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이야기인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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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권뉴스] 2006·01·27

[사설] 스크린쿼터제는 국민들의 ‘좋은 영화’ 볼 권리 제한한다.
영화인들은 집단이기주의 대신 엄중한 국내외 사회현상에 귀 기울여야


정부가 연간 146일에서 73일로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을 발표하자 영화인들이 26일을 ‘문화국치일’로 규정하고 ‘정권 퇴진 운동’ 에 나서겠다며 발끈하고 나섰다.

'한미투자협정 저지와 스크린쿼터 지키기 영화인대책위' 안성기 위원장은 "국민과 영화인들의 믿음을 배신하고 결국 미국의 오만불손한 통상압력에 굴복해 스크린쿼터 축소방침을 밝힌 오늘 이일은 실로 반문화적 쿠데타 그 자체"라고 비난했고, 대책위는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는 재정경제부와 문화관광부, 외교통상부 장관의 사퇴와 대통령 면담을 요구했다.

정권퇴진을 거론하며 3개부처 장관 사퇴를 요구할 정도로 사상초유의 사태를 벌인 영화인들의 분노는 그들 주장처럼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가 국민과 영화인들을 배신하고 강행한 한국 영화의 말살책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이해당사자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조직적 반발에 불과한가.

외국영화의 지나친 시장잠식을 막고 자국영화의 시장확보를 도와주기위한 이른바 ‘국산영화 의무상영제’는 현재 한국 외에 브라질 파키스탄 이탈리아 정도가 시행하고 있는 정도다. 그러나 이들 나라에서 제작된 영화의 질적 수준은 스크린쿼터제의 보호아래 오히려 낙후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지적 또한 만만치 않다.

스크린쿼터제 축소를 두고 영화인들은 미국의 통상압력에 정부가 굴한 것이라고 항변하지만, 이들이 평소 통상압력의 주체인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와 FTA(자유무역협정 free trade agreement)에 맞서다 전용철 홍덕표 등 농민들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할 정도로 정국이 요동을 쳐도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은 자신들 ‘밥그릇 챙기기’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영화인들이 스크린쿼터제가 불거져 나올 때마다 ‘국민과 영화인들’을 하나로 묶어 대정부 공세에 치중하는 것도 온당치 않다. 국민들 입장에서 스크린쿼터제는 외국의 좋은 영화를 볼 권리를 제한하는 제도로 영화인들의 이해와 크게 상충한다. 상영일수 제한으로 인해 상업성이 큰 헐리우드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만 수입되기 때문이다.

최근 권태신 재정경제부 제2차관이 스크린쿼터제에 집단이기주의가 있다면서 “김대중 대통령 시절 국산영화 점유율이 40% 넘으면 스크린쿼터를 줄이겠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59%까지 올라간 상황”임에도 영화인들이 “자기 것만 잃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한 것을 두고 영화계에서는 말이 많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스크린쿼터제가 저질 국산영화를 키웠다는 취지의 발언을 통해 이 제도의 축소 또는 폐지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스크린쿼터제는 기본적으로 영화관람객의 영화선택권과 극장주의 영업자유를 침해하고 국내 영화사업자들의 경쟁력 향상을 저해할 수 있다”(문학진 의원에게 보낸 국정감사 자료)고 한 것은 일리있는 지적이다.

평소 한류의 선봉으로 대외 경쟁력을 자랑하던 영화인들이 이번 스크린쿼터제 축소로 한국 영화가 일순간에 망할 것처럼 ‘정권퇴진’까지 들고 나온 것은 어쩌면 자신들이 만든 영화가 그만큼 부실하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60%에 근접한 점유율을 확보한 국산영화 시장이 무너진다는 건 지나친 걱정이다.

국민들은 미국이 대주주인 신자유주의 파고로 인해 비정규직과 실업 빈곤에 시달리며 가족이 해체되는 고통을 겪고 있다. 또 시민사회단체들은 신자유주의를 강요하는 강대국들의 공론의 장인 WTO각료회의와 APEC에 맞서 투쟁을 세계화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영화인들이 스크린쿼터제 앞에서 ‘집단이기주의’라는 비난을 받지 않으려면 이같이 신자유주의 아래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엄중한 국내외 사회현상에 귀 기울여야 한다. 또 오락위주의 대형 블록버스터만 전횡하는 한국영화계 풍토에서 우수한 독립영화들이 배제되는 등의 영화계 내 빈부양극화 현상에 깊은 자성이 일어나야 한다.

