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다락방의 미친 여자> 읽기 시작!!!!

역시 생각했던대로 만만치 않다. 서문과 1장을 읽고난 소감은 이 책을 다 읽어도 제대로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무섬증이 먼저 들었고, 다음으로는 다 읽고 무언가 제대로 된 리뷰를 쓰는건 불가능하겠구나라는 기분이다. 매일 한 챕터씩 읽으면 딱 16일이면 읽을 수 있겟다 싶어 용기를 내면서 동시에 매일 각 장에서 생각했던 것들을 열심히 정리해보자라는 결심을 한다. 동시에 어쩌면 이 책에 대한 글들은 전부 이건 무슨 말일까라는 의문문으로 도배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도 드는데 그러면서 또 왜 문학이든 영화든 문화쪽의 비평이란 말만 들어가면 이리도 책이 어려워지는것이냐라고 한탄을 하는 것이다.



초판 서문에서 저자들은 "우리는 '은유를 낳는 경험'과 '경험을 낳는 은유' 둘 다를 묘사하고자 했다."라는 문장을 제시하는데왠지 이 책을 읽어감에 뭔가 핵심인 문장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문학의 가장 중요한 장치로서의 은유와 그 은유를 낳을 수 있게 하는 실질적 경험이 19세기 여성문학과 어떻게 만나는가에 주목하면서 책을 읽어야 하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읽다보면 이 아리송한 말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한다. 물론 결과는 장담할 수 없지만 말이다.


  펜은 음경의 은유일까?라는 도발적인 말은 결국 역사적으로 문학이 남성의 전유물이었을뿐만 아니라 실제로 전유물로 만들기 위한 부단한 이론적 시도들을 집약하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인류의 유지에서 아이를 낳지 못함으로 생산자의 입장에 서지 못한 남성은 이 세계를 지탱하는 이데올로기에서 생산자의 입장을 그리도 갈구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문학작품, 텍스트와 작가의 관계에서 텍스트를 작가의 자식으로 은유하는 것은 남성의 창조적 생산성을 강조함으로써 오로지 신과 여성만이 존재하던 "생산과 창조"의 영역을 넘보는 것이기도 하겠다. 역시 결핍이 창조를 낳는달까? 음경이 부재한 여성의 결핍을 얘기할게 아니라 아이를 못낳는 남성의 결핍을 얘기해야 할 판이다. 


  그런데 논의는 여기서 한발짝 더 나아간다. 남성이 텍스트를 자식으로 낳는 것은 그들의 작품을 낳는 펜이 바로 음경이라는 섹슈얼리티적 해석과 주장으로 말이다. 여기까지 나아가면 결국 문학이든 지성이든 정신적 창조와 작품은 바로 음경을 가진 자, 남성의 영역으로 들어가버리는 것이다. 참으로 결핍의 힘은 세다. 그리고 그런 존재론적 열등감을 가리기 위한 오랜 노력은 가부장제의 확립과 여성의 지적 능력에 대한 소외와 무시로 역사를 이어오니 단순히 얘기할게 아닌건 분명해보인다. 펜이 음경이라는 은유는 어쨌든 오랜 시간 여성의 지적능력을 억압하는 기제로 사용되어왔음은 분명하다.



 남성에 의해 정립된 여성상으로 제시되는 '집안의 천사'에 대한 은유들을 보면서 지금 읽고 있는 샬럿 브론테의 <빌레뜨>속 등장인물을 계속 생각하게 된다. 이 소설속에 등장하는 폴리라는 소녀는 그야말로 어릴 때부터 집안의 천사에 딱 걸맞는 존재로 묘사되는데 그 묘사가 얼마나 절묘한지 이 책과 함께 읽으면서 샬럿 브론테는 당대 인물들의 내면과 성격을 어떻게 이렇게 포착하고 표현할 수 있었을까싶다. 이후 샬럿 브론테의 장에 가서 <빌레뜨>가 어떤 식으로 이야기 될지 아주 궁금해진다. 


백설공주가 유리관을 깨고 나와 왕자와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자 여왕의 유리 거울을 폭파시키는 바로 그 현장에 위치하는 여성문학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이제 2장 본격적으로 읽어보자.





