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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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바 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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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stle 2015-04-18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어제 이거 샀어. 기대 중

김토끼 2015-04-18 20:00   좋아요 0 | URL
응 전 빌려 읽었는데 좋았어요 ㅎ
 
유브 갓 메일 (워너 가정의 달 행사)
워너브라더스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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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텔레비전 EBS에서 방영하는 영화를 보았다. 1998<You've got Mail>. 어릴 때라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이 때 맥 라이언의 인기가 대단했던 것 같다. 이름도 귀에 쏙 들어왔고, 숏 컷의 금발 머리가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배우였다. 최근에 성형으로 어쩐지 피폐해졌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지만 그렇게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어린 내가 기억하는 맥 라이언은 그렇게 구체적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 영화를 보니 다들 왜 그렇게 혼란에 휩싸였는지 알 것 같았다. 오드리 햅번이 더 사랑받았던 것은 자기다움을 유지하면서 늙어갔기 때문인데, 맥 라이언은 자기다움을 유지할 기회를 잃었다. 그와 동시에 맥 라이언의 상큼한 젊은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은, 그들이 사랑했던 얼굴을 영영 잃게 된 것이다. 다행인 것은 이 영화 <유브 갓 메일>이 무려 16년 정도 지났더라도 전혀 퇴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그리하여 영화를 보는 동안은 아무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뻔한 멜로이면서도 촘촘하다. 영화 속 케슬린 켈리가 좋아하는 <오만과 편견>의 구조를 영화의 플롯으로 그대로 가지고 왔지만, 그것이 진부하지 않다(말하자면 톰 행크스는 다아시/조 폭스 역을, 맥 라이언은 엘리자베스/케슬린 켈리 역이다). 사실 이 영화는 여러 가지가 혼재되어 있다. 오만과 편견의 구조도 그렇고, 서점의 자본화, 케슬린 켈리와 같이 글을 쓰는 여성,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의 오래된 관계 등. 영화 안의 소재는 충분히 굵직해질 수 있는 것들이지만, 영화는 이들의 균형을 잘 맞춰나간다. 그리고 이러한 여러 소재의 관계망 속에서 발전하는 원수지간의 로맨스에는 핍진성이 있다(핍진성에 대한 자세한 의미는 김연수 <소설가의 일>에서). 개연성이 충분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사랑에 빠질 법하다는 느낌이 이미 충분히 전제되어 있다. 그리하여 당연히 그들은 사랑에 빠지고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신기한 것은 영화를 보고 난 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로맨스가 아니라, 케슬린 켈리가 운영한 길모퉁이 서점이라는 점이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계산만 하는 서점 직원이 아니라(그러니까 캐셔가 아니라), 자신의 경험에 입각해 책 설명이 가능한 베테랑들이고, 어떤 날에는 아이들을 모아놓고 책을 읽어주기도 한다(고깔모자를 쓰고). 항상 책 주변을 떠돌고 있으며, 약간 괴짜인 것 같지만, 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따뜻한 느낌에 매료되고 만다. 성탄절에는 함께 피아노치며 노래를 부르고, 서로의 상상력을 주고받으며 농담을 던지는 센스까지(, 나는 이 장면이 좋았다. 켈리가 메일을 보내던 남자가 결국 연쇄 살인마였던 거라며 신문을 내미는 장면). 이런 서점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내내 하고 있었다. 뜬금없는 영화평이지만, 일종의 유토피아로서의 서점이 여기에는 있는 것 같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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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까지 21일
로렌 스카파리아 감독, 키이라 나이틀리 외 출연 / 비디오여행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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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이 되어서야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세상의 끝이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억눌러 온 욕망이 '끝'이라는 상황에서 비상식적으로 용인된다. 영화 초반부 주인공 도지(스티브 카렐)의 주변인물들이 그렇다. 맛이 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점차 더 맛이 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도지의 아내는 도망가고, 친구의 아내가 그에게 키스하고(어떤 감정선도 없이), 도시에는 폭동이 일어나 밤 중에 유리창이 깨진다. 그 와중에 도지는 좀처럼 흐트러지지 않는다. 마치 종말을 믿지 않는 사람처럼 자신의 상식적 삶을 이어가지만, 이 영화의 끝에 다다르면 도지라는 인물이야말로 종말을 철저히 믿었던 사람이란 결론에 이른다(그리고 그는 '세상의 끝'에 이르러 '진정한 것'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반면 도지 주변 인물들이 비상식적 행위에 빠져드는 까닭은 종말을 부정하거나 그러한 사실을 자신의 내면에서 제거하기 위해서, 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주인공 도지(스티브 카렐)의 매력은 그 비교에서 기인한다. 그가 종말을 21일(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지만) 앞두고 만난 페니(키이라 나이틀리)는 도지와 전혀 다른 성격으로 보인다. 가볍고 자유롭고 감정적이다. 하지만 그녀는 세상의 종말을 앞두고 헤어진 남자를 집안에 끌어들여 같이 잠을 청하는 것조차 역겨워한다.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헤어진 남자는 그녀의 집에서 버티고, 그녀는 집에서 나와 가족들 품으로 가지 못한 스스로를 한탄하며 울다가 도지를 만나게 된다. 만남에서도 그렇지만, 그녀의 횡설수설하는 매력 속에 초지일관 진정성을 외치는 기류가 있다는 것이 그나마 이 페니 캐릭터의 생명력을 유지시켜준다(사실 더 탄탄한 플롯이었다면 폭발적이었을 캐릭터지만, 전체적으로 영화가 느슨한 구조이기 때문에 페니의 매력은 기대만큼 충족되지 않는다. 키이라 나이틀리가 잘 살렸다고 말할 수 밖에).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은 한 사람은 옛사랑을 찾기 위해, 한 사람은 가족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난다. 결국 이 영화는 재난영화이면서 로드무비가 되고, 멜로로 끝이 난다. 소행성 충돌로 인한 지구 멸망이라는 과격한 설정에 대한 반전을 기대하게 하는 영화가 아니라는 건 다행이다. 애초에 영화는 이렇게 봐주기를 원하는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은 어떻게 성장하는가, 혹은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사랑을 찾는가. 그리고 영화의 끝자락에서 발견하는 지점은 다소 진부하지만 새겨둘만하다.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페니의 질문에, 도지가 말한다. 지구의 종말이 올 때까지 여기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그리고 끊임없이 페니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누군가를 한없이 수용하는 귀, 그것은 멋진 결말이라고 할 만 하다(영화의 지지부진한 흐름을 떠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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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4-12-28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토끼님 글을 읽으니 이 영화 찾아서 보고싶어지네요~~~.

