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의 마녀들 - 한국전쟁과 여성주의 평화운동
김태우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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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쯤  KBS 가 특별기획으로 방영했던 한국전쟁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깜짝 놀란 장면이 있었다.

한국전쟁 시기 북한 사람들의 생활을 다룬 부분이었는데 그야말로 시골에서는 원시적 동굴생활로, 도시에서는 지하 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아래 사진 참고, 모두 KBS특집다큐 한국전쟁 영상에서 캡처한 사진들이다.)

물론 그 전에 미군의 폭격에 의해 북한 전역이 초토화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내가 접했던 사진들은 대부분 폐허가 된 도시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 역시 비참하고 참혹하지만 그런 전쟁의 폐허 모습은 꼭 한국전쟁이 아니라도 1차세계대전 시기 비행기가 전쟁무기로 처음 등장한 이래 모든 전쟁현장에 공통된 모습이었기에 따로이 감흥은 없었다.

하지만 영상속에 재현되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전쟁 시기 북한 <지하 인민시장>의 모습이다. 

지하생활이라고 하기에 단순히 방공호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실제로는 지하에 시장이 섰다는건 주민들의 일상생활이 지하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지하 무기공장의 모습이다. 이곳의 노동력의 대부분은 여성과 아이들이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전쟁터로 나가고 난 이후 북한의 아이들과 여성들은 전쟁물자 생산과 도시 복구에 동원되었다.

이들에게 지하 생활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시골에 사는 이들은 대부분 혈거생활로 돌아갔다. 아래 사진과 같은 동굴이나 땅을 파고 토굴을 만들어 생활한다.





3년의 한국전쟁 기간 중 1951년부터 53년까지는 고지전 기간이었다.

이 기간동안 전투는 38선 근방을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진행되면서, 북쪽이 항공전력이 바닥나면서 남한은 그나마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북한은 3년 내내 폭격에 시달려야 했다.

1951년 이렇게 폭탄이 비처럼 쏟아지는 북한지역의 실태 조사를 위해 용감하게 나선 여성들이 있었다.

UN산하 국제민주여성연맹(이하 국제여맹)의 초청에 응한 한국전쟁 진상 조사위원 - 18개국 21명의 여성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남북아메리카의 다양한 지역에서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자유주의자 등 다양한 출신과 다양한 성향을 가진 여성들이었다.

국제여맹은 당시 전세계 여성의 삶을 조사하는 진상조사단을 각 대륙에 파견하는 활동을 하고 있었고, 북한 지역에 조사단 파견은 그 활동의 일환이었다. 또한 국제여맹은 평화, 여성의 권리, 반파시즘, 반식민주의, 반인종주의를 내세워 기존 여성운동의 주요 흐름이나 당대의 대표적 국제여성단체들에 비해 상당히 진보적인 이념을 내세우고 있었다. 


이렇게 역사 속에 묻혀있던 단체와 그 단체에 의한 한국전쟁기 북한지역의 조사결과를 발굴해 냈다는 점에 이 책의 첫번째 가치가 드러난다. 

얼마나 묻혀있었는지 역사를 전공한 나조차도 이 단체에 대해 처음 들어봤다. 

중국까지 이동한 이 여성들은 북한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모두 만일의 경우 가족에게 보낼 유서를 미리 쓴다.

실제로 이후 이들이 이동하는 경로를 따라가보면 낮에는 이동이 거의 불가능하고, 밤에 그것도 차량의 전조등을 켜지 않은 상태에서 천천히 도로도 제대로 나있지 않은길을 이동하는 위험천만한 여행이다.

또한 시시때때로 공습경보에 따라 방공호나 지하토굴로 대피하고, 조사과정 중에 폭격의 현장을 목격하기도 한다.

무엇이 그녀들을 그곳으로 이끌었던 간에 이렇게 목숨걸고 조사한 기록이라면 당연히 그 중요성이 인정되고 그들의 활동이 역사의 한자락에 기록되어야 마땅할텐데 지금까지 당사국인 우리나라에서 조차도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는 데 역사적 책임과 미안함을 느끼게 하였다. 

그들의 조사결과는 <우리는 고발한다>라는 소책자로 7개국어로 번역되어 전세계에서 동시에 출간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책자는 철저하게 무시당한다.

소책자의 내용은 어쩔 수 없이 미국의 폭격이 북한의 주민들의 삶을 얼마나 철저하게 파괴하고 있는가에 주안점을 둘 수 밖에 없었고, 이는 당시 미국의 이해관계,미국의 눈치를 보던 유럽의 상황들에 절대 유리하지 않은 보고서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각국으로 돌아간 이후 오히려 소련의 사주를 받은 스파이, 국익을 그르치는 매국노 취급을 받으며 기존의 자신의 활동기반까지 빼앗기는 불이익을 당한다. 그 중에는 자신의 조국을 떠나 망명을 떠나야했던 사람까지 있었다.