[한국인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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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06-01-28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잘 모르지만 ^^;;
상영일수 제한으로 인해 상업성이 큰 헐리우드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만 수입되기 때문이다. <- 이건 맞는 것 같아요.
이 동네에서 조용히 개봉하는 좋은 영화들이 아예 개봉되지 않거나 한 1-2년쯤 뒤에 개봉되는 경우를 많이 봤거든요.

balmas 2006-01-28 0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런 것 같더라구요.
영화를 좀 보려고 해도 외화나 국산 영화나
대형 극장에서 하는 개봉영화들은 사실 별로 땡기는 영화들이 없어요.

cplesas 2006-01-28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크린쿼터제가 (좋은) 작품에 지원을 하는 제도는 아닌데,
왜 그런 식으로 오해되곤 하는지 모르겠어요.
오히려 쿼터제라는 우산 아래서 경쟁력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외 구분 없이)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우선권을 쥐고
배급에서부터 관객들의 다른 영화 볼 권리를 박탈해버린다고 말한다면 오바일까요.

둥가 2006-01-28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순히 스크린쿼터제를 사수하는게 아니라 예술영화, 독립영화를 사수하는게 필요할 것 같아요. 소수 영화인들이 주장하는 예술영화를 대상으로 한 스크린쿼터 같은 것이 지금으로선 더 필요할 듯 하네요.

헤르베르트 2006-01-28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크린 쿼터를 둘러싸고 있는 (내가 잘 모르는)많은 쟁점들이 있는 것 같아 함부로 얘기하지는 못하겠지만 갠적으로 예전부터 영화인들이 스크린쿼터 사수한답시고 벌이는 투쟁같은 행위가 썩 맘에들지 않아 관련된 것들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있는 편인데, 퍼오신 기사에 실린 안성기 옹의 발언도 별로 다르지 않게 보이는군여. 그렇다고해서 쿼터제 축소가 선택권을 넓히고 평균적인 작품성의 상승을 위한 논리로 사용될수는 없다. 는 생각을 동시에 하게 됩니다. 더군다나 더욱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것은 예술영화에 대한 (제가 보기엔 거의)무비판적인 태도인데 최근 몇년간 국내 '언더그라운드(제가 임의적으로 사용하는 표현)' 영화가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해서 인디씬(이라고 할수 있다면) 전체에 투자와 관심을 요구하는 것은 마찬가지 의미에서 불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의 예술.독립.인디 씬 전체를 같잖게 보고있기 때문에..) 실제로 그리 된적은 별로 없다고 해도 적어도 유식해 보이는 몇몇 프론티어들은 그런 식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듯 하는데 이에대한 성찰적인 모습을 거의 보지 못해서일까요.

balmas 2006-01-31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영님, 둥가님, 헤르베르트님, 댓글 감사합니다.

2006-02-03 2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2-03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코메디 한편…조선·중앙, 언론노조 위원장 집에 경품·무가지 살포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고 했는데….

신문업계에서 수위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는 조선·중앙일보가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됐다. 신문시장의 혼탁상을 바로잡기 위해 최일선에서 뛰고 있는 신학림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의 집에 과도한 경품과 무가지를 살포하다가 걸렸기 때문이다.

http://news.media.daum.net/snews/society/media/200601/25/dailyseop/v11503254.html

 

ㅋㅋㅋ

인간들 정말 여러 가지 하네 ...

55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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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6-01-26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놈들 잘 걸렸다. ^^

balmas 2006-01-26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happyant 2006-01-26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하하. 재밌습니다.^^

비로그인 2006-01-26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ㅋㅋ

balmas 2006-01-26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appyant님/ 그런데 또 나름대로 어려운 사정들이 있더구만요.
한겨레 보니까 지국장 자살 기사가 있더라구요. 에효 ...
자꾸 때리다님/ 이건 또 무슨 이모티콘??

비로그인 2006-01-26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TL의 신 버젼 입져.ㅋㅋ

balmas 2006-01-27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그렇군요 ...
 
 전출처 : 쎈연필 > 쌓인 눈은 누가 밟아 주리

죽음은 바로 옆에 있다. 죽음은 드리워진 그림자처럼 성큼 다가서 있는데. 죽음은 공유될 수 없다. 죽음은 오롯이 타인의 죽음이다. 내가 체험하는 순간 나는 이곳에 없다. 삶이라는 상자를 열고 날아가 버리는 것.

죽는 순간 몸 안의 배설물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안에 있는 건 유동적이고 흐물흐물하다. 딱딱한 건 안에 있을 수가 없다. 그것, 우리가 보기 싫어하는, 안 보는 우리의 몸이란 실상 얼마나 부드럽고 눅눅하고 따뜻한가? 죽음은 이러한 속엣것들이 밖으로 나오는 계기다. 집중된 힘이 흩어져 나가는 것. 탄력을 유지한다는 건 집중해서, 흩어져 나가는, 사라져 가는 것에 저항하는 것. 죽는다는 건 급속도로 흩어져, 잘려, 부서져, 찌그러져, 으깨어져, 떨어져, 분해되어, 부패해, 사라져 가는 것.

