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1. 행복을 향한 그녀들의 움직임 : 디지털 페미니즘의 정동 - 김예란


우리는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명예나 돈이나 안락함을 추구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행복을 추구하지 않을 수는 없다. 

누구는 자연인처럼 산속에서 혼자서 사는 데서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 누구는 신에게 귀의한 삶에서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 나처럼 세속적인 이는 그저 나의 일상이 유지되는 데서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 행복을 느끼는 형태가 사람마다 다양할 뿐이다.

불행이란 결국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한 삶의 형태가 깨어지는 것 아닐까?

저자에 의하면 이런 행복은 기쁨과 슬픔을 끌어안고 끝없이 지속되어야 하는 생성적인 운동력이 된다.


그런데 왜 행복에 기쁨 뿐만 아니라 슬픔까지 끌어안아야 하는걸까?

그에 대한 대답에서 버틀러는 인간 존재 자체의 취약성을 이야기한다.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는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약하기 때문에 오히려 타자에 대한 공존과 협력의 책임을 져야 한다. 

나의 존재는 타자에 대한 의존에 기인하며 따라서 그 누구도 타자에 대한 책임윤리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우와~~~

이 말 진짜 너무 멋지지 않나?

내가 정의로워서 내가 좋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약한 존재여서 서로 의존하고 돕는 것이 당연한 의무라고 선언하는 것.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은 나의 취약성에 대한 슬픔을 연대와 공감, 서로 껴안음으로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다른 나, 새로운 나를 거듭 거듭 만나는, 그래서 끊임없이 경계를 뛰어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야 말로 어쩌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 아닐까?

정희진샘이  경계를 뛰어넘는 것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와서는 디지털 공간을 통해 가부장제의 억압하에 '당했던 여성'의 존재가 '말하는 여성'이라는 존재로 변화하고, 또한 이러한 연대와 공감이 해시태그 페미니즘 같은 활동을 통해 친밀한 공중이 형성되는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것은 디지털 네트워크를 여성이 자신의 행복장치로 탈환하는 전복적 행위의 가능성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제1부 2. 불안에도 불구하고 - 백지연


어두운 골목길을 혼자 걷는 여성이 있다. 그런데 뒤에서 묵직한 발걸음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린다.

그에 따라 여성의 심장도 두려움에 같이 두근거린다.

남성들은 이에 대해 억울하다.

우리가 다 범죄자냐고, 범죄자는 극히 일부일 뿐이라고 항변한다.

맞다. 지금 골목길에서 나의 뒤를 따라오는 누군가가 남성 범죄자일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그래서 지금 내가 살아있잖아)

그러나 저 어두운 골목길에서 혼자 걸으며 불안을 느끼는 남성은 소수이겠지만, 저 상황에서 불안을 느끼는 여성은 거의 전부다. 

왜 불안하냐고? 불안은 느끼지 말라고 느껴지지 않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이 불안의 원인을  명확하게 알려준다. 

이 불안은 젠더 간의 권력차이에서 발생하고, 남성 중심적인 사회 구조가 이 원인을 존속시킨다.

그러면 여성들은 이 불안과 위협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디지털 공간은 여성에게 차별의 경험 말하기와 이를 통한 정치적 지각을 획득하게 한다.

디지털 공간을 통한 말하기와 공유의 경험은 네 잘못이 아니야. 우리는 서로의 용기가 될거야라는 말을 통해  나 자신과의 소모적인 싸움 대신 적이 누구인가를 알려주고, 누구와 어떻게 싸울것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그리고 또한 다양한 방법으로 싸움에 참여하고 연대하며 사회적 지지를 확인한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싸움에서도 여성들은 표적이 될 가능성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이화여대 학생들이 총장퇴진 시위 이후 시위의 자료를 모두 지웠다는 것을 읽으며 너무 큰 슬픔을 느낀다.

자신이 옳다는 일에 참여하고, 그것이 사회적 공감을 일으켜 대통령 퇴진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흐름의 시작이었던 자랑스러운 투쟁에 이들은 왜 모든 자료를 삭제했을까?

예전 군부독재시절처럼 잡혀갈 것도 아닌데....


