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를 체현하는 육체 여성학 강의 3
쥬디스 버틀러 지음, 김윤상 옮김 / 인간사랑 / 200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저는 분명히 공개적인 소통의 자리에서 문제제기해주시면 이 알라딘 리뷰게시판에서, 어떤 부분이 번역이 잘못되었는지 꼼꼼히 달아드리겠다고 답메일드렸었습니다.

그런데도 김윤상님은 여기에 문제제기하시지 않고, 제 개인메일로 연락하고, 알라딘 책임자를 통해서 전화하게끔 하면서 리뷰를 내리겠다는 말을 하게 하셨습니다.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공개적인 공간에서 질문하시면 왜 제가 저런 비판을 쓰게 되었는지 꼼꼼하게 달아드리겠다구요. 역자분 글의 마지막에 달린 제 얘기는, 그러니까 공개적으로 해야된다는 얘기였지 역자분이 질문하시는데도 제가 절대 답 안 한다는 얘기였습니까? 여기, 알라딘 리뷰 게시판에서 공개적으로 토론하자고 제가 확실하게 말씀드렸잖습니까. 그걸 거부하신 건 역자분이시구요.

그런데 그때에는 공개적으로 일처리 안 하시고, 뒤를 통해 저를 개인적으로 괴롭히는 행동을 하시더니, 사람들이 많이 답글 달게 되니까 이제서야 여기다 글을 쓰시는 겁니까?

게다가 알라딘 책임자분은 제 글이 인신모독일 수 있어서 지우겠다는 말씀은, 저에게 절대 안 하셨습니다. 역자로부터 항의가 들어온 글은 문제의 소지가 있으니 지울 수 있다는 약관이 알라딘에 있다, 이런 말씀만 하셨지요. 제가 몇차례나 알라딘 책임자 분께, 그 분이 말씀하시는 것이 알라딘의 판단인지 역자분이 말씀하신 것인지, 어떤 표현을 쓰셨는지 확실하게 질문했었는데, 그 긴 통화 동안 한번도 인신모독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더이상 리뷰 안 쓴다고 적었을 때도 아무 말 없더니, 왜 몇 주나 지난 지금에 와서 다른 사람들의 답글이 달리니까, 더이상 리뷰 안 쓴다는 사람을 붙잡고 무슨 때늦은 질문을 하시는 겁니까.

역자분이 제게 보내신 메일과 제 답메일을 다 공개할까요? 통화기록을 원하신다면, 알라딘 책임자분과 통화한 내용까지도 다 올려드리도록 하지요.

정신분석 용어들을 잘못 번역했다는 말의 근거를 알고 싶으십니까? 오히려 제가 역자께 질문드리고 싶은 부분입니다.

예를 들어서, 역자분은 trauma를 다 징후로 번역해놓으셨는데, 이 개념은 저 책 7장에서 실재계에 대한 지젝의 논의들을 설명하는 와중에 나오는 개념입니다. 지젝에게 있어서 실재계란 야훼의 타오르는 불(덤불에 불붙어 타오르는 성서의 장면), 갑자기 덮치는 엄청난 파도, 영화 매트릭스의 충격적인 'real world' 등의 예시로 종종 설명됩니다. 즉 지젝이 실재계의 급작스러움과 충격, 공포 등을 표현하기 위해서 trauma(t소위 정신적 충격이나 외상)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징후라고 하면, 병의 조짐이라든가 드러날 듯 드러나지 않는 것들과 관련이 있지, 갑작스럽게 사람을 덮쳐서 무력하게 만드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같은 trauma의 상황과는 거리가 좀 있는 용어입니다. 때문에 trauma를 징후라고 번역하는 것은 지젝의 실재계 논의에 대한 이해가 빠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다른 예로, displace나 substitute를 왜 다 대체로 번역하셨는지도 의문입니다. 전자의 용어는 자리바꿈을 의미하는 전치, 전위 등등의 번역어로 주로 번역되고 있고, 후자는 라깡의 은유 환유 개념에서 환유의 속성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하는 것으로 압니다만, 그냥 한국어로 번역할 때 두 개를 모두 대체로 번역해놓으시면 이게 어떤 뜻으로 쓰인 것인지 독자들은 자세히 모르게 되지 않습니까. foreclosure도 역자분은 법률용어라고 하셨지만, 저 개념은 라깡이 사용한 것으로, 한국라깡학회 등에서도 이 개념을 "폐제"라고 번역할지 다른 용어로 번역할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번역상의 합의가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 용어를 다른 분들은 어떻게 번역하시는지, 궁금했던 것이기도 하구요.

또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articulate는 왜 정교화로 번역하셨습니까? 역자분께서는 헤겔식 개념으로 이 용어를 번역하신 거라고 말씀하셨지만, 후에 구조주의로 오면서 이 용어는 구조주의를 잘 나타내는 대표용어가 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절합'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의미가 맞다고 저를 비롯한 저희 교수님들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 용어는 여러 요소들이 하나로 모여서 기능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 용어이며, 단순합산이 아니라, 팔의 여러 뼈들이 관절과 이어져 합체하면서 유기적으로 전체 팔의 모양과 기능을 이루는 것처럼, 요소들의 합체가 새로운 형태와 새로운 기능으로 만들어짐을 뜻하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 그냥 정교화라고 번역해놓으시면, 버틀러가 중요한 주장을 할 때마다 계속해서 쓰는 저 용어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걱정하는 부분들이 이것입니다. 이 책에는 정신분석과 구조주의, 철학, 여성학 등등등 온갖 복잡한 이론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기에, 어떤 용어가 원래 헤겔의 의미였다 하더라도 60년대 이후에 구조주의에서 새롭게 전유된 용어라든가, 라깡이 다시 개발한 용어라든가 등등의 특수한 역사가 있어서 용어의 의미가 바뀌었다던가 좀더 세심하게 번역되어야할 의미들이 추가되었다던가 하는 일들이 생길 수 있으며, 그러한 배경지식들이 있어야만 버틀러의 이 책에 대한 번역이 좀더 명확해지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저도 철학의 역사와 개념들의 역사를 통째로 꿰고 있는 건 아니니 모르는 부분들이 많지만, "이게 법률용어니까 이런 뜻이다"라고 답하시는 건, 그 용어가 정신분석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고려하지 않으셨다는 말씀으로 들어도 되는 겁니까..

