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도라 익스플로러 10종 박스세트 (10disc) - 도라DVD10개+대본10권+디에고DVD2장+도라 담요+스티커2장
스크린에듀케이션(DVD)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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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솔이가 도라도라를 좋아했던 첫번째 이유는, 에피소드가 끝난 뒤에 'we did it'하며 춤을 추는 장면때문이었다. 그 장면을 늘 흉내내곤 하더니 점차 다른 것으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어떤 것이 계기가 되었던간에 아이의 관심을 끄는 요소가 많은 것이 이런 류의 dvd의 특징이라면 특징이겠지? 

한솔이가 도라도라를 보면서 변한 것이 몇 가지 있다. 첫째는 뽀로로와 이별을 했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물건을 셀 때 영어로 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솔이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이 '고맙습니다."인데, 어느날부터 "땡큐, 고마워~!"로 바뀌었다는 것. 

나는, 다른 유아교육용 영어dvd들도 나름대로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꼭 이것이 제일 좋아, 라고는 말하고 싶지는 않다. 아이마다 각자의 특징이 있고, 관심이 다르기때문에 내 아이에게 유익하고 좋았다고 해서 다른 아이도 그러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한솔이는, 내가 아는 선배 덕에 도라를 만날 수 있었다. 그 집 아이들이 좋아한다면서 한솔이가 관심있어할지 모르니 한번 보여줘보자는 것이었다. 의외로 집중을 해서볼 뿐 아니라 좋아하기에 큰맘 먹고 세트를 사게 되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덜컥 구입하지 못햇을 것이다. 

빨간색 상자에 담겨있는 dvd들은 한솔이의 보물이다. 때로는 dvd들을 쭉 늘어놓고 혼자서 이야기를 만들기도 한다. 케이스 뒷면의 에피소드 그림을 보고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고르기도 한다. 한 장에 두가지의 에피소드가 들어있다.  

처음부터 영어로만 들려줘야할까 고민하다가, 영어와 한국어가 함께 나오게 해서 보여줬다. 물론 처음부터 영어로만 들려주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한솔이는 본 것을 보고 또 본다. 그래서 처음에는 영어와 한국어로, 두번째는 영어로만 들려주었다. 물론 자막은 없이. (아직 자막을 읽을 줄도 모를 뿐더러, 화면을 보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에)  

이러게 번갈아가면서 보여주니 한솔이가 내용도 이해하고, 거기서 사용된 영어문장들을 활용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춤을 따라추며 좋아하더니, 요즘은 지도가 나오면 길을 알려줄 때 단어를 따라하기도 하고, 도라의 질문에 대답도 열심히 한다.  

개인적으로는 [디에고]시리즈도 마음에 드는데, 다음에는 [디에고]시리즈도 구입해볼 생각이다.  

나는 영어를 잘하는 아이보다는 영어를 듣고도 당황하지 않는 아이가 되기를 원한다. [도라도라]는 이중언어 구성으로 학습을 강요하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영어를 접하게 해주는 시리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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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을 주는 부모되기>를 리뷰해주세요.
감동을 주는 부모 되기 - 교사 이호철이 부모에게 드리는 자녀 교육 길잡이 살아있는 교육 19
이호철 지음 / 보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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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내 아이가 행복하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이것저것 고민도 하고 책도 읽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조언도 들어가며 아이에게 신경을 쓴다. 그런데 막상 아이는 행복해하지 않는다. 때로는 간섭이라 여기고, 때로는 억압이라 생각한다. 왜 그럴까?

우리도 어렸을 때 겪은 일인데도 막상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면 그 시절을, 우리가 무얼 원했었는지를 깡그리 잊어버린다. 그래서 아이의 입장이 되기보다는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들을 재단하고 아이가 거기에 따라주기를 원한다. 그러다보면 정작 아이는 '행복'과 멀어진다.

'교육'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아주 민감하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외치던 부모들도 어느새 아이들의 성적에 일희일비하고, 현재의 공교육을 비판하고 사교육 시장의 팽창을 우려하면서도 내 아이가 혹여 뒤처지지나 않을까 고심하며 슬그머니 그 대열에 합류시키곤 한다. 공교육강화와 사회인식변화를 촉구하면서도 정작 내 아이가 피해를 입을까 전전긍긍하는 부모의 모습은 이중적이기까지 하다.

사실은 사회의 변화는 작은 변화에서부터 출발한다. 사회의 제도 개선 이전에 사람들 하나하나가 먼저 바뀌어야한다. 제도가 사람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제도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렇다면 제일 먼저 가정에서 변화의 바람이 불어야 한다.

