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호 2006년 1월 31일(화)


2006년 전망
-세계자본주의 위기와 대안세계화운동


2006년 지자체 선거는 다음해 대선의 예비무대이자 집권세력의 레임덕이 더욱 빨리 드러날 것이냐를 결정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집권세력은 선거전략과 대중동원을 위한 '소재'의 빈곤을 벗어날 수 없다. '사회적 타협을 통한 양극화 해소 재원 마련'이나 '외자확대가 한국경제의 프리미엄을 높여 전체 국부를 증진한다'는 주장의 기만성이 점차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현정부가 민중에게 무언가 양보할 수 있다거나 정부의 정책개혁의 큰 틀이 변화될 수 있다는 기대는 여전히 자라나고 있다. 이는 한국자본주의 발전에 대한 허구적인 이미지를 재생산할 때만 지속될 수 있다. 따라서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은 사회운동의 진전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미국 제국주의의 새로운 형세

미국은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통해 해외로부터 엄청난 부를 수탈하는 메커니즘을 향유했다. 미국이 해외에서 흡수하는 자본소득은 미국기업이 국내 활동으로 얻는 이윤의 80% 수준에 이른다. 여기에 미국이 원자재, 특히 에너지 가격에 압력을 가하여 얻는 이득과 주변부의 저렴한 노동력을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세계적인 부의 이전은 막대하다.

그렇지만 이와 동시에 미국 경제는 심각한 불균형에 직면했다. 수입 증가가 수출 증가를 훨씬 앞지르면서 무역적자는 계속 확대되어 2000년 이후 GDP 4% 수준을 계속 상회하고 있다. 또한 무역적자에 조응하여 미국 내 외국인의 자산 규모가 급격히 증가하고(즉 외국은 무역을 통해 번 달러를 미국에 다시 투자하고 있다), 미국이 여기에 지불해야 하는 자본소득도 늘어나고 있다. 미국 내 외국인 자산은 1984년 GDP 대비 19%였으나, 2003년 72%로 증가했고, 미국의 해외자산 규모의 두 배에 해당한다. 그러나 미국이 해외자산을 통해 얻는 자본소득은 외국이 미국 내 자산으로 얻고 있는 규모와 거의 동일하다. 이는 미국의 수익률이 두 배나 높다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미국 제국주의는 해외에서 강력하게 소득을 흡수하고 해외 자본가, 기업, 국가에게 그것을 다시 지불하고 있다(이를 '달러 환류'라 부른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도 유지될 수 있는가? 지금까지 미국이 해외에서 소득을 빨아들이는 데 매우 '효율적'이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러한 궤도가 무한정 지속될 수 없다. 미국의 대외불균형이 계속 악화되면 미국에 대한 투자가 중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여러 가지 경로로 진행될 수 있다. 먼저 달러의 가치하락으로 귀결될 수 있다. 달러 가치하락은 미국의 무역적자 교정에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그러나 미국과 일본의 환율 변화가 일본의 대미 무역흑자에 큰 변화를 주지 못했던 것처럼 이러한 변화가 자동적인 것은 아니다), 미국의 금융지배력과 국제적 지위를 악화시킬 게 분명하다. 물론 미국이 이자율을 높여서 달러를 방어하려고 시도할 수 있지만, 이 역시도 외국에 지불하는 소득을 증대시킴으로써 불균형을 증폭시킬 수도 있다. 또한 미국이 해외자산규모를 더욱 확대하거나, 무역적자를 통제하는 수단을 강구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현재보다 더 빠른 수준으로 자산규모를 늘리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공산이 크다. 또한 무역적자 악화의 주요 원인인 부유층의 가계소비를 축소하려는 시도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핵심적인 지지층의 반발을 초래할 정치적 위험이 있다. 이처럼 날로 심각해지는 미국 제국주의의 모순은 세계자본주의와 착취자들의 미래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미국이 쌍둥이 적자를 유지하는 메커니즘의 파괴는 곧 미국 헤게모니의 최종적 위기, 나아가 세계자본주의의 동반 붕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외경제정책과 동아시아

미국 경제의 불균형에 대한 우려가 커질수록 이런 우려 자체가 대미투자를 감소시켜 불균형을 심화하는 요인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미국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런 상황에 개입할 수밖에 없다. 부시정부는 2009년까지 현재의 재정적자를 절반 이하로 축소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을 거치며 대규모 전비가 지출되었고, 감세조치의 영구화와 연금개혁을 준비하고 있으므로 현실화되긴 어렵다. 따라서 부시정부는 환율·통상 등 대외경제정책을 통해 경제적 난관을 부분적으로 타개하려고 한다. 물론 이는 위기의 대가를 타국의 민중에게 전가하는 결과를 낳는다.

부시정부는 자유무역지대 창설을 통상정책의 핵심수단으로 활용하고, '경쟁적 자유주의' 전략을 채택하였다. 이는 미국이 FTA를 체결한 나라에게만 미국시장 접근을 허용함으로써, 차별을 우려하는 다른 나라도 FTA를 체결하도록 압박하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FTA를 단순한 교역확대수단(관세인하)으로 여기지 않고 비관세장벽의 제거와 경제구조조정의 수단으로 이용하며, 다자간무역협정의 선례로 활용하고자 한다. 즉 단순히 무역적자 교정을 넘어서 초민족기업의 자유로운 활동과 미국의 금융적 지배를 보장하는 수단이다.

최근 부시정부는 무역적자를 통제하기 위해 달러 약세를 용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해외 중앙은행이 달러 급락을 막기 위해 달러표시 자산을 계속 매입할 것이라고 예견하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장기적으로 달러 가치를 주요 통화 대비 20-40%의 절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한국, 중국, 일본이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7% 수준에 이르러 동아시아 통화를 중심으로 환율조정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특히 미국 의회는 위안화의 추가절상을 위해 무역 제재를 준비중이다).

 

부시정부 2기와 민주주의·인권외교

이라크 전쟁은 부시 정부의 핵심적인 관심사다. 부시정부는 이라크 전쟁의 승리가 "이라크 보안군이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이라크가 더 이상 테러리스트의 안전한 피난처가 아니게 될 때" 달성된다고 규정했다. 이 정의를 따르면 미국의 승리는 요원하다. 미 의회는 2006년 이라크, 아프간 전쟁과 범세계적 대테러전쟁 비용으로 3500만 달러를 승인해야만 했다. 이 규모는 한국전쟁 당시 전체 비용과 맞먹는다. 또한 부시정부는 더 이상 의회에 이라크 재건 기금을 요구하지 않음으로써 이라크 재건지원이라는 허울마저 던져버렸다.