김토끼 2014-12-28 13:22   좋아요 0 | URL
앗 방금 댓글을 썼는데 지워졌군요 ㅠ 저야말로 비비아롬모리님의 방대한 독서 리스트에서 보고 싶은 것이 많아요 ㅎ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하루키와 황정은, 이건 분명 '네' 취향이다, 라는 이야기가 들리는 것 같다. 말하자면 확실히 이 둘은 '좀 쉽게' 읽히는 문장과 고집스럽고 부드럽게 독자를 납득시키는 스타일, 때론 대중적이며, 문학적으로 무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당당하게 이건 '내 취향'이라고 말할만 한 작가들이다. 그리고 타인에게도 추천하기 좋고, 추천하면서도 이 작가들 분명 '좋아하게 될 거야'라고 말할 수 있다. 작품의 퀄리티를 떠나 본격적으로 취향의 문제로 들어왔을 때도 이들은 결코 추천자를 민망하게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들은 '보편적'이면서도 '선별적'인, 아이러니를 충족시킨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말이 많았다. 좋다 아니다(나쁘다 까지는 아니지만). 전작에 비해 좀 아니었지 싶어, 라는 둥. 하루키에 대해 순차적인 독서가 불가능한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가령 십 년 만에 <먼 북소리>를 다시 꺼내 읽고, <상실의 시대>는 이십 여 페이지를 훑어본 뒤 못 읽겠어 덮어버리고,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을 그나마 순서대로 읽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결국 기억에서 뒤죽박죽 섞여버린 채 이 세 작품에 대해서는 제대로 뭐라 얘기하지도 못하고, 도서관에서 <더 스크랩> <무라카미 라디오>를 발견해 몇 번이고 대출해 읽었지만(정작 구매로 이어지지 않은, 그래서 절판되었을 때, 왜 안 샀지 하다가 재출간 된 책으로 일단 서가에 꽂아넣었던) 독자로서  <색채가 없는...>이 책은 그간의 독서에 비교하면 특별히 좋은 건 없었지만, 그렇다고 나쁜 것도 없었다. 하지만 <1Q84> <해변의 카프카> <태엽 감는 새> 등등 하루키 장편은 잘 읽지 않아서인지 '하루키의 장편'을 모처럼 읽었다는 마음, 드디어 하루키 월드에 입성한 기분이 들었다.