또다른 예로, 왜 sex와 sexuality는 둘다 '성'으로 번역해놓으셨습니까? 대부분의 여성학 책들이 거의 언제나 서문 들어가면서 섹슈얼리티가 무엇인지, 자신은 뭐라고 정의하는지에 대해서 꼼꼼하게 적어놓고, 여성학자로서 번역하는 선생님들도 거의 대부분 섹슈얼리티를 뭐라고 번역해놓았는지에 대해 앞쪽에 적어놓을만큼, 이 두 개념은 서로 의미도 역사도 사용방법도 다를 뿐만 아니라 그 차이에 대한 연구들까지 있을 정도로, 이 개념들은 각자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게다가 버틀러는 Gender Trouble 1장에서 '실체의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을 개진하는 와중에, 젠더를 섹스, 욕망과 인과론적으로 묶어버리고 한 세트로 취급하는 것은 강제적 이성애 제도를 공고히 하는 정치적 목적에 봉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합니다. 한 섹스가 한 섹슈얼리티와 막바로 연결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동성애나 기타 다른 성적 정체성들을 인식불가능하게 만들고 담론 밖으로 배제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버틀러는 보고 있기 때문에, 섹스와 섹슈얼리티를 동일한 번역어로 묶어서, 한글본만 읽었을 때는 이게 어느 쪽을 뜻하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만드신다면, 그건 버틀러의 생각과는 반대되는 것이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여성주의이론과 관련된 용어들의 번역에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건, 그 용어들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거기에 담긴 정치적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성학에서는 어떤 용어 하나를 두고 그토록 많은 논의들을 할 수밖에 없어지는 것이지요. female과 woman을 구분해서 사용하고 the feminine과 femininity를 구분해서 사용하는 것도, 여성학자가 어떤 주장을 하기 위해서 이 개념들을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다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보봐르는 female과 woman을 섹스와 젠더-주어진 것과 문화적인 것이라는 대당으로 사용되는 경우에-의 상황으로 구분해서 사용합니다. 즉 가부장적인 체제에 대해 논하면서 female이 woman으로 become되는 것을 주장하지요. 이것이 보봐르의 그 유명한 명제,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만들어진다"는 말과 연결되는 것이구요) 이리가라이에게서도 the feminine과 femininity는, 팰러스로고스 중심적인 의미화 경제 밖에 있느냐 안에 있느냐에 따라서 달리 사용되는 개념입니다. 특히나 잠재적인 것으로서의 여성적인 것을 대안으로 말하기 위해서 이리가라이는 전자의 용어를 사용하지요. 하지만 역자분의 번역에서는 이 the feminine이 "여성적인 것"으로 잘 번역되다가  한 부분에서 "여성성"으로 번역되는 곳이 있습니다. 특히 이 구절은 버틀러가 이리가라이의 여성적인 것을 나름대로 도식화하면서 이 도식이 맞는 건 아니다, 뭐 이런 얘기를 할 때 등장하는데(제가 지금 책이 없어서 정확한 페이지 수를 말씀 못 드립니다) 이 부분을 '여성성'으로 번역하시면, 버틀러가 이리가라이를 오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까지 불러올 수 있습니다. 그만큼 번역어가 좀더 일관성 있게, 꼼꼼히 검토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많아진 것이지요.

그 외에도, recourse(의지, 의뢰)는 왜 전부 다 return의 번역어인 '회귀'로 번역해놓으셨습니까? 보통 전자의 용어는 버틀러의 책에서 "기존 이론들이 너무 본질이라는 것에 의존해서 논의를 개진했는데 내가 보기엔 아니다" 뭐 이런 얘기들을 할 때 쓰였습니다. 물론 '회귀'라는 용어도, 되돌아간다는 의미이니, "기존 이론들이 너무 본질이라는 것으로 자꾸 되돌아가서..."이렇게 읽는다면 한글로는 의미가 맞습니다. 하지만 '회귀'가 정신분석의 중요한 개념인 return의 번역어로 널리 쓰이고 있는 상황에서(억압된 것의 회귀, 라는 유명한 명제가 있지 않습니까), 한글번역본만 봤을 때 '회귀'라고 적혀 있으면 독자들이 읽으면서 return과 헷갈릴 거라고는 생각 안 하셨습니까? 이 책에서는 정신분석의 주요개념어들이 잔뜩 나오는 만큼, 그 개념들을 뭐라고 번역할 것인지를 확실하게 잡아주시지 않으면, 읽으면서 여기 나온 이 단어가 아까 쓰인 그 단어랑 같은 것인가 혼란스러워하면서 독해를 제대로 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번역을 좀더 정확하게 해주시길 바라게 되는 것이구요.

위에서 예를 든 것처럼 용어의 번역에 대해서 제가 역자분과 의견이 다른 경우도 있고, 역자분께서 번역하시면서 같은 용어임에도 불구하고 번역을 자꾸만 바꾸신 부분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데리다의 supplement 개념은 왜 1장에선 '보충'으로 번역하셨다가 7장에선 '추기'로 번역하셨습니까? 푸코의 'regulatory ideal개념은 같은 쳅터 내에서도 '규제적 이상'이랬다가 '조절적 이상'이랬다가 번역이 바뀌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냥 형용사들이라면 문맥에 따라 번역을 달리 하면서 보다 정확하게 의미를 파악하게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겠지만, 위에 예를 든 것처럼 어떤 학자의 주요개념으로 등장하는 용어들은 번역이 같아야만 1장에 있는 단어 4장에서 다시 만나도, 아 이게 1장에서 나왔던 그 개념이구나 하고 알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특히 중요한 각주들의 번역, 많이 틀렸습니다. 지금 제가 책이 없어서 몇 페이지 어디인지 정확히 지적하기도 어려운데다 지적할 부분이 매우 많기 때문에 다 적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power is materializing"을 "권력이 물질화된다"로 번역해놓아서 내용을 완전 반대로 만드는 경우도 몇개 나온다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저 문장은 푸코의 권력과 물질성 개념에 대해 설명하는 각주(제 기억이 맞다면 1장)에서 나온 것으로(그 각주는 처음 문장에서부터 번역상의 문제가 좀 있습니다), 권력이 계속해서 물질화시키고 있으며, 물질성을 생산[production]한다, 따라서 물질은 권력의 효과이다, 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인데, 역자분은 저 ing를 수동형으로 번역해놓고 production은 '산물'로 번역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권력은 물질성의 산물이고 물질화된다"고 오역하셨습니다. 이는 바로 뒤문장에 이어지는 "물질은 권력의 효과"라는 말과 정면으로 모순될 뿐만 아니라, 푸코의 주장을 완전히 뒤집어버린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생각나는 것만 적어봤지만, 이 외에도 굉장히 많습니다. 여기 적은 것만 가지고 제가 문제시한 것은 ㄷ아닙니다.

