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천사지 석탑이 복원됐다. 10월에 개관할 국립 중앙박물관 '역사의 길'에 기나긴 복원의 과정을 거쳐서 며칠전 삐까한 복원식과 함께 텔레비전 화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픔도 많고 어처구니 없는 일도 많았던 탑이다. 근데 이 착잡한 기분은 뭘까?
이 탑은 국보라는 이름에 걸맞게-아니 넘칠정도로 - 정말 너무나도 아름다운 탑이다. 탑 전체의 균형이나 모습의 아름다움은 말할것도 없고 그 세부조각에 가면 넋을 잃을 정도다.
하지만 이 탑의 건립과정은 그렇게 유쾌하지 않다. 한 때 우리가 한세기 동안이나 몽고의 지배를 받았던 시절, 그 식민문화의 소산이다. 고려의 한 친원파 귀족이 몽고의 실력자에게 아부하기 위해 개인용 사찰을 지어바쳤고, 그것이 경천사라는 절이다. 이후 원나라에서 직접 설계를 하고 조각가들을 데려와 만든 완벽한 수입품이 바로 이 탑이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이걸 그대로 본떠서 만든 원각사 10층석탑외에는 계보도 전통도 찾아볼 수없는 유일한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일제시대에는 밀반출에 의해 일본 도쿄로 옮겨졌었고, 이후 베델 등을 비롯한 사람들의 노력으로 다시 돌려보내졌으나 제자리를 잃고 경복궁 앞뜰에 세워지게 되었다. 섬세한 조각을 위해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니 이 과정에서 이 탑이 겪은 수난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을 수 밖에.... 그 후에도 서울의 공해에 찌들려 탑의 마모가 너무 심해지자 새 박물관 건립계획과 함께 대대적인 복원 작업에 들어가 이제 국립중앙박물과 내부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문화재의 보존이란 참 어려운 문제다. 망가지는 것을 그대로 방치할 것이냐? 아니면 보존 자체를 위해 박제화라는 길을 택할 것이냐? 제자리에 서있지 못하는 유물은 - 그 역사적 의미를 상실하고 그냥 미술품으로서만 존재하게 된다. 경천사 석탑 역시 앞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경탄을 오래도록 사게 되겠지만, 이 탑의 역사적 의미를 같이 생각해주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이 탑을 보고 원의 지배와 그에 기생하던 고려귀족들의 횡포에 아파하던 고려의 사람들을 기억해주는 사람들은 있을까?
또 하나 이 탑에 얽힌 웃기는 이야기
1995년 김영삼 정부는 역사를 바로세운다는 명목하에 조선 총독부 건물을 다시 회복하지도 못하게 철거해렸다. 그 철거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입장이 다르겠지만 적어도 정권의 이벤트를 위해 희생되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근데 웃기는건 처음 중앙박물관 건립지침에 박물관 메인 로비에 이 경천사지 석탑을 놓기로 했다는 거다. 식민역사청산을 위해 박물관으로 쓰이던 조선총독부 건물을 해체한 마당에 또다른 식민문화의 소산을 박물관의 얼굴로 사용하겠다? 다행히 내부의 이의제기로 그 계획은 철회되고 지금 역사의 길이라는 곳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참 이래 저래 사연많은 탑이다.
-본문의 내용중 경천사 탑의 건립과정과 중앙박물관 건립계획부분은 김봉렬씨의 책 '시대를 담는 그릇'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바로 이 책인데요. 한국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정말 좋은 책인데 아쉽게도 절판이네요. 저에게는 재간해야할 책 1순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