 

벌써 예순 다섯쯤 되었을 하루키를 생각하면, 그가 소설을 시작할 무렵 창조한 인물들: 무기력한 남성과 두 가지 인격으로 나뉘는 여성들이 등장한다는 점, 스무 살 무렵의 일들, 그 즈음에서 나타나는 주인공(혹은 화자)의 변화에 대한 욕구(분열 욕구)가 연장선상에 놓여, 작품의 큰 틀을 구축한다는 점이 '한결'같다. 화자(남성)와 여성 등장인물의 관계 뿐아니라, 화자(남성)과 다른 남자 사이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삶의 형태를 관찰'하는 태도-그 태도를 불러일으키는 다른 남자에 대한 동경- 역시 반복되고 있다. <토니 타키타니>에서 세밀화를 그리던 남성은 역을 설계하는 다자키 쓰쿠루가 된 격이고, 이번 소설에 등장한 '하이다'의 경우 <여자 없는 남자들>의 단편 <예스터데이>에 출연한 '기타루'가 된 격이다(솔직히 말해 <여자없는 남자들>단편은 하나 읽었다). 화자 자체는 타인으로부터 신뢰받는 인물이지만 어쩐지 밋밋하고 재미없는 존재, 그러나 그의 주변에 갑자기 등장하여 삶에 밀착한 남자들은 그와 달리 유쾌한 존재들이다. 다시 말해 여성들의 두 인격만큼이나 남성들의 두 인격도 존재하고 있다. 그러니까 주인공이 느끼는 분열에 대한 욕구, 두 여자 사이에서 오고가는 기분을 짐작 못하는 건 아니다. 결과적으로 하루키는 두 인격을 창조하는 데 탁월하다. 이 '두 인격'을 탐미하는 것이 하루키의 책을 집어들게 하는 요소 중 하나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보다 심층적인 독서경험을 원한다면 빨간 책방 39, 40회 참조)

 

한때, 정말 한때, 황정은 소설을 읽지 않으려 했다. 까닭은 여백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아니, 여백보다 글자가 더 많잖아, 하더라도 다른 작가들에 비하면 한없이 텅 비어있는 작가 같았다. 당시 나는 빡빡한 소설이 좋았다. 천운영, 조경란, 하성란 같은 여성작가들. '삶이란 이런 것'하고 보란 듯이 보여주는 여성 작가들이 좋았고, 물론 지금도 좋아하지만, 황정은 <파씨의 입문>을 읽고 난 뒤 스스로에게 욕이 나올 뻔 했다. '뒌장, 이걸 이제서야 보다니'(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보고 같은 후회를 했다). <백의 그림자>도 안 읽고. 이 미천한 독서. 그나저나 이 단편집에서 <대니 드 비토>와 <낙하하다>는 꼭 봐야한다. 누군가가 아직 안 읽었다면 꼭 봐야 한다. 하지만 소설집의 마지막 단편인 <파씨의 입문>은 심약한 분이라면 자제하시는 게. 끝에 다섯 장을 남겨두고 볼 수 없었다. <파씨의 입문>을 그렇게 끝내고 동시에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아는 이에게 빌렸다. 나도 말이지, 일단 계속해보겠다는 기분, 황정은 월드에도 입성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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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쯔 2015-01-05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하루키 책을 집어드는가-에 대한 흥미로운 관점이로군요. 하루키 장편 중에서는 전 <해변의 카프카>를 가장 좋아해요. <1Q84>도 완성도가 높은 편이고 <댄스댄스댄스>는 이제 와서 보면 좀 옛날 책 같아요. ^^
저랑 황정은 입문기가 비슷하시네요!

김토끼 2015-01-05 09:52   좋아요 0 | URL
저는 셋 다 안 읽었습니다. 이제 부지런히 읽어야겠어요. 당분간은 다른 작가들을 좀 읽어보고 시작하려고요. 해변의 카프카부터^^
 

그래도 하루키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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