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를 체현하는 육체 여성학 강의 3
쥬디스 버틀러 지음, 김윤상 옮김 / 인간사랑 / 2003년 2월
평점 :
품절


저는 분명히 공개적인 소통의 자리에서 문제제기해주시면 이 알라딘 리뷰게시판에서, 어떤 부분이 번역이 잘못되었는지 꼼꼼히 달아드리겠다고 답메일드렸었습니다.

그런데도 김윤상님은 여기에 문제제기하시지 않고, 제 개인메일로 연락하고, 알라딘 책임자를 통해서 전화하게끔 하면서 리뷰를 내리겠다는 말을 하게 하셨습니다.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공개적인 공간에서 질문하시면 왜 제가 저런 비판을 쓰게 되었는지 꼼꼼하게 달아드리겠다구요. 역자분 글의 마지막에 달린 제 얘기는, 그러니까 공개적으로 해야된다는 얘기였지 역자분이 질문하시는데도 제가 절대 답 안 한다는 얘기였습니까? 여기, 알라딘 리뷰 게시판에서 공개적으로 토론하자고 제가 확실하게 말씀드렸잖습니까. 그걸 거부하신 건 역자분이시구요.

그런데 그때에는 공개적으로 일처리 안 하시고, 뒤를 통해 저를 개인적으로 괴롭히는 행동을 하시더니, 사람들이 많이 답글 달게 되니까 이제서야 여기다 글을 쓰시는 겁니까?

게다가 알라딘 책임자분은 제 글이 인신모독일 수 있어서 지우겠다는 말씀은, 저에게 절대 안 하셨습니다. 역자로부터 항의가 들어온 글은 문제의 소지가 있으니 지울 수 있다는 약관이 알라딘에 있다, 이런 말씀만 하셨지요. 제가 몇차례나 알라딘 책임자 분께, 그 분이 말씀하시는 것이 알라딘의 판단인지 역자분이 말씀하신 것인지, 어떤 표현을 쓰셨는지 확실하게 질문했었는데, 그 긴 통화 동안 한번도 인신모독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더이상 리뷰 안 쓴다고 적었을 때도 아무 말 없더니, 왜 몇 주나 지난 지금에 와서 다른 사람들의 답글이 달리니까, 더이상 리뷰 안 쓴다는 사람을 붙잡고 무슨 때늦은 질문을 하시는 겁니까.

역자분이 제게 보내신 메일과 제 답메일을 다 공개할까요? 통화기록을 원하신다면, 알라딘 책임자분과 통화한 내용까지도 다 올려드리도록 하지요.

정신분석 용어들을 잘못 번역했다는 말의 근거를 알고 싶으십니까? 오히려 제가 역자께 질문드리고 싶은 부분입니다.

예를 들어서, 역자분은 trauma를 다 징후로 번역해놓으셨는데, 이 개념은 저 책 7장에서 실재계에 대한 지젝의 논의들을 설명하는 와중에 나오는 개념입니다. 지젝에게 있어서 실재계란 야훼의 타오르는 불(덤불에 불붙어 타오르는 성서의 장면), 갑자기 덮치는 엄청난 파도, 영화 매트릭스의 충격적인 'real world' 등의 예시로 종종 설명됩니다. 즉 지젝이 실재계의 급작스러움과 충격, 공포 등을 표현하기 위해서 trauma(t소위 정신적 충격이나 외상)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징후라고 하면, 병의 조짐이라든가 드러날 듯 드러나지 않는 것들과 관련이 있지, 갑작스럽게 사람을 덮쳐서 무력하게 만드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같은 trauma의 상황과는 거리가 좀 있는 용어입니다. 때문에 trauma를 징후라고 번역하는 것은 지젝의 실재계 논의에 대한 이해가 빠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다른 예로, displace나 substitute를 왜 다 대체로 번역하셨는지도 의문입니다. 전자의 용어는 자리바꿈을 의미하는 전치, 전위 등등의 번역어로 주로 번역되고 있고, 후자는 라깡의 은유 환유 개념에서 환유의 속성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하는 것으로 압니다만, 그냥 한국어로 번역할 때 두 개를 모두 대체로 번역해놓으시면 이게 어떤 뜻으로 쓰인 것인지 독자들은 자세히 모르게 되지 않습니까. foreclosure도 역자분은 법률용어라고 하셨지만, 저 개념은 라깡이 사용한 것으로, 한국라깡학회 등에서도 이 개념을 "폐제"라고 번역할지 다른 용어로 번역할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번역상의 합의가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 용어를 다른 분들은 어떻게 번역하시는지, 궁금했던 것이기도 하구요.