그래도 저는 처음 리뷰를 올린 다음에, 역자분이 제 이메일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무슨 말씀을 하실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역자분이 보내신 메일을 받은 뒤 제가 답메일을 보내드릴 때만 해도, 공개적으로 토론하면 제가 생각하고 있는 걸 다 말씀드리겠다고 적었었고, 이렇게 해서 제가 모르는 부분도 번역에 대해서 물어볼 수 있다면, 정말 많은 공부가 되겠구나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곤 역자분이 언제 알라딘에 글을 올려주실까 기다렸었더랬죠. 하지만 역자분은 글을 올리는 대신 알라딘 책임자에게 전화를 걸게 하셔서 "문제가 해결이 잘 안 됐다"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그 말을 들었을 때 굉장히 놀랐었습니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셨길래 공개적으로는 절대 논쟁 안 하고 메일로만 계속 이상한 말씀들을 하신 걸까요.

그리고 왜, 이제야 와서, 이런 글을 쓰게 만드시는 걸까요.

저는 제가 드리는 질문들은 오히려 역자분이 답해야할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단어가 어떤 식으로 번역되었는지는, 번역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답할 것이 아니라, 책을 낸 책임을 지고, 역자분이 "나는 이런 의미로 이 개념을, 이 문장을 번역했고 이것은 버틀러-원저자-의 이론에서 어떤 맥락과 연결된다"고 답을 하셔야할 문제입니다.

이것을 감정싸움으로 몰고 가지 마시고, 정말 학문을 하시는 분이라면 이러지 마십시오.제가 맨처음 리뷰에서 감정적으로 격앙된 표현을 쓴 것에 대해서만 역자분은 집중하고 계시지만, 그 감정표현은 "버틀러에 대한 맹신"도 아니고 "오역본 일반에 대한 근원적 불쾌감"(이건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도 아닙니다. 아니, 굳이 저 둘 중의 하나를 고르라면 후자겠지요. 저는 철저한 공부 없이 나오는 번역본들이 비싼값에 팔리고, 다른 번역을 내고 싶어도 판권이 그쪽에 있으니 다른 사람들은 문제제기도 못하고, 번역에 대해 문제제기하면 곧바로 역자가 은밀하게 항의해서 처리하려고 하는 이런 행태들에 다 불쾌감을 느낍니다. 정말로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잘못된 번역본에 대해서 누구나 다 감정적인 실망과 분노를 경험합니다. 그것이 단지 "이성적인" 언어로 "모든 감정을 배제한 채" "결과만 딱 짚어서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주면서" "마지막엔 역자분의 실수가 아니라는 말로 마무리하면서" "그저 아쉬움을 조금 표현했을 뿐이라는" 식의 리뷰 형태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를 이렇게 크게 만드시는 겁니까? 잘못된 번역을 보고 사람들이 화를 내는 건, 역자를 인신모독하는 것이 아니라 역자가 그 번역에 대해서 지고 있었어야할 책임의 문제, 그리고 이러한 잘못된 번역 때문에 오독을 불러일으키는 상황들, 한 학자의 이론에 한걸음 다가서기보다 후퇴하게 만드는 문제들 때문에 화를 내는 것 아니겠습니까.  당장 이 사이트 화면에서, 이 책 아래에 뭐라고 적혀 있는지 보세요. "이 책은 대학교재로 채택되었다"라고 적혀있지 않습니까. 대학교재로 쓰인다면, 지금 이순간에도 한국의 수많은 대학에서 버틀러에 대해 공부하려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이 잘못된 번역본을 가지고 버틀러의 이론을 더 난해하게 뒤틀면서 고심하고 있을 거란 얘기입니다. 이에 대한 책임은 안 느끼십니까?

아니, 사실 여기다 더 쓸 것도 없습니다.

저는 역자분께 실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이제 와서 이거 번역 붙잡고 다시 싸울 생각 없습니다. 그때 올린 글 대로, 차라리 논문이든 학회든 학계의 루트를 뚫는 방향을 모색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적어도 내년까지는 루트가 뚫리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학문적인 비판을 원하신다면, 제가 여기에 질문드린 것과 두번째 리뷰에서 적은 제목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시는 것이 보다 생산적인 토론을 위한 길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안 하더라도 이 책을 읽은 다른 분들이 또 질문하고 문제제기하시고 그러시겠지요. 저는 여기에 도 무슨 말 썼다가 또 휘말려들어갈까봐 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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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Bordeux > 역자입니다.
의미를 체현하는 육체 여성학 강의 3
쥬디스 버틀러 지음, 김윤상 옮김 / 인간사랑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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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안녕하세요!

저는 버틀러 책'의미를 체현하는 육체' 역자 김윤상입니다.

우선 carrot님의 리뷰들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몇 가지 오해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지난 1월말 우연히 알라딘에 들렀다가 carrot이라는 아이디의 마이리뷰를 보았습니다. 우선 장문의 리뷰를 쓰실 만큼 제 번역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신 것에 대해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러나 저는 carrot님의 리뷰를 보고 무력함을 느껴야했습니다. 항상 그렇듯이 타인에 대한 비판(내지는 비난)의 내용을 갖고 있는 인터넷상의 글의 일방성 앞에서 전전긍긍해야하는 저자 내지는 역자의 안타까움 때문입니다.

우선 carrot님의 과장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저는 책 리뷰가 갖는 기본적 성격을 벗어나 감정적 표현들 내지는 지나친 추측을 담고 있는 carrot님의 첫 리뷰에 대해 알라딘 측에 전화를 하였고 알라딘 담당자분께서는 회의결과 리뷰내용이 인신모독과 관련된 부분을 포함하기에 삭제결정을 내리고 carrot님께 전화를 드렸다고 합니다. 제 북리뷰의 기본적 성격을 벗어났다고 여기는 부분은 오역에 대한 지적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표현들 때문입니다:

“... 드디어 도서관에 반납된 그 책을 빌려서 영어원본과 대조해보던 날밤, 나는 혈압 올라서 쓰러지는 줄 알았다.”, “성의없음과 불성실과 건망증의 극치인 번역으로 이루어진 책이었음이 영원본과의 대조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에”, “이 책은 안 좋은 번역본이 가지고 있는 모든 단점들을 다 가지고 있다:”, “번역하다가 너무너무 귀찮다 싶으면 마지막 문장 하나 휙 빼먹어버리는 식으로”, “기본적인 문법들까지 틀려가면서, 문장의 순서와 인과관계를 뒤죽박죽으로 만들면서 번역료를 받는다는 것은 정말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이 든다”, “번역자도 문장의 주어를 모르게 되고 마니까 그냥, 주어를 빼버린 것이다 하는 말밖에 할 수 없는 부분들이 계속 걸린다..”.

