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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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우울과 짜증과 체념과 오기를 왔다갔다하며 입에서는 연신 욕을 중얼중얼하는.... 

이거 뭐 약간 미친거 아닌가 하는 상태를 반복합니다. ㅠ.ㅠ

하 정말 앞으로 5년간은 또 어떤 참담하고 어이없는 일들이 반복될것인가를 생각하다가, 그래도 너무 끔찍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희망사항을 반복하기도 하고 그렇네요. 


모든 사람이 나와 생각이 같을 수 없는거야 당연하지만, 그 생각의 차이가 상식선을 벗어나 황당무계한걸 볼 때는 "아 저 인간은 도대체 머리속에 뭐가 들었는지 뒤져보고 싶다거나, 세탁기에 넣고 강력세제로 한 번 빨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제 주변엔 짜증나는 사람도 싫은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저렇게 뇌를 빨아주고싶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사람은 없네요. 그러나 tv를 보거나 신문기사를 읽을 때면 그런 인간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참 이상합니다.

이게 내가 이상한건지, 저들이 이상한 나라에 사는건지 헷갈리기도 하고요.


아 그런데 여기 이 책 이언 매큐언의 <바퀴벌레>가 그 답을 알려주네요.

뇌를 빨아주고 싶은 그들은 사실 인간이 아니라 바퀴벌레랍니다. 

카프카의 잠자는 자고 일어나니 벌레가 되어 있어 절망에 빠지지만, 

이놈의 바퀴벌레 녀석은 자고 일어나니 인간이 되어 있습니다. 

물론 바퀴벌레도 인간이 된것이 좋지는 않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배를 내놓고 등을 바닥에 바짝 붙인 자세도 불편하고, 다리도 4개밖에 없고, 피부는 왜 모두 밖으로 노출되어 있는지.... 아 그리고 입속에 있는 빨간 혀라는 덩어리는 혐오스럽습니다. 

그러나 이 바퀴벌레 녀석은 잠자랑 다르답니다. 

잠자는 왜 자신이 벌레가 되었는지를 모르지만, 이 바퀴벌레 녀석은 인간의 멸망을 위해 그럼으로써 바퀴벌레의 삶을 제대로 편안한 삶으로 돌려놓고싶다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인간의 발에 밟혀죽을 위기를 무수히 넘기는 고난의 행군의 댓가로 인간의 몸을 차지하게 된거거든요.  

그것도 영국의 총리 짐 샘스의 몸에 말이죠.

심지어 이 바퀴벌레는 혼자도 아니예요

그의 충실한 동료들 역시 중요 각료들의 몸에 다 들어가는데 성공했어요. 

한 마리만 빼고..... 그래서 외교부 장관만 인간인거예요.


이 영리한 바퀴벌레들은 그들이 가지게 된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아요.

인간의 역사, 경제, 사회를 거꾸로 돌리기 위한 그럼으로써 인간이 스스로 파멸할 수 있도록 역방향주의라는걸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추진해요.

모든걸 거꾸로 돌리는거죠.

예를 들면 이제 노동자들은 노동을 하면 그 댓가로 기업에 돈을 줘야해요.

그럼 돈은 어디서?

열심히 쇼핑을 하면 됩니다. 쇼핑을 할 때마다 사람들은 돈을 받게 되는거예요.

그 돈을 일을 하고 난 댓가로 지불하면 되는거죠.

말도 안된다고요?

그럼 말이 될 줄 아셨어요? 바퀴벌레잖아요.

여론을 움직이는것 그닥 어렵지 않아요.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욕심들을 적당히 자극하기만 하면 돼요. 먼 미래따위는 눈에 보이지 않잖아요.

지금 당장의 이익, 지금 당장의 고통에만 집중하게 하면 만사 오케이죠.

또한 방해자들,가령 외교부장관같은 인간은 스캔들을 일으켜서 매장하면 되고요.

트위터 같은 새로운 매체는 이런 말도 안되는 선동도 말이 되게 만드는 아주 유용한 수단이거든요.

결국 바퀴벌레들은 모든 목적을 이루고 자신들의 안락한 삶을 품어줄 보금자리로 돌아갑니다.

이게 기다리기만 하면 되어요.

인간들은 자멸할거고, 그럼 이제 바퀴벌레들은 인간이 없는 세상에서 다시 한번 주인공이 되어 번영할테니까요.

아 마지막 장면에서 그들의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길에 한 마리의 바퀴벌레가 안타깝게 죽고 말았네요.

그들은 한마리가 다리 한개씩 6개의 다리를 들어 아주 엄숙하게 동료 바퀴벌레의 시신을 운반합니다. 

많이 보던 장면이기도 하네요. 


지금 여기 한국 땅에는 과연 몇 마리의 바퀴벌레가 인간인듯 행동하고 있을까를 가만히 꼽아보면,

갑자기 우울함이 조금 가십니다.

아 저는 바퀴벌레를 너무 싫어하기 때문에 사실 박멸하고 싶은데, 걔들이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의 멸망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바퀴벌레보다 더 열심히 그것들을 박멸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일명 바퀴벌레 박멸 대작전! 이런건 어떨까요? 뭔가 죄책감없이 근사한 작전이 될것도 같아요. 


작가란 직업은 생각하면 할수록 멋진 직업인듯해요.

