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봉숭아 학당 담임을 하면서 참 좋은 학부모님들을 많이 만났더랬습니다. 그중에서도 한 어머니는 항상 제 기억에 남을 분이었는데요. 학기초부터 저에게 메일을 보내주면서 아이에 대한 의논도 하고 저에게 격려와 용기도 주는 정말 인생의 선배 같은 분이었습니다. 우리 예린이와 해아에게 나도 저런 엄마가 되어야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오늘 학교로 그 어머니가 찾아오셨습니다. 메일로만 뵈었지 얼굴은 처음 뵙는데 제가 생각했던 인상과 딱 맞아떨어지는 그런 분이더군요.

학기중에는 제가 부담스러워할까봐 못오셨다면서 1년동안 많이 고마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내년에는 제가 3학년 담임을 맡게 된것도 그래서 이 아이들을 따라 올라가지 못하는것도 알고 오셨더라구요.) 저야말로 아이에게 별로 해준것도 없었는데 그런 말을 듣기가 참 민망했습니다.

그런데 역시나 빈손으로 오지 않으시고 뭔가를 들고 오셨더군요.

오늘 제가 받은 선물입니다.


그냥 책에 이렇게 리본 하나를 맸을 뿐인데도 얼마나 있어보이는지요.

5권의 책입니다. 학부모님께 책 선물 받는건 처음인데 정말 기분 좋았습니다. ^^
 그리고 우리 아이들 먹으라고 빵까지....빵은 벌써 애들이 헤쳐놓아 사진 못올려요. ^^

제가 이런걸 받을 자격이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그래도 어머님의 마음이 너무 고마워 감히 거절하지 않고 낼름 받았습니다. (하기야 그 전에 다른 어머님한테 딸기잼을 받아먹은적도 있고 시골에서 호두를 따왔다고 나눠먹자고 보내신걸 받아 잘 먹은 적도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전혀 촌지를 안 받은건 아니네요.)

그런데 그냥 기분이 좋았던건 딱 여기까지였습니다.

저녁에 집에 들어와서 책을 펼쳐본 순간 너무 놀랐습니다. 왠 엄청 두툼한 봉투가....

뭔지 펴봤더니 간단한 편지가 있었고 5천원권 도서상품권이 무려 40장 씩이나...금액으로 치면 20만원이라는 엄청한 돈입니다. 어머님의 편지를 보니 작년에 제가 아이들한테 생일선물로 책을 사줬던걸 기억하셨던 것 같습니다. 편지에는

"1년동안 딸아이와 제가 받았던 감동과 행복을 2006년 담임 맡으신 반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싶습니다"라고 쓰셨군요. 아마도 올해 제가 아이들에게 책선물을 할 걸 염두에 두시고 마련한 선물이었던듯....

물론 올해도 저는 조금 방식을 바꿔서 아이들에게 책선물을 할 계획이긴 하지만 이건 그냥 순전히 제 즐거움으로 해온 일이었는데.... 그리고 이 돈은 그냥 받기에는 사실 너무 큰 액수입니다.

정말로 멋진 어머님이고 그 마음이 정말 눈물겹도록 고맙지만 이걸 받으면 제 마음이 편치 않을 것같고 또 저에게는 제 돈으로 아이들에게 책 선물을 하는 기쁨이 줄어들겠지요.

근데 이걸 돌려보내자니 무안해하실 어머님의 그 선한 얼굴이 떠오릅니다. 이런 고민을 서방에게 전했더니 아주 단호하게 "그 마음은 정말 고맙지만 나 같으면 돌려보낸다"라는군요. 대신에 마음 상하지 않도록 아주 장문의 편지를 쓰서라고요....

역시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글 못쓰는 제가 어떻게 구구절절히 제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까요? 고민입니다.

늘 드는 생각이지만 촌지와 선물의 경계는 뭘까요. 주는 시기?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마음? 아니면 액수? 그냥 저는 무슨 거창한 신념이 있어서가 아니라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일로 월급받아 저와 제 식구들 큰 돈걱정하지 않고 살수 있는것만으로도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어쨌든 아이들 덕분에 저도 먹고사는거니까요. 그러니 제가 이일로 월급받는 외에 학부모에게서 뭔가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부모들의 마음은 또 다른가 봅니다. 저도 학부모가 되면 그 마음이 좀 더 이해가 될까요?