둘째로, carrot님께서 제가 이메일로 ‘협박’했다고 말하시는 부분은 carrot님께서 “기본적인 문법들까지 틀려가면서, 문장의 순서와 인과관계를 뒤죽박죽으로 만들면서 번역료를 받는다는 것은 정말 잘못된 일”이라고 표현하신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명예훼손의 감정을 느꼈다고 말한 것과 관계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을 ‘협박’이라고 표현하신다면 지나친 비약이겠지요.     

셋째로 저는 독일에서 10년간 공부했기에 제 번역이 틀릴 수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단지 번역료만을 받기위해 아무렇게나 번역하려고 하지는 않는다는 이유로 그래도 독일에서 학문적 진지함을 배우려했다고 말했을 뿐입니다.

다음으로는 제 번역상의 문제점에 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carrot님의 지적대로 normativity를 materiality로 번역해 놓은 부분처럼 몇몇 단어들이 아마도 빨리 번역하다보니 다른 단어들로 대체되어 번역된 부분이 있고, 전체를 다시 보지는 않았지만 빠뜨린 문장들도 두어개 있더군요. 이에 대해서는 차후에 시간을 갖고 다시 검토수정하려고 합니다.

둘째, carrot님의 지적, 즉 “정신분석용어들의 번역을 보면, 하나같이 다 문제가 많다. articulation을 단순히 '정교화'로 번역해버린다던가, trauma를 '외상'이라는 널리 쓰는 번역은 왜 놔두고 '징후'로 번역해놓으면서 '징후'로 번역되는 다른 단어들과 혼동되도록 만들어버린다던가, foreclosure를 '권리박탈'로 번역한다던가, 치환 전치 대체 등등의 용어들을 마구 섞는다든가 등등”인 것 같은데, carrot님은 위의 단어들을 어떻게 번역해야한다고 생각하시며, 국내에서 통상 사용되는 번역어들에 대해 carrot님이 갖는 신뢰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articulation은 본래 ‘정교하게 발음하는 것’이라는 뜻을 가지며 철학에서는(특히 헤겔에 있어서는) 개념의 모멘트들이 세세히 구분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우리말로 ‘정교화’라고 번역하는 데에는 아무 무리가 없다고 여겨집니다. trauma를 국내에서 ‘외상’으로 번역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래 trauma의 뜻이 ‘무의식 속에서 오랫동안 작용하고 있는 강한 정신적 쇼크’이기에 계속해서 작용하는 정신적 상처의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해 ‘징후’라는 단어로 번역했습니다. foreclosure는 법률용어로 권리박탈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다시 말해 carrot님은 (만일 carrot님 고유의 번역어가 있으시다면) 정신분석학 및 버틀러가 기대는 철학들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가지고 계시기에 저의 번역에 대한 비판과 저의 '철학 및 페미니즘에 대한 무지'를 주장하시나요? 분명 carrot님은 영한사전에 나온말로 번역하지 않았다고, 혹은 기존의 번역서들에서 사용된 용어들로 번역하지 않았다고 저의 번역을 비판하시는 것은 아니시겠죠?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하겠습니다.

저의 메일에 대해 carrot님께서도 답신을 주셨습니다. 저는 이 글에서나 carrot님께 보낸 메일에서나 개인적으로 격앙된 감정적 표현들이 동반되지 않은 그야말로 본래적인 의미에서의 ‘비판적인 리뷰’에 대한 아쉬움을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carrot님께서는 만일 carrot님께서 조목조목 오역을 지적해주면 제가 소리 소문 없이 carrot님의 지적들만을 고스란히 고쳐 새로운 번역을 낼지도 모른다고 하시면서 그럴 생각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황당하면서도 어찌 말씀을 드려야할지 모르는 난감한 상황입니다.

그리고 세 개의 리뷰들에서 알 수 있듯이 버틀러에 대한 철저한 맹신 때문인지 오역본 일반에 대한 근원적 불쾌감 때문인지 격앙된 감정이 뒤섞인 어조가 지배적입니다. 저에게 보낸  메일에서 carrot님은 저를 “스타 번역가”의 위치에 놓고 carrot님 자신을 “일개 독자”의 위치에 놓으시면서 마치 학자들의 권위와 그에 대해 커다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일반 대중의 구도를 인위적으로 만드셨는데, 사실 저는 “스타 번역가”가 아니며, 독자를 좌지우지할 권위나 권력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자신을 ‘일개 대중’으로 위치시키면 자유로이 말을 할 수 있다는 식의 생각은 지양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보낸 메일이 carrot님께 불쾌감을 주었다면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김윤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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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pin 2007-02-23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조심스레 말하는데 carrot님의 표현이 조금 심한 것 같기도 하네요. 위의 글만 보자면.
그리고 그 trauma, 이 글을 보고 알게 되었는데, 제가 아는 한에서는 그래도 외상이 맞지 않을까요? 제가 읽은 정신분석책에선 징후란 말을 한 두번 밖에 본 기억이 없네요.
아니면 나아가선 그냥 저같은 일반 독자들에게는 차라리 기표,기의 뭐 이런 표현보단 그냥 말 그대로 시니피앙, 시니피에라고 하는게 차라리 혼란이 없을 듯 합니다. 이런 논쟁도 없으리라 생각되구요. 어차피 이런 종류의 책들은 보는 사람들만 보니 굳이 번역하지 않고, 역자주로 뜻을 설명만 해준다면 별다른 문제는 없을거라고 생각합니다.

Chopin 2007-02-23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하튼 저도 이제부턴 좀 더 조심해서 글을 써야겠네여
 

성형열풍은 언론에서 한번은 짚고넘어갈 만한 문제긴 한데,

이 문제를 활자매체에서 영상매체로의 이행의 산물로 보는 시각은 참 희한하다.

진중권 씨는 최근 들어서 이런 매체결정론을 전파하곤 하는데,

그럼 활자매체에서 영상매체로의 이행은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일인가??

아니면 독일 같은 데서도 성형 열풍이 일어나고 있나??

이런 식의 허술하기 짝이 없는 매체 결정론이 그럴 듯하게 먹히는 이유가 뭘까??  