하지만 부시정부는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을 사후적으로라도 추인 받고 싶은 듯이 인권과 민주주의의 확산을 위해서는 국제기구와 국가주권의 메커니즘을 위반하는 일방주의적 개입도 충분히 정당하다는 접근법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물론 부시 정부 2기가 출범한 후 이른바 네오콘의 영향력이 축소되면서 미국의 새로운 전쟁 가능성에 대한 언급은 많이 잦아들었다. 그렇지만 공화당이 다수를 장악한 미국 의회는 민주당 인사들의 도움을 얻어 민주주의증진법(ADVANCE Act)을 준비하고 있다. 이 법안은 '세계 45개 독재자들을 2025년까지 끌어내린다'는 목표로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비폭력적 수단에 호소해 정권교체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담고 있다. 법안은 국무부 담당 하에 처음 두 해 동안 민주화운동에 2.5억 달러를 지출하고, 민주화에 저항하는 국가의 자금흐름을 차단할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할 계획이다. 결국 이는 탈냉전 이후 클린턴 정부의 '다자주의'나 세력균형 정책과 다르고, 인권 이슈를 제기해 공산권과 데탕트(무역협정이나 군축협정 체결)에 찬물을 끼얹는 민주당과 공화당에 포진한 냉전 매파의 전통적인 '인권외교'의 확장판이다.

이러한 변화에 조응하여, 최근 미국은 북한인권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제기하고 위조화폐-마약 등 불법거래 자금차단에 나서면서 6자회담이 큰 위기에 처했다. 특히 북한인권 의제는 한반도 정세에 장기적인 변수로 작동할 것이다. 북한과 미국-한국 사이에 협의가 긴밀해질수록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초민족자본의 한국경제 지배

외환위기와 IMF 구제금융협약을 거치며 초민족자본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외환위기 직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업매각을 통해 외국인직접투자 크게 증가했고, 외국인의 주식보유 비중은 2004년 말 42%에 이르렀다. 당연히 개별기업에서도 외국인 지분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특히 금융업 부문에서 직접투자가 크게 증가해서 SC제일, 외환, 한국씨티은행이 외국계 은행으로 분류되며, 우리금융지주와 전북은행을 제외하면 모든 은행의 외국인 지분율이 60%를 초과했다.

따라서 '외국자본'의 성격과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둘러싼 논란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지난 2004년 영국계 홍콩자본인 BIH가 브릿지증권의 유상감자를 실시해 1000억원 이상의 자본금을 회수한 사건은 논란에 불을 지폈다. 외국자본의 높은 배당 성향과 외국자본이 가져가는 배당액 전체 규모도 문제가 되었다(외국자본이 챙긴 배당액 규모는 1998년 5억 달러에서 2003년 33억 달러로 급증했다). 또한 외국자본이 거래소 상장을 폐지하여 자본조달보다는 단기이익을 추구한다거나, 외국인직접투자 비중이 줄고 포트폴리오 투자의 비중이 높아지며, 직접투자로 분류되더라도 공장을 새로 세우는 게 아니라 사실상 지분 참여 수준의 인수합병(M&A)형의 비중이 증가한다거나, 한국기업들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 매입에 나서며 설비투자가 감소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외국자본의 활동을 규제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소액주주운동을 펼치며 초민족기업이나 기관투자가가 편에 섰던 쪽은 이러한 비판이 '외자 마녀사냥론'이고, 재벌개혁의 문제를 뒤로 미루고 '사이비 민족주의'를 부추긴다고 대응했다.

그런데 최근 논쟁은 더 첨예해지고 있다. 2005년에 주식배당액으로 외국자본이 가져간 금액이 2004년보다 50% 급증한 73억 달러에 이르고, 2005년 주가 폭등 과정에서 외국인들이 3조 6천억원 어치의 주식을 처분해 엄청난 차익을 실현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소버린의 SK(주)에 대한 적대적 M&A 시도나 헤르메스의 삼성물산 경영권 위협 사건도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기업이 외국자본의 적대적 M&A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다양한 방어장치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특히 삼성은 이 문제를 집요하게 제기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주식거래에 대한 과세를 검토중이라는 발언이 나오면서 또 다른 논란도 일고 있다. 물론 반대하는 입장은 국내 상장사 지분의 40%가 외국인이어서 자금이탈 가능성이 높고, 홍콩-싱가포르 등이 자본이득과세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내세우고 있다.

물론 이런 논쟁의 와중에도 한국 자본 역시 초민족화에 적응하기 위한 해외투자와 '글로벌경영'에 뛰어들고 있다. 한국 금융사 역시 해외투자 펀드를 내놓고 있으며, 퇴직연금과 각종 연기금 역시 해외로 투자대상을 더 확대해 나갈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2003년에 60만대 규모의 중국공장을 세웠고 2005년에는 30만대 규모의 미국 공장을 설립했다. 또한 2006년에는 외환위기 이후 정부, 법원, 채권단의 관리에 처해 있던 대형기업들의 매각이 이루어져, 글로벌펀드와 국내 사모펀드의 각축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처럼 국제금융기구, 한국정부, 신자유주의 NGO는 초민족자본의 직접적인 지배력을 보장했고, 한국의 기존 재벌은 초민족화를 대세로 받아들이며 명운을 걸고 초민족화의 혈로를 찾고 있다. 물론 한국 경제의 급격한 재편과 초민족자본의 지배력이 확대에 따라 삼성과 같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로비와 여론조성에 몰두해야 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스탠다드와 재벌개혁(지배구조개혁) 대 한국자본 보호(적대적 M&A 방어)가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세계경제의 위기 때문에 초민족자본과 한국 자본 일부의 공생·경쟁관계가 작동하는 토대가 무너지는 것이 문제다. 미국이 동아시아를 포함한 세계 각지에서 자본소득을 퍼올리고, 세계는 미국에 상품을 수출함으로써 달러를 벌어들여 이를 다시 미국에 투자하는 '달러 환류' 메커니즘이 미국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생산성 하락과 이윤율 저하) 때문에 심각한 위기에 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몇몇 수출분야의 팽창, 한국증시의 급상승과 같은 현상은 미국의 금융세계화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는 극히 짧은 시간 동안만 유지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체계가 위기에 빠지면 한국 경제의 종속성과 취약성은 더욱 극적으로 표출될 것이다.

