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를 리뷰해주세요.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 고미숙의 유쾌한 임꺽정 읽기
고미숙 지음 / 사계절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20대 중반쯤에 <임꺽정>을 읽었었다.
아니 읽다가 그만두었다. 3권쯤인가 읽다가 아 정말 젠장 하면서 때려치웠다.
대하소설 아예 시작을 안했으면 몰라도 읽다가 중간에 그만둔건 이게 유일하지 싶다.
분량으로 따지면 임꺽정보다 훨씬 더한 토지도 다 읽었고, 장길산도 태백산맥도 다 읽었다.
그런데 왜 임꺽정은 던져버렸을까?
그 이유가 너무도 분명히 떠오른다.
딱 깨놓고 말해서 주인공 임꺽정이 너무 마음에 안들어서다.
내가 예상한 임꺽정은 의적이고 영웅이어야 했다. 조선이라는 봉건사회에 통쾌한 한방을 날려줄 영웅 임꺽정 - 적어도 홍길동정도는 돼야 했다고나 할까?
그런데 책에서 만난 임꺽정은 정말 불학무식하고(여기까지는 봐줄 수 있다.), 사람 목숨을 파리처럼 여기고, 아무데서나 행패고, 의적이 될 가능성은 씨알머리도 안 보이는 그런 놈이었던 것. 

내 20대 중반은 흑백의 논리가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 아 행복했다. 무식하면 행복하다.
혁명이 성공하면 세상 인간들의 도덕성도 더불어 혁명적으로 변할 줄 알았던 시절.
그런 20대 중반의 꿈꾸는 낭만주의자에게 임꺽정이라는 리얼리티는 감당키 어려운 인물이었던 것이 당연하겠다. 
고미숙씨는 내가 임꺽정을 집어던졌던 바로 그 지점에서 임꺽정의 가치를 평가하기 시작한다.
아 물론 세월이 많이 바뀌긴 했다.
80년대에는 죽었다 깨나도 이런 책은 못나왔다. (그걸로 난 나의 저 단순무식 20대를 변명한다)  
고미숙씨는 임꺽정에서 참으로 많은 얘기들을 꺼낸다.
그건 아마도 임꺽정이란 텍스트 자체가 참으로 많은 얘기들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80년대에 우리가 읽을 수 없었던 임꺽정속의 새로운 삶의 정수는 무엇일까?

임꺽정을 비롯한 청석골의 칠두령은 모두 정착민이 아니다.
출신은 다양하지만 정착민이 될 소질은 다들 애저녁에 글러먹었다.
아예 그런 기반을 타고나지 못한 이도 있고, 타고나기는 괜찮았으되 어쩌다보니 인생이 꼬여 길 위에서 한 생을 살아야 할 처지에 놓인 이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기가 죽느냐?
기가 죽는다는 것은 그들이 정착민, 주류사회에 편입되고자 하는 욕망이 있을 때 성립되는 이야기다. 아예 그런 생각이 없는 이들에겐 해당사항없음이다.
저자인 고미숙씨가 주목한 지점은 바로 여기인듯하다.
기존 주류사회에서의 추방, 아니 탈주를 통해 새로운 관계망을 형성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창조해내는 것, 그 공동체를 운영하는 원리를 이 시대에 맞게 변용해내는 것이 그것이다.

자 그러면 고미숙씨가 임꺽정과 그 무리들에서 발견한 새로운 공동체의 논리는 무엇인가?
소설 임꺽정의 주인공격의 인물들은 모두 달인들이다.
달인 하면 요즘은 생활의 달인이 떠오를듯한데 뭐 별반 다르지 않다.
열심히 배운다.
배움의 목적 별로 중요하지 않다. 무엇을 배우는가 중요하지 않다. 배움의 방법 역시 마찬가지.
임꺽정은 유불도 모두를 아우르는 세상의 이치를 통달한 갖바치에게서 배웠지만 워낙 글머리가 없어 겨우 병법이나 배웠을 뿐이다. 그것도 이야기로만... 하지만 타고난 힘에다 말타기 검술은 달인의 경지에 이른다. 표창의 달인, 활의 달인, 돌팔매의 달인 등등...
이들은 모두 즐겁게 공부한 이들이다. 공부가 놀이이고 놀이가 공부인, 그럼으로써 생활 그 자체가 되는....
오늘날 공부가 목적이 아니라 출세, 돈, 안정된 직장을 위한 수단이 되는, 그래서 눈코 뜰새없이 시달려가며 공부해야 하는 이들에게 이들의 공부는 이해 불가능이다.
도대체 저것들을 뭐에 써먹냐고? 써먹긴 뭐 그냥 배우고 싶으니까 즐거우니까 배운거지라고 고미숙은 임꺽정속 주인공들의 입을 빌려 대답한다.
이 대목은 결국 근대 교육이 시작되면서 공부의 근본을 잃어버림에 대한 질타이다.
배움이란게 즐거움이 되어야 하고 놀이가 되어야 하고 한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즐겁게 진입하는 삶의 기쁨이어야 한다는 그래서 여기에는 스승과 제자의 구별이 없다는 배움과 앎의 공동체에 대한 갈망의 표현이기도 하겠다. 
그러나 배움에도 두갈래 길이 있으니 임꺽정의 길과 임꺽정의 스승인 갖바치의 길이다.
갖바치의 길이 도가 깊어짐으로써 자신의 존재기반을 벗어날 수 잇지만,
임꺽정의 길은 적대감이 깊어질수록 자기가 증오해마지 않는 세력들과 맞물리게 되어있다... 괴물과 싸울땐 괴물을 닮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309쪽)
그러나 이거 별로 안 쉽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청석골을 움직이는 논리는?
근대에 들어오면서 잃어버린 논리 - 우정 그리고 의리
근대 이후 핵가족화가 진행되고 그 핵가족이 세계의 중심이 된 시대를 산 이들에게 임꺽정식의 우정은 도통 이해불가능이다.
친구가 너무 좋아 가족도 버리고 친구따라 강남간다는게 농담이 아니라 실제가 될 수 있는 시대라..... 이를 고미숙은 피보다 진하고 연애보다 더 에로틱하다 했던가?
우정과 의리는 횡적 연대이다.
돈이든 뭐든 핵가족의 범위내에서만 돌고도는 사회에서는 탈출구는 없다. 사회의 연대란것도 어찌보면 별것 아닐 수도 있겠다. 우정과 의리의 회복이라... 고미숙씨는 핵가족에서 도는 돈이란게 그 범위를 벗어나 우정의 경제학으로까지 확장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참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상적이기도 하다.  

