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산문집 (천줄읽기)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박지원 지음, 박수밀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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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활자본 17권 6책으로 간행된 박영철본 《연암집》에 실린 산문 237편 중 42편, 《열하일기》에 실린 글 중 10편이 실려 있는 책이다. 연암 박지원이라하면, 조선후기 실학자로 열하일기, 허생전으로 기억되며 정조의 문체반정과 연관하여 떠올리게 되는 인물이다.

이 책은 [사이에서 생각하기], [문장가의 마음], [생활의 발견], [현실과 사회]로 구분하여 글을 소개하고 있는데, 나는 이 중에서도 책읽기와 글쓰기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문장가의 마음] 부분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127페이지까지 쑥쑥 읽히다가 이후부터 힘이 좀 빠진다. 개인의 관심사에 따라 읽히는 힘이 다르게 작용하는 듯하다.

"본 것이 적은 사람은 백로를 기준 삼아 까마귀를 비웃고 물오리를 기준 삼아 학의 긴 다리가 위태롭다고 생각한다. 사물 자체는 이상할 것이 없는데 저 혼자 의심해 화를 내며 한 가지라도 생각과 다르면 만물을 모조리 비방한다. 아! 저 까마귀를 보라. 그 날개보다 더 검은 색이 없긴 하나 얼핏 옅은 황금색이 돌고, 다시 연한 녹색으로 반짝인다. 햇볕이 비추면 자주색으로 솟구치다, 눈이 어른어른하면 비취색으로도 변한다. 그러므로 내가 비록 푸른 까마귀라고 말해도 괜찮은 것이고 다시 붉은 까마귀라고 말해도 상관없는 것이다. 저 사물은 본디 정해진 색이 없는데도 내가 눈으로 먼저 정해 버리는 것이다." p.16~17

고정관념을 꼬집고 있는 이야기이다. 학교에서 배울 때는 분명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한다'고 배우지만 사회에 나와서 보니 수많은 편견과 고정관념이 많은 것을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본 것이 '전부'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행동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기준이 모두의 기준이 될 수는 없는 데 말이다. 연암은 까마귀 날개의 진실을 알려주면서 사회적 모순과 고정관념을 비판하고 있다.

연암의 글을 읽다 보면 적절한 비유와 인용을 통해 상황에 맞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을 알게 된다. 연암 산문집의 많은 이야기가 선입견과 편견에서 벗어나라, 그리고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라고 이야기한다.

"글이 잘되고 못되고는 내게 달린 것이고, 칭찬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남에게 달렸다. 비유하자면 귀울음이나 코골이와 같다. (중략) 자기 혼자만 아는 것은 언제나 남이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한다. 또 자기가 깨닫지 못한 것은 남이 먼저 아는 것을 싫어한다. 귀울음은 병인데도 남이 알아주지 않을까 봐 걱정하니 하물며 병이 아닌 경우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코골이는 병이 아닌데도 남이 일깨워주면 화를 내니, 하물며 병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귀울음은 듣지 못해도 내 코 고는 소리를 일깨워준다면 작가의 뜻에 가까우리라." p.85~87

연암의 비유가 돋보이는 글이다. 글을 쓰는 일과 독자의 비평을 비유하고 있다. 내 귓속에서 앵앵 우는 소리는 남이 들을 수 없다. 나에게만 들리는 소리를 '나는 들리는데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화를 낸다. 코 고는 소리는 잠을 자는 나는 듣지 못하지만 곁에 있는 이들은 시끄러워한다. 옆 사람이 일깨워주려 하지만, 난 코를 곤 적이 없다고 말한다. 이는 '문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자네는 물건 찾는 사람을 보지 못했나? 앞을 보면 뒤를 못 보고, 왼쪽을 돌아보면 오른쪽을 보지 못한다네. 왜 그럴까? 방 가운데 앉아 있으면 몸과 물건이 서로 가리게 되고 눈과 공간이 너무 가깝게 된다네. 차라리 방 바깥으로 나가 문에 구멍을 뚫고 살펴보는 것이 가장 좋다네. 한쪽 눈만을 집중하더라도 방 안의 물건을 죄다 볼 수 있지." p.94

연암이 알려주는 책읽기의 요령이다. 책의 내용을 무조건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비판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고, 요약하여 그 지식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또한 마음으로 깨달음을 얻는다면 글쓴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마음을 비우고 사심을 없앤 다음 깨달음을 얻는 독서를 해야한다고 말한다.

그런가하면 글쓰기에 있어서는 중국의 것을 모방하지 말고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곳의 삶과 정서를 노래해야한다고 알려준다. 이를 조선의 노래, 조선풍이라고 한다. 연암은 우리의 주체성을 높이는 발언을 한 것이다. 강정과 개암을 통해 일상적인 글이 더 참되고 훌륭한 글임을 밝힌다. 평범한 말이나 일상의 언어도 어디에 놓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도 잘 알고 있지만 잘 지키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진부하게 쓰지 말고 진실되게 쓰는 것이다. 문장이 화려하고 눈길을 끈다고 해서 좋은 글이 아니다.

