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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배들 - 이성에 관한 두 편의 에세이
자크 데리다 지음, 이경신 옮김 / 휴머니스트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이 책 <불량배들>이 국역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편으로 기쁘면서도 한편으로 걱정이 되었다. 이 책은 올해 초에 나왔고, 따라서 출판사에서 저작권 계약을 하고 역자 섭외를 하는 일 등에 걸리는 시간을 감안한다면, 이 번역본의 출간은 불과 4-5개월만에 번역이 끝났다는 것을 뜻하는데, 데리다의 극도로 미묘한 글쓰기를 생각할 때 과연 번역이 충실할지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걱정은 끔찍하게도 사실로 드러났다. 나는 지금 책을 사서 불과 30여쪽을 읽었지만, 일일이 밝히기가 민망할 정도로 책의 첫부분부터 터무니없는 오역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래도 프랑스 철학 전공자(그것도 프랑스에 유학중인)가 한 번역이라 혹시 했지만, 이건 정말 해도 너무 하다 싶을 만큼 이 책은 오역으로 점철되어 있다. 근거없는 중상이라는 소리는 듣기 싫으니까 몇 개의 예만 들어보자.
9쪽 번역문: “그녀가 개시하여 말하고, 자신의 사랑을 고백한다. 비록 그녀가 나르시스의 “오라!”를 반복하며, 나르시스의 어떤 말의 메아리로 울린다 할지라도 첫번째로 호소한다.”
Elle dit de façon inaugurale, elle déclare son amour, elle appelle pour la première fois, tout en répétant le "Viens!" de Narcisse, tout en se faisant l'écho d'une parole narcissique.
수정 번역문: “그녀는 나르시스의 “나오라!”를 온전히 반복하면서도, 자신을 온전히 나르시스의 말의 메아리로 만들면서도, 자신이 최초로 말하듯이 말하며, 처음으로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고, 호소한다.”
이는 데리다가 오비디우스의 <변신>에 나오는 에코와 나르시스의 이야기를 끌어들여, 에코가 나르시스의 말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지만, 이 되풀이의 행위 자체에서 새로운, 따라서 최초로 일어나는 어떤 것,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고 있음을 밝히는 구절이다. 그 다음 번역을 보자.
번역문: “내가 여기서 이 “변형들”을 보충적으로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는 까닭은 이 유명한 장면 속에서 모든 것이 어떤 “도래할” 호소 주위를 선회하기 때문이다. 또 매번 새로이, 차례로, 이번을 마지막으로 줄곧 “도래하고” 있는 것이 “도래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곳에서 예측불가능한 것과 반복이 교차할 때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가장 강력하게 주장되고 있는 주제가 바로 그것이다.”
Si je parais insister ici avec complaisance sur ces Métamorphoses, c'est que tout tourne, dans cette fameuse scène, autour d'un appel à venir. Et que c'est là, au croisement de l'imprévisible et de la répétition, en ce lieu où, chaque fois de nouveau, tour à tour, une fois pour toutes, on ne voit pas venir ce qui reste à venir, le motif le plus insistant de ce livre(p. 11).
수정 번역문: “만약 내가 여기서 자기만족에 빠져 『변신』의 이 대목에 집착하고 있는 듯 보인다면, 이는 이 유명한 장면에서 모든 것은 나오라는 호소/도래에 대한 호소/도래할 호소[appel a venir-이는 적어도 이 세 가지 의미로 번역될 수 있다] 주위를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 예견 불가능한 것과 반복이 교차하는 곳에, 매번 새롭게, 차례대로/돌고 돌아서(tour a tour), 마지막으로 한 번, 도래할 것으로 남아있는 것이 도래하고 있음을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이 장소에, 이 책의 가장 집요한 동기가 놓여있기 때문이다.”
32쪽 번역문: "영불 해협 너머, 그리고 대서양 너머에 있는 몇몇 사람들은 스리지에서의 decade 기간을 위해 등록하는 것조차 주저하게 되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스리지에서 단번에 10년 동안 체류해 이야기하면서 무엇보다도 어떤 불량배의 말을 들어야만 할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또 그들은 자신들의 그리스어와 라틴어, 즉 decade를 잊어버린 채 안심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J'imagine que certains, outre-Manche et outre-Atlantique, hésitent encore à s'inscrire pour une décade à Cerisy parce qu'ils craignent de devoir y séjourner, y parler et surtout y écouter quelque voyou d'un seul trait pendant dix ans. C'est qu'ils en perdent leur grec et leur latin: décade, qu'ils se rassurent, ...(p. 20)
수정 번역문: “영불 해협 너머, 그리고 대서양 너머에 있는 몇몇 사람들은 스리지에서 한 번의 데카드 기간[10일]을 지내기 위해 등록하는 것조차 주저하리라고 상상해 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경우 10년 동안 계속 스리지에 머물면서 이야기해야 하고, 특히 어떤 불량배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는 그들이 [데카드라는 말의] 그리스 및 라틴어 어원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일어나는 두려움일 뿐입니다. 그들은 안심해도 좋을 것이, ...”
