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아마도 - 김연수 여행 산문집
김연수 지음 / 컬처그라퍼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자유는 남들이 바라보는 세계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한다 많은 사람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있을 나는 더욱더 자유로워진다그런 점에서 나는 모든 사람이 되고 싶지만그게 가능할 리가 없다그래서 세상에는 이토록 많은 책이있는  아닐까원한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라도   있다 자유를 만끽하고 싶다. - P75

 

책을 읽는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제일 쉽게 대답할 수 있는건 재밌으니까요 정도?

하지만 뭔가 더 멋있는 말을 하고싶은 욕망은 분명히 있다.

가끔 잘난체 해도 될 듯싶은 대화에서는 한 번씩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 나는

"책 특히 소설을 읽으면 내가 살아보지 못한 인물, 살아보지 못한 삶을 한번 살아보는 느낌이 들어요. 나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세상을 한번 바라보고 나면 내가 뭔가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된듯한 느낌이 들거든요. 그 느낌이 너무 좋아 자꾸 책을 찾는 것 같아요"라는 말을 몇번은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괜찮은 사람이 된 느낌을 좀 더 확장하려면 인문학이나 예술쪽 책들도 좀 더 읽어줘야 할 것 같고요라는 대답까지는 한번도 한적이 없고 그냥 속으로만 생각하고 말았다.

 

김연수 작가의 여행에세이집인 이 책에서 작가가 책에 대해 하는 저 말을 읽으면서 "아 정말 내가 생각한 것과 똑같은데 어쩜 저렇게 멋있고 정확하게 표현했지"라고 감탄하면서 역시 작가는 작가구나라고 생각한다.

 

여행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여행의 목적은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세계를 바꾸는  있다는 그러므로 여행자란 움직이는 사람이아니라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이다바뀐 풍경은 낯설다새롭고 또 신기하다한국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돌아가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상대적인 이야기다나를 둘러싼 풍경만 낯설고 새로운 게 아니라  풍경 속의  역시 낯설고 새로운 존재 이방인이다- P255

 

낯선 풍경과 낯선 사람이 된 나를 바라보면서 새롭고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여행의 즐거움은 책이 주는 즐거움과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나와 대부분의 사람들은 쳇바퀴처럼 출근하고 퇴근하고 집을 치우고 밥을 하고 매일 매일 되풀이 되는 일상에 갇혀지낸다.

매일 매일 새롭고 스펙터클한 일이 터지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말이다.

또한 일상에서 매일이 새롭고 스펙터클하다면 아 그건 그것대로 커다란 불행이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책과 여행은 안전하게 내가 매일이 새롭고 스펙터클해질 수 있는 길이었구나, 그래서 내가 이 2가지를 그토록 좋아하고 열심이었던거구나.

역시 책은 다른 세상을 보는 것 뿐만이 아니라 나의 일상을 새롭게 보게 하고 더 소중하게 여기는 힘도 있었구나 하면서 감탄하게 된다.

 

김연수작가는 5년동안 론리 플래닛에 여행에 관한 58편의 짧은 글을 연재했고, 그 결과가 이 책이다.

각 글의 길이는 3-4페이지 정도로 짧고, 여행이 주제라는걸 제외하면 딱히 공통적인 점이 없어 심심할 때마다 부담없이 들고 읽기에 좋다.

하지만 그런만큼 다양한 상황과 다양한 생각을 품고 있어 누가 읽어도 아 맞아 나도 같은 생각이야라는 문장 몇개 쯤은 얻어낼 수 있을 테고, 또는 그런 상황과 관련해서 나도 글을 한번쯤 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그러니 일개 서커스단으로서는 코끼리의 먹이를 구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것을 운반하기에도 상당히 버거웠을 것같다하루키 소설에서 코끼리는 점점 줄어들다가 마침내 사라지는 것처럼 그려지는데먹이 문제를 생각하면 어쩐지 코끼리에게는 그런소멸 방식이 어울리는 듯하다.- P111

 

김연수 작가가 어릴 적 살던 동네에 온 서커스단에서 본 코끼리 얘기를 풀어놓고 하루키 소설을 이야기 하는 장면에서 나는 엉뚱하게도 조선 태종 때 느닷없이 우리나라에 왔던 코끼리를 생각한다. 일본에서 선물로 보내졌던 코끼리는 처음에는 모두가 신기하게 보고 했지만 어쩌다가 사람을 두명이나 밟아 죽이게 되고 결국 유배형에 처해진다.