근사하게 말하면 흙으로 돌아가는 것. 그 과정은 우리가 보고 싶지 않은, 이를테면 여행도중 눈길에 미끄러져 전복된 승합차 안에서 온몸이 으깨어질지 모를 어떤 것. 몸이 불 구덩이 속에서 산산히 분해되는 것. 내가 죽어 누워 있지도 못하고 흩뿌려지는 것. 공기 속을 오래도록 부유하며 사라져 가는 것.  

우리는 죽음을 발설하고 싶지 않다. 우리 곁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을 환기하게 되기 때문이다. 재수 없기 때문이다. 저 너머에 봉인하고 싶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죽음을 향해 있고, 우리는 전생애를 감내하면서 죽음을 사유해야 한다. 그리하여 모두가 시선을 회피하는 저 너머를 응시해야만 자기의 존재를 개진해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은 그 끔찍한 (어쩌면 진실로 안식처일지도 모를) 곳을 지독하게 응시하려는 사람이었다. 범벅된 피, 고통, 상처; 그는 절대로 외면하지 않고 그대로 밀고 나아갔다. 너무 아픈 글만 쓰는 그가 안타까웠고, 읽는 것도 힘들었지만, 나는 그를 응원했다. 그가 나아가서 저 너머에 있는 죽음을, 이겨 버리기를.

그래서 죽음은 두려웠나 보다. 자기의 비밀이 시나브로 파헤쳐질까 봐. 죽음은 시인이 두려워서 일찍 잡아갔나 보다. 젊어서 죽음은 억울하다. 안타깝다. 아깝다.

나는 그를 단 한번 마주친 적 있다. 명동 어느 오르막길에 있는 까스등이라는 어두침침한 술집이었는데, 그는 말이 아예 없었고 표정은 어두웠으나, 늘 밝은 얼굴을 한 그의 애인과 퍽 다정해 보였다. 그의 애인은 그를 자랑하진 않았지만 자(사)랑스러워하는 얼굴이었다. 아름다운 연인이었다. 그에게 어색한 인사라도 건네고 싶었으나 나는 원체 숫기가 없었다. 그리 멀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와 나는 몹시 친해질 것 같은, 그래서 언젠가 형, 하고 부르게 될 것 같은, 그런 막연한 예감이 들었다.

나는 그의 죽음을 슬퍼할만한 사람이 못 된다. 나는 그를 피상적으로만 알 뿐이다.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또, 아주 많이 외로웠던 사람이라고. 그를 모르지만, 그의 시는 안다, 고 말할 정도로 읽었다. 발표된 그의 모든 시를 애독했으며, 애독하며, 애독할 것이다. 그의 재학 시절 시들도 문집에서 모두 찾아 읽었으니 나는 그의 시를 조금이라는 수식어보다는 많이에 가깝게, 좋아하나 보다. 유고를 엮을 만큼 그의 시가 발표되었을지는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의 유고를 많이 사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할 수 있도록 건네 주는 일, 그리고 그가 개진했던 저 너머의 세계를 직시하며, 온 몸으로 밀고 나아가는 일. 요며칠 슬프다, 마음이 아프다는 말은 한 마디도 못하고, 그저, 아깝다, 안타깝다, 라는 말만 입으로 궁글리고 있다. 내일은 또 시를 제출할 테고, 같은 교실에서 같은 선생께 마지막으로 시를 배울 것이며, 나는 학우의 시에 대해 떠들어 댈 것이다. 도대체.

그의 시 몇 편 그리고 그의 숨결이 생생한 홈페이지 주소다. 마치 죽음을 예감하기라도 한 듯한, 마지막 게시물과 배경음악이 자꾸만 가슴에 걸린다. 그의 명복을 빈다.

 

               가족사진 
                                           신기섭


그들은 모두 맨 바닥에 누워 있었다
저마다 간격을 두었지만 서로의 핏물이
커튼처럼 그 간격 꼼꼼히 닫아 주었다
무엇을 꼭 끌어안은 모습으로 누워있는 여자의
발치엔 아기가 구토물같이 엎질러져 있었다
아파트 베란다마다 얼굴을 가린 여자들의
짧은 비명소리 같은 엄마!
(엄마, 언제부턴가 모든 엄마는 비명이었다)
깊이 파헤쳐진 무덤처럼 누워있는 여자
얼마나 귀가 찢어질 듯한 짧은 엄마인가?
혼자 멀찍이 떨어져 누운 여자의 사내는
여전히 술냄새를 풍겼으므로
그의 핏물은 거침없이 여자에게로 향했다
이제는 피로써 스밀 수 있다는 걸
딱딱하게 굳어 떨어지지 않을 때까지 
그들은 눈을 감지 않아도 알 수 있으리, 순간
카메라 불빛이 터졌다, 그들도 이 생에서
눈을 뜨고 가족사진을 박는다