또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articulate는 왜 정교화로 번역하셨습니까? 역자분께서는 헤겔식 개념으로 이 용어를 번역하신 거라고 말씀하셨지만, 후에 구조주의로 오면서 이 용어는 구조주의를 잘 나타내는 대표용어가 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절합'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의미가 맞다고 저를 비롯한 저희 교수님들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 용어는 여러 요소들이 하나로 모여서 기능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 용어이며, 단순합산이 아니라, 팔의 여러 뼈들이 관절과 이어져 합체하면서 유기적으로 전체 팔의 모양과 기능을 이루는 것처럼, 요소들의 합체가 새로운 형태와 새로운 기능으로 만들어짐을 뜻하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 그냥 정교화라고 번역해놓으시면, 버틀러가 중요한 주장을 할 때마다 계속해서 쓰는 저 용어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걱정하는 부분들이 이것입니다. 이 책에는 정신분석과 구조주의, 철학, 여성학 등등등 온갖 복잡한 이론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기에, 어떤 용어가 원래 헤겔의 의미였다 하더라도 60년대 이후에 구조주의에서 새롭게 전유된 용어라든가, 라깡이 다시 개발한 용어라든가 등등의 특수한 역사가 있어서 용어의 의미가 바뀌었다던가 좀더 세심하게 번역되어야할 의미들이 추가되었다던가 하는 일들이 생길 수 있으며, 그러한 배경지식들이 있어야만 버틀러의 이 책에 대한 번역이 좀더 명확해지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저도 철학의 역사와 개념들의 역사를 통째로 꿰고 있는 건 아니니 모르는 부분들이 많지만, "이게 법률용어니까 이런 뜻이다"라고 답하시는 건, 그 용어가 정신분석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고려하지 않으셨다는 말씀으로 들어도 되는 겁니까..

또다른 예로, 왜 sex와 sexuality는 둘다 '성'으로 번역해놓으셨습니까? 대부분의 여성학 책들이 거의 언제나 서문 들어가면서 섹슈얼리티가 무엇인지, 자신은 뭐라고 정의하는지에 대해서 꼼꼼하게 적어놓고, 여성학자로서 번역하는 선생님들도 거의 대부분 섹슈얼리티를 뭐라고 번역해놓았는지에 대해 앞쪽에 적어놓을만큼, 이 두 개념은 서로 의미도 역사도 사용방법도 다를 뿐만 아니라 그 차이에 대한 연구들까지 있을 정도로, 이 개념들은 각자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게다가 버틀러는 Gender Trouble 1장에서 '실체의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을 개진하는 와중에, 젠더를 섹스, 욕망과 인과론적으로 묶어버리고 한 세트로 취급하는 것은 강제적 이성애 제도를 공고히 하는 정치적 목적에 봉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합니다. 한 섹스가 한 섹슈얼리티와 막바로 연결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동성애나 기타 다른 성적 정체성들을 인식불가능하게 만들고 담론 밖으로 배제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버틀러는 보고 있기 때문에, 섹스와 섹슈얼리티를 동일한 번역어로 묶어서, 한글본만 읽었을 때는 이게 어느 쪽을 뜻하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만드신다면, 그건 버틀러의 생각과는 반대되는 것이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여성주의이론과 관련된 용어들의 번역에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건, 그 용어들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거기에 담긴 정치적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성학에서는 어떤 용어 하나를 두고 그토록 많은 논의들을 할 수밖에 없어지는 것이지요. female과 woman을 구분해서 사용하고 the feminine과 femininity를 구분해서 사용하는 것도, 여성학자가 어떤 주장을 하기 위해서 이 개념들을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다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보봐르는 female과 woman을 섹스와 젠더-주어진 것과 문화적인 것이라는 대당으로 사용되는 경우에-의 상황으로 구분해서 사용합니다. 즉 가부장적인 체제에 대해 논하면서 female이 woman으로 become되는 것을 주장하지요. 이것이 보봐르의 그 유명한 명제,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만들어진다"는 말과 연결되는 것이구요) 이리가라이에게서도 the feminine과 femininity는, 팰러스로고스 중심적인 의미화 경제 밖에 있느냐 안에 있느냐에 따라서 달리 사용되는 개념입니다. 특히나 잠재적인 것으로서의 여성적인 것을 대안으로 말하기 위해서 이리가라이는 전자의 용어를 사용하지요. 하지만 역자분의 번역에서는 이 the feminine이 "여성적인 것"으로 잘 번역되다가  한 부분에서 "여성성"으로 번역되는 곳이 있습니다. 특히 이 구절은 버틀러가 이리가라이의 여성적인 것을 나름대로 도식화하면서 이 도식이 맞는 건 아니다, 뭐 이런 얘기를 할 때 등장하는데(제가 지금 책이 없어서 정확한 페이지 수를 말씀 못 드립니다) 이 부분을 '여성성'으로 번역하시면, 버틀러가 이리가라이를 오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까지 불러올 수 있습니다. 그만큼 번역어가 좀더 일관성 있게, 꼼꼼히 검토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많아진 것이지요.