이 책은, 공교육이니 사교육이니 하는 것과는 조금 무관하다. 아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부모, 아이와 교감을 나눌 수 있는 부모가 되는 것이 아이가 행복하게 자랄 수 있다고 말한다. 부모와 아이들 간의 애착형성이 유아기에만 필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신뢰할 수 있고 내 편이 되어주는 부모가 있다면, 아이는 어떤 어려움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그 힘은 아이의 사회생활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고 자신감과 성취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이 책에는 아이들이 직접 쓴 글을 통해 어떨 때 부모에게 감동을 받는지, 아이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 성숙해지는지를 보여준다. 아이들이 쓴 글들은 솔직하면서도 순수하다. 생생하게 그려놓은 상황은 마치 그 장면을 보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작은 감동의 순간을 엿볼 수 있다. 아이들은 부모가 하는 말 한마디, 따뜻한 위로와 격려에 감동을 받는다. 또한 감동에 그치지 않고 생활의 변화로도 이어진다. 또한 이 책을 통해 요즘 초등학생들은 어떤 고민을 하는지, 사춘기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를 간접 체험함으로써 우리가(어른들이) 모르는 아이들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에게 적합하다. 그 나이 때의 아이들에게 무엇이 중요한 지, 어떻게 고민을 풀어주면 좋을지에 대한 해답이 아이들의 글을 통해 드러난다.

새겨두고 싶은 말들.

“아이들이 감동받는 따뜻한 말을 가만히 보면 모두 아이를 긍정하는 말이다. 어른들은 늘 부정하는 말에 익숙해 잇기에 이런 말은 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좋은 말을 하는 버릇을 한 번 들이면 다음부터는 하기가 아주 쉽다. 아이에게 끊임없이 따뜻한 말을 해 주는 부모가 되면 좋겠다.”(p.37)

“아직 어린 아이에게는 마무리하는 방법을 잘 설명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아이가 사회에 나가서도 자신의 실수나 잘못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질 수 있다. 그리고 실수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 아이가 무엇을 잘해 보려다가 실수를 저지르면 두려워하지 않도록 힘을 더욱 북돋워 주어야 한다. 이런 실수를 두려워하면 도전정신을 기를 수 없고 창조의 싹도 자랄 수 없다.”(p.118-119)

“아이들은 부모에게 독립된 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질 때 이렇게 엉뚱하게 반항하는 말투가 나오기도 한다. 독립하려고 할 때 생기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 반항 속에는 도와 달라는 뜻이 숨어있다고 한다.” (p.137)

“대부분 부모들은 아이를 생각해서라기보다 귀찮으니까 꾸중하고 속상해한다. 조금만 시간이 걸리면 그만 화를 내고 만다. 아이들이 잘 모를 때는 아이 수준에 맞추어 이해하기 쉽게 차근차근 일러 주어야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바로 깨닫고 고쳐서 행동한다. 물론 아이들은 올바로 이해하고 난 뒤에도 깜빡 잊고 전에 하던 대로 하기가 쉬운데 그때마다 귀찮아하지 말고 일깨워 주면 된다. 그것이 어른이 할 일이다.”(p.156-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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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은 부지런해요 보물창고 보드북 3
바이런 바튼 글.그림,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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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들 중에 꼭 한번은 거쳐가는 것이 '차'일 것이다.

 

한솔이가 유달리 차를 좋아하는데다, 최근에는 '소방차, 경찰차, 구급차'를 넘어서서 다른 차들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보이는 편이다. 앞서 예로 든 차들은 색깔과 소리가 아이의 관심을 끌었다면 이제는 '탈것'에 대한 이해를 하는 중이다. 물론 이미 대중교통에 대해서는 많이 익숙해졌다.

 

이 책은 '트럭', 아니 일하는 차들에 대한 이야기다. 아직 글자를 모르는 한솔이지만 요즘은 제목을 읽으려고 노력한다. 이 책도 보자마자 제 나름대로 제목을 붙였다. '우리 트럭이 최고야' (ㅠ.ㅠ) 앤서니 브라운의 '우리 아빠가 최고야'를 아주 좋아하는 한솔이라 다른 책들도 다 이런 식으로 제목을 붙인다. 응용력을 칭찬해주어야할까? (^^)

 

보드북이고 크기가 작아서 '차'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는 어린 아이들이 보기에 좋다. 올해 4살이 된 한솔이에게는 조금 시시한(?) 책이기도 했지만, 제목도 스스로 붙여보고, 내용도 제 맘대로 지어 읽기도 한다. 아마도 관심이 있는 '차'들이 나와서일 것이다.