32-33쪽 번역문: "그것은 rogue state에서 '불량국가'까지 최강자의 이성, 법, 법률, 법의 힘, 요컨대, 질서, 세계질서와 그것의 미래, '세계의 의미', 결국 장-뤽 낭시도 이야기하고 있듯이, 아무튼 더 겸손하게 말해서 '세계'와 '세계화'라는 단어들의 의미에서 '불량국가'까지 나아갑니다."
De rogue State à "Etat voyou", il y va, rien de moins, de la raison du plus fort, du droit, de la loi, de la force de loi, bref de l'ordre, de l'ordre mondial et de son avenir, du sens du monde, en somme, comme dirait Jean-Luc Nancy, en tous cas, plus modestement, du sens des mots "monde" et "mondialisation."
수정 번역문: "[영어의] rogue state에서 [불어의] 'Etat voyou'[이 양자는 모두 불량국가라는 뜻이다]로 나아가는 중에 문제가 되는 것은 최강자의 이성, 법/권리(droit), 법(loi), 법의 힘,요컨대 질서, 세계질서와 그 장래이며, 장-뤽 낭시라면 이렇게 말하겠지만, 결국 '세계의 의미'[이는 1993년에 나온 그의 저서 제목이기도 하다], 아무튼 좀더 소박하게 말한다면, '세계'와 '세계화'라는 단어들의 의미다."
34쪽 번역문: "제가 오래전부터 말씀드렸듯이 S.I.E.C.L.E라는 단어의 각 글자는 장차 어떤 특이한 모험―즉, 지식인들의 사회성, 교환, 협동, 장소들, 확장들―의 대문자 약호나 표시―우리는 이 점을 터득하고 있습니다―가 될 때 스리지가 지적인 삶의 한 세기를 위해 의미하게 될 바를 반세기의 현존을 넘고 관통해서 몇 주 후에 우리는 축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Depuis si lontemps, disais-je, puisque nous fêterons dans quelques semaines, par-delà et à travers un demi-siècle d'existence, ce que Cerisy aura signifié pour un siècle de vie intellectuelle, chaque lettre du mot S.I.È.C.L.E. devenant désormais, nous l'apprenons, le sigle ou l'enseigne d'une extraordinaire aventure: Sociabilités Intellectuelles Échanges Coopérations Lieux Extensions.(p. 21)
수정 번역문: “저는 아주 오래전부터라고 말했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몇 주 뒤면 스리지가 [1952년 이래] 반 세기 동안의 존재를 통해,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앞으로 지적인 삶의 한 세기에 대해 의미하게 될 바를 축하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스리지의] 세기siècle라는 단어의 각각의 철자, 곧 S.I.ÈC.L.E.는 하나의 비범한 모험을 가리키는 대문자 약호 내지는 표시가 되리라는 점을 우리는 깨닫고 있습니다. 곧 [스리지의] 세기는 지적인 사교와 교류, 협동의 확대의 장이었다고 말입니다.”
53-54쪽 번역문: “그리고 그는 자신이 계약적이라고 생각하는 신학적 형태를 띤 순수 수사학적 비유, 그 필요성이 제게는 훨씬 더 중요하고 심각해 보이는 그 비유와 더불어 그 장을 마치기 전에 그것이 행정권과 입법권의 조직에 있어 어떤 지시적 표현으로 보이는 것을 제공합니다.
‘민중은 신이 우주를 지배하듯 미국 정치계를 지배한다. 그들은 모든 것의 원인이자 결과이며, 모든 것은 그들로부터 나오고 그들에게 흡수된다.’라고 결론짓습니다.”
Puis il donne ce qu'il tient pour une description démonstrative quant à l'organisation des pouvoirs exécutif et législatif, avant de clore son chapitre avec le trope d'une figure théologique qu'il croit conventionnelle et de pure rhétorique mais dont la nécessité me paraît beaucoup plus grave et sérieuse: "Le peuple, conclut-il règne sur le monde politique américain comme Dieu sur l'univers. Il est la cause et la fin de toutes choses; tout en sorte et tout s'y absorbe."