여성으로 젠더화된다는 말은 (특히종교가 여전히 보편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던) 19세기의 여성 작가 모두가 타락과 인간의 모든 악은 이브 탓이라는 전통 속에서 작업했음을 의미한다.  - P14

감금과 탈출 이미지, 미친 분신이 온순한 자아의 반사회적 대리인으로 기능했던 환상, 얼어붙은 풍경과 불길에 싸인실내에 나타난 육체적 불편함에 대한 은유-이런 유형들은 대물림되며 거식증, 광장공포증, 폐소공포증 같은 질병의 강박적묘사와 함께 거듭나타났다. - P19

다락방의 미친 여자의 기본적 주장에 대한 그들의 공격은 단순하고 그저 애처로운 두 가지 진술로 요약할 수 있다.
‘남자도 고통받는다‘ 그리고 ‘내 아내는 그런 식으로 느끼지 않는다!‘ - P41

따라서 21세기의 페미니스트들은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의 가장 뛰어난 책 중 한 쪽을 훔쳐 ‘오로라리‘로 알려진 기표들의 유려한 모음집과 제휴해, 세계를 향해 크고 분명한 소리로 설명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도 있다고,
우리의 사명이 해야 할 일이.
........................................

가장 진지하고, 가장 필요한 일이
여느 경제학자들의 일과 마찬가지인 것이
또는 천체물리학자나 미생물학자의 일과 같은 것이 - P65

문학작품의 관례를 볼때 ‘작품의 통일성이나 완전성은 일련의 계보적 연결, 즉 저자-작품, 처음-중간-끝, 텍스트-의미, 독자-해석 등에 의해 유지된다‘고 하면서, ‘이 모든 것의 밑바탕에는계승, 부권, 위계질서의 이미지가 깔려 있다‘ (강조는 인용자)라고말한다. - P76

많은 작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그리고 다양한 목적에서 문학적 부권 은유를 사용하는데, 모두가 하나같이 문학작품은 문자 그대로 언어의 표현일 뿐 아니라 육체로 신비롭게 구현된 권력이라는 데 동의하는 것 같다. 따라서 가부장적 서구 문화에서 텍스트의 저자는 아버지이자 창시자이며 낳는 자, 펜을 음경처럼 생산의 도구로 쓰는 미학적 가장이다. 더욱이 저자의 펜이지닌 힘은 음경의 힘처럼 생명을 만들어내는 능력이요, 자신의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자손을 만들어내는 힘이다.  - P78

여성은 그토록철저하게 금지당했던 펜을 들어보기도 전에 이미 가부장제와문학작품에 의해 종속되고 감금당했기 때문에, 남성 텍스트들을 피해야 한다. 그 텍스트들은 여성을 ‘영‘으로 규정하고, 여성에게 (여성을 가두고 펜을 들 수 없게 만드는 권위에 맞서 대안을 만들 자주성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 P89

여성 작가는 여성의 육체적 한계를 초월할 수 없다는 바로 그 근거에 기초해 적어도 어느 정도는 자신의 예술적 적절함에 대한 남자 예술가들의 불안을 체화했으므로 18세기 풍자문학에서 실패자로 간주되고 비방받았다. 여성은 재생산 측면 바깥에 있는 자신을 결코 생각할 수 없다. - P119

작가가 되는 것이 자신의 ‘성과 태도‘에  대한 오인을 의미한다면, 작가가 되는 것이 ‘성을 부정하는‘
혹은 성적으로 삐딱한 여성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면, 작가가 된다는 것은 바로 괴물이나 변종, 즉 사악한 ‘에러‘, 기괴한 레이디 맥베스, 혐오스러운 ‘우둔함의 여신‘, (나중에 나올 마녀 중몇몇만 말해보자면) 살인마 라미아, 사악한 제럴딘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주제넘은 노력을 해서는 안 된다. - P122

여성의 순종하는 삶, ‘명상적인 순수한 삶은 침묵의 삶이요, 이야기도 없고 펜도 갖지 못한 삶인 반면, 반항하는 여성의 삶, ‘의미 있는 행위‘의 삶은 침묵을 강요받고 괴물 같은 펜으로 끔찍한 이야기를 말하는 삶이다. 어느 쪽이든 여성 예술가가 자신을 찾기 위해 들여다보는 거울 위의 이미지는 여성 예술가에게 이렇게 경고한다. 여성 예술가는 누명을 쓰고 함정에 빠진, 고발되고 기소된 ‘영‘이라고, 또는 ‘영‘이 되어야 한다고. - P124

그리하여 앤 핀치와 앤 엘리엇부터 에밀리 브론테와 에밀리 디킨슨에 이르는 자부심 강한 여성들이 남성 작가의텍스트라는 유리관에서 나와 여왕의 거울을 폭파했을 때, 오래전 침묵 속에 추었던 죽음의 춤은 승리의 춤, 언어를 향한 춤,
권위의 춤이 되었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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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12-05 09: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가열차게 관련 독서를 하신 후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시작하신 바람돌이 님, 덕분에 제가 막 흥분이 됩니다!!