짧은 신문기사, 인용된 인터뷰의 한 대목이긴 하지만,

마지막 결론도 참 진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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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성형열풍 ‘끝없는 욕망’…더 젊게 더 예쁘게
입력: 2007년 02월 21일 18:27:08
 
더 젊고 예뻐지려는 욕망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최근 우리사회의 성형수술 열풍은 도를 넘어섰다는 평가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만연해 있고 거리낌도 없어졌다. 사회적인 무감각 속에 자연스러운 현상으로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근 발표된 경희대 엄현신씨의 박사학위논문 ‘얼굴에 대한 미의식과 미용성형수술에 대한 인식’은 이런 사회 분위기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논문에 따르면 20대 여성 2명 중 1명은 이미 성형수술을 경험했다.

전체여성 3명 중 2명은 성형수술을 고려하고 있다. 외모에 대한 관심은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편견도 깨지고 있다. 지난해 광고기획사 대홍기획이 15~39세 남성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전체 응답자의 86%가 ‘외모는 남성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수단’이라고 응답했다.

대한민국 성형열풍은 예쁘고 잘 생긴 사람을 선호하는 사회적인 풍토에서 촉발됐다. 날씬하고 예쁜 사람이 능력과 무관하게 더 높은 사회적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 상식으로 통한다. 몸의 상품화, 자본화가 성형수술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최근에는 남이 아닌 자기 만족을 위해 성형을 선택하는 경향도 늘어나면서 성형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몇년 전까지만해도 성형은 수치스럽고 감춰야 할 비밀이라는 생각이 주를 이뤘지만 이제는 유명연예인들조차 공공연히 자신의 성형사실을 밝힌다.

성형열풍의 확산은 활자매체시대에서 영상매체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당연한 결과물이라는 분석도 있다. 과거 활자매체시대에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글과 정신이었다면 영상매체시대에는 외모가 우선한다. 외모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외모에 대한 보완으로 이어졌다. ‘인공’이 판치는 시대에 드디어 자기 몸까지도 ‘인공’으로 만드는 시대가 온 것이다.

중앙대 진중권 겸임교수(44)는 “지금까지 인간은 주변환경을 모두 인공적으로 바꿔왔다. 이제 남은 것은 자기 자신의 몸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문화 자체가 유미주의로 흘러가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신체를 아름답게 디자인하려는 욕구가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여성의 활발한 사회참여와 경제적 독립도 성형열풍의 한 요인으로 꼽힌다. 최근 거리에는 내과와 외과가 아닌 성형외과와 미용센터 간판을 찾아보기가 더 쉬워졌다.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미용산업의 성장은 곧 여성의 사회·경제적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시선의 주체였던 남성이 보이는 대상으로 이동하면서 ‘몸의 상품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것도 성형열풍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성형열풍은 도를 지나치면서 사회병리학적인 문제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형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은 어떻든 좋다는 심리가 만연될 수 있다. 넘지 말아야 할 금도에 대한 의식이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몸의 역사’의 저자인 인제대 강신익 교수(의학)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들어오면서 그때까지 억눌린 욕망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온 것이 몸에 대한 관심”이라며 “하지만 지금의 현상은 너무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치면서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몸의 물신화는 개성 상실과 정체성의 혼란으로 이어질 우려도 크다.

우리 사회의 쏠림현상이 심한 것도 획일화된 가치를 쫓아가는 성형열풍과 무관치 않다.

진중권 교수는 “예뻐지고 싶은 욕망은 자연스럽지만 가치가 획일화되면 개성이 상실되고 공허해질 수 있다”며 “자기 개인에 대한 가치를 내적으로도 정립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홍진수·이호준기자 soo43@kyunghyang.com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2211833071&code=940100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2211827041&code=940100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2211826541&code=94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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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때리다 2007-02-22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제대 강신익 교수(의학)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들어오면서 그때까지 억눌린 욕망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온 것이 몸에 대한 관심”이라며] - 성형 열풍이 정말 포스트모더니즘 때문이가요? 들뢰즈라는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일텐데요.

자꾸때리다 2007-02-22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 개인에 대한 가치를 내적으로도 정립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 보면 이런 건 불가능하다고 하던데...

2007-02-22 0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07-02-22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자꾸 때리다님 ...
속삭이신 님/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ㅎㅎ

2007-02-22 1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7-02-22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아나운서들이 너무 예뻐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ㅋ

Chopin 2007-02-22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근데 아직도 포스트모더니즘?
우리 시대에 이제 포스트모더니즘의 흔적은 있어도 정신같은게 남아있나여?
제 생각엔 여성은 남성(남성도 마찬가지지만)에게 매력적으로 보여야 하는데, 여성은 배란을 은폐해서 남성을 생리적으로 유혹할 수 없기 때문에, 그나마 인간 인지력의 70정도를 차지하는 시각적인 요소에 많이 투자하려고 한 결과 이렇게 된 것 같네여~ 물론 그런 걸 가능하게 한 응용과학의 힘도 대단하구요.
뭐 제 생각에는 비판적인 입장이라기보다 그냥 성형열풍이 생길 수 있는 자연스러운 환경이 조성되어서 그런거라고 생각합니다만. 뭐 필연이라고 해야겠져.
그렇다고 이런 사람들을 유아기적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개성화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혹은 주체성이 확립되지 못해 자신의 원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신경증적인 사람들이라고 할 순 없잖아요? ㅋㅋ

2007-02-22 2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07-02-23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번째로 속삭이신 님/ ㅎㅎㅎ 성형의 원인을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그나저나 계속 "호"자는 유지하고 계시네요. ㅋㅋ
테츠님/ 저는 뉴스를 별로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요즘 아나운서들이 예뻐졌나요? 그럼 앞으로 뉴스를 열심히 봐야겠네요. ㅋ
쇼팽님/ 글쎄요, 그건 다른 나라 여성이나 남성도 마찬가지일 텐데, 왜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성형 열풍이 부는 걸까요? ^^
속삭이신님/ 문제가 평이하네요. 사실 그런 문제들이 좋죠.

Chopin 2007-02-23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긴 좀 그렇긴 하네여~
 
의미를 체현하는 육체 여성학 강의 3
쥬디스 버틀러 지음, 김윤상 옮김 / 인간사랑 / 200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제가 첫 리뷰를 올리고 난 뒤 역자분과 알라딘 책임자 분으로부터 전화와 이메일을 몇 차례 받았습니다.

저는 분명히 공개적으로 문제제기하시면, 어느 번역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지 서문에서부터 마지막 8장, 각주에 이르기까지 꼼꼼히 달아드리겠다고 답변 드렸습니다. 하지만 역자분은 계속해서 알라딘 책임자를 통해 제게 전화하게 하고, 제 개인메일로 보내고 계십니다. 제발 그만해주십시오.