 

한국경제의 장기불황과 노무현 정부의 집권 하반기 프로그램

주식시장은 팽창하고 천문학적 규모의 M&A가 이뤄지면서 금융지배력과 집중력은 날로 강화되지만, 한국 경제는 경기회복은 매우 짧고 경기침체는 매우 오래 이어지는 장기불황에 빠져들었다. 인민주의적인 선거전략과 대중동원에 의존해 집권에 성공한 노무현 정부로서는 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과 경제적 이해가 맞물려 있는 '비즈니스 네트워크'로 전환한 386세대, '개혁적' 지식인과 기술관료 NGO, 화이트칼라 노동자를 포함한 노동자 대중의 일부 상층부의 명예욕과 실리주의를 자극하고, 청년층 도시프롤레타리아의 감정적인 지지를 일시적으로 이끌어 내고, IMF 구제금융협약 이후 위기에 빠진 지역들의 소외감을 자극함으로써 일시적인 지지층을 형성했다. 그러나 이는 특정한 정치이념을 보유한 다계급연합이 아니라 계급형성을 봉쇄하는 '탈계급연합'일 뿐이며 사상누각처럼 불안정하다. 따라서 노무현정부와 세계 곳곳에서 만개한 인민주의 정치스타일의 공통점은 지지층의 휘발성이 매우 강하며, 따라서 지지율이 급상승과 급락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의 대통령 탄핵 시도로 기사회생하여 2004년 총선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내친 김에 자신의 권력을 안정적으로 재생산하기 위한 권력구조 개편, 즉 개헌까지 염두에 두었다. 그러나 연정제안 실패와 2005년 10월 재보선 참패 때문에 목표를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지난해 말 노대통령은 '남은 임기 2년 간의 미래구상'을 1월 또는 2월에 발표하겠다고 공언했고, 여기에는 노대통령의 탈당과 거국내각 구성, 임기단축과 조기개헌론 점화와 같은 충격적인 제안이 포함될 수 있다는 추측이 무성했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권력구조의 개편은 특정 정치분파가 압도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이를 공고화할 수 있는 조건에 도달하거나, 사회경제적 위기가 정치적으로 표출됨으로써 지배세력의 '집단적인' 책임이 긴급해진 경우에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집권세력은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상태에 처해있다. 한국경제의 장기불황이라는 조건에서 이질적인 지지층을 포괄할 수 있는 정책개혁 전망을 제시할 수도 없고, 한국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초민족자본이나 대자본에게 개헌을 매우 긴급한 과제로 제시할 근거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집권세력에는 소폭 수준이더라도 개헌을 시도해야 한다는 입장, 현재의 위기관리 체계의 근간을 유지하고, 이 체계에 여러 사회운동 세력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포섭해야 한다는 입장이 혼재해 있다. 개헌에 미련을 두는 입장은 내각제나 '사회적 대타협'의 틀로서 상원제 도입이 어려우면 대통령과 국회위원 임기불일치 조정과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이라도 해야 한다고 보는 듯하다(집권 핵심층은 중도개혁-진보진영의 연대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결선투표제 도입을 선호한다고 알려졌다). 한편 열린우리당의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의 하나로 꼽히는 정동영은 개헌이나 정계개편을 포함한 중장기적 정치프로그램에 대해 뚜렷한 전망을 제시하지 않은 채 열린우리당 내의 확고한 입지 구축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한 명의 주자인 김근태는 '양심세력통합론'을 제시하며 '외연을 넓힌 통합을 시도해야 하고, 지방선거 이전 통합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어떠한 입장도 집권세력 내에서 확고한 정치프로그램으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정치 전망의 불투명성은 경제위기의 불가피한 특징이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신년연설에서 정치프로그램에 관한 '미래구상'을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고, 취임 전부터 검토된 사회경제정책 묶음을 다시 꺼내들었다. 물론 청와대는 '정파적 이해를 떠나 국가 미래과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의사결정 시스템 마련'(저출산고령화, 국민연금 등 중장기적 정책과제 해결)이 노대통령의 주요 관심사라고 포장했다.

하지만 오늘날 인민주의가 구사하는 사회정책은 국가온정주의라는 보수주의에 훨씬 더 가깝고,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실행하는 종속적 수단으로 전환된다. 완전고용과 같은 케인즈주의 목표는 제거되고, 장기실업층을 산업예비군으로 포섭하려는 사회정책이 ‘국민통합’이라는 명분으로, 국가의 시혜 형태로 제공된다. 또한 간접세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거나 노동신축화에 대한 반대급부로 제시되는 다소간의 증세를 통해 국가가 확보한 약간의 재원으로 특정 층을 겨냥한 복지정책이 활용된다. 그러나 국가의 시혜에 의존하라는 인민주의 정책은 노동자운동, 사회운동의 자율성을 해체하는 수단으로도 기능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1월 18일 신년연설을 통해 제시한 한국경제의 중장기적 과제와 정책방향은 인민주의 전략의 전형적인 사례다. 연설에서는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재정 확충,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보호, 부동산과 사교육비 문제가 보수세력의 악의적인 선동만 없다면 머지 않은 시일 내에 해결될 수 있다는 듯이 역설했다. 또한 노대통령은 각각의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노무현정부의 경제·사회정책에 대한 언론과 학계의 '대리전'을 유도하려는 의도를 보였다(이미 지난해 '사회양극화해소를 위한 국민연대'가 결성되어 이러한 의도의 일단이 드러나기도 했다). 물론 증세는 부유계급에 대한 수사적 공격을 통해 노무현 정부의 인민주의적 대중동원에 활용될 여지도 있다. 그렇지만 인민주의적 공격이 부유계급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공문구에 그칠 때가 많지만, 민중에게는 지극히 현실적인 고통을 강요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노무현정부는 성장잠재력의 약화, 사회양극화의 심화, 저출산고령화를 비롯한 새로운 미래 위험요인의 등장이 한국경제의 당면 문제라고 말한다. 그러나 값싼 노동력 투입의 둔화(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산업예비군층의 축소)와 설비투자의 감소, 생산성 향상의 저하에 따른 성장잠재력의 고갈, 산업부문·업종·기업·계층간 양극화 심화는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한국 경제가 택한 신자유주의 생존전략의 필연적인 귀결일 뿐이다.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와 대안세계화운동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장기불황에 빠져 있다. 국제금융기구의 경제구조조정에 편승해 신자유주의 정책에 적응한 일부 산업·기업은 주가폭등, 수출확대를 통해 팽창에 성공했지만, 이는 결국 초민족자본의 자본소득과 경제지배력 확대에 기여한다. 최근 초민족자본의 성격과 이들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따른 논쟁이 확산되고 있지만 글로벌스탠다드와 재벌개혁을 외치든 재벌총수의 경영권 방어를 추구하든 이는 민중에게 다른 형태의 재앙일 뿐이다.

