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즈 라캥
에밀 졸라 지음, 박이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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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캥은 자연주의 소설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졸라는 이 소설을 통해 인간의 기질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려 했다. 현대적 시선에서 보면 캐릭터도 이야기도 다소 단순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이 이야기가 나름의 원형성을 갖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1915년부터 2023년까지 TV와 영화로 14차례 각색됐다는 점(*위키피디아)은, 이 작품이 클리쉐가 아닌 클래식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졸라가 인간 기질에 대한 과학적 해석을 추구했으므로, 물리학의 기본 법칙에 근거해 그의 작품을 해석해보자. 


    관성의 법칙. 모든 물체는 외부의 힘이 가해지지 않으면 정지 상태 또는 등속 직선 운동을 유지한다. 테레즈는 병약하고 무기력한 카미유 곁에서 정지된 상태로 존재한다. 그녀의 삶은 변화 없이 흘러가며, 변화 없음은 곧 시간이 없음과 같은 의미다. 이와 같은 정지된 상태는 외부의 충격, 즉 로랑이라는 힘이 등장하면서 변화를 겪는다. 


    가속도의 법칙. 물체에 작용하는 힘(F)은 질량과(m)과 가속도(a)의 곱으로 정의된다. 테레즈와 로랑의 육체적 욕망이라는 힘은, 정신적, 심리적 질량에 작용해 가속도(a)를 발생시키며, 이러한 가속도는 단순한 정념을 넘어 살인이라는 폭력의 감행으로 이어진다.  


    작용반작용의 법칙. 모든 작용에는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인 반작용이 있다. 존재가 범한 어떠한 죄악은 그에 따른 정신적 반동을 야기한다. 테레즈와 로랑이 카미유를 살해한 뒤에 나타나는 불안과 환각, 고통은 다양한 형태의 반작용으로서 그들의 존재를 파괴에 이르게 한다. 


    테레즈와 로랑의 강렬한 화학 작용은 카미유라는 병약한 존재를 세상에서 지웠지만, 운명같은 역할을 다한 두 존재는 다시 이전처럼 결합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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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 당신을 병들게 하는 스트레스의 모든 것 메디컬 사이언스 9
로버트 새폴스키 지음, 이재담.이지윤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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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탠퍼드대의 생물학/신경학 교수 겸 의사가 '스트레스'를 완전 분석했다. 여러 복잡한 이야기들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스트레스가 우리 혈관을 물리적으로 폭행하는 것과 같다는 취지의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이는 우리가 잊어버리든 폭발시키든, 스트레스의 고리를 빨리 끊어낼 수록 '이득'이라는 점을 알려준다. 물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폭발시키는 것은 스트레스의 연장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인용보다는 소화시킨 요약을 해본다.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는 본질적으로 1) '예측 가능성'과 '통제력'이 필요하다. 예상됐거나 감당 가능한 실패는 상대적으로 작은 스트레스를 준다. 하지만 세상사 어디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일이 태반이다. 예측 가능한 환경 속에서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이 세상에 과연 얼마나 될까. 2) 주어진 사태를 어떤 맥락, 의미를 부여해 받아들이는가도 관건이다. 다소 식상하지만, 물이 반이나 차 있는가, 반밖에 없는가의 비유와 같은 맥락이다. 3) 운동, 명상, 사회적 관계도 스트레스 완화에 도움을 준다. 4) 마주하게 되는 힘든 일이 있을 때, 그것을 적극적으로 다수 경험하는 것도 해법이 된다. 예를 들어 처음 고공 낙하 훈련을 할 때 스트레스와 수백번 뛴 베테랑이 되었을 때의 스트레스는 다를 것이다. 5) 다소 슬픈 이야기이지만, 저자는 적절한 경제력과 관계성을 갖춘 가족들 사이에서 자라 양육된 아이는 스트레스를 적게 받고 잘 처리한다고 한다.


   모든 해법을 일람하고 나니, 결국 정신을 말랑하게 하는 것이 해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하자면 회복탄력성의 문제. 물론 이마저도, 극복하지 못할 재난 앞에서는 무력해 질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긴 하겠다. 아울러 저자가 선행을 통제능력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신선했다. "통제 능력이 결여된 세상에서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멋진 통제 능력의 근본은 바로 한 번에 한 가지씩,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에 있는 것이다." 다소 감상적이지만, 멋진 표현이다. 오타니가 쓰레기를 줍는 것은, ‘운’을 모으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자신의 통제력을 확인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수도 있겠다.