 

               나무도마


고깃덩어리의 피를 빨아먹으면 화색(和色)이 돌았다
너의 낯짝 싱싱한 야채의 숨결도 스미던 몸
그때마다 칼날에 탁탁 피와 숨결은 절단났다
식육점 앞, 아무것도 걸친 것 없이 버려진 맨몸
넓적다리 뼈다귀처럼 개들에게 물어뜯기는
아직도 상처받을 수 있는 쓸모 있는 몸, 그러나
몸 깊은 곳 상처의 냄새마저 이제 너를 떠난다
그것은 너의 세월, 혹은 영혼, 기억들, 토막난
죽은 몸들에게 짓눌려 피거품을 물던 너는
안 죽을 만큼의 상처가 고통스러웠다
간혹 매운 몸들이 으깨어지고 비릿한 심장의
파닥거림이 너의 몸으로 전해져도 눈물 흘릴
구멍 하나 없었다 상처 많은 너의 몸
딱딱하게 막혔다 꼭 무엇에 굶주린 듯
너의 몸 가장자리가 자꾸 움푹 패여 갔다
그래서 예리한 칼날이 무력해진 것이다
쉽게 토막 나고 다져지던 고깃덩이들이
한번에 절단되지 않았던 것이다
너의 몸 그 움푹 패인 상처 때문에
칼날도 날이 부러지는 상처를 맛봤다
분노한 칼날은 칼끝으로 너의 그곳을 찍었겠지만
그곳은 상처들이 서로 엮이고 잇닿아
견고한 하나의 무늬를 이룩한 곳
세월의 때가 묻은 손바닥같이 상처에 태연한 곳
혹은 어떤 상처도 받지 않는 무덤 속 같은
너의 몸, 어느덧 냄새가 다 빠져나갔나 보다
개들은 밤의 골목으로 기어 들어가고
꼬리 내리듯 식육점 셔텨가 내려지고 있었다

 

               등대가 있는 곳


위층에서 터진 물소리가 점점 커진다
그는 또 여자의 머리채를 잡고 노를 젓는다
여자의 몸이 욕실바닥을 휘젓는 소리
살림이 난파되는 소리 비명소리 속으로
콸콸 물이 쏟아지고 있는 중이다
지난 오후 내내 베란다에 앉아있던 여자의
흐느낌은 물소리였다 이내 길고 긴
골짜기가 되었다 화분이 하나 둘 흘러갔고
앞날을 모르고 웃고 있는 환한 사진들이 흘러갔다
불붙은 편지는 뒷걸음질치며 느리게 흘러갔고
우수수 머리카락들이 흘러갈 때
멀리 먼 바다의 문어대가리처럼 지던 태양은
먹물 같은 어둠을 갈겨 버렸다
그때 첨벙첨벙 어둠을 밟으며 장화 신은 그가 온 것이다
늘 바다 비린내가 나는 그의 몸,
그는 거친 뱃사람인 것이다 그러나
한번도 갑판에 올라본 적 없는 선장
토막나고 썩은 물고기만 가득 싣고
그의 배의 바깥 손잡이를 끌며
허우적댔다 시장과 거리에서, 그는 자주 목격됐다
과중으로 인해 배의 뒤축이 침몰해 버릴 때면
그의 굽은 몸도 덩달아 들려 올려져 배와 함께
물 위로 입을 내민 고래처럼 포효하곤 했었다
해가 저물고, 그의 배가 여자의 골짜기 끝에 정박했던 것이다
흘러간 것들을 다시 건져 올라온 그가
어딘지 모를 먼 곳으로 향해를 시작한 밤
물소리는 끝이 없고
도대체 저들은 어디까지 흘러간 것일까
귀를 막고 창문을 내다보면 너무 많은
등대의 불빛, 불빛들

 