노무현정부는 진퇴양난의 궁지에 몰려 있고, 매우 빠른 시일 내에 '레임덕'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계승하면서도 인민주의적 대중동원에 의존해 지지층을 끊임없이 재규합해야 하는 지극히 어려운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정부는 기술관료-NGO를 매개로 위기관리체계를 유지하고 사회운동을 공격 또는 포섭하면서, 임시방편적인 수단에 의지해서 정치적 국면들을 돌파해왔다. 그러나 아랫돌을 빼내서 윗돌로 얹는 조삼모사 방식의 양극화 해소 방안은 민중에게 더 큰 고통을 강요하려는 수단일 뿐이다. 물론 노무현정부의 집권 이후 인민주의적인 정치토양은 더욱 굳건해졌다. 하지만 세계경제의 위기는 초민족자본과 한국 자본의 '공생관계'를 근저에서 잠식하고 있으며, 한국 지배세력의 정치프로그램을 제약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유일한 대안이라거나, '외국자본'에 대항해 한국자본을 보호해야 한다거나, 현 정부와의 대화나 협약을 통해 민중의 고통을 완화할 수 있다는 모든 주장은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거부한다. 그렇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근본적으로 지양하려는 사회운동은 위기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출발점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이를 통해서만 대안세계화운동에 적합한 노동자운동의 개조, 여성운동과 노동자운동의 결합, 대안세계화 운동과 반전운동의 결합이라는 우리의 과제를 펼쳐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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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6-02-05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글쎄요, 흠 ...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이야기인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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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권뉴스] 2006·01·27

[사설] 스크린쿼터제는 국민들의 ‘좋은 영화’ 볼 권리 제한한다.
영화인들은 집단이기주의 대신 엄중한 국내외 사회현상에 귀 기울여야


정부가 연간 146일에서 73일로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을 발표하자 영화인들이 26일을 ‘문화국치일’로 규정하고 ‘정권 퇴진 운동’ 에 나서겠다며 발끈하고 나섰다.

'한미투자협정 저지와 스크린쿼터 지키기 영화인대책위' 안성기 위원장은 "국민과 영화인들의 믿음을 배신하고 결국 미국의 오만불손한 통상압력에 굴복해 스크린쿼터 축소방침을 밝힌 오늘 이일은 실로 반문화적 쿠데타 그 자체"라고 비난했고, 대책위는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는 재정경제부와 문화관광부, 외교통상부 장관의 사퇴와 대통령 면담을 요구했다.

정권퇴진을 거론하며 3개부처 장관 사퇴를 요구할 정도로 사상초유의 사태를 벌인 영화인들의 분노는 그들 주장처럼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가 국민과 영화인들을 배신하고 강행한 한국 영화의 말살책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이해당사자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조직적 반발에 불과한가.

외국영화의 지나친 시장잠식을 막고 자국영화의 시장확보를 도와주기위한 이른바 ‘국산영화 의무상영제’는 현재 한국 외에 브라질 파키스탄 이탈리아 정도가 시행하고 있는 정도다. 그러나 이들 나라에서 제작된 영화의 질적 수준은 스크린쿼터제의 보호아래 오히려 낙후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지적 또한 만만치 않다.

스크린쿼터제 축소를 두고 영화인들은 미국의 통상압력에 정부가 굴한 것이라고 항변하지만, 이들이 평소 통상압력의 주체인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와 FTA(자유무역협정 free trade agreement)에 맞서다 전용철 홍덕표 등 농민들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할 정도로 정국이 요동을 쳐도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은 자신들 ‘밥그릇 챙기기’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영화인들이 스크린쿼터제가 불거져 나올 때마다 ‘국민과 영화인들’을 하나로 묶어 대정부 공세에 치중하는 것도 온당치 않다. 국민들 입장에서 스크린쿼터제는 외국의 좋은 영화를 볼 권리를 제한하는 제도로 영화인들의 이해와 크게 상충한다. 상영일수 제한으로 인해 상업성이 큰 헐리우드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만 수입되기 때문이다.

최근 권태신 재정경제부 제2차관이 스크린쿼터제에 집단이기주의가 있다면서 “김대중 대통령 시절 국산영화 점유율이 40% 넘으면 스크린쿼터를 줄이겠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59%까지 올라간 상황”임에도 영화인들이 “자기 것만 잃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한 것을 두고 영화계에서는 말이 많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스크린쿼터제가 저질 국산영화를 키웠다는 취지의 발언을 통해 이 제도의 축소 또는 폐지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스크린쿼터제는 기본적으로 영화관람객의 영화선택권과 극장주의 영업자유를 침해하고 국내 영화사업자들의 경쟁력 향상을 저해할 수 있다”(문학진 의원에게 보낸 국정감사 자료)고 한 것은 일리있는 지적이다.

평소 한류의 선봉으로 대외 경쟁력을 자랑하던 영화인들이 이번 스크린쿼터제 축소로 한국 영화가 일순간에 망할 것처럼 ‘정권퇴진’까지 들고 나온 것은 어쩌면 자신들이 만든 영화가 그만큼 부실하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60%에 근접한 점유율을 확보한 국산영화 시장이 무너진다는 건 지나친 걱정이다.