바람돌이 2022-12-06 15:55   좋아요 1 | URL
관련도서를 읽은게 하나도 없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데..... 지금도 다 못읽긴 했지만 시작을 안하면 12월에 진짜 못읽지 싶어서 남은 책과 함께 읽으려 합니다. 이제 우리 다락방님 격려까지 받았으니 진짜 힘내서 읽겠습니다. ^^

건수하 2022-12-05 09: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은유를 낳는 경험‘과 ‘경험을 낳는 은유‘ 둘 다를 묘사하고자 했다.˝

저 이 문장 벌써 까먹었어요... 의미심장하네요. 바람돌이님 덕분에 다시 기억하며 읽겠어요 :)

바람돌이 2022-12-06 15:56   좋아요 1 | URL
저도 까먹을까봐 여기 써놓은거예요. 아 근데 저말 알것같다가도 잘 모르겠고.... 특히 경험을 낳는 은유는 진짜 아리까리합니다. ㅎㅎ

yamoo 2022-12-05 19: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런 류의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ㅎㅎ
페미니즘 서적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비유와 상징이 많은 이론서는 좀 기피하는 편이라서욤...^^;;
다른 건 몰루겠고..
갈무리 해 주신 ˝우리는 ‘은유를 낳는 경험‘과 ‘경험을 낳는 은유‘ 둘 다를 묘사하고자 했다.˝는 매우 문학적인데, 굳이 이론서에 이런 수사를 써야하는지 참 그렇습니다. 은유를 낳는 경험은 뭐고 경험을 낳는 은유는 뭔지...엄청난 논증이 필요한 이런 문장이 아무 설명도 없이 마구 나열되는 이런 이론서들이 좀 많더라구요.

특히 마지막 137페이지 인용문을 봐도 이 책의 성격을 알 거 같아요. ‘우리의 이상향은 결국 이카타로의 회귀‘어쩌구 저쩌구 하는 평론적 문장과 대동소이해서 좀 거시기 합니다. 뭐, 이런 류의 책들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분명히 있습니다. 제 취향은 아닌데, 가열차게 읽으신 바람돌이님이 대단하시다는 생각이에요. 저는 한 두 페이지 읽다가 바로 덮었을 겁니다...ㅎㅎ

바람돌이 2022-12-06 16:03   좋아요 1 | URL
저는 요즘 문학에서 은유가 가지는 힘에 대해서 좀 새롭게 그 힘을 깨닫고 있는 중입니다. 직설적인 문체의 글에서 느낄 수 없는 깊이로 몇번이나 곱씹게 하면서 영역을 확장해가며 다른 깨달음을 주는 힘이 은유에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도 이론서는 명확하고 논리적인 언어로 서술된 것을 훨씬 더 좋아합니다. 알아먹기가 훨씬 좋으니까요. 하지만 19세기 여성문학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좀 어쩔수 없는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19세기의 여성문학 자체가 상당히 은유로 감추면서 말하는 것들이 많고, 그것을 파헤치고 있는 이 책은 또한 이런 은유의 방식으로 말할 수 있는것들이 더 많지 않나 싶어요. 뭐 쉽지는 않지만 어렵게 읽는 만큼 더 많은 또는 더 깊은 사유로 저를 이끌어주리라 생각하고 읽고 있습니다. 근데 읽어내는게 힘들긴 하네요. ^^

햇살과함께 2022-12-10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처럼 달려가십니다! 곧 2달 전 시작한 저를 따라잡으시겠습니다 ㅎㅎ
관련 책 최근에 많이 읽으셔서 더 재미있게 읽으실 거에요~
해당 책을 읽은 챕터와 안 읽은 챕터는 확실히 이해의 폭이 다르더라고요.
물론 저에겐 많이 어렵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