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문인화에서 무엇을 보는가? 작가를 본다. 한 인간을 본다. 소재가 소나무든 대나무든 꽃과 새, 심지어는 소나 말, 그리고 거창한 산수라 할지라도 화폭속의 사물은 그저 보이는 외양의 사물에 그치지 않는다. 언제나 작가 그 사람만의 독특한 내면 풍경으로 환원되는 까닭이다. (93페이지)

이제 고인이 된 그분이 문인화에서 화가를 만났다면 나는 이 책에서 우리 문화를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는 작가 오주석 그분을 만난다. 때때로 책은 기발한 생각이나 상상력,또는 지식을 만나는 장이 되기도 하지만 마음에 담아두고픈 한 사람을 만나는 일일때도 있다.  단어 하나 문장하나에 자신의 성품이 오롯이 드러나 마치 앞에 두고 가르침을 받는듯한, 스승을 만난듯한 마음이 들 때 말이다.  신영복 선생의 <강의> 이후에 오랫만에 또 하나의 그런 스승을 만났다.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을 읽었을때는 내가 아직 철딱서니 없던 시절이라 그 분의 깊이를 제대로 짚어내지 못했고 그림만을 ?아가기에 바빴다.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을 읽었을 때는 강의용 원고라 그런지 한국미술에 대한 그분의 열정은 느껴졌고, 또 그걸 그렇게 쉽게 풀어낼 수 있다는 것에 감탄스러웠고 훌륭한 학자라고 생각했지만 그뿐이었다. 세상에 말 잘하는 사람들은 많으니까....

그리고..... 이제야 겨우 스승을 알아보았다.(나의 우매함이라니....)

그림이 기교나 색채를 평하는 또는 미술적 가치를 논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그 속의 인간과 삶을 만나는 매개체가 될 수 있음을 그럼으로써 인간적인 감동과 삶에 대한 성찰로 다가설 수 있음을 스스로 완벽하게 보여주는 글들이다. 정약용의 <매화쌍조도>는 그림으로서의 기교는 전문화가의 것과 비교할 바가 못되지만 고지식할 정도로 진지한 학자의 면모로만 알려져 있던 정약용선생을 이제 막 결혼한 딸을 지극히 사랑하는 아비의 모습으로 새롭게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그림은 훌륭하다. 아비가 딸에게 마음으로 온갖 정성을 다해서 그린 그림이기때문이다. 오주석 선생의 글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샌가 딸의 마음 한자락 다칠까봐 온갖 전성을 다해 붓끝을 잡고 매화와 작은 새 한쌍을 정성을 다해 그려가는 정약용 선생을 만나게 된다. 그 붓끝이 혹여 실수하여 획 하나라도 틀릴까봐 같이 마음졸여가며 그 앞에 앉아있는듯하다.

흔히 그림에 대해 이러저러하게 구구절절히 설명하는 것이 독자의 감상을 오히려 방해할때가 있다. 하지만 또 역으로 전문가의 설명에 의해 못보던걸 다시 보고 그 깊이의 세계에 오롯이 빠져들 수 있을때도 있다. 이 책에 담긴 김홍도선생의 <마상청앵도>에 대한 오주석 선생의 설명이 그러하다. 그저 말위에서 꾀고리 소리를 듣고 걸음을 멈춘 한 선비의 모습일뿐이다. 오주석 선생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안개비를 맞으며 봄날의 꾀꼬리 소리를 듣고 있는듯하다. 그림속의 선비가 그저 그림의 소재가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으로 내 앞에 나타나는 순간을 경험한다. 자주 보던 그림이지만 전혀 처음 보는듯 새롭게 만난 그림이다.