국민들은 미국이 대주주인 신자유주의 파고로 인해 비정규직과 실업 빈곤에 시달리며 가족이 해체되는 고통을 겪고 있다. 또 시민사회단체들은 신자유주의를 강요하는 강대국들의 공론의 장인 WTO각료회의와 APEC에 맞서 투쟁을 세계화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영화인들이 스크린쿼터제 앞에서 ‘집단이기주의’라는 비난을 받지 않으려면 이같이 신자유주의 아래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엄중한 국내외 사회현상에 귀 기울여야 한다. 또 오락위주의 대형 블록버스터만 전횡하는 한국영화계 풍토에서 우수한 독립영화들이 배제되는 등의 영화계 내 빈부양극화 현상에 깊은 자성이 일어나야 한다.

[한국인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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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06-01-28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잘 모르지만 ^^;;
상영일수 제한으로 인해 상업성이 큰 헐리우드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만 수입되기 때문이다. <- 이건 맞는 것 같아요.
이 동네에서 조용히 개봉하는 좋은 영화들이 아예 개봉되지 않거나 한 1-2년쯤 뒤에 개봉되는 경우를 많이 봤거든요.

balmas 2006-01-28 0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런 것 같더라구요.
영화를 좀 보려고 해도 외화나 국산 영화나
대형 극장에서 하는 개봉영화들은 사실 별로 땡기는 영화들이 없어요.

cplesas 2006-01-28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크린쿼터제가 (좋은) 작품에 지원을 하는 제도는 아닌데,
왜 그런 식으로 오해되곤 하는지 모르겠어요.
오히려 쿼터제라는 우산 아래서 경쟁력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외 구분 없이)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우선권을 쥐고
배급에서부터 관객들의 다른 영화 볼 권리를 박탈해버린다고 말한다면 오바일까요.

둥가 2006-01-28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순히 스크린쿼터제를 사수하는게 아니라 예술영화, 독립영화를 사수하는게 필요할 것 같아요. 소수 영화인들이 주장하는 예술영화를 대상으로 한 스크린쿼터 같은 것이 지금으로선 더 필요할 듯 하네요.

헤르베르트 2006-01-28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크린 쿼터를 둘러싸고 있는 (내가 잘 모르는)많은 쟁점들이 있는 것 같아 함부로 얘기하지는 못하겠지만 갠적으로 예전부터 영화인들이 스크린쿼터 사수한답시고 벌이는 투쟁같은 행위가 썩 맘에들지 않아 관련된 것들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있는 편인데, 퍼오신 기사에 실린 안성기 옹의 발언도 별로 다르지 않게 보이는군여. 그렇다고해서 쿼터제 축소가 선택권을 넓히고 평균적인 작품성의 상승을 위한 논리로 사용될수는 없다. 는 생각을 동시에 하게 됩니다. 더군다나 더욱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것은 예술영화에 대한 (제가 보기엔 거의)무비판적인 태도인데 최근 몇년간 국내 '언더그라운드(제가 임의적으로 사용하는 표현)' 영화가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해서 인디씬(이라고 할수 있다면) 전체에 투자와 관심을 요구하는 것은 마찬가지 의미에서 불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의 예술.독립.인디 씬 전체를 같잖게 보고있기 때문에..) 실제로 그리 된적은 별로 없다고 해도 적어도 유식해 보이는 몇몇 프론티어들은 그런 식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듯 하는데 이에대한 성찰적인 모습을 거의 보지 못해서일까요.

balmas 2006-01-31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영님, 둥가님, 헤르베르트님, 댓글 감사합니다.

2006-02-03 2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2-03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코메디 한편…조선·중앙, 언론노조 위원장 집에 경품·무가지 살포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고 했는데….

신문업계에서 수위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는 조선·중앙일보가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됐다. 신문시장의 혼탁상을 바로잡기 위해 최일선에서 뛰고 있는 신학림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의 집에 과도한 경품과 무가지를 살포하다가 걸렸기 때문이다.

http://news.media.daum.net/snews/society/media/200601/25/dailyseop/v11503254.html

 

ㅋㅋㅋ

인간들 정말 여러 가지 하네 ...

55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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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6-01-26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놈들 잘 걸렸다. ^^

balmas 2006-01-26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happyant 2006-01-26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하하. 재밌습니다.^^

비로그인 2006-01-26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ㅋㅋ

balmas 2006-01-26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appyant님/ 그런데 또 나름대로 어려운 사정들이 있더구만요.
한겨레 보니까 지국장 자살 기사가 있더라구요. 에효 ...
자꾸 때리다님/ 이건 또 무슨 이모티콘??

비로그인 2006-01-26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TL의 신 버젼 입져.ㅋㅋ

balmas 2006-01-27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그렇군요 ...
 
 전출처 : 쎈연필 > 쌓인 눈은 누가 밟아 주리

죽음은 바로 옆에 있다. 죽음은 드리워진 그림자처럼 성큼 다가서 있는데. 죽음은 공유될 수 없다. 죽음은 오롯이 타인의 죽음이다. 내가 체험하는 순간 나는 이곳에 없다. 삶이라는 상자를 열고 날아가 버리는 것.

죽는 순간 몸 안의 배설물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안에 있는 건 유동적이고 흐물흐물하다. 딱딱한 건 안에 있을 수가 없다. 그것, 우리가 보기 싫어하는, 안 보는 우리의 몸이란 실상 얼마나 부드럽고 눅눅하고 따뜻한가? 죽음은 이러한 속엣것들이 밖으로 나오는 계기다. 집중된 힘이 흩어져 나가는 것. 탄력을 유지한다는 건 집중해서, 흩어져 나가는, 사라져 가는 것에 저항하는 것. 죽는다는 건 급속도로 흩어져, 잘려, 부서져, 찌그러져, 으깨어져, 떨어져, 분해되어, 부패해, 사라져 가는 것.

근사하게 말하면 흙으로 돌아가는 것. 그 과정은 우리가 보고 싶지 않은, 이를테면 여행도중 눈길에 미끄러져 전복된 승합차 안에서 온몸이 으깨어질지 모를 어떤 것. 몸이 불 구덩이 속에서 산산히 분해되는 것. 내가 죽어 누워 있지도 못하고 흩뿌려지는 것. 공기 속을 오래도록 부유하며 사라져 가는 것.  

