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지에 대한 국가적 통제는 ‘국민 만들기‘를 목표로, 여성의 재생산 능력을 관리하려는 한 가지 수단이다. 이는 법을 통해 현실화된다.  - P212

여성이 어디에 사는지, 여성의 몸이 ‘국가주의적모성‘이라는 도식을 통해 어떻게 읽히는지에 따라, 임신중지를+ ++ +하거나 하지 않음으로써 국가를 위기에 몰아넣는 존재로 인식됨을 보여 준다.
‘국가주의적 모성‘이라는 발상 · 이데올로기는 ‘좋은 어머니‘
라는 문화적 상상을 통해 합리화된다. 서방 영어권 전반에 걸쳐 ‘좋은 어머니‘는 백인 중산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밖의 어머니들은 미국의 경우 ‘복지의 여왕‘이라 불리는 흑인 여성이라든지 36 ‘크랙 베이비 crack baby‘ 의 어머니, 37 영국의 경우 ‘차브맘chav mum ‘38 처럼 태만하거나 병리적인 이미지가 계속 나돌았다. 오스트레일리아 39. 캐나다 40. 미국에서 선주민 어머니는 병리화된 모성의 예가 되었다. 20세기를 거치며 우생학적 담론이
‘역기능 공동체‘라는 담론으로 합리화되는 동안, 규범적 모성과일탈적 모성 도식은 식민주의적 기획에 얽혀 잔존했다. - P213

배제(국민으로부터 특정 신체를 배제), 재생산(백인 중산층 여성의 재생산), 부인(식민화 내지는 선주민 주권의 부인)은 국가적불안을 관리하는 교차적 기술이다. 국민은 바로 그 구성 자체 때문에 불안을 준다. 국민은 한 번도 ‘만들어진‘ 바 없기에, 이를 ‘다시 만드는‘ 과정이 계속된다. ‘국민만들기‘의 과정은 결코 끝이없다. 그리고 여기서 국가 주권의 취약함이 드러난다. - P217

어떤 것을 ‘너무 많다‘고 하는 바로 그 수량화와 공표의 과정은, 임신중지에 대한 도덕적 공황이 ‘어떤 신체가 국민을 형성해야 하는가‘라는 더 광범위한 국가적 불안과 연계됨을 보여 준다. - P224

정치인들과 광범위한 공동체는 임신중지를 ‘우리‘가 판단해야 하는, 관리할 수있는 사회문제로 프레이밍하면서, 임신중지를 통제할 수 있다는환상을 만들었다. 임신중지에 대해 토론하는 행위는, 임신중지를 고려하는 임신한 여성을, 그들을 걱정하고 평가하고 관리하는 사람들의 통제 대상으로 바꿔 놓는다.  - P236

백인 국가라는 환상과 그 핵심 제도인 ‘가족‘의 안정을 위협하는 다른 인물형이 임신중지 여성과 환유적으로 연결될 때, 공포는 더 강력해진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1970년대에는 동성애자와 이혼 여성이, 2000년대에는 레즈비언어머니, 무슬림, 망명 신청자가 있었다. 임신중 여성은 이들과마찬가지로, 국가의 미래란 어떠해야 한다는 환상 - 행복한 백인 이성애 가족‘이라는 날조된 과거를 향수 어린 눈으로 갈망하는 것-을 위협하는 존재였다. 이처럼 공포를 통해 빚어진 환상적인 미래에서라면, 적어도 백인 여성은 임신중지를 해서는 안되고, 156 이주는 엄격히 통제되어야 한다. 백인 여성은 임신중지대신 국가를 선택해야 하며, 국가와 함께 나란히 ‘행복의 대상인미래의 아이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 P238

각본의 규범에서 멀어져 가는 존재였다. 여성이 모성으로부터독립하는 것은 운동 진영에 따라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비쳤다. 반면 애통함에 잠긴 임신중지 여성은 어느 쪽에서든 올바른 방향으로 여겨졌다. 안티초이스와 프로초이스는 수사의 주된기조를 모성적 여성성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설명했다. 그러므로임신한 여성을 위한 탈출구는 여기 없다. 임신한 여성은 임신중지를 선택할 때조차 모성을 선택한 셈이 되는 것이다. - P243