저 선비의 마음과 저 여백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느끼고 싶다면 오주석 선생을 먼저 만나봐야 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만난 오주석선생은 그대로 저 그림속의 선비가 되어 내안으로 들어왔다. 오늘날에 와서 이런 선비상은 긍정적인 의미도 부정적인 의미도 다같이 포함하고 있을것이고, 또한 선생의 글 역시 긍정적인 부분도 또 약간은 마음이 불편한 부분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만약 내가 오주석 선생을 만났다면 아마도 그분은 그 부정적인 마음조차도 다 인정해줄 수 있는 큰 그릇이었으리라는 맘은 분명히 든다.

아! 슬프다. 조선의 그림이 이제 비로소 그 독자적 모습을 드러내게 되어 일본의 학계에서도 주목하기 시작했는데, 이제 누가 그 뒤를 이을 것인가. 그는 모든 조선 그림을 생생하게 되살려놓았다. 늘 중국의 그늘에서 제 모습을 보지 못하였던 조선 그림의 세계를, 뒤에 오는 그 누군가가 그 정신을 이어받아 펼쳐나가기를 마음 깊이 바랄 뿐이다. 역사는 아웃사이더가 엮어나가는 것이다. (강우방 선생의 출간에 부쳐 중..)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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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아쉬운 부분이 없는건 아니다. 정선의 <금강전도>에 대한 설명은 솔직히 공감하기 어려웠다. 금강전도에 숨어있는 <주역>의 내용들을 찾아가며 선생이 한 그림설명은 별로 와 닿지 않았다. 좀 과다한 의미부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과연 화가가 이렇게까지 그림하나에 많은 의미와 지식을 풀어넣고 그린걸까라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결정적인건 내게 <주역>은 너무 어렵고 머리아프다는 것일게다. 솔직히 금강전도편은 읽어내기도 어려웠고 당연히 감동도 힘들었다. 하지만 이건 나의 소견의 짧음이 또한 문제의 대부분을 차지할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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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6-02-21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참!! 이렇게 좋은 책을 보내주신 진주님께 다시 한 번 감사를.... 진주님 고마워요.

가넷 2006-02-22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일리지로 지를까 생각 중인데... 일단 직접 책으로 한번 봐야겠네요.;

돌바람 2006-02-22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나 이 책 지원이랑 함께 봤거든요. 예상 외로 아이 반응이 재밌어요. 해아랑 예린이한테도 그림 보여주세요. 지원인 <산신도>를 보고 산타할아버지래요. 흑흑흑... 재밌는 건 한 세 번쯤 보여주니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척 하며 다른 말을 하네요. 해아랑 예린이는 어떻게 볼까 궁금해요.^^*

바람돌이 2006-02-23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로님/처음뵙지요. 만나서반가워요. 책은 역시 직접 보고 사는게 최고죠. ^^
돌바람님/어 저는 그런 생각은 한번도 못해봣어요. 내 책을 같이보는거... 그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근데 이 녀석들이 같이 봐줄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돌바람님처럼 한 번 해볼래요 재밌을 것 같아요. ^^

2006-03-06 0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3-07 0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3-07 0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여우 2006-03-09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상청앵도>저 그림에서 사실은 안 보이는게 있어요.
말을 모는 아해가 저거든요. 남들이 알아 볼까봐 남장했다는^^
<주상관매도>에서도 남장으로 변장해서 주인 나으리께 술 시중을 들잖아요^^

바람돌이 2006-03-09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 어쩐지 그림에서 여우냄새가 나더라니....우우웅~~~~ ^^;;

진주 2006-03-21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제가 너무 너무 갖고 싶었던 건데 역시 바람돌이님께서 먼저 보내 드리길 잘했어요^^ 1권을 도서관에서 빌려 봤는데 그것부터 사서 갖추려고 아직 안 사고 있어요. 바람돌이님 리뷰만 읽어도 가슴에 불이 확~~~

바람돌이 2006-03-21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님 덕분에 제가 좋은 책을 빨리 읽을 수 있었어요. 지금 3월이었다면 아마 엄도도 못내고 책장 저쪽에 밀려나 있었을 텐데.... ^^ 선정된 그림들은 1권이 더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