              현기증


칼을 쥐고 변소에 갔다 변소에 매달린 끈을
끊으러 간다 끈을 잡고 반쯤 서서 일 보던
당신의 몸속에는 숭숭 구멍이 뚫려 있었고
구멍들 중에 오래 전 내가 살다 나온 구멍 하나;
나를 내 뱉던 그날의 그 구멍처럼 변소가
뜨겁다 탯줄 같은 끈을 끊는데 우글우글 핏빛 똥통 속
구더기들 끓는 냄새 잉잉 파리떼 소리
덩달아 내 온몸에 맺힌 땅방울이 끓는다
툭, 끈은 끊어지고, 그러나 나는 왜 아직도 갇혀 있나?
자궁 속 태아 자세로 웅크리고 있는데
점점 밀려오는 환한 빛; 고개를 숙이고
빛을 향해 나는 머리부터 먼저 내밀고 나가는데
누군가 내 머리를 쭈욱 잡아빼고 있다
바짝 곤두서는 머리칼! 나의 몸이 솟구친다.
빛이 입속으로 들어와 빛을 먹여준다.
빛을 입에 물고 빛에 안겨 숨막히는 이 순간
나를 꼭 안았다가 다시 놓아주는 빛, 한없이
나는 떨어져 내리고 빛은 사라져서 그늘진
마당에 주저앉아 나 이제 숨 쉰다. 희뜩희득
엄마를 죽이고 세상에 나온 신생아처럼

 

              아버지와 어머니


그가 보는 동물의 왕국 속; (뱀이 뱀을 먹으며 죽어간다
같은 황토色 비늘이라 얼핏 보면 한 마리 같다
처음과 끝이 꼬리인 길고 긴 몸
뱀의 대가리는 몸 가운데에 멈춰 있다
그 두 눈빛은 핏빛이다 힘껏 뒹굴어도 끊어지지 않는
몸, 속으로 못 박히듯 또 다른 몸이 채워지고 있다
황토色 비늘이 붉은 잔금들로 깨지기 시작한다
천천히 먹어치우며 가는 몸은 멀고 먼 길이다
고독한 길 뱀은 자꾸 이빨을 박으며 간다
독은 길을 따라 몸속으로 서서히 퍼진다
이 끔찍한 길은 포장도로처럼 딱딱하게 굳는다
꾸역꾸역 삼키며 가는 길 뱀은 찔끔 눈을 감는다
그러자 몸속으로 스스로 기어들어가는 길
어쩌면 처음부터 저도 함께 안간힘 쓰며
몸속으로 밀려왔을, 서로의 몸 끝까지 가지 못하고
멎어버린다면 그 모습 얼마나 웃길까?
사랑은 그런 것, 천천히 몸속을 기어가는 숨막히는 길
서로 다른 끝을 보며 스쳐가듯 하나가 되는 고통 속
다시 슬그머니 눈을 뜬 뱀의 눈이 깊어졌다
함께 가자, 아가리를 크게 벌리고 뱀은 운다
커다랗게 부풀어오르며 완전히 하나가 된 시뻘건 몸
천천히 굳어가는데) 그가 보는 동물의 왕국 전원을
강제로 꺼버리는 그녀, 쩌억 벌어진 입에서
독이 쏟아지고 뱀 먹는 뱀처럼 갈 길이 정해진 듯
거실을 기어가는 늙은 몸 하나

 

              이발소 가는 길
 

손등에 글씨를 쓰고 날갯짓을 한 문창과 동생,
몸이 무거운 새* 그 날개에 남겨진 글씨; 삶이 무겁다
상투적이지만……이발소를 찾아가는 이 저녁, 삶이
무겁다 벌써 초겨울 낙엽 깔린 佛光洞 골목,
가슴을 내놓고 박수를 치는 여자; 이제 두 돌이 지났다고
많이 컸다고……(내 눈엔 보이지 않는 무게) 죽은 아기가
크고 있다 나날이 커질 무게, 행복하고 불행한 무게.
그나저나 이발소는 보이지 않고, 제 똥 보고 좋아라 하는
변비 환자같이 떨어진 무게를 굽어보는 홀가분한 가로수들,
처럼 잘라달라고 할까? 뜨거운 이발소 수건에 덮여
벌겋게 익을 얼굴 하얀 거품이 발린 무게 덩어리.
이발사는 칼을 들고 나를 내려다보며 말하리라, 눈 감으세요.
그러나 얼마 만에 와보는 이발소인데 어둡고 한산하다.
의자에 앉아 이발소의 꽃, 달력 속 벗은 여자를 바라본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발기하는 몹쓸 무게 순간
대문처럼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는 전신거울, 거기
환하게 나타나는 붉은빛 통로! 어서 건너오라고
내게 손짓하는 여자! 잘못 온 길인데 제대로 온 길같이
설레다 머릿속의 무게들이 가볍게 떨리고 온몸 가득
퍼져나가는 (((떨림))) 천천히 입이 벌어지고, 삶이……
상투적이라서 말하지 않기로 한다.