그래서 이 장의 마지막 제목

"우리는 불안에도 불구하고 생각하고, 불안과 함께 말하며, 불안을 없애기 위해 싸운다"

그럼으로써 남녀를 불문하고 옳은 것의 성취를 마음껏 자랑하고 떠들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여전히 싸움은 계속된다.




따라서 행복의 윤리 실천에서 행복은주체의 삶의 근거, 규칙, 방법론, 목표가 되는 동시에 한걸음 더 나아가체제와 조건의 경계를 인식하고 그 너머를 추구하고 발명하는 사회정치적 함의를 띠게 된다. - P23

이에, 나의 행복의 윤리는 행복을 개인의 심리 (심리학)나 사회의 발전 요소(경제학)로 간주하고 측정하는 대신 정동으로 해석하는 관점을취한다. 삶의 기술의 중요한 한 부분은, 앞에서 밝혔듯이 주체가 실행하는 마음과 몸이 발휘하는 욕망과 의지, 즉 정동의 운동이고 행동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 P23

 행복은 그 윤리를 추구하고 실행하는 주체의 삶의 기술이자 의미로 유의미해진다. 우리는 행복이라는 윤리적 가치를 위해 다양성 안에서 스스로 변화하며 특정한 선택을 향해 움직여 가려고 노력한다. 이때 행복이란 단일하게 규정되거나 고정될 수 없으며 기쁨과 슬픔을 끌어안고 끝없이 지속되어야 하는 생성적인 운동력이 된다. - P27

 나는 당신이 없다면, 다수 무명의 그들이 없다면, 존재할 수없는 약한 존재다. 각자 이토록 약하고 고독한 주체들이 ‘우리‘로 공존할 수 있기 위해서는, 바로 그 취약함과 의존성 때문에, 그 누구도 타자에 대한 책임 윤리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우리가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약하기 때문에 오히려 타자에 대한 공존과 협력의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다. 이로써 버틀러에게는 주체의 벗어날 수 없는 취약성이 삶, 나아가공통적인 삶의 원리로 긍정화된다.  - P28

이렇게 볼 때 취약성은 곧 저항을 구성하고 저항 안에 이미 내재한다(Butler, Gambetti & Sabsay, 2016). 이렇듯 "관계적이고 정동적인 관점에서 이해되는 취약성이란 나, 당신, 다른 그 누구에게라도 적용되는 보편의 원리일 뿐 아니라 급진적인 정치윤리학을 추동한다(Sabsay, 2016). - P29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체는 자신에게 취약성을 부당하게 부여한 사회에 대해 저항하는 능동적 요소를동시에 함축하게 된다. 왜냐하면 단지 그 취약하고 비참한 몸의 "드러남" 자체가 사회적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노출 혹은 고발의 효과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취약성이 규범에 대한 저항을 발현시키는 정치적 전환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취약한 몸들이 서로 뭉쳐 지지와 연대를 구성함으로써, 그 자체가 사회적 모순을 온몸으로 드러내는 정치적 저항력을 구성하고 발휘할 수 있기에그러하다(Athanasiou, 2016; Butler, 2016). - P32

바디우의 강조처럼 언제나 행복은 불가능한 것의향유이고, 긍정은 불가능했던 무언가가 이제는 실현될 수 있으리라는가능성의 약속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절망은 행복의 필수 조건이다.
물론 우리는 불가능성의 가능성 그리고 선택과 결단의 의미가 긍정과통한 행복에 관한 일련의 논의들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졌음을 상기할 수있다. - P35

정동은 존재와 행위의 능력으로 무엇에게 무엇인가를 바라고 지향할 수 있도록 이끄는 힘이다. 그 문자 의미 그대로 정동은 고정되거나 획일적인 감정이 아니라 그들의 움직임‘이다.  - P36

이렇듯 행복은 정동의 휘몰아치는 운동의 흐름을 겪어내고 새로운가능성을 만드는 우연의 궤적들이다. 때론 기쁘고 때론 슬픈 마주침을체험, 체현하면서 나는 더 이상 이전의 내가 아니고 다른 나이며 새로운나로 태어난다. 되어간다. 또 다시 태어난다. 이로써 매순간 더 이상 자신에게 갇히지 않고 자신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자아와 만나는 사건, 그러한 사건들의 지속을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 P37