우리는 죽음을 발설하고 싶지 않다. 우리 곁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을 환기하게 되기 때문이다. 재수 없기 때문이다. 저 너머에 봉인하고 싶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죽음을 향해 있고, 우리는 전생애를 감내하면서 죽음을 사유해야 한다. 그리하여 모두가 시선을 회피하는 저 너머를 응시해야만 자기의 존재를 개진해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은 그 끔찍한 (어쩌면 진실로 안식처일지도 모를) 곳을 지독하게 응시하려는 사람이었다. 범벅된 피, 고통, 상처; 그는 절대로 외면하지 않고 그대로 밀고 나아갔다. 너무 아픈 글만 쓰는 그가 안타까웠고, 읽는 것도 힘들었지만, 나는 그를 응원했다. 그가 나아가서 저 너머에 있는 죽음을, 이겨 버리기를.

그래서 죽음은 두려웠나 보다. 자기의 비밀이 시나브로 파헤쳐질까 봐. 죽음은 시인이 두려워서 일찍 잡아갔나 보다. 젊어서 죽음은 억울하다. 안타깝다. 아깝다.

나는 그를 단 한번 마주친 적 있다. 명동 어느 오르막길에 있는 까스등이라는 어두침침한 술집이었는데, 그는 말이 아예 없었고 표정은 어두웠으나, 늘 밝은 얼굴을 한 그의 애인과 퍽 다정해 보였다. 그의 애인은 그를 자랑하진 않았지만 자(사)랑스러워하는 얼굴이었다. 아름다운 연인이었다. 그에게 어색한 인사라도 건네고 싶었으나 나는 원체 숫기가 없었다. 그리 멀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와 나는 몹시 친해질 것 같은, 그래서 언젠가 형, 하고 부르게 될 것 같은, 그런 막연한 예감이 들었다.

나는 그의 죽음을 슬퍼할만한 사람이 못 된다. 나는 그를 피상적으로만 알 뿐이다.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또, 아주 많이 외로웠던 사람이라고. 그를 모르지만, 그의 시는 안다, 고 말할 정도로 읽었다. 발표된 그의 모든 시를 애독했으며, 애독하며, 애독할 것이다. 그의 재학 시절 시들도 문집에서 모두 찾아 읽었으니 나는 그의 시를 조금이라는 수식어보다는 많이에 가깝게, 좋아하나 보다. 유고를 엮을 만큼 그의 시가 발표되었을지는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의 유고를 많이 사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할 수 있도록 건네 주는 일, 그리고 그가 개진했던 저 너머의 세계를 직시하며, 온 몸으로 밀고 나아가는 일. 요며칠 슬프다, 마음이 아프다는 말은 한 마디도 못하고, 그저, 아깝다, 안타깝다, 라는 말만 입으로 궁글리고 있다. 내일은 또 시를 제출할 테고, 같은 교실에서 같은 선생께 마지막으로 시를 배울 것이며, 나는 학우의 시에 대해 떠들어 댈 것이다. 도대체.

그의 시 몇 편 그리고 그의 숨결이 생생한 홈페이지 주소다. 마치 죽음을 예감하기라도 한 듯한, 마지막 게시물과 배경음악이 자꾸만 가슴에 걸린다. 그의 명복을 빈다.

 

               가족사진 
                                           신기섭


그들은 모두 맨 바닥에 누워 있었다
저마다 간격을 두었지만 서로의 핏물이
커튼처럼 그 간격 꼼꼼히 닫아 주었다
무엇을 꼭 끌어안은 모습으로 누워있는 여자의
발치엔 아기가 구토물같이 엎질러져 있었다
아파트 베란다마다 얼굴을 가린 여자들의
짧은 비명소리 같은 엄마!
(엄마, 언제부턴가 모든 엄마는 비명이었다)
깊이 파헤쳐진 무덤처럼 누워있는 여자
얼마나 귀가 찢어질 듯한 짧은 엄마인가?
혼자 멀찍이 떨어져 누운 여자의 사내는
여전히 술냄새를 풍겼으므로
그의 핏물은 거침없이 여자에게로 향했다
이제는 피로써 스밀 수 있다는 걸
딱딱하게 굳어 떨어지지 않을 때까지 
그들은 눈을 감지 않아도 알 수 있으리, 순간
카메라 불빛이 터졌다, 그들도 이 생에서
눈을 뜨고 가족사진을 박는다

 

               나무도마


고깃덩어리의 피를 빨아먹으면 화색(和色)이 돌았다
너의 낯짝 싱싱한 야채의 숨결도 스미던 몸
그때마다 칼날에 탁탁 피와 숨결은 절단났다
식육점 앞, 아무것도 걸친 것 없이 버려진 맨몸
넓적다리 뼈다귀처럼 개들에게 물어뜯기는
아직도 상처받을 수 있는 쓸모 있는 몸, 그러나
몸 깊은 곳 상처의 냄새마저 이제 너를 떠난다
그것은 너의 세월, 혹은 영혼, 기억들, 토막난
죽은 몸들에게 짓눌려 피거품을 물던 너는
안 죽을 만큼의 상처가 고통스러웠다
간혹 매운 몸들이 으깨어지고 비릿한 심장의
파닥거림이 너의 몸으로 전해져도 눈물 흘릴
구멍 하나 없었다 상처 많은 너의 몸
딱딱하게 막혔다 꼭 무엇에 굶주린 듯
너의 몸 가장자리가 자꾸 움푹 패여 갔다
그래서 예리한 칼날이 무력해진 것이다
쉽게 토막 나고 다져지던 고깃덩이들이
한번에 절단되지 않았던 것이다
너의 몸 그 움푹 패인 상처 때문에
칼날도 날이 부러지는 상처를 맛봤다
분노한 칼날은 칼끝으로 너의 그곳을 찍었겠지만
그곳은 상처들이 서로 엮이고 잇닿아
견고한 하나의 무늬를 이룩한 곳
세월의 때가 묻은 손바닥같이 상처에 태연한 곳
혹은 어떤 상처도 받지 않는 무덤 속 같은
너의 몸, 어느덧 냄새가 다 빠져나갔나 보다
개들은 밤의 골목으로 기어 들어가고
꼬리 내리듯 식육점 셔텨가 내려지고 있었다

 