촌지와 선물의 경계는 항상 어렵습니다. 거절하기 정말 어려운 선물(아까 말한 집에서 만든 딸기잼이나 호두같은)이라 받을때도 있지만, 받는 마음이 전적으로 편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감사한 마음이야 물론 있지만 또한 내가 이런걸 받을 자격이 있나, 그리고 이렇게 아이를 믿고 보내주는것만해도 감사한데 내가 오히려 감사의 선물을 해야 되는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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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3-01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상품권... 받으면, 이게 , 뭐야 하는 사람 분명 있을겁니다.
책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고 '도서상품권' 주시는 학부모님 너무 고마운걸요. 금액이 크면 좀 부담스러울것 같기도 해요.하.지.만, 책선물할껄 염두에 두고 하셨다니, 혹시 그 학부모님, 알라디너 아닐까요?!

바람돌이 2006-03-01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하이드님 글쎄요. 알라디너인지 아닌지는 저도 알수없죠뭐....저는 저기 저 책들이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리아이가 선생님 책 좋아하신다던데요. 하면서 주신거라... 사실 책선물이 쉬운건 같지만 그 고르는 과정이 그리 쉽지만은 않잖아요. 한 권 한권 고르는데 정성을 쏟았을 그 마음을 생각하면 감동적인 선물이죠.
글구 하이드님의 첫마디 찔립니다. 분명히 그런 사람도 있거든요. 그것도 적다고는 할 수 없는 숫자가.... 그래도 지금은 제 주변만 보면 정말 많이 나아졌으니 아마 앞으로는 더 나아질거라고 희망을 걸어봅니다.

아영엄마 2006-03-01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사려깊은 학부모님이시군요.. 그리고 책도 5권씩이나!!(저는 스승의 날이라고 달랑 그림책 한 권(나중에 한 권 더 선물했던가??) 선물했는데..^^*) 20만원이라는 금액만 아니면 참 감동적인 선물일 것 같아요.

세실 2006-03-01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그 어머니의 정성은 참으로 대단하군요. 님께는 책을 선물하고, 아이들에게는 빵을, 그리고 학생들 선물까지 미리.... 바람돌이님께 많이 고마우셨나 봅니다.
혹시 사서나 서점을 하시는건 아닐까요? 헤헤~~~
도서상품권의 사용처를 생각하면 부담이 안 드는거지만, 현금으로 생각하면 부담이 가는 액수군요.
저도 선생님 드릴 선물 고민하다가 봄에 어울릴 스카프랑 빵 사다 드렸어요. 유치원 선생님께는 예쁜 향수~. 사실 넘 고맙거든요~~~~ 부담 안가는 선물은 기분 좋으시죠?

진주 2006-03-01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돌려 드리면 안 돼요!!! (헉, 꼭 내가 준 것 같다)
그 학모님의 성의를 그렇게 무참히 짓밟으시면 안 되잖아요. 촌지의 성격이 전혀 없는데 굳이 돌려 보내야 할까요??? 바람돌이님, 돌려주시면 그 분이 너무 섭섭할 거 같아요(차라리 나한테 줘욥 >.<)

촌지가 아닌 이유,
1) 어느 누가 학년 다 끝난 후에 촌지를 준단 말인가.
2) 도서상품권은 돈이 아닙니다. 돈 밝히는 사람(바로 저같은 사람)한테 주면 욕 굉장히 먹는 종이 쪼가리입니다. 책 좋아하는 선생님께 책은 사드리고 싶은데 아무 책이나 골라 선물할 순 없잖아요. 그 학모님은 나름대로 생각해서 보낸 건데..
3) 사제지간에 감사의 표시를 도저히 말로만 때울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2006-03-01 15: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클리오 2006-03-01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다섯권이나 보내시고 ㅎㅎ 좋은 담임이셨군요. 차라리 그분이 도서상품권을 한 5만원어치 정도만 보내셨으면 좀더 고민을 안하련만, 너무 비싼 액수라 고민이 되시겠군요... 그래도 그 분도 좋아서 보내신건 같아요.... ㅎ~