여성 주체는 ‘당했던‘ 여성으로부터 ‘말하는‘ 여성으로 변화하며 여성의육체가 남성의 탐욕스럽고 포악한 욕망의 소유물로 여겨지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었던 사회의 가치 체계에 대한 가치 전환을 시도한다. 이로써 "권력에 노출" "취약한 육체가 "정치적 저항을 구성하고 실행"하는말로서 "긍정화" 한다(Butler, 2016:22). - P43

여성이 느끼는 불안은 젠더간 권력차이에서 발생하고, 남성중심적인 사회 구조가 이 원인을 존속시킨다는 뜻이다. 불안은 다양한 강도를 가지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정도가 변하며 내면적이거나 환경적인 상황에 의해 구체적인 양상이 달라질 수 있지만(Spielberger, 1966), 남성과 여성의 권력의 차이가 지속적이고 안정화되어 있다면, 이를 고질적인 문제로 이해해야 마땅하다.
구조가 바뀌지 않는 이상, 한국 여성들의 불안은 한국 사회 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고 지속된다. - P56

여성들은 소셜 미디어의 어포던스를 이용해 여성주의 운동의 역사에서가장 오래되고 주요한 과업인 ‘차별의 경험 말하기‘와 이를 통한 ‘정치적 지각 획득‘(Mackinnon, 1989; Rich, 1986)을 달성해나가고 있다. 여성들은 경험 말하기와 감정 공유를 통해 자신이 속한 사회 내의 억압을 이해하고, 개념화하며, 인식의 기본틀을 마련할 수 있다(Gautam, 2012). - P63

사회적 지지가 자신이 보살핌을 받고 있고, 스스로 가치가 있으며, 상호 의사소통이 가능한 관계망에소속되어 있다고 믿게 하는 정보를 통해 얻어지는 것인 만큼(Harter.
1985), 호의적 청자에 대한 이미지는 여성들의 사회적 지지를 높일 수있다.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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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09-25 00: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누구나 타자에 대한 책임윤리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말, 동감합니다. 우리는 어리석고 불완전하고 나약한 존재이기에. 열공하시는 돌이 님, 굿나잇 ^^

바람돌이 2022-09-25 12:13   좋아요 1 | URL
그쵸 프레이야님... 그래서 주디스 버틀러에 대해서 급관심이 생겼는데 책을 찾아보니까 이게 또 무지막지하게 어려워보이네요. 너무 어려운 책은 이제 읽고싶지 않은데 이러면서 고민중입니다. ㅎㅎ

얄라알라 2022-09-25 0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열독에 꼼꼼 정리에.... 저도 ˝같이 읽기˝하면서 감정의 정치학에 최근 눈뜨게 되는데요 행복에 대한 인용들, 매우 흥미롭습니다!

바람돌이 2022-09-25 12:14   좋아요 0 | URL
아는게 없고 또 알게된 것도 금방 까먹는 나이인지라 정리라도 하지 않으면 머릿속에 남아있는게 하나도 없는 이의 발버둥입니다. ^^ 요즘 저도 여성주의 책 읽으면서 감정에 대해 새롭게 깨달아가게 되네요.

책읽는나무 2022-09-25 1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 리뷰 진짜 너무 멋진 거 아닙니까??
저도 며칠 전 첫 번째 김예란 교수님 편 글을 드뎌 완독했거든요. 마의 구간을 넘어섰다고 뿌듯해 했어요.
두 번째, 세 번째 글을 읽으면서 김예란 교수님 글이 어려웠지만 상당히 좋은 글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재독하면서 갑자기 뭔가 확 와닿는 느낌이 들어 울컥하는 감정도 좀 들었네요ㅋㅋㅋ
근데 바람돌이님의 글도 뭉클합니다.^^

바람돌이 2022-09-26 16:06   좋아요 1 | URL
아이 감사합니다. 칭찬 받으면 또 좋아서 제 입이 막 찢어져요. ^^
김예란씨의 글이 마의 구간은 맞는듯해요. 뒤쪽의 글들은 그렇게 어렵지는 않더라구요. 그런데 어려워도 좋은 글은 역시 좋은글이에요. 나무님의 확 와닿은 것이 뭐였을지 막 궁금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