 

맨 앞에 '길'이 있는 것도 흥미롭다. 그냥 쭈욱 빈 도로만 두 쪽에 걸쳐 나온다. 한솔이는 처음에 그것이 무엇인지를 몰랐다. 내가 '길 위에'라고 읽어주자 그제야 이해하는 듯했다. '길'은 어른이건 아이건간에 많은 이야기를 생성하고 의미를 준다. 한솔이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 지 궁금하다. 그 길 위로 트럭들이 달린다. 터널도 지나가고 다리도 건넌다. 빵을 실은 트럭도 보이고, 쓰레기트럭도 보인다. 신문을 배달하기도 하고, 신호등을 달기 위해 통 안에 사람을 넣어 높이 올려주기도 한다. 기름탱크도 있고, 차를 끌고 가기도 하고, 이삿짐을 나르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굴삭기가 ㅍ준 흙을 나르기도 하고 레미콘을 싣고 달리기도 한다.

 

'트럭'이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차가 어떤 일들을 하는지 보여주는 차다. 그래서 '트럭은 부지런해요'라는 제목이 붙지 않았을까? 그림은 아주 단순하다. 흔히 길에서 보는 트럭들보다 너무 단순하게 그려졌기 때문에 조금 시시해보이기도 하지만..

 

이 책을 한솔이가 본 후 '부지런하다'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그 전에 이미 여러 종류의 차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어서였을까? 책에 나온 새로운 단어들, 자신이 알지 못하는 단어들에 대해 인지하게 되었다. "엄마, 한솔이는 청소해요, 걸레로 닦아요, 정리해요, 부지런해요." 라고 문장을 만들어 말해준다. 부지런하다는 것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게 된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3세 정도의 아이들에게 적합한 책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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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9-03-03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어릴 때는 소위 "도라꾸(트럭의 일본 변질어 또는 발음)"로 통용되었지요.
산판(산림 정비)후 베어낸 나무를 나르는 일을 주로 했었고, 유일하게 본 차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진짜 나일까 - 제6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미래의 고전 5
최유정 지음 / 푸른책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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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청소년문학을 읽는 재미가 꽤 쏠쏠해졌음을 느낀다. 청소년과 교육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미래가 걸려있는 중대한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문제에 좀 더 귀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문학에서는 청소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또래의 문제를 그들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고 이야기하고자 하는 분위기가 점차 형성되고 있는 느낌이다.

 

보통 어떤 사회적인 이슈나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일의 원인을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아직도 근본원인보다는 제도와 규율로 가시적인 효과만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문제아’라는 꼬리표가 붙어버린 아이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모든 행동이 문제행동이 되어버린다. 이런 아이들이 왜 ‘문제아’가 되었는지, 문제적 행동을 보이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데는 다들 인색하다. ‘문제아’는 ‘문제아’일 뿐이다. 반대로 ‘모범생’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아이들은 그들이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건 이유가 있는 행동이고, 정당한 행동이다. 문제아가 됐건 모범생이 됐건 그런 꼬리표를 다는 순간 그들의 이미지는 하나로 고착된다.

 

이 책에서는 소위 문제아라 불리는 건주와 새로 전학을 온 시우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하며 사건이 진행된다. 시우가 잠깐이나마 건주와 사이좋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건주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지 않아서였다. 그런 시우가 건주를 배신하고 은찬이의 옆에 가게 되는 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주변의 압력에 의해서이다. 시우는 건주의 다른 면을 알고 있지만, 집단에서 소외되어 홀로 건주의 편에 설 용기가 없는 아이였던 것이다.

 

건주와 시우가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진행하는 동안 우리는 두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볼 수 있다. 건주의 폭력은 가정에서의 폭력과 맞물려있다. 건주의 아빠 역시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채 살아온 분노를 폭력으로 분출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아빠에게 늘 맞고 살면서도 건주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아빠에게 맞서지 못한 채 살아 온 엄마도 건주에게는 견디지 못할 아픔이었다. 그런 내면의 아픔을 삭이는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건주는 친구들에게 거친 말과 행동으로 자신의 화를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건주의 행동의 원인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는 사람이 있었다면 건주는 마음의 상처를 크게 키우지 않았어도 될 것이다.