전라도로 유배를 간 코끼리는 곧 그 지방의 큰 골칫거리가 되는데 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너무 많이 먹어서였다.

지방의 없는 살림에 코끼리가 먹어대는 걸 감당할 수 없자 지방관은 중앙에 서신을 보내 제발 코끼리 좀 어떻게 해달라고 사정사정하게 되고 불쌍한 코끼리는 이 고을 저 고을을 떠돌게 되는데 그 코끼리의 마지막이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다.

김연수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이 코끼리에 대해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소설을 쓸까? 에세이를 쓸까 잠시 고민했지만....

에휴~~ 내 주제에 무슨... 리뷰나 쓰지 뭐....

작가가 되고 안되고는 글감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또한 원래 글을 잘 쓰느냐 못쓰느냐라는 것도 아니고,

가장 중요한건 쓸 의지가 있는가 없는가. 이게 가장 중요한 거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아 나는 쓰는 사람이 아니라 읽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누군가 저 조선의 코끼리 좀 살려주면 안될까라는 생각도 막 하게 된다.

 

이런 부산 말고 다른 부산은 없을까그러자 부산을  아는사람이 가야시장 맞은편으로 가서 186 버스를 타보라고 말했다. 다음  나는 186 버스그것도 운전수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건 내가 알지 못하던 부산으로 떠나는 여행의 시작이었다.
피난지 부산의 삶과 애환을 담은 노래만 있으면 최고였는데그러니 다음에는 노래까지 준비해서 다시 타봐야겠다.-P103

 

또 하나 이건 것.

여행이 굳이 멀리 떠나는 것만은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를 다시 보고, 나를 다시 보는 것도 여행이다.

김연수 작가의 186번버스 부산 여행에 대한 짧은 글을 읽으면서는 그 186번 버스의 노선이 눈에 확 펼쳐졌다.

부산의 산복도로 곳곳을 휘감고 저 멀리 영도 태종대까지 가는 버스

좁고 가파른 길을 돌고 돌면서 여전히 너저분하고 어질러져있는 가난한 동네를 누비다가 어느 순간 멀리 부산항의 확 트인 바다를 보여주는 그 노선은 사실 부산의 속살같은 이야기들을 많이도 품고 있는 길이다.

오래 전 가끔 그 버스를 탈 때면 나는 '아 이런 곳도 사람이 사는구나'라며 더불어 그 동네들에 살고 있는 몇몇 친구들을 떠올리곤 했었다.

어느 여름 날 그 버스가 지나는 길에 살던 친구가 연락을 했었지.

집에 좀 와달라고...

혼자 자취하던 그 친구의 집이 아니라 방은 전날 내린 비로 천정의 벽지가 불룩하게 내려앉아 있었고, 벽을 타고 내린 물로 방은 엉망이었다.

그래도 젊었던 우리는 낄낄 대며 천정 벽지에 구멍을 뚫어 몇 바께스(양동이)나 되는 물을 밖으로 퍼날랐고, 청소를 하고 짐을 꺼내고 하면서도 그게 그렇게 비참하거나 하지 않았다.

우리는 계속 낄낄대고 있었고, 일을 마치고는 라면이었는지 짜장면이었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뭔가를 또 맛있게 먹었었던 것 같다.

이제는 지나치게 현대화되어버린 자갈치 시장에서는 느끼기 힘든 사람들의 오래된 묵은 그런 이야기가 아직도 그 길에는 남아있을 것이다.

그 길에 얽혀있는 이야기들을 써봤으면 좋겠다.

나 말고 김연수 작가가.... ㅠ.ㅠ

 

이 책을 읽으면서 에세이라는 장르를 다시 생각한다.

많은 종류의 글이 있지만 에세이라는 이 장르는 그만의 방법으로 나와 다른 사람, 다른 세상을 만나게 해주는 거였구나.