* 그의 문집 제목임

 

http://xodd1234.ne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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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

 

 

Marie-Louise Mallet, Ginette Michaud ed, Jacques Derrida , Herne (7 octobre 2004)

Collection : Les Cahiers de l'Herne
Format : Broche- 628 pages
ISBN : 2851970984
Dimensions (en cm) : 21 x 3 x 27

이 책은 Herne 출판사에서 내는 Cahiers de l'Herne[카이에 드 레른느]라는 총서 중 

한 권이다. 매 권마다 유명한 작가나 철학자, 사상가 한 사람을 골라서 그에 대한

글들과 그 사람의 미발표 글들을 함께 묶어서 내는 책이다.

횔덜린이나 랭보, 프랑시스 퐁주, 베케트,예이츠, 브레히트, 마르그리트 뒤라스 같은 작가들도 있고,

 시몬 볼리바르나 마오처퉁 같은 정치가도 있고,

쇼펜하우어나 레비-스트로스, 리쾨르 같은 철학자들도 있다. 데리다는 83번째 주제인 셈이다.

 

값은 50 유로 ...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하면 약 6만원. 5유로 할인을 했으니까, 약 5만 5천원 정도.

그런데 판형도 크고 좋은 글들이 아주~ 많다.

데리다 지인들이 데리다에 대해 쓴 짧은 회고담이 한 10여편 되고,

데리다에 관한 저명한 연구자들이 쓴 논문들이 한 40여편(발리바르의 글도 한 편 있구나)

미발표된 데리다의 원고가 한 6편 정도 ...

이 정도면 본전을 뽑고도 남을 만하다.

책 판형이 크고(보통 책 두 배쯤 되네) 분량도 많은 편이니까 양적으로도 그렇고.

어느 것부터 읽어볼까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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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1-24 0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딱 피면, 페이지가 줄줄줄 흐르는거 아니에요?

balmas 2006-01-24 0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마치 그러기를 바라는 듯 ...
하지만 아니올시다. 이번 책은 실로 단디 묶었음.

balmas 2006-01-24 0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표지를 들여다봤더니,
사진을 너무 실물감 있게 찍어서, 깜딱 놀랐음 ...

아영엄마 2006-01-24 0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저는 처음에 그림보고 발마스님이 담배파이프 사신 줄 알았슴다..^^;;

balmas 2006-01-24 0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담배 파이프 ...

Kitty 2006-01-24 0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교양이 줄줄줄 ^^;;
오늘도 늦게 주무시는군요~ 반가워요~!

하이드 2006-01-24 0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키티님, 반가워요~! 키티님 스토커 하이드!

balmas 2006-01-24 0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두 분의 극적인 상봉을 보니 눈물이 ... ^^;
키티님/ 오, 대단한 통찰력. 데리다 얼굴에서 교양이 줄줄 흐르는 게 보이삼? ^^
저는 오늘은 아직 두어 시간 더 있다가 잘 것 같음~~

비로그인 2006-01-24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서는 주로 어디에서 사세요? 아마존? JPC?

숨은아이 2006-01-24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리다 아자씨가 저렇게 생기셨군요. *,*

balmas 2006-01-24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꾸 때리다님/ 아마존에서 주로 사지요. 제일 편리하고 사고도 거의 없고 하니까
아무래도 제일 애용하게 되더라구요.
숨은아이님/ 예, 저렇게 생겼답니다. 말년의 사진 ...

둥가 2006-01-26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번역하실 계획은? ^^ 아 글구 이번에 목소리와 현상이 재번역되서 출판되었는데 믿을만한 번역본인지요. 글구 앞으로의 출판 계획은 어떤지 물어도 될까요? 글구 연대 대학원 스피노자 강의안이 빨리 보고 싶네요. 미리 예습이라도 하고 싶어서요. 이런........ 이것저것 마구 요청해서 죄송함다~~

balmas 2006-01-26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을 번역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ㅎㅎ 왜냐하면 분량이 너무 많은 데다가 데리다 저서도 아니기 때문이죠. 데리다 글들 중에서 한 두어 편은 나중에 선집으로 묶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더군요.
출판 계획은 뭐, 일단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과 발리바르의 [세계화와 반폭력의 정치]를 1학기 안에 내는 게 목표지요. 그리고 2학기 중에는 리오타르의 [Differend]를 내고, 그 이외에 공동 논문집 한 권 정도 내는 게 현재로서는 목표라면 목표겠지요.
스피노자 강의안은 지난 번에 올린 것과 비슷한데, 다음 주쯤 올리긴 올려야겠네요. :-)
[목소리와 현상]이 나왔군요. 제가 아는 후배가 번역한 건데, 아직 읽어보지
못해서 뭐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읽을 만한 번역본일 것 같군요. 원래 후설을
공부한 친구인데, 석사 논문을 [목소리와 현상]을 주제로 썼거든요. 저도
한권 사봐야겠네요.

yoonta 2006-01-27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에티카라도 좀 재번역해주시면 안될까요..강영계교수님 번역은 읽기가 넘 힘들어요..오역도 종종 있는거 같공..

balmas 2006-01-27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yoonta님, "[에티카]라도"라뇨?
[윤리학] 번역은 정말 작심하고 달려들어야 겨우 할 수 있을까 말까 한
일인데요. 스피노자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윤리학]을 번역하고 싶은 마음이야
다 가지고 있겠지만, 쉽게 생각하고 할 일은 아니니까 선뜻 말씀드리기는 어렵네요. 하지만 언젠가 하긴 해야 할 일인 건 분명합니다.