아래 글은 방금 전 역자분께 보낸 답메일입니다. (역자분이 제게 보낸 메일은 우선 공개하지 않습니다)

이것으로 저도 소모적인 싸움은 그만두겠습니다. 이해를 못하시는 것 같아서요.

이 리뷰 지우시든지 마음대로 하십시오. 이젠 출판사에 직접 항의하던가, 학계를 통해 항의하는 다른 방식 등을 모색하보겠습니다.

**************************************************************************************************

 

저는 분명히 알라딘 책임자란 분에게,

역자분께 이메일주소를 알려드린 것도 후회하고 있으며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는 요청은 당연히 거부하겠다고 밝혔고, 무엇보다 앞으로 공개적인 자리가 아닌 제 개인적인 이메일로 메일을 보내실 경우나 전화하실 경우,

그 내용을 모두 공개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알라딘 책임자 분이 그 말씀은 전해주시지 않으셨나보군요.

 

따라서 저에게 보낸 이 메일 또한, 공개되도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신 것이라 간주하겠습니다.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시는 것은 역자분이십니다. 저는 번역이 잘못되었다고 문제제기한 것이고,

역자분은 독일에서 10년이나 공부한 내가 번역을 잘못했다고 하는 것은 명예훼손이라고 하시면서

문제를 명예훼손이나 인신공격 쪽으로 몰고가시고 있습니다.

비판적인 리뷰를 바라신다고 하셨죠. 제가 아까 올린 새 리뷰에다 답글 달지 그러셨습니까.

아까 올린 새 리뷰는 비판적인 리뷰 형식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교수님들과 상의한 결과, 번역서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역자가 해야할 작업이지 굳이 네가 나서서

수고스럽게 하나하나 일일이 찾아줄 필요 없다, 차라리 그에 대한 논문을 하나 쓰는 것이 낫다고 하셔서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적어도 제 논문이 완성된다음 학회에 따로 비판글을 내던가 아니면 제 논문에 녹여내는 방식을 취하게 되겠지요.

따라서 더 이상의 리뷰는 올리지 않겠습니다.

 

제가 괜히 나서서 번역상의 잘못을 지적해봤자, 역자분은 알라딘 담당자를 통해 글을 지우겠다는 통보까지 받게 하셨고, 법적인 문제로 비화될 수 있는 가능성까지 비치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조사한 바로는 번역상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명예훼손에 해당되지 않으며, 감정적인 표현이 섞였다 하더라도 그러합니다)

 

역자분은 자신이 권위가 없으며, 인터넷의 일방성에 노출된 피해자라고 주장하시지만

정말로 역자분이 권위가 없다면, 문제제기가 올라온 공간에서 공개적으로 문제제기하고 질문받는 형식이 아니라

따로 개인메일을 알려달라고 부탁해서 명예훼손감이라는 말씀을 하시고,

알라딘을 통해 리뷰를 내리는 게 어떠냐는 말이 나오게 하실 수 있습니까.

그리고 일방성이라는 건, 이 책을 돈 주고 사는 독자들이 당하는 그 '일방성'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영원본을 읽을 엄두가 안 나시는 분들, 시간이 없으신 분들이 한역본을 "믿고" 구입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두껍고 비싼 책을 말이지요. 그런데 그 책에 번역이 잘못되어있거나 빠져있거나 원저자의 사고흐름과 다른 부분들이 있다면, 영원본을 모르는 독자들은 학역본만 믿은 채 원저를 잘 이해하지 못하게 되겠지요.

그렇지만 아무도 번역이 이상하다는 지적을 안 하면, 사람들은 이 책의 번역엔 문제가 없나보다 하고 생각하고 계속해서 그 책을 구입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것이 일방성이고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역자분은 기본적으로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나오는 그 어떠한 비판도 자신의 입지를 약화시킬 거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그렇다면 저도 여기에서 소모적으로, 말도 안 통하는 분 붙잡고 리뷰 따위 쓰지 않겠습니다. 차라리 제가 논문을 하나 따로 쓰지요.

 

이 메일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알라딘의 마이리뷰에 바로 개제하겠습니다.

다시는 제 이메일로 연락하지 마십시오.

 

이 글도 올라가는 게 불편하시면, 그땐 알라딘과 상의해서 지우시든 말든 맘대로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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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잘코군 2007-02-20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일이...

Chopin 2007-02-20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balmas 2007-02-21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 말입니다. 서평자 말이 사실이라면, 참 놀라운 일이죠. ;;;
우선 역자나 알라딘측의 분명한 해명이 필요할 듯합니다.

가넷 2007-02-22 0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해가 가지 않는 반응이로군요...==;

balmas 2007-02-22 0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자의 말을 들어보지 못해서 확실히 말하긴 어렵지만,
정황상, 정말 좀 이해하기 어려운 반응인 것 같네요.

작은짐승 2007-03-03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분야는 전혀 모르지만... 전에 '장미의 이름'에서 이윤기-강유원 씨가 보여준 반응과 결과가 너무 다르네요;;

balmas 2007-03-04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윤기-강유원 씨 사이에서 번역에 관한 논의가 있었나 보군요. 저는 몰랐습니다. ^^
그나저나 처음 뵙는 분 같은데, 종종 들르시기 바랍니다. :-)
 

양윤선. 최원 님의 홈페이지에서 퍼왔습니다.

글의 원래 출처는 아래 주소입니다.

 
 내용을 보니까, 발리바르가 최근 몇 년 간 유럽에 관해 작업했던 내용을 테제 형식으로 정리한 글이네요.
 
세계화 시대 좌파의 정치적 실천을 고민하는 분들에게는 좋은 자료가 될 듯합니다.
 
한 번씩 읽어보시길 ... 누가 한번 번역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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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PLEA FOR AN ALTERGLOBALIZING EUROPE: Theses

 

                                             By Etienne Balibar    

                                                        Translation by Anna Preger  

 

1. Now, more than ever before, politics, as Max Weber put it, can only be “global”. This does not mean that there is only one global politics possible: on the contrary there is necessarily a choice between several politics, defined by their objectives, their means, their conditions, their obstacles, their “subjects” or “wills”, the risks they involve. The field of politics is that of the alternative. If we posit that today all the possibilities fall within one trend towards “globalization”, the question then becomes: what are the alternatives to its dominant forms? Can Europe be an “alterglobalizing” force, and how?