그 외에도, recourse(의지, 의뢰)는 왜 전부 다 return의 번역어인 '회귀'로 번역해놓으셨습니까? 보통 전자의 용어는 버틀러의 책에서 "기존 이론들이 너무 본질이라는 것에 의존해서 논의를 개진했는데 내가 보기엔 아니다" 뭐 이런 얘기들을 할 때 쓰였습니다. 물론 '회귀'라는 용어도, 되돌아간다는 의미이니, "기존 이론들이 너무 본질이라는 것으로 자꾸 되돌아가서..."이렇게 읽는다면 한글로는 의미가 맞습니다. 하지만 '회귀'가 정신분석의 중요한 개념인 return의 번역어로 널리 쓰이고 있는 상황에서(억압된 것의 회귀, 라는 유명한 명제가 있지 않습니까), 한글번역본만 봤을 때 '회귀'라고 적혀 있으면 독자들이 읽으면서 return과 헷갈릴 거라고는 생각 안 하셨습니까? 이 책에서는 정신분석의 주요개념어들이 잔뜩 나오는 만큼, 그 개념들을 뭐라고 번역할 것인지를 확실하게 잡아주시지 않으면, 읽으면서 여기 나온 이 단어가 아까 쓰인 그 단어랑 같은 것인가 혼란스러워하면서 독해를 제대로 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번역을 좀더 정확하게 해주시길 바라게 되는 것이구요.

위에서 예를 든 것처럼 용어의 번역에 대해서 제가 역자분과 의견이 다른 경우도 있고, 역자분께서 번역하시면서 같은 용어임에도 불구하고 번역을 자꾸만 바꾸신 부분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데리다의 supplement 개념은 왜 1장에선 '보충'으로 번역하셨다가 7장에선 '추기'로 번역하셨습니까? 푸코의 'regulatory ideal개념은 같은 쳅터 내에서도 '규제적 이상'이랬다가 '조절적 이상'이랬다가 번역이 바뀌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냥 형용사들이라면 문맥에 따라 번역을 달리 하면서 보다 정확하게 의미를 파악하게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겠지만, 위에 예를 든 것처럼 어떤 학자의 주요개념으로 등장하는 용어들은 번역이 같아야만 1장에 있는 단어 4장에서 다시 만나도, 아 이게 1장에서 나왔던 그 개념이구나 하고 알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특히 중요한 각주들의 번역, 많이 틀렸습니다. 지금 제가 책이 없어서 몇 페이지 어디인지 정확히 지적하기도 어려운데다 지적할 부분이 매우 많기 때문에 다 적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power is materializing"을 "권력이 물질화된다"로 번역해놓아서 내용을 완전 반대로 만드는 경우도 몇개 나온다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저 문장은 푸코의 권력과 물질성 개념에 대해 설명하는 각주(제 기억이 맞다면 1장)에서 나온 것으로(그 각주는 처음 문장에서부터 번역상의 문제가 좀 있습니다), 권력이 계속해서 물질화시키고 있으며, 물질성을 생산[production]한다, 따라서 물질은 권력의 효과이다, 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인데, 역자분은 저 ing를 수동형으로 번역해놓고 production은 '산물'로 번역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권력은 물질성의 산물이고 물질화된다"고 오역하셨습니다. 이는 바로 뒤문장에 이어지는 "물질은 권력의 효과"라는 말과 정면으로 모순될 뿐만 아니라, 푸코의 주장을 완전히 뒤집어버린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생각나는 것만 적어봤지만, 이 외에도 굉장히 많습니다. 여기 적은 것만 가지고 제가 문제시한 것은 ㄷ아닙니다.