작가의 글이 내게 와 나의 마음이 되는 순간, 바로 그 순간 때문에 에세이를 읽는구나

에세이를 읽는 동안 나는 작가의 마음에 들어가기도 하고,

그로 인해 잠시지만 내 글을 써보고 싶어지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래서 진짜 작가가 되기도 할테고,

역시 책은 나를 행복하게 하는구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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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2-19 03: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김연수 작가님도 써주시고, 바람돌이님도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바람돌이 2021-02-26 00:40   좋아요 0 | URL
하하하 그럼 김연수 작가님이 안쓰면 제가 쓰는걸로요. 비교라도 되면 다행인데 사실 비교도 말이 안되잖아요. ㅎㅎ

겨울호랑이 2021-02-19 04: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여행의 목적이 나를 둘러싼 세계를 바꾼다는 말이 참 와 닿습니다. 자신을 잃지 않고 바라볼 수 있어야한다는 의미로도 생각되네요. ^^:)

바람돌이 2021-02-26 00:43   좋아요 1 | URL
저도 그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나의 자리를 바꿔보는 것, 그래서 뭔가 또 다른 시선으로 세상이나 사람을 바라보는 뭐 그런 말이겠죠? ^^ 책을 읽는 것도 여행을 가는 것도 결국 얻는 것들은 비슷한 것 같아요. ^^

scott 2021-02-19 1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님 말씀에 동감!!
186번 버스의 노선~부산의 산복도로 곳곳을 휘감고 저 멀리 영도 태종대까지 가는 버스~
광고에 휘황찬란하게 나오는 유럽 풍경이 아닌!!
부산,뿌산의 186번 버스, 바람돌이님에 그친구!
에피소드가 더 더 감동적임
오늘에 이페이퍼는 나와 다른 사람들 바람돌이님 김연수님의 여행지 에피소드로 만나게 되는 !
제임스 설터 옹이 쓰지 않으면 모든게 사라져버린다고
오로지 글로 기록된것 만이 진짜 ...모든건 꿈일뿐....

바람돌이 2021-02-26 00:45   좋아요 1 | URL
scott님 말씀 감사해요. ^^ 아 186번 버스 노선은 그냥 타봐야 돼요. 진짜 말로 설명하기 힘든 굉장히 다양한 감흥을 가져다 주거든요. 근데 이 버스 노선 무지 길어요. 진짜 날잡아서 맘먹고 타야 되는데요. ㅎㅎ
제임스 설터 옹이 그랬군요. 맞는 말 같아요. 이 글 쓰다가 아주 오래전 연락이 끊기고 지금은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는 그 친구 생각을 다시 살려냈기도 하고, 그 덕분에 전 그 친구를 잊지 않겠죠? ^^

희선 2021-02-26 00: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조선 시대에 그런 코끼리가 있었군요 살던 곳을 떠나 모르는 곳으로 오게 되고 이리저리 가게 되다니... 그 코끼리는 나중에 어떻게 됐을지... 멀리 가지 않고 가까운 곳을 돌아보는 것도 여행이겠지요 어떤 사람은 밖에 나가는 게 다 여행이다 하더군요 그런 마음으로 다니면 즐거울 듯도 합니다 저는 다른 데 가는 거 안 좋아하지만... 실제로 안 가고 책으로 가죠


희선

바람돌이 2021-02-26 00:50   좋아요 1 | URL
아마도 동남아쪽에서 일본으로 선물을 보낸 듯한데 그걸 또 일본이 다시 조선으로 선물을 보낸거죠. 일본도 아마 코끼리 먹이 주는게 너무 부담스러워서 보낸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뭔가 새로운걸 발견하는 것, 새로운 감정을 느끼는 것은 모두 여행일수도 있다는 생각도 드네요. 심지어 집밖을 안나서도요. 내방 여행하는 법이란 책도 있잖아요. ^^ 그러니 책을 통한 여행은 더 넓고 무한한 여행이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

scott 2021-03-05 2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이달의 당선 !
추카~*추카~*
바람돌이님의 추억의 여행기도 하나씩 풀어 놓셔야 할것 같아요 ㅋㅋ


바람돌이 2021-03-05 23:19   좋아요 1 | URL
scott님도 축하드려요. 그것도 두편이나.... 알라딘 적립금은 들어오기만 하면 또 더 보태서 무슨 책을 사나 고민하기 시작한다죠. ㅎㅎ

모나리자 2021-03-05 1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바람돌이님~ 모두 대단하시네요~ 주말도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바람돌이 2021-03-05 23:2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모나리자님도 행복한 주말 되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