그럼에도 21명의 여성들 중 누구도 이 보고서의 내용을 평생동안 부정하지 않았으며, 불이익을 감수했다.

왜 그녀들이 일신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지키고자 했는지는 그녀들의 여정을 따라가보면 이해된다. 폭격으로 삶의 기반을 모두 잃은 사람들, 전쟁 중 성폭행으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의 손을 맞잡고 같이 울면서 보고 들었던 것들과 양심을 바꿀 수는 없었던 이들의 정직한 마음에 해답이 있을 것이다. 

정의로운 마음과 말과 행동이 어떻게 지켜지는지에 대해서도 이들을 통해 생각해보게 된다.


대중역사서를 표방하는 이 책은 서술에 있어 약간 독특한 방식을 선택한다.

조사위원으로 파견되었던 여성 중 그나마 기록이 많이 남아있는 영국인 모니카 펠턴이라는 여성의 입을 빌려 그녀의 생각과 행적을 따라가는 방법을 취한 것이다.

이 책의 두번째 강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모니카 팰턴은 영국인 사민주의자이며 당시 영국 노동당 관료로서 영국 최초의 뉴타운 개발사업 총재직을 맡고 있던 여성이다. 그녀는 반전평화운동은 커녕 2차대전기의 '애국주의적 활동'을 통해 집권여당의 대표적 여성 리더로 활동하고 있던 여성이었다. 그런 그녀가 북한을 다녀오고 보고서를 제출하고 난 이후 반역죄로 사형되어야 한다는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부정하지 않고 신념을 지킨다.

이 책은 바로 이 여성, 조사단 내에서 냉정한 객관적 시선을 유지하기 위해 조사단 내부의 각국 인물들과도 싸우고, 북한의 의도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북한이 보여주는 증인이 아니라 자신이 보고싶고 듣고 싶은 인물을 선정해 증언을 채취하고자 노력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선정했다.

이런 전략은 사실 문학에서는 흔한 전략이고, 츠바이크의 역사서술은 극단적으로 등장인물에 몰입해 1인칭 서술로 이끌어나가는 특징을 보이는데 우리나라 대중 역사서에서는 아직 본격적으로 시도되지 않은 참신한 방법이다. 

그래서 이 책은 딱딱하고 학술적인 온갖 자료들을 모니카 팰턴의 시선으로 따라감으로써 자료에 생기와 현장성을 부여한다.

그러면서도 츠바이크처럼 과도한 몰입으로 인해 역사적 신빙성을 의심하지 않도록, 냉정한 역사학자의 시선을 유지한다. 

그 균형을 맞추는 것은 사실상 쉽지 않은데 이 책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앞으로 이 한국현대사학자가 또 어떤 대중역사서를 들고 나올지 기대되는 대목이다.


저자 소개에 보면 저자는 자신을 미래 한반도 거주민들의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역사학의 내용과 방법론을 고민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그의 저작 <폭격>과 이 책 <냉전의 마녀들> 모두 한국현대사에서는 탁월한 성취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고, 자료도 없는 역사의 진실을 찾아 발굴하고 쓰는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저자의 다짐이 책을 읽다보면 절로 수긍이 가지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한국전쟁기 북한 주민의 피해를 지금에 와서 우리가 되새겨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책을 읽으며 보게 되는 한국전쟁기 북한 주민들의 삶은 전쟁의 끔찍함 뿐만 아니라, 인간이 생존을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만들었다. 

또한 2차 대전중의 드레스덴 공습이나 도쿄 대공습처럼 단발성의 공습이 아니라 무려 3년간 끊임없이 진행되었던 폭격이란 것의 실체와 공포를 절감하게 만들었다.

현재 북한의 체제를 보면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 너무 많다.

저들은 왜 저렇게 김일성에 열광하는가? 1인 독재체제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왜 제대로 조직되지 않는 것인가?

심지어 현대사회에서 그것이 세습되고 있는 것을 당연시 하는게 어떻게 가능할까?


하지만 책을 보다 보면서 깨달아 지는 것이 있었다.

공포! 집단적 공포와  트라우마!

전쟁과 폭격의 기억은 아마도 북한 주민들의 뼛속 깊은 곳까지 트라우마로 각인되었을 것이다.