청석골은 탈주자들이 만든 완전히 새로운 공간이다.
이웃사촌에 사돈에 팔촌에 그도 아니면 어떠랴. 우정과 의리로 뭉친 의형제들이 있고 주변에서부터 확장되어 나가는 소통의 네트워크가 있고 경제적 착취가 있을 수 없는 공동체가 있다.
늘 축제의 현장으로 복작이는 그래서 사랑조차도 전혀 은밀하지 않고 부부싸움도 은밀할 수 없는 왁자지껄한 공간.
지식의 순환과 경제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공동체의 창출.
고미숙씨의 그 시작이 지금 그가 몸담고 있는 <연구공간 수유+너머>라고 생각하는 듯도 하다.
더 많은 연구공간 수유+너머를 창출하고자 하는 계획까지 있는 걸 보면...
연구공간으로서 수유+너머가 시도하고 있는 실험은 신선하기 그지 없으나 글쎄 그것이 사회의 다른 분야로 확장되는것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간극이 있을까?
그럼에도 일단은 보기 좋다.
그것이 가능할거라고 보는 그 낙관주의가.... 낙관이 반드시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켜볼 일이다.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머큐리 2009-08-11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유공간너머의 탈주는 계속진행되나 봅니다. 어디까지 갈지 저도 궁금해요...^^ 그래도 그들의 시도는 가치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도 읽으려고 찜해 놓았는데..계속 밀리고 있네요

바람돌이 2009-08-11 11:49   좋아요 0 | URL
수유공간너머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도 만만찮더라구요. 이론 지상주의니 뭐니...근데 전 뭐 그렇게 볼게 있나 싶어요. 어쨌든 그들은 공부하는 사람들이고 그 공부와 함께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찾아나간다 싶거든요. 오히려 저런 실험이 신선하다고 느껴졌어요. 이 책 잘 읽힙니다. 고미숙씨의 책은 몇 권 읽어놔서인지 머릿속에 잘 들어오더라구요. ^^

글샘 2009-08-11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임꺽정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는데요... 주인공들의 엉망진창인 삶이 오히려 더 좋더라구요. 위인스런 가식보담은... 고미숙의 이야기가 점차 나아지는 느낌을 받은 책입니다.

바람돌이 2009-08-11 11:50   좋아요 0 | URL
글쎄말예요. 저는 그 때 왜 그렇게 읽는게 힘들었을까요? 지금의 저는 그 때와 또 다르니 재밌게 읽어질까요? 고미숙씨의 책만 보면 재밌을 것 같은데 말이죠. ^^

무스탕 2009-08-11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20대 초반에 읽었어요. 22~3세 정도였던거 같은데 회사를 다니며 읽었지요. 너무너무 재미있는거에요. 오죽하면 회사에 감사원 감사가 나왔는데 대기자로 감사장에 앉아있는동안 열심히 읽으니까 감사하러 오신분께서 '뭘 그렇게 읽냐?'고 묻더군요 ^^;
근데요.. 지금은 거의 생각이 안나요. 그렇게 정신놓고 읽었는데 이모양이라니.. ㅠ.ㅠ

바람돌이 2009-08-11 11:51   좋아요 0 | URL
오 무스탕님. 20대 초반에 읽으셨는데도 이 책을 재미나게 읽으시다니 갑자기 존경스러워집니다. 전 왜 그랬을까요? ^^;;

프레이야 2009-08-11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미있겠네요.
오래전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을 흥미진진하게 읽었더랬는데요..

바람돌이 2009-08-11 23:21   좋아요 0 | URL
여긴 모두 임꺽정을 다 읽은 분밖에 없네요. ㅎㅎ 역시 알라디너들.. ^^;;

하양물감 2009-08-11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래도 끝까지 읽었던 임꺽정입니다만.......내가 같은 임씨라서? 하하하...사실은 국문학도(?)로서 의무감으로 읽었다고 해야 하나....그렇네요...'장길산'보다는 흥미가 덜했다는 기억이 있어요.

그래도 제법 캐릭터가 잡히잖아요^^이 책 관심깊게 점찍고 갑니다.

바람돌이 2009-08-11 23:22   좋아요 0 | URL
장길산도 전 뭐 그렇게 썩... 그래도 읽기는 다 읽은걸 보면 임꺽정보다는 나았다는 거겠죠? ㅎㅎ 임꺽정은 고미숙씨 이 책 때문에 다시 읽고 싶은 책이 되었습니다. ^^

순오기 2009-08-15 03:56   좋아요 0 | URL
장길산은 아파트에 오는 이동도서관에서 빌려보다가 이사하는 바람에 7권까지 보고 끝.ㅜㅜ 임꺽정 못 읽은 사람 여기 있어요~ 하지만 청석골은 가봤어요. 시숙님이 그쪽에 사시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