임신중지를 선택한다는 의미에 들러붙어 그 의미를 바꿔 놓는 감정들은 이미 ‘줄 세워진 ‘ 행동 규범에 여성을 복귀시켜 ‘일직선으로 정렬하는 장치‘다.  - P244

나는 임신중지가 축하받을 일이라고 본다. 임신중지는 의도치 않게 임신을 한 여성이 원하는 것을 얻고, 재생산 가능한 연령대의 여성이 재생산과 분리된 이성애 섹스를 보장받을 수 있는일이다. ‘의도치 않게 임신한 여성‘이라는 위치는 담론적인 동시에 물질적이다. 이 책의 초점은 아니지만, 나는 어떤 포괄적인 ‘재생산 정의‘ 프레임 안에서 임신중지를 쟁취할 필요가 있다는 데뜻을 같이한다. 즉 임신한 여성에게 필요한 사회·경제적 지원체계를 제공해, 임신 중지를 하려는 여성이라면 그저 임신을 원하지않는다는 것 말고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없도록 가능한 한 확실히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 P248

‘임신중지 여성‘이라는 상은 커다란 사회불안을 일으키는 다른 근원과연계되어, 사회체에 대한 위협으로서 구성됐다. ‘페미니스트‘라는 상과 연결될 때는 아이 ·남성·가족에 반하는 존재로, ‘십대엄마‘, ‘복지 의존자‘, ‘성적으로 무책임한 자‘라는 상과 연결될 때는부주의한 ‘실패자‘로, ‘이혼 여성‘, ‘동성애자‘, ‘레즈비언 양육자‘,
‘싱글맘‘과 연결될 때는 핵가족제도에 대한 위협으로 말이다. - P249

임신중지에 자유가 존재하려면, 자율적인(선택하는) 주체에 기반한 자유라는 개념에서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공동체에 살고 있다. 따라서 웬디 브라운이 주장하듯 "개별적 자유라는 건 없다. (・・・) 인간에게 자유란 결국, 언제나 타인과 함께 세계를 만드는 기획이다."" 오늘날 선택의 주체는, 이를테면 여성이 무한한 선택지를 가졌고, 행복의 대상인 아이에게로 향하기 마련이며, 따라서 그저 욕망을 실현하기위해 모성을 선택한다고 하는 식으로 방향이 정해졌다.  - P250

임신중지의 감정적 서사에 대해 대항담론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미안해하지 않는‘ 임신중지 서사가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 예로 유명 페미니스트들의 임신중지 이야기!"
#ShoutYourAbortion 트위터 캠페인, 12 주류 언론의 반응, 13 ‘셋중하나‘ 캠페인‘을 들 수 있다. 여기서는 임신 중지를 안도, 감사함.
심지어 행복과도 연결한다. 이런 서사는 "미안함 없는, 요구대로하는 임신중지"라는 정치적 슬로건과 함께 등장했다. 여성에게임신중지를 대가로 슬픔이나 비탄을 고백하라고 요구하는, 성문화되지 않은 계약에 똑똑히 되갚아 준 것이다. 임신중지를 ‘대놓고 말하라‘는 주문은 임신중지 낙인 그리고 침묵을 명하는 문화적 지령에 대한 응답이자, 임신중지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평범한 일로 다시 프레이밍하려는 시도다.  - P252

임신중지 정치가 임신중지를 하려는 혹은 하고 난 여성의 느낌으로 환원되면, 그 느낌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광범위한 사회·구조·정치적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이를테면 양육에 대한 결정, 또 그런 결정에 대한 다른이들의 평가와 판단을 손쉽게 하거나 감추는 ‘젠더화된 노동분업‘과 ‘계급·인종에 기반한 불평등‘, 임신중지와 피임의 구별이나원치 않은 임신을 막기 위해 여성에게 부여되는 책임 등 역사사회학적 질문, 임신의 조건에 관한 존재론적 질문 등이 있다. - P255

 ‘미안해하지 않는‘ 임신중지 서사는 가치가 있다. 임신중지라는 결정이이로우며 삶을 고취시키는 결정이 될 수 있다. 이때 그 여성은 주체의 자리를 정당하게 부여받는다. 이 주체의 자리를 배제하려는끊임없는 움직임은 임신한 여성이 어머니가 되고 싶지 않아 한다는 발상이 전복적임을 반증한다.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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