비로그인 2006-01-27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오타르의 Differend 을 번역하신다구요 @@ 근데 이 책 제목이 "분쟁" 인가요 "차이" 인가요?

balmas 2006-01-27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ifferend]은 번역하기가 어려운 단어죠. 차이라고 하기는 어렵고, 분쟁이 좀더
가깝기는 하겠지만, 글쎄요, 그게 좋은 번역어일지는 ...

2006-02-01 2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문헌으로 인권읽기] 국가인권기구의 지위에 관한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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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은숙 
이 원칙은 일명 '파리 원칙'(Paris principles)으로 알려져 있는데 1991년 파리에서 열린 제1차 국가인권기구 국제 워크숍에서 제정되고 1993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원칙이다. 유엔이 국가인권기구라는 제도를 얘기한 것은 일찌감치 1946년의 일이었다. '국가인권기구의 구조와 기능에 관한 지침' 등이 기본적인 문서 역할을 하다가, 여러 나라 국가인권기구들의 경험 축적을 기반으로 다시 집대성한 것이 이 원칙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1년 11월에야 국가인권위원회가 설치되었다. 설치 과정에서 국가인권위를 일부 국가기관의 부속물로 만들거나 그 권한을 유명무실한 것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계속됐고 인권단체들은 4년여 동안 이에 맞서면서 두 차례의 폭염과 혹한 속에서의 단식농성으로 국가인권위의 제대로 된 설치를 요구했다. 국제기준에 턱없이 모자란다는 아쉬움 속에서도 사회적 약자들이 비빌 언덕이 되라는 기대를 갖고 국가인권위의 출범을 환영했다. 그리고 국가기관을 감시·견제하는 국가인권위의 활동을 감시·견제해온 것이 인권단체들의 활동이었다.

그런데 국가인권위가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이란 걸 내놓은 요즘 비난의 폭죽놀이가 벌어지고 있다. 세금을 축낸다느니, 무국적 기관이라느니, 헌정질서를 무시한다느니, 산업현장에 갈등과 혼란을 부추긴다느니 하는 것들이다. 행동이 아니라 단지 입을 열었다는 것만으로도 일부 언론과 정치인, 재계의 면박을 받기 일쑤인 것이 국가인권위원회의 처지이다. 더 적극적인 국가인권위의 행동에 목말라하는 인권피해자들의 편에서 보면 국가인권위의 존재, 아니 인권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들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한때 유행하던 우스갯소리로 약국에 가서 당근을 달라고 하는 토끼 이야기가 있다. 국가인권위에 대한 공격에 핏대를 올리는 이들을 보면 그 토끼가 떠오른다. 국가인권위가 뭔지도 모르면서 함부로 역할을 바꾸고 호통을 치고 있다. 핏대를 올리는 자신들을 지켜보기 위한 감시견으로서 국가인권위가 존재한다는 걸 모르고 감시견이 자기 바지자락을 물었다고 항의하는 꼴이다.

'국가인권기구의 지위에 관한 원칙'에 따라 하나씩 살펴보자.

국가인권위는 국가 내부의 '반성문' 쓰는 장치이다. 인권을 보장해야 할 국가기관이 실제로는 인권의 주요 가해자인 일이 다반사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국가기관을 잘 살펴보고 반성문 쓰게 하고 대안을 만들라고 하는 장치이다. 민간 인권단체들이 분명 그런 역할을 하고 있지만, 국가인권기구를 설치하는 것은 인권보장이 국가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민간이 할 역할은 역할이고, 국가 자신의 임무인 인권보장의 일을 똑바로 하라고 국가기구를 만들 것을 국제사회가 합의한 것이다. 자기 내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일이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국가인권위를 국가기구로 만들더라도 다른 어떤 국가기구로부터도 영향 받지 않는 '독립적인' 국가기구여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예산을 깎겠다느니 없애버려야 한다느니 하는 말은 국가인권위의 독립성을 정면으로 훼손하는 짓이다.