이렇게 대놓고 아주 구체적으로, 아주 심하게 욕을 할 수 있잖아요.

나는 상스런 욕설만 주절주절하고 있는데 말이죠.

심지어 작가는 이렇게 욕을 디테일하게 하고 그 댓가로 책의 인세를 받을 수도 있잖아요.

나는 욕하던거 들키면 주변의 눈총과 비웃음밖에 못받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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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2-03-11 08: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바퀴벌레는 두 번의 대멸종을 버티고 살아남았다고 하죠. 앞으로도 인간이 멸종한 이후의 지구에서 잘 살아갈 거라고 하더라구요.

바퀴벌레 입장에서는 자기들이 오랜 세월 잘 살아온 지구에 어느 날부터 인간이란 종이 폭발적으로 불어나 지구를 파괴하는 것이 못 마땅할지도 모르지요. 물론 그들은 인류가 지구를 다 망쳐서 또 다시 대멸종이 와도 살아남을테니 크게 걱정하지 않고 유유자적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공상에 잠시 빠져봅니다.

이런 공상이라도 해야 현실을 잠시 잊겠지요? 물론 잠시 시선을 거둔다고 해결되지는 않지만.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우리는 우리 일을 해야겠지요. 바람돌이님.

바람돌이 2022-03-11 10:11   좋아요 3 | URL
그래 바퀴벌레니까 저런거야라면서 이 책을 읽다가 마지막 장면에 가면 또 다르게 바퀴벌레의 입장에서 소설을 보게 되기도 해요. 그들은 종족으로서의 자신들의 보존에 가장 해악인게 인간이라고 생각하는거잖아요. 사실 그 말이 틀린 말도 아니구요. ㅎㅎ
이 책 읽으면서는 잠시 나 대신 분노해주는 이안 매큐언덕분에 마음을 좀 가라앉힐수 있었달까?
그렇다고 현실이 바뀌는건 아니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각자는 각자의 자리에서 또 자신의 일을 하고 감시의 눈도 번득이고 해야겠지요. 다만 앞으로가 좀 더 피곤해질뿐이겠고요. ㅠ.ㅠ

미미 2022-03-11 11: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제 저는 왜인지 카프카의 변신을 읽었는데 이 책을 보니 반갑네요!
(안그래도 이 책의 초반 묘사가 ‘변신‘을 떠올린다고해서 궁금했어요ㅎㅎ)
바퀴벌레의 음모라면..정말 맞아떨어집니다.ㅎㅎ 저는 자주‘ 인간이 이렇게까지 할 수 없는데‘라고 생각했거든요.
저도 최근 옌롄커를 읽고 작가들의 힘, 은유의 힘을 새삼 주목하게 되었어요. 리뷰를 그렇게 쓰고싶은데 언제쯤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바람돌이 2022-03-13 01:34   좋아요 2 | URL
카프카의 변신의 오마주이긴 한데 이게 벌레가 사람이 되는거다보니 굉장히 코믹하더라구요. ㅎㅎ
제가 읽었던 옌렌커는 굉장히 직설적인 작가구나라는걸 느끼게 했었는데 미미님이 읽으신 책은 은유의 힘을 느끼게 한다니 역시 훌륭한 작가는 뭐든지 가능한거군요. ^^

mini74 2022-03-11 13: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퀴벌레라고 하기엔 ㅠㅠ 평상시엔 너무나 말쩡한 이웃들 ㅠㅠ 선이라 믿는 그들앞에서, 그들 눈엔 제가 바퀴벌레같겠지요. ㅠㅠ 외로운 섬 ㅎㅎ 이 된 것 같아 북플만 들락거립니다 ㅠㅠ

바람돌이 2022-03-13 01:37   좋아요 2 | URL
아 바퀴벌레는 주변의 인물들이 아닙니다. 먼곳에 있지요. 국회나 뭐 이런..... ㅎㅎ
우리 주변의 멀쩡한 이웃들은 가짜뉴스나 정치공작이 바퀴벌레들의 음모인지도 모르고 막 휘둘리는 사람들이랄까? 바퀴벌레들을 공작에 휘들리지 않으려면 두눈을 부릅뜨고 있어야겠지요. 외로운 섬 mini74님에게 위로를 전합니다. 제가 사는 동네는 심각하게 저를 외로운 섬으로 만들어요. ㅠ.ㅠ

희선 2022-03-14 01: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구가 멸망해도 바퀴벌레는 살아 남을 거다 한 말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우주인 모습이 바퀴벌레일 때도 있었던 것 같은데... 바퀴벌레가 사람 안에 들어가서 사람을 멸망시키려 하다니, 무섭지만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소설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했군요 바퀴벌레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텐데... 바퀴벌레도 사람을 보고 그렇게 생각할지...


희선

바람돌이 2022-03-15 08:51   좋아요 2 | URL
영국의 팬데믹을 풍자한 것이고 영국 정치에 대한 이야기가 주내용이다보니 생각만큼 쉽게 책장이 넘어가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영국인들은 여기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실제 인물 누구를 풍자하는지 바로 알아보지 않을까 싶네요. 그래서 영국인이었다면 더 재밋게 읽을 수 있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정치에 대해서도 이렇게 좀 고품질의 풍자를 소원해보기도 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