               등대가 있는 곳


위층에서 터진 물소리가 점점 커진다
그는 또 여자의 머리채를 잡고 노를 젓는다
여자의 몸이 욕실바닥을 휘젓는 소리
살림이 난파되는 소리 비명소리 속으로
콸콸 물이 쏟아지고 있는 중이다
지난 오후 내내 베란다에 앉아있던 여자의
흐느낌은 물소리였다 이내 길고 긴
골짜기가 되었다 화분이 하나 둘 흘러갔고
앞날을 모르고 웃고 있는 환한 사진들이 흘러갔다
불붙은 편지는 뒷걸음질치며 느리게 흘러갔고
우수수 머리카락들이 흘러갈 때
멀리 먼 바다의 문어대가리처럼 지던 태양은
먹물 같은 어둠을 갈겨 버렸다
그때 첨벙첨벙 어둠을 밟으며 장화 신은 그가 온 것이다
늘 바다 비린내가 나는 그의 몸,
그는 거친 뱃사람인 것이다 그러나
한번도 갑판에 올라본 적 없는 선장
토막나고 썩은 물고기만 가득 싣고
그의 배의 바깥 손잡이를 끌며
허우적댔다 시장과 거리에서, 그는 자주 목격됐다
과중으로 인해 배의 뒤축이 침몰해 버릴 때면
그의 굽은 몸도 덩달아 들려 올려져 배와 함께
물 위로 입을 내민 고래처럼 포효하곤 했었다
해가 저물고, 그의 배가 여자의 골짜기 끝에 정박했던 것이다
흘러간 것들을 다시 건져 올라온 그가
어딘지 모를 먼 곳으로 향해를 시작한 밤
물소리는 끝이 없고
도대체 저들은 어디까지 흘러간 것일까
귀를 막고 창문을 내다보면 너무 많은
등대의 불빛, 불빛들

 

              현기증


칼을 쥐고 변소에 갔다 변소에 매달린 끈을
끊으러 간다 끈을 잡고 반쯤 서서 일 보던
당신의 몸속에는 숭숭 구멍이 뚫려 있었고
구멍들 중에 오래 전 내가 살다 나온 구멍 하나;
나를 내 뱉던 그날의 그 구멍처럼 변소가
뜨겁다 탯줄 같은 끈을 끊는데 우글우글 핏빛 똥통 속
구더기들 끓는 냄새 잉잉 파리떼 소리
덩달아 내 온몸에 맺힌 땅방울이 끓는다
툭, 끈은 끊어지고, 그러나 나는 왜 아직도 갇혀 있나?
자궁 속 태아 자세로 웅크리고 있는데
점점 밀려오는 환한 빛; 고개를 숙이고
빛을 향해 나는 머리부터 먼저 내밀고 나가는데
누군가 내 머리를 쭈욱 잡아빼고 있다
바짝 곤두서는 머리칼! 나의 몸이 솟구친다.
빛이 입속으로 들어와 빛을 먹여준다.
빛을 입에 물고 빛에 안겨 숨막히는 이 순간
나를 꼭 안았다가 다시 놓아주는 빛, 한없이
나는 떨어져 내리고 빛은 사라져서 그늘진
마당에 주저앉아 나 이제 숨 쉰다. 희뜩희득
엄마를 죽이고 세상에 나온 신생아처럼

 

              아버지와 어머니


그가 보는 동물의 왕국 속; (뱀이 뱀을 먹으며 죽어간다
같은 황토色 비늘이라 얼핏 보면 한 마리 같다
처음과 끝이 꼬리인 길고 긴 몸
뱀의 대가리는 몸 가운데에 멈춰 있다
그 두 눈빛은 핏빛이다 힘껏 뒹굴어도 끊어지지 않는
몸, 속으로 못 박히듯 또 다른 몸이 채워지고 있다
황토色 비늘이 붉은 잔금들로 깨지기 시작한다
천천히 먹어치우며 가는 몸은 멀고 먼 길이다
고독한 길 뱀은 자꾸 이빨을 박으며 간다
독은 길을 따라 몸속으로 서서히 퍼진다
이 끔찍한 길은 포장도로처럼 딱딱하게 굳는다
꾸역꾸역 삼키며 가는 길 뱀은 찔끔 눈을 감는다
그러자 몸속으로 스스로 기어들어가는 길
어쩌면 처음부터 저도 함께 안간힘 쓰며
몸속으로 밀려왔을, 서로의 몸 끝까지 가지 못하고
멎어버린다면 그 모습 얼마나 웃길까?
사랑은 그런 것, 천천히 몸속을 기어가는 숨막히는 길
서로 다른 끝을 보며 스쳐가듯 하나가 되는 고통 속
다시 슬그머니 눈을 뜬 뱀의 눈이 깊어졌다
함께 가자, 아가리를 크게 벌리고 뱀은 운다
커다랗게 부풀어오르며 완전히 하나가 된 시뻘건 몸
천천히 굳어가는데) 그가 보는 동물의 왕국 전원을
강제로 꺼버리는 그녀, 쩌억 벌어진 입에서
독이 쏟아지고 뱀 먹는 뱀처럼 갈 길이 정해진 듯
거실을 기어가는 늙은 몸 하나

 

              이발소 가는 길
 

손등에 글씨를 쓰고 날갯짓을 한 문창과 동생,
몸이 무거운 새* 그 날개에 남겨진 글씨; 삶이 무겁다
상투적이지만……이발소를 찾아가는 이 저녁, 삶이
무겁다 벌써 초겨울 낙엽 깔린 佛光洞 골목,
가슴을 내놓고 박수를 치는 여자; 이제 두 돌이 지났다고
많이 컸다고……(내 눈엔 보이지 않는 무게) 죽은 아기가
크고 있다 나날이 커질 무게, 행복하고 불행한 무게.
그나저나 이발소는 보이지 않고, 제 똥 보고 좋아라 하는
변비 환자같이 떨어진 무게를 굽어보는 홀가분한 가로수들,
처럼 잘라달라고 할까? 뜨거운 이발소 수건에 덮여
벌겋게 익을 얼굴 하얀 거품이 발린 무게 덩어리.
이발사는 칼을 들고 나를 내려다보며 말하리라, 눈 감으세요.
그러나 얼마 만에 와보는 이발소인데 어둡고 한산하다.
의자에 앉아 이발소의 꽃, 달력 속 벗은 여자를 바라본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발기하는 몹쓸 무게 순간
대문처럼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는 전신거울, 거기
환하게 나타나는 붉은빛 통로! 어서 건너오라고
내게 손짓하는 여자! 잘못 온 길인데 제대로 온 길같이
설레다 머릿속의 무게들이 가볍게 떨리고 온몸 가득
퍼져나가는 (((떨림))) 천천히 입이 벌어지고, 삶이……
상투적이라서 말하지 않기로 한다.