 

2. To claim that politics can only be global does not equate to saying that politics is not concerned with the condition and the problems of “people” where they live, where their life history has placed them:  on the contrary, it equates to asserting that local citizenship has as its condition an active global citizenship. Every local political choice of economic, social, cultural, institutional orientation involves a “cosmopolitical” choice, and vice-versa.

 

3. Europe’s place in the world today – in spite of a few vague diplomatic impulses – is that of a dead dog that follows the water’s current, devoid of any initiative of its own. If not – given its economic and cultural “weight” – that of a dead elephant that goes with the flow. Examples abound: from the reform of the United Nations to the enforcement of the Tokyo Protocol, from the regulation of international migration to the resolution of Near and Middle Eastern crises or the deployment of back-up troops to the wars initiated by the US. Consequently, Europe lacks the means of resolving its own “internal” problems, including institutional ones. 

4. That Europe has no global politics entails that there is no – or hardly any – global politics emerging from the European nations, despite the desire of some to “keep their rank” of former great powers or to be a spanner in the works. European nations thus have no – or hardly any – home politics presenting real alternatives. National elections function in this respect as a trompe-l’œil, but one which fails to dupe everyone: hence depoliticization. Global issues therefore re-emerge in a purely ideological form: “the clash of civilizations,” and the like.  

5. The causes of this situation are to be found within the evolution of historically inherited power relations that have been reinforced by the current state of affairs. But this evolution – that confers either a purely reactive or a simply adaptive function upon the “European construction” – cannot stand as a total explanation. We must supplement this acknowledgement with another one: there is a disastrous collective inability, amongst the majority of the European population, to imagine alternative policies and forms of politics, and this cannot be dissociated from the uncertainty looming over the political identity of Europe. The failure of the Constitution treaty is not the source but one of the symptoms of this uncertainty.

6. France has a particular responsibility in this situation: not only as a “founding country” but as a nation that is forever projecting an illusion of leadership, grounded in the myth of its exceptionality (the “country of human rights”), in what remains of its colonial domination or in the spectre of Gaullism and its “independent politics”, whereas in effect France contents itself with establishing compromises between the interests of the dominant or emerging powers. And how could it be otherwise?

7. The construction of Europe as a new kind of federation began and developed during previous stages of globalization and international relations whose features have now undergone a total shake-up. This construction is an (uneven) asset, but not a necessity: its “expansiveness” must not mislead us in this regard. The USSR may have been dismantled 80 years after its formation due to its rigidity and its system of state control, but the corollary of this is not that, 50 years on, by virtue of its flexibility and liberalism, there is no risk of an EU break-up. However, such a break-up would not mean going back to square one: some things are irreversible. Thus the European construction will either establish new foundations and new objectives, or it will collapse taking along with it, for the foreseeable future, any chance of collective political action in this part of the world.

 

8. The forces – “right-“ as well as “left-wing” – that are opposed to re-launching the European construction, are both inside each country (as demonstrated by the “no” voters in France and the Netherlands who would have been joined by many others had the ratification campaign been pursued) and beyond Europe (in particular in the United States). But the determining factor is what I shall call “the contradiction within the European people itself”, with all its social and cultural dimensions. This is what needs to be tackled through discussion and mobilization: operating, initially, at one’s own level, across the borders. To this end, if not parties, then we at least need movements, networks, trans-European initiatives.

 

9. European identity – with regards to the legacy inscribed in the institutions, the geography, the culture that it must maintain – is faced with two problems whose solution will only be reached at the cost of conflicts and errors. On the one hand it must overcome its East-West divide, which shifts position at different points in time, is associated with antagonisms between “regimes” and “systems” (not without its paradoxes, for example when “Westernism” spreads to the East following “revolutions” or “counter-revolutions”), but never disappears. On the other hand it must find a balance between a “closed” Europe (therefore restricted, but within which limits?) that one may wish to homogenize, and an “open” Europe (not so much a Great Europe than a Europe of borders, acknowledging its constitutive interpenetration with vast Euro-Atlantic, Euro-Asian, Euro-Mediterranean, Euro-African spaces). This is where the “questions” now pending lie: the Turkish question, the Russian question, the British question… In order to go on, Europe must invent a variable geometry, a form of state and administration without precedent in history.

 

10. Facing the decline of the American hegemony in the world (which is relative, but irreversible and precipitated by the “neo-conservative” attempt to re-establish it by force), Europe must choose between two strategies, which will gradually entail consequences in every area of political and social life: either attempting to form one of the “power blocs” (Grossraum) that will compete with one another for supremacy over a new global configuration, or forming one of the “mediations” that will attempt to give birth to a new economic and political order, more egalitarian and more decentralized, likely to effectively curtail conflicts, to institute redistribution mechanisms, to keep claims to hegemony in check. The first way is doomed to failure (even at the cost of an evolution towards totalitarianism, that might increase insecurity, terrorism being one of its aspects). The second is improbable without a considerable degree of collective conscience and political will, rallying public opinion across the continent. What is certain is that the terms of the alternative cannot be conflated within a rhetoric of compromises between national and communitarian bureaucracies.

 

11. Between the “North”, which most of Europe pertains to, and the “South” (whose geography, economy and degree of state integration are increasingly changing), there is not only an interdependence but a genuine reciprocity of possibilities of development (or “co-development”). It is important to recognize this and turn it into a political project. The fact that Europe was the starting-point for the “Westernization of the world”, in ways that were, to varying degrees, marked by domination but which today are universally challenged, represents in this respect both an obstacle and an opportunity to be seized: these are the two sides of the “post-colony”. Only a project such as this would allow for a balance to be found between a Europe focused on law-and-order, violently repressing the migrations it itself provokes, and a Europe without borders, open to “unrestrained” migration (that is to say, migrations entirely ordered by the market of human instruments). Only this would allow for conflicts of interests and culture between “old” and “new”, “legal’ and “illegal”, “communitarian” and “extra-communitarian” Europeans to be addressed. It is thus not an administrative but an existential priority. 

12. Against the backdrop of the uninterrupted Middle Eastern crisis that is in the process of becoming a regional war, the war in Lebanon highlighted the urgency of creating a political space encompassing all the countries surrounding the Mediterranean – only such a space can offer an alternative to the “clash of civilizations” in this highly sensitive and crucial region. As for the Israeli-Palestinian question that is its epicentre, the extreme anti-Zionist discourse should not be condoned; rather, concertedly and without delay Israeli expansion should be stopped and the rights of the Palestinian people recognized – rights that are officially championed by European nations. More generally, this hotbed of wars and ethnic-religious hatred should be turned into a site of cooperation and institutionalized negotiation, with repercussions across the globe. It is, for obvious reasons, Europe that should take the initiative. France, with its shared and troubled history with the Maghreb, has a particular part to play here. 