그 공포의 기억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세대가 몇번 바뀌는 것 외에는 없을 정도의 지독한 공포!

그것이 현재의 북한을 만든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

남한 역시 전쟁 트라우마로 인한 상처, 불합리한 생각들, 비논리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들을 무수히 가지고 있지만 그 강도에 있어서 북한이 훨씬 더 했던데서 체제의 차이가 극명하게 벌어진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다.

그전쟁의 트라우마를 다시 살피는 것, 그 시기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여성들의 용기와 의지를 되새기는 것. 이 모든 것은 결국 이 땅에서 다시는 전쟁이 없어지기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에 다름 아니다. 


** 이 책 정말 좋은데 읽은 분이 생각보다 적다. 나라도 적극적으로 추천해서 제발 좀 많이 팔리고 읽어달라고 제목을 자극적으로 뽑았는데 어찌 될지는 모르겠다. 다만 진짜 이 책 강력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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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1-08-02 21:3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사실 6.25전쟁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사실에 부끄럽습니다. 얼마전 방구석 1열에서 고지전에 대한 얘기를 들었는데 전쟁의 대부분이 고지전이었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어요. 정말 책이라도 많이 읽어 실상을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바람돌이 2021-08-03 00:22   좋아요 1 | URL
알아야 할게 얼마나 많은데 한국전쟁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부끄러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관심사도 다 다르잖아요. 페넬로페님의 문학작품들 소개로 저의 정신세계가 나날이 풍요로워지고 있는걸요. ^^ 한국사 관련 서적들이 어쨌든 저는 직업으로 걸치고 있는 관계로 대부분이 어느정도는 알고 있는 사실들을 확인하고 새롭게 보는거였는데 이 책은 정말 깜깜 모르고 있던 일이었어요. 그래서 더 저자의 노력이 얼마나 지난했을지 느껴졌다고 할까요? 이런 저자의 노력이 많은 독자들을 통해 보답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간절히 했습니다. ^^

mini74 2021-08-02 22:0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이 분 책 폭격도 저는 참 좋았어요. 전쟁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냉전과 매카시즘 열풍으로 참석한 분들 대다수가 저평가되고 잊혀진 점이 속상했어요 바람돌이님의 강력한 바람이 느껴집니다 ㅎㅎㅎ 리뷰짱 ! 입니다 *^^*

바람돌이 2021-08-03 00:24   좋아요 2 | URL
폭격은 사놓고 서문만 읽고 분량에 눌려서 미뤄둔 책이에요. 대신에 저자가 직접 나와서 소개했던 팟캐스트 방송을 들었었는데 굉장히 생각할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이번 여름에는 폭격도 읽을 예정입니다. ^^ 이 책에 나온 조사단 위원들에 대해 한국의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그 역사적 평가가 다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간절하게 하게 되었습니다.

붕붕툐툐 2021-08-02 23:1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이 이리 강력 추천하시면 당연히 읽어봐야지용~ 순위 앞으로 쭉쭉 올립니당^^

바람돌이 2021-08-03 00:24   좋아요 0 | URL
앗 1명 뽐뿌에 성공!!! 툐툐님 미리 감사해요. ^^

새파랑 2021-08-02 23:5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역사 전공자시군요. 그래서인지 내용정리도 완벽한거 같아요. 사진 까지 보니 충격적이긴 하네요~!!

바람돌이 2021-08-03 00:26   좋아요 1 | URL
사진은 제가 수업용으로 가지고 있는 영상들을 캡처한거에요. 내용정리는 일부러 그다지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이 책을 읽어볼 분들을 위해서요. 부디 많이 많이 읽어주시면 하는 바램입니다. 한국전쟁을 통해 평화의 의미뿐만 아니라 여성의 관점에서도 생각해볼 부분이 많은 책이었습니다. ^^

희선 2021-08-03 0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생각하니 한국전쟁 때 사람이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 별로 못 해 본 것 같기도 하네요 남쪽보다 북쪽이 더 살기 어려웠군요 땅속에서 살았다니... 공습이 그렇게 오랫동안 끊이지 않았다니 그때 사람은 그때 일 잊지 못하겠습니다 여자와 아이들은 더 힘들었겠지요 그런 모습을 보고 글을 쓴 사람이 있었군요 그것도 여성이라니... 그런 게 아주 사라지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1-08-03 01:45   좋아요 1 | URL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근현대사를 보다 보면 정말 그 때 안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전쟁이나 공습의 기억은 그걸 당했던 사람만이 아니라 후대에 그걸 전해듣고 자란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의 트라우마를 주는 것 같아요. 아마도 세대가 여러번 교체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