* 그의 문집 제목임

 

http://xodd1234.ne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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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

 

 

Marie-Louise Mallet, Ginette Michaud ed, Jacques Derrida , Herne (7 octobre 2004)

Collection : Les Cahiers de l'Herne
Format : Broche- 628 pages
ISBN : 2851970984
Dimensions (en cm) : 21 x 3 x 27

이 책은 Herne 출판사에서 내는 Cahiers de l'Herne[카이에 드 레른느]라는 총서 중 

한 권이다. 매 권마다 유명한 작가나 철학자, 사상가 한 사람을 골라서 그에 대한

글들과 그 사람의 미발표 글들을 함께 묶어서 내는 책이다.

횔덜린이나 랭보, 프랑시스 퐁주, 베케트,예이츠, 브레히트, 마르그리트 뒤라스 같은 작가들도 있고,

 시몬 볼리바르나 마오처퉁 같은 정치가도 있고,

쇼펜하우어나 레비-스트로스, 리쾨르 같은 철학자들도 있다. 데리다는 83번째 주제인 셈이다.

 

값은 50 유로 ...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하면 약 6만원. 5유로 할인을 했으니까, 약 5만 5천원 정도.

그런데 판형도 크고 좋은 글들이 아주~ 많다.

데리다 지인들이 데리다에 대해 쓴 짧은 회고담이 한 10여편 되고,

데리다에 관한 저명한 연구자들이 쓴 논문들이 한 40여편(발리바르의 글도 한 편 있구나)

미발표된 데리다의 원고가 한 6편 정도 ...

이 정도면 본전을 뽑고도 남을 만하다.

책 판형이 크고(보통 책 두 배쯤 되네) 분량도 많은 편이니까 양적으로도 그렇고.

어느 것부터 읽어볼까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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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1-24 0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딱 피면, 페이지가 줄줄줄 흐르는거 아니에요?

balmas 2006-01-24 0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마치 그러기를 바라는 듯 ...
하지만 아니올시다. 이번 책은 실로 단디 묶었음.

balmas 2006-01-24 0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표지를 들여다봤더니,
사진을 너무 실물감 있게 찍어서, 깜딱 놀랐음 ...

아영엄마 2006-01-24 0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저는 처음에 그림보고 발마스님이 담배파이프 사신 줄 알았슴다..^^;;

balmas 2006-01-24 0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담배 파이프 ...

Kitty 2006-01-24 0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교양이 줄줄줄 ^^;;
오늘도 늦게 주무시는군요~ 반가워요~!

하이드 2006-01-24 0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키티님, 반가워요~! 키티님 스토커 하이드!

balmas 2006-01-24 0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두 분의 극적인 상봉을 보니 눈물이 ... ^^;
키티님/ 오, 대단한 통찰력. 데리다 얼굴에서 교양이 줄줄 흐르는 게 보이삼? ^^
저는 오늘은 아직 두어 시간 더 있다가 잘 것 같음~~

비로그인 2006-01-24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서는 주로 어디에서 사세요? 아마존? JPC?

숨은아이 2006-01-24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리다 아자씨가 저렇게 생기셨군요. *,*

balmas 2006-01-24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꾸 때리다님/ 아마존에서 주로 사지요. 제일 편리하고 사고도 거의 없고 하니까
아무래도 제일 애용하게 되더라구요.
숨은아이님/ 예, 저렇게 생겼답니다. 말년의 사진 ...

둥가 2006-01-26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번역하실 계획은? ^^ 아 글구 이번에 목소리와 현상이 재번역되서 출판되었는데 믿을만한 번역본인지요. 글구 앞으로의 출판 계획은 어떤지 물어도 될까요? 글구 연대 대학원 스피노자 강의안이 빨리 보고 싶네요. 미리 예습이라도 하고 싶어서요. 이런........ 이것저것 마구 요청해서 죄송함다~~

balmas 2006-01-26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을 번역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ㅎㅎ 왜냐하면 분량이 너무 많은 데다가 데리다 저서도 아니기 때문이죠. 데리다 글들 중에서 한 두어 편은 나중에 선집으로 묶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더군요.
출판 계획은 뭐, 일단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과 발리바르의 [세계화와 반폭력의 정치]를 1학기 안에 내는 게 목표지요. 그리고 2학기 중에는 리오타르의 [Differend]를 내고, 그 이외에 공동 논문집 한 권 정도 내는 게 현재로서는 목표라면 목표겠지요.
스피노자 강의안은 지난 번에 올린 것과 비슷한데, 다음 주쯤 올리긴 올려야겠네요. :-)
[목소리와 현상]이 나왔군요. 제가 아는 후배가 번역한 건데, 아직 읽어보지
못해서 뭐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읽을 만한 번역본일 것 같군요. 원래 후설을
공부한 친구인데, 석사 논문을 [목소리와 현상]을 주제로 썼거든요. 저도
한권 사봐야겠네요.

yoonta 2006-01-27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에티카라도 좀 재번역해주시면 안될까요..강영계교수님 번역은 읽기가 넘 힘들어요..오역도 종종 있는거 같공..

balmas 2006-01-27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yoonta님, "[에티카]라도"라뇨?
[윤리학] 번역은 정말 작심하고 달려들어야 겨우 할 수 있을까 말까 한
일인데요. 스피노자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윤리학]을 번역하고 싶은 마음이야
다 가지고 있겠지만, 쉽게 생각하고 할 일은 아니니까 선뜻 말씀드리기는 어렵네요. 하지만 언젠가 하긴 해야 할 일인 건 분명합니다.

비로그인 2006-01-27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오타르의 Differend 을 번역하신다구요 @@ 근데 이 책 제목이 "분쟁" 인가요 "차이" 인가요?

balmas 2006-01-27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ifferend]은 번역하기가 어려운 단어죠. 차이라고 하기는 어렵고, 분쟁이 좀더
가깝기는 하겠지만, 글쎄요, 그게 좋은 번역어일지는 ...

2006-02-01 2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