친구를 잃은 슬픔에 관해 쓴 글은 읽다가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아아, 슬프다네! 내가 예전에 친구를 잃은 슬픔은 아내를 잃는 것보다 크다고 말한 적이 있네. 아내를 잃은 자는 그래도 두 번 세 번 재혼을 할 수 있고, 서너 차례 첩을 얻어도 안 될 것이 없네. 옷이 터지거나 찢어지면 깁거나 꿰매고, 그릇이 깨지거나 이지러지면 다시 새것으로 바꾸는 것과 같지. 혹 나중 아내가 전처보다 낫기도 하고, 혹 나는 늙었지만 새 아내는 예쁘고 어려 신혼의 즐거움이 초혼과 재혼 간에 차이가 없을 수도 있네. 친구를 잃은 아픔에 이르면, 내가 요행히 눈이 있긴 하나 내가 보는 것을 누구와 함께 할 것이며, 내 요행히 귀가 있긴 하나 내 듣는 것을 누구와 함께 듣겠는가? 내 요행히 코가 있긴 하나 내 냄새 맡는 것을 누구와 함께 맡겠는가? 내 요행히 마음이 있긴 하나 내 지혜와 깨달음을 누구와 더불어 같이 한단 말인가?"p.163~164

친구와는 할 수 있는 일을 왜 아내와는 같이하지 않는 것일까? 친구를 잃은 슬픔이 아내를 잃은 슬픔과 비할 것이 못된다고 하니 그저 헛헛할 뿐이다. 그래도 저 글에서 아내를 남편으로 바꾸어도 무방하다 생각하고 나니, 섭섭하던 마음도 사라진다.

연암의 글을 읽다보니 그 시대를 눈 앞에 두고 있는 것처럼 그려진다. 해제가 있어서 읽는데 도움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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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대는 무엇인가 - 정당정치, 자본주의, 식민지제국, 천황제의 형성
미타니 타이치로 지음, 송병권 외 옮김 / 평사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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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대를 다룬 책을 연이어 읽게 되었다. 


앞서 읽은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박훈, 21세기 북스)은 메이지유신의 주역인 사무라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면, 이 책은 유럽 열강을 모델로 한 일본의 근대화과정을 정당정치, 자본주의, 식민지, 천황제를 중심으로 전개한다. 


저자는 19세기 후반에 활동한 영국 저널리스트 월터 바지호트가 시도한 성찰을 검토하여 이를 '일본 근대'가 무엇이었는지에 답을 하고 있다. 바지호트는 '전근대' 이후 영국의 국가구조를 둘러싼 자유로운 토의의 축적이 '토의에 의한 통치'를 강화하였고, '근대'개념은 '토의에 의한 통치'를 가장 중요한 지표로 삼았고 인간 행동에 동기를 부여하는 요인으로 전통과 습관을 중시했다고 말한다. 바지호트는 '낡은 동양의 관습적 문명'에서 '새로운 서양의 변동적 문명'으로 이행, 즉 '전근대'에서 '근대'를 향한 세계적 규모의 이행이 서양 문명권에 의한 동양 문명권의 식민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p.23)는 명제의 진실성을 믿었다. 영국에서 출현한 '토의에 의한 통치'를 지표로 하는 '근대'개념은 영국을 주동력으로 한 식민지화에 의한 '근대'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동양에 있으면서 서양의 일원이 되기를 바라는 일본이 이웃 국가를 식민지화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요인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아는 것이 우리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식민통치와 해방 이후 계속된 양국의 갈등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알아야 할 것이 많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아는데 도움이 된다. 당시 일본이 국제 정세를 읽고 빨리 움직여 서구 열강의 제도와 문물을 받아들인 것이 근대화를 이끌었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그러나 당시 국제 정세 속에서 일본이 서구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일본보다도 훨씬 먼저 전 세계에 식민지제국을 건설하던 서구제국주의들 사이에서 어떻게 성장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모른다. 일본이 서구 열강들의 식민지정책과는 다른 노선을 걷게 된 것은 왜인지, 식민지 정책을 펼치는데 있어 한반도와 그외 국가들 사이에 차이가 생긴 것은 왜인가에 대해 자세히 알아 볼 수 있었다. 


1장에서는 '토의에 의한 통치'로서 의회제와 정당정치가 어떻게 성립했는지를 다룬다. 


'입헌주의'는 메이지 헌법 하의 체제원리였으나 곧바로 정당정치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바지호트는 '관습의 지배'에서 '토의에 의한 통치'로 정치의 형태가 이행하는 것을 근대라고 하였는데 일본의 선진지식인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메이지헌법 하의 귀족원, 중의원으로 구성된 양원제는 미국의 상하원 양원제에서 볼 수 있는 체제원리인 권력 분립제였다. 권력분립제는 막부적 존재의 출현을 방지할 목적으로 만든 제도적 장치로 왕정복고 이념에 적합하다고 여겼으며, 어떠한 국가 기관도 단독으로 천황을 대행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메이지헌법 하에서 일본정치는 체제 안정을 확보하는 것이 어려웠기때문에 체제를 전체적으로 통합하는 기능을 가진 비제도적인 주체가 필요하였다. 이로 인해 번벌과 정당이 나타났다. 