 

13. Crucial to alterglobalization are the following legal and political projects:

    • The democratic regulation of migration flows, therefore the reform regarding the right to mobility and residence, still marked by national interests at the expense of reciprocity;
    • “Collective security” and, correlatively, the penal responsibility of states and individuals regarding supranational affairs, therefore the reform of the UN, still held back by its support of decisions inherited from the Second World War and the logic of power;
    • The reinforcement of the guarantees of individual freedom, minority rights and human rights, therefore the practical and legal conditions of humanitarian intervention.
    • The merging of the instances of economic negotiation and regulation, of those controlling tax evasion and those concerning social rights, so as to sketch out on a global scale a Keynesian model now dismantled on a national level;
    • Finally, the prioritization of ecological risks over the other factors of insecurity rehearsed by Kofi Annan in his Millennium speech.

This list is not a closed one, but it demonstrates how diverse and interrelated the elements now forming, on a global scale, the substance of real politics, are.

 

 14. The above theses are merely propositions to orient and open a debate. Rather than presenting solutions, they are attempts to explicate contradictions that cannot be evaded. It is now a question of establishing the touchstones of rigour and integrity for a political debate in Europe today. And this debate will enable us, hopefully, to then supplement, clarify and modify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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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2-20 0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이것도 인쇄해서 읽어봐야겠네요 ^^ ㅎ

balmas 2007-02-20 0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그러셈~ :-)

에로이카 2007-02-20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 안녕하셨어요? 저는 발리바르의 최근 동향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데요... 읽다가 그냥 요즘 드는 생각이랑 살짝 겹치는 부분이 있어 질문 좀 하려구요...

제가 이해하기로는, 모든 권리(right)는 그 권리를 제정하고 집행하는 권위(authority)를 필요로 합니다. 그렇다면 인권에 상응하는 (곧 그것을 규정하고 집행하는) 권위가 있나요? 주권국가의 국민(citizen)은 특정 영토 내에서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그 인권을 보호받겠지만, 그렇지 못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그에 상응하는 어떤 권위를 (마치 천부인권론 같은) 상정해야 하는건가요? 아니면 권위 없는 특수한 권리로서 인권, 인권은 권위가 없기 때문에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주장을해야 하나요?... 질문이 둘다 같은건가.. 모르겠습니다..

발리바르의 열세번째 테제를 보면서 든 생각인데요.... EU처럼 초국가적 권위가 상정이 될 경우 이민에 대한 "민주적" 조정을 얘기할 수도 있을 지 모르겠으나, 그런 권위가 없다면... 생각이 잘 정리가 안 되긴 하네요.. 질문이 산만해서 죄송합니다... 꾸벅..

balmas 2007-02-20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로이카님, 오랜만이십니다. :-)
좋은 질문을 주셨네요. 사실 이 질문은 제가 지금 번역하고 있는 발리바르의 [Nous, citoyens'Europe?]--영어로 한다면, [We, the People of Europe?]--이라는 책(2001년 출간)의 주요 주제 중 하나죠. (이 책은 최근 한 10여년 간의 발리바르의 작업이 집약되어 있는 중요한 저서인데, 저의 게으름 때문에 아직 국내에서는 빛을 못보고 있습니다. 출판사에는 이번 달 안으로 원고를 넘겨주기로 했는데, 아무래도 한 2달 정도는 더 걸려야 일이 다 끝날 듯 ... -_-;;;) 그래서 저도 관심이 많은 문제이고, 마침 에로이카님이 질문을 주셨으니, 질문에 답변할 겸 생각을 정리해볼 겸 페이퍼를 하나 써보고 싶네요. :-)
그런데 제가 지금 글을 하나 마무리하고 있는 중이라서 며칠 동안은 페이퍼를 쓸 만한 여유가 없네요. 글이 마무리되는 대로 한번 페이퍼를 올릴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시길 바랍니다. ^^;

balmas 2007-02-20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리고 이 문제에 관한 발리바르의 글이 두어 편 번역되어 있으니까 한번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듯합니다.
발리바르, [인권과 시민권], 윤소영 옮김, {인권의 정치와 성적 차이}, 공감
발리바르, [잔혹성의 지형학에 관한 개요 : 세계적 폭력시대의 시민성과 시빌리티], {사회운동} 2004년 6월호 (http://www.movements.or.kr/bbs/view.php?board=journal&id=1058)
발리바르, [인간 시민권의 철학은 가능한가?], {사회운동} 2006년 11월호 (http://www.movements.or.kr/bbs/view.php?board=journal&id=1624)

Chopin 2007-02-20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말이에여~ㅠㅜ
그리고 이 할아버지는 누구?

에로이카 2007-02-21 0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 ^^ 감사합니다. 제가 너무 꽁으로 먹을라고 했나 보네요.. 페이퍼까지 쓰신다니 황송해서... 헤헤... 가르쳐주신 글들 짬짬이 읽으면서 답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바쁘신데 서두르시지는 마십시오.

아, 그리고 페이퍼 쓰시는 김에 이 문제도 살짝 건드려주셨으면 하는 거 하나 더 여쭙겠습니다. 저는 글로벌 시민(사회)라는 말은 성립될 수 없다고 (읽었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그런 식의 용법이 가능하려면 국가/시민사회 대당에 의존하지 않고, 시민사회를 새로이 정의하거나, 혹은 (하트 / 네그리 식대로) 일국적 수준의 국가와 같이 지구적 수준에서 제국을 상정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여기에 EU 같은 초국적 정치체 (constitution + authority)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논의가 달라질 것 같긴 합니다만, 발리바르는, 또 발마스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제가 그냥 줏어들은 풍월을 읊은 거라 말이 안되는 질문일 지도 모릅니다만... 어여삐 여기시고, 쉽게 잘 설명해주세요.. ^^ 그럼.. 건강하십시오..

balmas 2007-02-21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쇼팽님/ ㅎㅎㅎ ^^;; 제 서재 이미지의 인물은 바로 이 글의 필자인 발리바르랍니다. :-) 프랑스의 저명한 철학자이고, 지난 번 이미지의 주인공이었던 알튀세르의 제자이기도 했습니다.
에로이카님/ ㅎㅎ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 허접한 페이퍼가 될 듯 ... ^^;
그나저나 이 놈의 글이 빨리 다 끝나야 하는데 ...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