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인사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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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아이에게 철이란 이름을 준다.

철학의 철에서 따온 이름이다.

집에 있는 고양이들은 칸트와 갈릴레오이고, 로봇고양이의 이름은 데카르트다.

아이에게 고전을 읽히고 천자문을 가르치며, 음악을 듣고 감동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가르친다.

인류의 오랜 인문적 예술적 성과들이 결국 인간을 인간답게, 그리고 인간의 사회를 오래도록 유지해줄 힘이라고 믿고 있다.


....오직 인간만이 호기심과 욕망, 신념을 가지고 다른 세계를 탐험하고 그들과 교류하려 할 거야. 감정이 있는 존재만이 결정을 내릴 수 있고, 그래야 그 결정들을 바탕으로 발전을 할 수가 있는거야.(226쪽)


그래서 그는 중세 유럽에서 수도원이 인류의 지식들을 보관하는 창고 역할을 했듯이, 인간의 마음을 가진 휴머노이드들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그래서 인간의 감정과 마음을 가진 최첨단 휴머노이드 철이를 만들고 아들로 기른다.


인간의 감정과 마음이란 무엇인가?

이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은 필멸을 아는 존재로서의 인간이다. 

필멸을 알고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절실할 수 있고,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고, 알고자 하는 존재로서의 인간.

그것이 인류의 역사를 발전시켜 왔고, 인간의 영역을 계속 확장시켜온 주된 힘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인간의 대표적인 예로 제시되는 인물이 바로 주인공 철이의 아버지 최박사이다.

휴머노이드 로봇, 기계 로봇, 클론 등이 다수 등장하는 이 소설의 등장인물 중 철이의 아버지 최박사만이 유일한 오리지널 인간이다.

필멸의 존재로서의 그의 염원은 점점 더 완벽한 인공지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세상에 대해 그건 안된다고, 인간을 로봇이 완벽하게 대체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인류의 미래를 위해 인류의 유산을 보존하고자 노력하는 존재다.

그런데 그런 존재가 그 방법으로 제시하는 것이 가장 인간에 가까운 휴머노이드의 제작과 그 휴머노이드를 통한 문화의 전수라는 방법이다.

이 얼마나 완벽한 아이러니인가?

애초에 그의 염원과 그가 선택한 방법이 지극히 모순적이었던 탓에, 그가 자신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파멸하리라는 것은 애초에 자명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가 찾고자 한 것은 아들로서의 철이 아니라, 자신의 연구성과의 결과이자 집합체로서의 철이었고, 지극히 이기적인 그의 고려대상에는 철이의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가장 인간에 가까운, 인간의 감정과 마음을 가진 휴머노이드 철이를 만들었지만, 최박사 스스로가 휴머노이드 철이에게 아들로서 아버지의 애정을 바라는 마음, 또는 그렇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을 느낄 줄 아는 마음, 아버지와가 아니라 스스로 만들었던 소중한 관계들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 이런 것들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으므로 그는 철이를 다시 돌려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인간의 감정과 마음이란 무엇인가?

이 소설의 주요 등장 인물들 중 가장 그 마음과 거리가 먼 등장인물을 따지자면 바로 이 오리지널 진짜 인간인 최박사일듯하다.

오리지널 인간이 아니기에 인간다움에 대해, 또는 그들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논쟁을 벌이고,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아야 하는 선이나 달마, 철이와 다르게 최박사는 자신이 애초에 오리지널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자신에게 중요한 것, 자신이 생각하는 것, 갈구하는 것 그 모든것이 진리이고,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파멸한다. 

죽음이 아니라 파멸하는 것은 마지막의 순간에 그에게 무엇도, 누구도 남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삶을 돌아볼 여지도 남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간다운 감정과 마음이란 결국 존재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복제인간 클론인 선이 어린 민이에게 가지는 애틋함.

휴머노이드 철이 헤어진 선이를 찾고 그녀의 마지막을 지켜주는 마음.

같은 존재들의 마지막 삶의 선택기회를 주고싶어 고군분투하는 달마의 마음.

그런 마음들이 결국 인간다운 감정과 마음일테고, 그것이 인간의 마음이 아니라면 인류에게 희망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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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5-30 17: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요즘 인기 많은거 같아요. 리뷰만 보면 비슷한 소재를 다룬 <클라라와 태양>이 떠오르네요. 표지를 보니 좀 쓸쓸함이 느껴집니다~~

바람돌이 2022-05-30 18:57   좋아요 2 | URL
클라라와 태양을 아직 사놓고도 못읽었는데 곧 읽어야겠어요. 아마 비슷한 주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이 드네요. 이 책 겉표지도 좋았지만 속표지가 더 예뻐서 깜짝 놀랐습니다. 궁금하시면 음..... 500원???? ^^;;

페크pek0501 2022-05-30 22: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벌써 신간 읽으셨네요. 요즘 잘 나가는 작가네요. 여행의 이유, 도 꽤 팔린 것 같은데
작별인사의 세일즈 포인트도 아주 높더라고요. ^^

바람돌이 2022-05-31 16:01   좋아요 1 | URL
김영하 작가는 좋아하는 작가라서 나오자 마자 사두었는데 마음이 좀 싱숭생숭하다보니 이제 읽었네요.
그간의 김영하 작가의 책과는 좀 다르다는 느낌이 들던데 아직 그게 좋은건지 나쁜건지가 좀 헷갈려요. ^^

희선 2022-05-31 01: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람인 최박사가 가장 사람답지 않은 마음을 가졌다니... 사람이기에 그걸 더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닐까 싶어요 사람으로 사람 마음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자기 생각만 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세상이기도 하지만, 그런 사람만 있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2-05-31 16:03   좋아요 1 | URL
사람이 뭔가라고 하면 진짜 아무도 한마디로 정의하진 못할 거 같아요. 어떤 의미에서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저 최박사의 모습이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이 맞지 싶다가도 그래도 세상에는 또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소설로서 탁월한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소설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