진주 2006-03-01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러게욤...그 분이 2만원씩 열 달로 끊어 주셨더라면 =3=3=3

바람돌이 2006-03-02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그쵸? 정말 사려깊은 학부모님 맞아요. 아이에 대한 생각도 얼마나 훌륭한지....저도부모로서 배우고 싶은 분이었어요.
세실님/저는 사실 뭐든 부담스럽던데요. 제가 워낙에 부족한 인간이다보니.... ^^;;
진주님/진주님때문에 지금 제 고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루종일 이 일이 머리속에서 떠나지를 않네요. 지금은 돌려주면 도대체 어떻게 돌려줘야하나도 쉽지 않은 일이라.... 잘 봉해서 아이손에 들려보내는 수밖에 없는데 그게 얘가 눈치도 빠르고 예민한 아이라 걱정이.... 에휴~~ 어떻게 할까 아직도 고민중입니다. 근데 지금 발등에 불떨어진 상황이라(개학 준비가요) 정신이 없습니다. 글구 주문은 넣었습니다. 설마 주소 바뀐건 아니시지요.
클리오님/정말 솔직히 제가 좋은 담임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특히 초반에는 2년 쉬다가 담임한 덕분에 좀 헤매기도 많이 했었거든요. 그래서 고민이란겁니다. 별로 한 것도 없으면서 과분한 감사를 받으니....쩝....

조선인 2006-03-02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증3때 담임선생님은 촌지를 죄다 받았어요. 그 돈으로 학급문고를 사서 000어머님 기증이라고 쓰기도 하셨고, 2교시 끝날 때면 빵이나 우유나 수박을 간식으로 돌리기도 하고, 공책이나 형광펜을 선물로 나눠주기도 하고. 그때는 촌지로 사는 건지 몰랐지만, 전 그 방법이 참 좋게 기억대요. 지금도요.

paviana 2006-03-02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작년 아이 담임선생님께 알라딘 상품권을 보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중입니다.너무너무 고마워서 그냥 끝내는게 도리가 아닐거라고 생각되서.......
아 어찌 해야좋을까요?

urblue 2006-03-02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액이 좀 큰 것 같기도 하군요. 한 5만원 정도면 그냥 받으셔도 좋았을텐데요.

바람돌이 2006-03-02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ㅋㅋ 그 당시로서는 정말 멋진 선생님이셨네요. 근데 요즘은 좀 상황이 많이 바뀌지 않았나 싶어요. 옛날에야 워낙에 교사 월급이 박봉이었으니 그런거라도 아니면 아이들한테 뭐하나 사주기도 힘들었겠죠. 하지만 요즘은 먹고살만큼은 월급받고 살아요. 그러니 굳이 그런 돈이 아니어도 뭐.... ^^
파비아나님/저도 그 마음은 이해돼요. 만약에 하신다면 제발 저런 큰 액수는 하지 마시고요. 정말 부담된다고요. 1, 2권의 책만 해도 님의 마음은 충분히 전해지고 기쁘게 받아주실 것 같은데.... 저라면 그 1, 2권의 책이 훨씬 더 저를 행복하게 할 것 같아요. ^^
블루님/그쵸? 이건 거의 액수로만 치면 뇌물 수준입니다. ^^;;

sooninara 2006-03-02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그분이 딴맘이 있으신것도 아니고..
초등학생 학부형도 20만원 상품권(백화점으로다가) 한다고들 하니까..
그냥 받으셔서 좋은 선물에 쓰세요^^

바람돌이 2006-03-02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나라님/헉!! 엄청나군요. 전 10만원권 돌려보낸게 최고 액순데.... 보통 집에서 저정도의 돈은 엄청 부담되지 않을까요?

sooninara 2006-03-03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담이죠? 하지만 초등학교 일학년 엄마들이 그렇게들 한답니다.
안양에서요..ㅠ.ㅠ 저희집 근처에 학교에서 엄마들이 말하더군요. 물론 40명 학부모중에 몇명이겠지만..그래도 있긴 하다네요. 저도 돈없어서 못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