국내의 헌법이나 법률에 의해 설치될지라도 국가인권위는 국제적으로 승인된 인권규범을 자국에 적용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국내법만이 아니라 국제인권규범을 활동의 틀로 갖는다는 것이다. 그런 인권위에게 국내법을 무시한다고 질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인권에는 실정법이 아우르기 힘든 회색영역이 존재한다. 기존 질서에 부합되는 법규정만으로는 진전될 수 없는 인권상황이 존재한다. 사법기관의 판단과 다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존재한다. 그런 국가인권위에 법질서 훼손을 운운하는 것도 무지의 소산이다.

진보단체 쪽의 의견만 반영해서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이 문제라 하는데, 그럼 국가인권위가 대기업이나 정부 관계자들과 친해야 할까? 인권피해자들이나 그들을 옹호하는 인권단체와 가까워야 할까? 민간 인권단체와의 협력은 국가인권위가 지켜가야 할 기본적인 행동양식이다. 인권단체와의 협력을 하지 말라는 것은 국가인권위의 타락을 방치하는 꼴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국가인권위는 국가기구를 내부에서 감시·견제하는 장치이고, 인권단체들은 여타 국가기구들과 국가인권위를 감시·견제한다. 인권단체들이야말로 국가인권위를 향해 항상 따가운 회초리를 준비하고 있는 당사자들이다.

입만 열면 '선진국' 수준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인권을 빼놓고 달리겠다 하니 그 차에 승차할 수는 없다.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을 기업이미지 광고의 화려한 영상이 악몽으로 보이고, 화려한 정부 정책의 청사진이 누렇게 보이는 것은 새로 떠오르는 인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이미 오래전에 인정되고 확인·재확인돼온 기본적인 인권조차 무시하기 때문이다. 인권의 주인들은 인권 감시견을 인권가해자가 걷어차는 현실을 가만 두고 보지 않을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국가인권기구의 지위에 관한 원칙(Principles relating to the status of national institutions, 유엔총회 결의안 48/134, 주요내용 요약)
[권한]
-국가인권기구는 인권을 보장하고 향상시키는 필요한 광범위한 권한을 확보해야 하며, 이러한 권한은 헌법이나 법률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야 한다.
-국가인권기구는 인권의 보호 및 향상을 위한 자문, 인권을 위한 교육과 홍보, 국제협력, 인권침해에 대한 조사 및 구제 등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권한을 확보해야 한다.
-국가인권기구는 권한에 속하는 모든 사안을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심사할 수 있어야 한다.

[독립성]
-국가인권기구가 국가권력의 남용을 견제할 수 있으려면, 헌법이나 법률을 통해 모든 국가기관으로부터 독립하여 활동할 수 있는 제도적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지위와 권한의 독립성
-국가인권기구가 정부나 여타 공공기관, 사적 단체로부터 간섭이나 방해를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의사를 결정하고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권한과 법적 지위를 보장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국가인권기구는 입법·사법·행정 등 모든 국가기관으로부터 독립하여 설치되는 것이 필수적이다.

□업무의 독립성
-국가인권기구가 자체적으로 마련한 절차규칙에 따라 일상적 업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정보제공 요청 등 다른 기관, 특히 정부기관의 협조를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해야 한다.

□재정적 독립성
-국가인권기구는 활동의 물적 기반이 되는 재정을 다른 국가기관으로부터 독립하여 안정적으로 그리고 충분히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인권기구가 자체적으로 예산을 편성하고 직접 국회에 제출, 승인을 요구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며 어떤 형식으로든 다른 정부부처의 예산에 연계되어서는 안된다.

[운영방식]
-국가인권기구는 권한에 관한 모든 사안을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회의체계의 구성이나 소집 등 운영방식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인권기구는 의견이나 권고사항을 직접 또는 언론기관을 통하여 널리 알리고 여론에 호소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인권기구는 특히 취약집단이나 특정 지역의 인권을 보호하고 향상시키는 데 헌신하고 있는 민간단체와 협력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

[준사법적 권한]
-국가인권기구는 개별적인 인권침해에 관한 진정을 접수받아 신속하고 저렴한 방법으로 피해자를 구제할 권한을 가질 수 있다.
-실정법상 명백한 범죄행위로 보기 힘든 이른바 '회색영역'의 인권침해문제를 조사하고 구제할 수 있다.
-국가인권기구가 인권침해에 대한 조사와 구제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진실을 규명할 수 있는 충분한 권한을 보장받아야 한다. 조사에 필요하다면 누구든지 청문할 수 있어야 하며, 필요한 모든 정보나 문서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조사결과 인권침해가 확인되었을 때에는 피해자에게 적절한 구제조치를 제공할 수 있는 결정의 효력을 보장받아야 한다.
인권하루소식 제 2976 호 [입력] 2006년01월20일 0:2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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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1-21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퍼갑니다. 고맙습니다.

balmas 2006-01-22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그러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