 

그런가하면 반장인 은찬이의 행동은 우리가 무의식중에 용인하고 있는 인물상이다. 겉으로 드러난 결과가 좋다면 그 과정은 문제 삼지 않는 어른들의 태도를 이용할 줄 아는 캐릭터다. 은찬이의 부모가 그랬고, 선생님들이 그랬다. 성적이나 집안환경으로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편견 속에서 살고 있다. 그 작은 권력(?) 앞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가 늘 보고 있는 사회의 모습이다.

 

이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가진 캐릭터는 상담선생님이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 관심을 갖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왜 필요한가를 보여준다. 아쉽게도 상담선생님이 가진 캐릭터의 힘은 거기까지다. 주도적으로 학교환경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상담선생님은 건주를 내면의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지만 조금 더 적극적인 캐릭터였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우리는, 이제 상담선생님의 역할을 스스로 맡을 때가 되었다. 형식뿐인 관심이 아니라 아이 하나하나를 보듬어 안아줄 수 있는 넓은 마음과 따뜻한 감성이 있는 관심 말이다. 내 아이만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자만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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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싹 2009-02-21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못 받았는데, 청소년소설이라 더 관심이 가네요.
추천하고 가요.
 
개와 고양이 방방곡곡 구석구석 옛이야기 3
박영만 원작, 이붕 엮음, 강혜숙 그림, 권혁래 감수 / 사파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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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를 모르는 한솔이가 이 책을 보자마자 한 첫번째 말은 [멍멍이와 고양이]이다. [멍멍이와 야옹이]혹은 [강아지(개)와 고양이]가 아니라 멍멍이와 고양이라니....(--)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이면서 인간과 더 가깝게 여겨지는 동물을 들라면, 요즘 아이들은 분명 개를 이야기할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고양이를 기르지 않는 집이 없을 정도였는데, 요즘은 그 대상이 개로 바뀐 듯하다. 그래서일까? 개는 친근한 감정으로 '멍멍이'라고 부르지만, 고양이는 그저 고양이일 뿐이다.  

이 이야기를 읽을 때 그런 점을 주위하며 읽었다. 내가 알고 있는 [개와 고양이]이야기는 분명 고양이가 집안에서 살고 개는 바깥에서 살게 되는 결말을 갖고 있지만, 요즘의 현실은 그렇지 않기때문이다. 한솔이가 볼 수 있는 개들은 집안에서 키우는 개들이다. 주인과 같이 잠도 자고 밥도 먹는. 그런데 고양이는 흔히 도둑고양이라고도 하고 길고양이라고도 하는 주인없이 떠도는 고양이들뿐이다. 특히 우리 동네에는 음식쓰레기통을 뒤지거나 쓰레기봉투를 찢어서 먹을 것을 찾아내는 고양이들이 10여 마리 가까이 있고, 그런 고양이들을 쫓아내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그런 한솔이가 이 이야기를 읽으면 약간은 혼란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전이라는 형태로 전해오는 이야기가 요즘도 유효하다면 분명 이 이야기도 변형되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문자로 정착된 이후에는 변형이 어려우므로 문자로 정착되던 그 시기의 상황에 맞는 이야기로 남아있을 수 밖에 없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러한 점을 넘어서, 화려한 그림을 보는 재미도 있고, 이야기도 재미있다. 그림의 색감이 화사하고 선이 많이 사용되어서 전체적으로 화려한 느낌이 강하다. 이런 화려함은 용궁의 모습이나, 부자가 된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것 같다. 개와 고양이의 이야기를 읽어주는 동안 한솔이는 그림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물론 그런 화려한 그림 외에도 개와 고양이가 연적을 찾아 길을 떠나기로 하는 장면에서는 페이지를 둘러가며 개와 고양이의 여정을 보여주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개와 고양이 둘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위해 노력을 했지만, 친구를 믿지 못했던 개는 바깥에서 생활하게 되고 고양이는 집안에서 안락한 생활을 하게 되는 결말은 조금 극단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나쁜 마음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닌데 말이다. 어쨋든 '믿음'과 '신뢰'란 현대를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중요한 요소기는 하다. 예전에는 분명 개보다는 고양이에 대한 애정이 더 강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쥐의 천적일 수밖에 없는 고양이, 생선을 잘 먹는 고양이의 특성을 살려 이야기가 진행되었을 것이다. 만약 이 이야기가 현대에 맞게 재생산된다면 분명 고양이가 아니라 개를 위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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