수정 번역문: “그 다음 그는, 그 자신은 관례적이고 순전히 수사학적일 뿐이라고 믿고 있는―하지만 이러한 비유를 사용해야 하는 필연성은 제가 보기에는 훨씬 더 중대하고 심각한 문제입니다―신학적 형태를 띤 비유와 함께 그 장을 끝마치기에 앞서(“인민은 신이 우주를 지배하듯 미국의 정치계를 지배한다. 그들은 만물의 원인이자 목적이다. 모든 것은 그들로부터 나오고 그들에게 흡수된다”라고 그는 결론짓습니다) 그 자신이 행정권과 입법권의 조직에 관한 논증적 기술이라고 간주하는 것을 제시합니다.”
54쪽 번역문: “저는 긴 우회의 관점에서 목적과 아주 가까이에서 미국에서의 민주정치, 더욱 분명하게 말해서 민주정치와 미국이 제 주제가 될 것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아마 간과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아주 멀찌감치 떨어져서 알리기 위해 토크빌과 『미국에서의 민주정치에 관해서』에 그다지 많은 것을 기대하지는 않으면서 인용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Il me fallait citer Tocqueville sans trop attendre, et De la démocratie en Amérique, pour annoncer de très loin que, au terme d'un long détour, tout près de la fin, on s'apercevra peut-être que la démocratie en Amérique ou, plus précisément, la démocratie et l'Amérique aura été mon sujet.(pp. 34-35)
수정 번역문: "아마도 사람들은 오랜 우회적인 논의를 거친 다음 거의 결말 부분에 가서, 미국에서의 민주정치, 또는 좀더 정확히 말하면 민주정치와 미국이 내 주제가 될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리라는 것을 아주 일찌감치 예고해 두기 위해, 저는 기다리지 않고 미리 토크빌과 『미국에서의 민주정치에 관하여』를 인용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79쪽 번역문: “저는 아랍-이슬람적이라는 종종 악용되는 결합의 특징을 아랍적, 그리고 차례로 이슬람적이라고 말합니다.”
Je dis arabe et tour à tour islamique pour éviter le trait d'union souvent abusif de l'arabo-islamique.(p. 51)
수정 번역문: "아랍-이슬람적이라는 식으로 자주 악용되곤 하는 붙임표[하이픈, trait d'union]를 쓰지 않기 위해 저는 차례차례 아랍 그리고 이슬람이라고 말합니다."
80-81쪽 번역문: “그 대신 정체 속에서, 적어도 문화 속에서 유태교적 신앙(단 한 나라가 있지요. 이스라엘입니다)이나 기독교적 신앙(...)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모든 국가들, 그리고 또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의 종교문화로 말하자면, 식민지 이후의 혼성국가들 대부분은 오늘날 민주 국가로 자기 소개를 합니다.”(80-81쪽)
En revanche, toutes les États-nations profondément liés, sinon dans leur constitution, du moins dans leur culture, à une fois juive(il n'y en a qu'un, Israël), ou chrétienne(...), mais aussi la plupart des États-nations post-coloniaux composites quant à la culture religieuse, en Afrique(...), en Asie(...) se présentent aujourd'hui comme des démocraties(p. 52).
수정 번역문: "반대로, 헌정 자체에서는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문화에서 유대교적(여기에는 단 한 나라, 이스라엘만이 있습니다)이거나 기독교적인(...) 것과 근본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모든 민족국가만이 아니라, 또한 여러 종교가 혼합되어 있는 문화를 지닌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대부분의 탈식민주의 민족국가들도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로 자신을 내세웁니다."
210쪽 번역문: “그것은 모든 국가에게 무력에 의존하지 않도록 권고하는 유일한 예외조항입니다.”
C'est la seul exception à la recommendation faite à tous les États de ne pas recourir à la force.(p. 142)
수정 번역문: "이것은 모든 국가에게 무력에 의지하지 않도록 권고하는 것에 반하는 유일한 예외 조항입니다."
이 문장들은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오역문들 중 일부를 임의로 골라낸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에만 국한한다 해도, 만약 이 문장들이 제대로 된 한글 문장이고 내용이 이해가 간다면, 나는 내가 경솔했음을 기꺼이 인정할 것이다. 이런 마당에 41쪽에서 ‘supplément’과 ‘itérabilité’를 ‘보충’과 ‘반복 가능성’으로 번역하고, 120쪽 이하에서 ‘singularité’를 ‘개별성’으로, ‘partage’는 ‘배분’으로 번역한 것 등을 문제삼는 건 오히려 사치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솔직히 이제 나는 출판사들과 지식인들에게 화가 나기보다는 겁이 난다. 얼마나 더 많은 오역들이 있어야, 따라서 독자들과 책의 원저자들, 더 나아가 역자 자신들의 고통과 희생이 있어야, 이 끔찍한 오역의 되풀이가 끝날 수 있을까? 또 언제쯤 이런 식의 끔찍한 독자서평을 쓰지 않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