   책의 내용은 대체로 전문적이거나, 평범하다. 분석도 해법도 뭔가 깨달음을 주기보다는 이미 생활 속에서 느끼는 부분을 재확인시켜준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스트레스의 메커니즘을 찬찬히 일별한 것만으로, 대응법에 있어서의 어떠한 지향성 - 적극적 회피 - 이 마음에 떠오르며,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가라앉는다. 사실 앞서 여러 전문가들이 말했듯 불안은, 무지에서 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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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것들의 물리학 - 생명에서 물리법칙을 찾는 생물물리학자의 생각
박상준 지음 / 플루토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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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어려우면 대체로 내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과학 서적은 더욱 그러하다. 공부가 필요한 것이겠지. 어려운 것은 어렵게 설명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동안 여간한 교양서 수준의 물리학 화학 생물학 서적을 더듬더듬, 그래도 꾸준히 읽어왔지만, 이 책은 나로서는 한 챕터도 온전히 이해하기가 불가능했다. 시작부터 용어 설명이 별도로 있어 다소 싸한 기분이 들었는데 - 본문에서 풀어낼 역량이 안됨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기에 - 본문은 예상보다 더욱 답답했다.

상세한 배경 설명 없이 "뉴클레오솜은 구조적으로 유연한데 접힌 구조부터 접히지 않은 구조, 층이 없는 구조, 반 열린 구조, 열린 구조까지 다양하게 압축된 구조가 공존한다. 또한 레지스터 1과 레지스터 2로 표시된 두 종류의 층 쌓기 방식이 존재한다", "형광단백질은 목표로 하는 단백질에 결합해 발현되기 때문에 비특이적 결합이 적어 목표 단백질에서만 깔끔하게 신호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와 같은 문장이 끝없이 나열된다.

결국 독자에 대한 고려가 없었거나, 문과인 내가 무식한 것이다. 관심 분야라 기대감을 갖고 구입했으나 입맛이 쓰다. 귀여운 디자인의 표지는 내용물에 상응하지 않는다. 중간 몇 페이지를 읽어보고 구매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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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초판본, 양장)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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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나무가 조용히 베어져
더 낮은 책장이 됐다.
책장에는 책 한 권과
우리의 편지가 놓였다.
창문은 열리거나 닫혔고
어딘가의 위에는 먼지가 쌓였다.
사람들은 다가와 없는 책을 찾거나
조용히 구석에서 울었다.
때때로 바람이 불고
책장은 나이를 먹었다.
숲과 책은 책장에 대해
침묵했다.
편지는 단 한번도
소리와 함께하지는 못했다.
그저 책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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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미술 이야기 : 내셔널 갤러리 특별판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양정무 지음 / 사회평론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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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관람했던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은 여러모로 인상적이었다. 조반니 바티스타 모로니의 「여인」이 입은 드레스의 붉은 빛깔이 아직도 머릿속에 선하다. 평소 애호하던 윌리엄 터너의 그림들을 본 것도 너무 좋았다. 「서재의 성 히에로니무스」 앞에서 한참을 떠나지 못했던 기억도 있다. 여전히 그림은 내게 어려운 존재이지만, 멀게 느껴지던 것들이 삶의 큰 의미가 되는 순간은 결코 작지 않은 기쁨을 준다.


   양정무 한예종 교수가 영국 내셔널갤러리 자체와 이번에 전시됐던 갤러리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작품들에 대한 소개 자체는 평이하다. 다른 책이나 웹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들과 아주 큰 차별성을 보여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의 다른 '난처한' 시리즈에서 감탄했듯, 작품 또는 작가들이 미술사적으로 위치하는 자리를 이해하기 쉽게 규정하는 능력은 역시나 발군이다. 거기에 터너가 클로드 로랭을 너무 흠모한 나머지 자신의 작품들을 기증하는 조건으로 그의 작품과 로랭의 작품을 나란히 전시할 것을 내걸었다는 부분처럼, 나 같은 초심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의미 있는 잡학'이 곳곳에 담겨 재미를 더한다.

 

   전시회를 가기 전에 책을 봤으면 훨씬 나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도 자연도 예술도, 아는 만큼 보인다. 색과 선, 구도, 이야기, 물성, 그리고 붓의 터치와 작품의 외적 맥락까지. 어디까지 볼 수 있느냐에 따라 느끼는 깊이도 달라진다. 굳이 깊이 느낄 필요가 있는가, 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은 다양하게 있는 법이다. 책 집필의 ‘동기’가 되는 명화전이 끝난 마당에 이 책을 읽는 것은 뭔가 순서가 바뀌었다는 생각도 들지만, 내셔널갤러리에 대한 단순 소개 이상의 무언가가 책에 담겨 있다는 측면에서, 여전히 즐거운 독서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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