 않은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나쁜 버릇 을 공유하고 있다. 영주권 인정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을 통해 그로 인한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1948년 1차 이민 붐 때 넘어온 이들은 주로 유산계급이라 금붙이라도 싸매고 왔다면, 이번에 온 이들은 몸뚱이하나뿐인 노동 계층이었다. 홍콩 시민들은 신계 일대에 거대한슬럼이 생긴 것도, 저소득 계층의 삶이 더욱 궁핍해진 것도, 교통질서가 어지러워지고 거리가 지저분해진 것도 모두 중국 이민자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중국인을 질서를 해치는 이물질로 여겼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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