그래도 저는 처음 리뷰를 올린 다음에, 역자분이 제 이메일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무슨 말씀을 하실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역자분이 보내신 메일을 받은 뒤 제가 답메일을 보내드릴 때만 해도, 공개적으로 토론하면 제가 생각하고 있는 걸 다 말씀드리겠다고 적었었고, 이렇게 해서 제가 모르는 부분도 번역에 대해서 물어볼 수 있다면, 정말 많은 공부가 되겠구나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곤 역자분이 언제 알라딘에 글을 올려주실까 기다렸었더랬죠. 하지만 역자분은 글을 올리는 대신 알라딘 책임자에게 전화를 걸게 하셔서 "문제가 해결이 잘 안 됐다"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그 말을 들었을 때 굉장히 놀랐었습니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셨길래 공개적으로는 절대 논쟁 안 하고 메일로만 계속 이상한 말씀들을 하신 걸까요.

그리고 왜, 이제야 와서, 이런 글을 쓰게 만드시는 걸까요.

저는 제가 드리는 질문들은 오히려 역자분이 답해야할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단어가 어떤 식으로 번역되었는지는, 번역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답할 것이 아니라, 책을 낸 책임을 지고, 역자분이 "나는 이런 의미로 이 개념을, 이 문장을 번역했고 이것은 버틀러-원저자-의 이론에서 어떤 맥락과 연결된다"고 답을 하셔야할 문제입니다.

이것을 감정싸움으로 몰고 가지 마시고, 정말 학문을 하시는 분이라면 이러지 마십시오.제가 맨처음 리뷰에서 감정적으로 격앙된 표현을 쓴 것에 대해서만 역자분은 집중하고 계시지만, 그 감정표현은 "버틀러에 대한 맹신"도 아니고 "오역본 일반에 대한 근원적 불쾌감"(이건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도 아닙니다. 아니, 굳이 저 둘 중의 하나를 고르라면 후자겠지요. 저는 철저한 공부 없이 나오는 번역본들이 비싼값에 팔리고, 다른 번역을 내고 싶어도 판권이 그쪽에 있으니 다른 사람들은 문제제기도 못하고, 번역에 대해 문제제기하면 곧바로 역자가 은밀하게 항의해서 처리하려고 하는 이런 행태들에 다 불쾌감을 느낍니다. 정말로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잘못된 번역본에 대해서 누구나 다 감정적인 실망과 분노를 경험합니다. 그것이 단지 "이성적인" 언어로 "모든 감정을 배제한 채" "결과만 딱 짚어서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주면서" "마지막엔 역자분의 실수가 아니라는 말로 마무리하면서" "그저 아쉬움을 조금 표현했을 뿐이라는" 식의 리뷰 형태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를 이렇게 크게 만드시는 겁니까? 잘못된 번역을 보고 사람들이 화를 내는 건, 역자를 인신모독하는 것이 아니라 역자가 그 번역에 대해서 지고 있었어야할 책임의 문제, 그리고 이러한 잘못된 번역 때문에 오독을 불러일으키는 상황들, 한 학자의 이론에 한걸음 다가서기보다 후퇴하게 만드는 문제들 때문에 화를 내는 것 아니겠습니까.  당장 이 사이트 화면에서, 이 책 아래에 뭐라고 적혀 있는지 보세요. "이 책은 대학교재로 채택되었다"라고 적혀있지 않습니까. 대학교재로 쓰인다면, 지금 이순간에도 한국의 수많은 대학에서 버틀러에 대해 공부하려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이 잘못된 번역본을 가지고 버틀러의 이론을 더 난해하게 뒤틀면서 고심하고 있을 거란 얘기입니다. 이에 대한 책임은 안 느끼십니까?

아니, 사실 여기다 더 쓸 것도 없습니다.

저는 역자분께 실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이제 와서 이거 번역 붙잡고 다시 싸울 생각 없습니다. 그때 올린 글 대로, 차라리 논문이든 학회든 학계의 루트를 뚫는 방향을 모색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적어도 내년까지는 루트가 뚫리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학문적인 비판을 원하신다면, 제가 여기에 질문드린 것과 두번째 리뷰에서 적은 제목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시는 것이 보다 생산적인 토론을 위한 길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안 하더라도 이 책을 읽은 다른 분들이 또 질문하고 문제제기하시고 그러시겠지요. 저는 여기에 도 무슨 말 썼다가 또 휘말려들어갈까봐 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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