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브 갓 메일 (워너 가정의 달 행사)
워너브라더스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지난 일요일 텔레비전 EBS에서 방영하는 영화를 보았다. 1998<You've got Mail>. 어릴 때라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이 때 맥 라이언의 인기가 대단했던 것 같다. 이름도 귀에 쏙 들어왔고, 숏 컷의 금발 머리가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배우였다. 최근에 성형으로 어쩐지 피폐해졌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지만 그렇게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어린 내가 기억하는 맥 라이언은 그렇게 구체적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 영화를 보니 다들 왜 그렇게 혼란에 휩싸였는지 알 것 같았다. 오드리 햅번이 더 사랑받았던 것은 자기다움을 유지하면서 늙어갔기 때문인데, 맥 라이언은 자기다움을 유지할 기회를 잃었다. 그와 동시에 맥 라이언의 상큼한 젊은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은, 그들이 사랑했던 얼굴을 영영 잃게 된 것이다. 다행인 것은 이 영화 <유브 갓 메일>이 무려 16년 정도 지났더라도 전혀 퇴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그리하여 영화를 보는 동안은 아무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뻔한 멜로이면서도 촘촘하다. 영화 속 케슬린 켈리가 좋아하는 <오만과 편견>의 구조를 영화의 플롯으로 그대로 가지고 왔지만, 그것이 진부하지 않다(말하자면 톰 행크스는 다아시/조 폭스 역을, 맥 라이언은 엘리자베스/케슬린 켈리 역이다). 사실 이 영화는 여러 가지가 혼재되어 있다. 오만과 편견의 구조도 그렇고, 서점의 자본화, 케슬린 켈리와 같이 글을 쓰는 여성,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의 오래된 관계 등. 영화 안의 소재는 충분히 굵직해질 수 있는 것들이지만, 영화는 이들의 균형을 잘 맞춰나간다. 그리고 이러한 여러 소재의 관계망 속에서 발전하는 원수지간의 로맨스에는 핍진성이 있다(핍진성에 대한 자세한 의미는 김연수 <소설가의 일>에서). 개연성이 충분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사랑에 빠질 법하다는 느낌이 이미 충분히 전제되어 있다. 그리하여 당연히 그들은 사랑에 빠지고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신기한 것은 영화를 보고 난 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로맨스가 아니라, 케슬린 켈리가 운영한 길모퉁이 서점이라는 점이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계산만 하는 서점 직원이 아니라(그러니까 캐셔가 아니라), 자신의 경험에 입각해 책 설명이 가능한 베테랑들이고, 어떤 날에는 아이들을 모아놓고 책을 읽어주기도 한다(고깔모자를 쓰고). 항상 책 주변을 떠돌고 있으며, 약간 괴짜인 것 같지만, 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따뜻한 느낌에 매료되고 만다. 성탄절에는 함께 피아노치며 노래를 부르고, 서로의 상상력을 주고받으며 농담을 던지는 센스까지(, 나는 이 장면이 좋았다. 켈리가 메일을 보내던 남자가 결국 연쇄 살인마였던 거라며 신문을 내미는 장면). 이런 서점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내내 하고 있었다. 뜬금없는 영화평이지만, 일종의 유토피아로서의 서점이 여기에는 있는 것 같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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