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대 갑부 역관 표정있는 역사 1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왕조나 지배층 중심의 역사가 아닌 민중의 역사가 우리 학계에 나오기 시작한 것은 80년대부터이니 벌써 20년이다.
관점의 전환과 문제제기야 오래되었으나, 실제로 연구성과는 미미한 것이었다.
제대로 연구를 하려고 해도 워낙에 기본적인 자료의 부족이라는 난관이 큰 것이 아마도 가장 큰 원인일것이다.
하지만 그 못지않은 문제는 우리 학계의 풍토 - 거시사 중심의 연구풍토 - 에 원인이 있다 할 것이다.
아직도 미시사는 우리나라 역사학계에서는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나오는 미시사 관련서적이나 논의도 대부분 서양사 전공자들에 의한 것이지 한국사 전공자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미시사에 대한 다양한 비판도 있겠지만 일단 보다 총체적으로 시대를 해석하려면 역사의 다양한 계층과 다양한 분야의 연구가 아우러져야 함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또한 그러한 연구결과의 대중화의 노력 역시 무시해서는 안되는 부분이다.
요즘에 들어와서 다양한 계층의 삶을 복원해내려는 시도가 있지만 그마저도 역사학계에서 보다는 오히려 국문학쪽에서 많은 형편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한다면 이덕일씨의 이 책은 역사학자가 보다 더 다양한 계층으로 연구를 확대해나가는 발걸음으로 일단 환영할만하다 하겠다. 또한 이덕일씨의 평소의 역사의 대중화를 위한 노력 역시 높이 살만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조선시대의 역관의 존재에 대한 책이다.(물론 고려말의 이야기가 잠깐 나오지만 고려말 역관의 존재는 우리 역사에서는 상당히 예외적인 존재다. 이 때는 몽고와 관련된다는 것이 바로 신분상승이었으니까...)
책의 시작은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으로 시작하는데 허생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허생에게 돈을 빌려준 변부자에 초점을 두는데 그의 손자가 역관출신의 부자였던 변승업이다. 이로써 조선 제일의 부자였던 역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실제로 변씨를 제외한 다른 역관들이 정말로 조선 최대 갑부였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물론 양반관료가 아니고는 부를 축적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조선의 상황에서 중국과의 조공무역을 틈탄 사무역으로 부를 축적해나갔던 역관은 당시의 기준으로는 상당한 부자에 들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부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요즘 말로 하면 밀수에 의한 것이었고 따라서 워낙에 위험부담과 제재가 많았던 까닭에 조선 최대 갑부라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지 않을까 싶다.
조선 후기에 공공연하게 사무역(밀수)이 행해지자 오히려 역관은 상인들의 맹렬한 추격과 경쟁에 밀리기 시작한다. 이 역시 이들을 조선 최대갑부라고 보기에는....???
그러고 보면 이 책의 제목은 책의 홍보를 위한 과대제목(?) 과대광고로 꼽을 수 있을거 같다.

오히려 책의 재미는 역관들이 부의 축적을 보는 것 보다는 다른 면모들에서 나타난다.
옛 역관들은 어떻게 외국어를 배웠을까?
역관들이 중국어를 배우는 방법 - 철저하게 회화 중심으로 이루어진 교재의 소개와 그것을 암송하는 것으로 역관의 교육이 이루어졌다는 것. 하지만 요즘도 외국어를 공부한다고 회화 교재 몇개를 통째로 외워봤자 그게 바로 실전에 써먹을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아마도 교육은 저렇게 책을 통째로 외우고 나서 다음에 실습이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대부분의 중인들이 그렇듯이 역관은 보통 대대로 집안에서 직업을 물려받고 있다. 아마도 집에서 아버지에게서 실전 회화를 주로 배우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런 자료의 추적이나 서술이 없는 건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또한 시대와 대외상황이 몽고에서 명, 청으로 바뀌면서 역관의 역할과 위상도 변해 나가는 과정을 추적하는 건 흥미롭다.
특히 청나라가 세워지면서 사대부에게 북경으로 가는 사행길이 오랑캐 만주족에게 조공을 바치러 가는 길이 되면서 부끄러운 일이 되자 역관의 위상이 오히려 높아지는 과정을 추적하는 것은 흥미롭다. 하지만 곧 대통아역이라는 직위가 청나라에 새로 생긴다. 이들은 아마도 병자호란 이후에 우리나라에서 인질로 잡혀갔던 이들의 후손들인 듯 한데 이들이 조선어와 중국어를 모두 잘하니 아예 역관도 청나라측에서 이들로 임명해버린것. 따라서 업무가 대폭 줄어들어버린 조선 역관들은 통역보다는 상인의 업무에 더 충실하고 결국 조선 후기에 사무역에 종사하는 역관이 더욱 더 늘어난 듯하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도 기존의 연구를 뛰어넘는 해석이나 새로운 역관의 면모를 총체적으로 살피는 데는 부족한 듯.

조선 후기에 들어서 오경석과 같은 선구적인 역관들도 더 있었을 듯 싶은데 역시 시대를 뛰어넘은 역관들이라는 장에서도 기존에 익히 알려진 오경석 외에는 뚜렷한 인물의 발굴이 없는 것도 많이 아쉽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역관에 대한 기존의 연구를 정리한 수준정도.
자료의 부족이야 이미 전제된거라면 좀더 풍부한 역사적 상상력으로 역관이라는 존재를 추적해갈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다만 기존 자료의 정리 정도라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다음 인쇄에서 고쳐져야 할 부분 - 이 책의 189-190쪽에 보면 "오경석에게는 양반 사대부 스승과 역관 스승이 있었는데, 사대부 출신 스승은 박지원의 조부 박제가였다." 박제가의 손자가 이름이 박지원인지 어떤지는 알 수없지만, 만약에 손자라고 해도 별로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그렇다면 저 사람은 유명한 연암 박지원일텐데 연암쪽이 나이가 훨씬 위이다. 오경석의 스승이 박제가였던 건 맞지만 저 앞부분은 실수인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