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에서 유일하게 우리반에는 별명이 있다. 이른바 '봉숭화 학당' 모든 선생님이 이구동성으로 붙여주신 별명이다. 교무실에서 늘 우리반은 모든 선생님에게 웃음을 제공한다. 그래서 좋으냐고... 천만에! 담임인 나는 미칠 지경이다. 교사 생활 10년만에 나는 내가 이렇게 화를 잘 내는 사람인지 처음 알았다.
우리반 남학생 18명, 여학생 18명 -여기서 여학생들은 평범한 중1소녀들이다. 다른 반보다 더 붙임성도 좋고 예쁘고 애교많은 여학생들이다. 내가 맨날 맨날 안아주고싶은, 그런 아이들이다. 남학생들 - 하나씩 만나면 인사도 잘하고 늘 웃고 명랑하고 천진난만(?)하다.-여기서 천진난만은 천지분간을 못해서라는 뜻도 포함한다. 그러나 천지분간을 못하는 것들이 18명 중 15명쯤 되면 미친다.
요 며칠간은 봉숭화 학당의 절정기였다.
첫번째 - 쓰레받기 사건
며칠전 교실의 쓰레받기가 받은지 얼마안된 새것이었는데 5개중 4개가 다 부서져 있는걸 발견했다. 어떻게 된거냐고 물으니 남학생 녀석들이 쓰레받기에 타고 끌어주기 놀이를 하면서 논다는 거다. 도대체 그 엉덩이가 들어가는지도 의문이다. 별로 화는 안나지만 하도 황당해서 누가 그랬냐고 일어서라니 쭈빗쭈빗 일어서는데 일어서면서 저들끼리 싸운다.
"야 너도 했잖아" "아이다 나는 끌어주기만 했다. 안탔다" "그게 그거지" "그런게 어딨노" 등등
결국 "다 일어섯" 하는 나의 소리지름에 13명이 일어섰다. 학교기물을 너네가 다 부쉈으니 내일까지 부서진 쓰레받기 4개 다 사와 하고 끝냈다. 다음날 아침에 검사한 결과 쓰레받기 5개다 모두 온전하다. 그냥 돈 모아서 사왔겠지 하고 넘어갔다.
쉬는 시간에 여학생들 몇명이 쪼르르 달려와 일러준다. "근데 있잖아요 선생님. 그 쓰레받기요. 애들이 강당에 있는 화장실 가서 헌 쓰레받기 두고 새걸로 훔쳐온거래요" 이런 젠장~~ 종례시간에 사실 확인~~ 나는 열받아서 길길이 뛰고~~~ 한창 길길이 뛰고 난 이후 선풍기 사건으로 넘어가다.
두번 째 -선풍기 사건
잠시 열을 냈더니 무지 덥다. 애들보고 "야 교실 너무 덥지 않냐? 아직 에어컨 켤 정도는 아니니 저 선풍기 청소해서 이제 틀자" 그순간 K군 대뜸 " 주번 시키지요" (참고로 k군은 좀 얄미운데가 있다. 뭐든지 지가 하면 장난이요 남이 하면 괴롭힘이라.. 그런 주제에 장난은 엄청 심해서 아이들의 원성이 자자한... ) 그 순간 이녀석이 좀 많이 얄미워 "야 나는 무슨 일 할때 남한테 미루는 사람이 제일 좋더라. 니가 해라. 너 평소에 반 아이들한테 피해준것도 많잖냐? 이럴 때 봉사좀 하지..그리구 평소에 같이 반에 피해를 많이 주는 누구누구누구 하나씩 맡아서 하자." 그 순간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우리의 K군, 입이 만발이나 튀어 나와 가지고 책상을 주먹으로 치고 씨근덕거리면서 의자를 발로 치고 난리도 아니다. '왜 내가 하는데요'군지렁 군지렁 난리가 났다. 순간 엄청 열받는 나! 그래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타일렀다. 그러나 타이르는 것만으로는 이녀석 기가 안죽고 눈까지 흘기면서 계속 그짓이다. 이런 젠장~~~ 결국 혈압오른 나는 그녀석보다 더 길길이 날뛰면서 나무래며 마지막으로 "됐다! 내가 하고 말지 뭐. 치아라" 그 순간 뒷쪽에서 같이 선풍기 씻기에 당첨됐던 L군 갑자기 쥐죽은 듯한 교실에서 너무나 크고 당당한 소리로 외친다. "앗싸"
이순간에 앗싸라니.... 더더욱 오르는 혈압! 더이상 뭐라하지 않고 끝내려는 나의 큰소리를 다시 연장 시키다. 이번엔 진짜로 길길이 날뛰는데 그 순간 앗싸 L군 옆의 B군 - 볼펜으로 공기놀이 하면서 놀고 있다. 이정도 되면 내가 KO다. 결국 나 진짜로 삐졌다. 이틀동안을 삐져있었고 내가 삐졌다는 표시를 무지막지하게 했다. 그래도 선풍기는 그대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불쌍한 여학생들만 내 눈치를 본다. 이 녀석들은 아무 생각이 없이 또 헤헤거린다.
결국 선생이 돼 가지고 계속 삐져 있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가 백기를 들 수도 없고.... 결국 이틀간을 고민하다가 파란 여우님이 올려주셨던 슬픈 사진을 이용해 20분정도 아주 엄숙하게 일장 연설을 했다. 내가 생각해도 감동적인 연설 ^^;;; 연설을 끝내고 내가 교실을 나오는 순간 아이들이 선풍기를 떼고 있는걸 뒷너머로 확인했다. 그래서 나의 승리냐고? 천만에.... 여전히 변함없는 우리 반의 머시매들... 미운놈들... 그녀석들은 선풍기 하나 씻은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줄 알고 원상복귀다. 봉숭화 학당은 앞으로 1년 내내 계속될 것이다.
걱정삼아 쓰는 글
우리 학교 모든 학생들이 이러줄 오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다른 버전의 -선풍기 사건
오늘 날이 무지 덥다. 1교시 수업들어간 모반. 날이 너무 더운데 선풍기를 안 틀고 있다. "야 너네는 안덥냐? 왜 선풍기 안 트냐?" "선풍기를 안 씻어서 못 틀어요" -그반은 남선생님이고 늘 밖에서 수업하는 체육선생님이 담임이다 보니 미처 못챙겼나보다. "그러지 말고 오늘 점심시간에라도 좀 씻지 그러냐. 덥잖아"
대뜸 반장이 손을 든다. "제가 반장이니까 제가 씻을게요" -이런 감동과 씁쓸함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그래도 반장이 다 하기는 좀 그렇고 다른 사람도 같이 하자" 말이 끝나자 마자 몇녀석이 손을 들고 "착한 제가 할게요"
결국 문제는 봉숭화 학당 하나뿐인 것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