2장에서는 '무역'과 일본의 자본주의 형성을 살펴본다.


국민국가 형성을 목적으로 시작된 일본의 근대는 자립적 자본주의 형성을 불가결한 수단이었다. 이미 확립된 유럽 자본주의를 모델로 삼은 일본은 국가주의적 측면을 중시하였다. 정치적 리더가 동시에 경제적 리더가 되는 국가 주도의 자본주의가 형성된 것이다. 일본은 유럽적 국민국가를 형성하기 위해 전략적 수단으로서 유럽식 자본주의를 자주적으로 형성하였다. 선진산업기술, 자본, 노동력, 평화의 네가지 조건을 국가가 만들었고 이로 인해 자립적 자본주의가 형성될 수 있었다. 


3장에서는 '식민지화'와 관련하여 일본에서 그것이 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고찰한다.    


일본은 아시아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 식민지 영유 국가였다. '식민지'란 특정 국가 주권에 종속되면서도 본국과 달리 본국에서 시행되는 헌법, 기타 법률이 시행되지 않는 차별적인 영토(p.167)를 말한다. 랴오둥반도 반환 후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유럽열강과 함께 권력정치의 주체가 되고자 하였다. 청일전쟁이 초래한 국제정치상의 변화는 러인전쟁 이후 식민지 제국 일본의 팽창방향을 확정하게 된다. 일본의 식민지제국 구성은 경제적 이익보다 군사적 안전보장에 관심을 두었기 때문에 유럽의 식민지와는 달랐다. 즉 식민지제국 일본의 팽창은 본국과 국경선이 연결된 남방 및 북방 지역의 공간적 확대로 이루어졌다. 러일전쟁 이후 한반도 식민지화의 시동이 걸린다. 


4장에서는 일본 근대에서 천황제는 무엇이었는가를 알아본다. 


유럽에서 기독교가 담당한 '국가의 기축'으로서 기능을 일본에서는 황실이라고 생각했다. '신'의 부재가 천화의 신격화를 가져온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으나, 근대 일본의 형성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다. '문명개화', '부국강병'은 오로지 일본 국가의 대외강화를 목적으로 한 근대화 노선이었다. 국제적 협력이 필요한 시대에 세계가 자국중심주의로 치달아가는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일본은 '안전 보장 환경'의 변화를 강조하고 군사력 강화의 필요성을 부르짖으며 '강병'을 주장하고 있다. 우리가 일본의 근대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잊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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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어휘력 - 말에 품격을 더하고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힘
유선경 지음 / 앤의서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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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귀 못 알아듣는 사람과 말귀 못 알아듣게 말하는 사람이 만나 말해봐야 복장 터질 일밖에 없다. 어휘력이 부족해서일 뿐인데 '그 인간 문제 있다'로 비화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어휘력과 인격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 경우 어휘력 '부족'보다 '잘못'에 가깝다. 이런 일을 반복적으로 겪다 보면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 느낌 등을 표현하는 데 자신감을 잃는다." p.6

이 책을 읽는 동안 앞에서 밝힌 저 문장이 탁 와닿았다. 직장생활을 하든, 사회생활을 하든, 또는 가정에서조차도 늘 왜 내 말을 못 알아듣느냐고!!! 열 받았던 일이 하루이틀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을 읽은 다음 '내가 못 알아듣게 말한'사람은 아니었는지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말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의사소통의 실패경험이 늘어나면 날수록 소심해지는 것은 어느 누구랄 것도 없다.

책에서는 어른다운 어휘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어떤 말이나 글의 의미나 어감을 쉽게 파악하지 못한다면 '눈치'가 부족하다기보다 '어휘력'이 부족한 탓이 크다. 눈치 없이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척하면 척! 알아듣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갑갑하기만 하다. 그런데 이것도 어뤼혁이 부족해서 그렇단다. 어휘력은 개념이다. 그래서 그것이 어떤 필요로 등장하여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를 알게 되면 쉽게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어렸을 때는 국어시간에 낱말 공부를 꽤 했었다. 비슷한 말, 반대말도 늘 시험을 쳤고, 낱말의 뜻을 찾아 공책에 쓰고 외웠다. 요즘 아이들은 이런 것도 하지 않는 것 같다. 사전이라는 것이 낱말을 찾는 과정에서 다른 단어를 눈에 익히는 과정을 거쳐, 해당 낱말의 뜻을 알게 되는데, 요즘은 '낱말'을 써서 검색하면 바로 답이 나오는 시대다 보니 어휘력을 증진할 시간이나 과정이 없다.

그렇다면 정확한 어휘는 왜 필요한가? 우선은 정확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이다. 즉, 해석의 여지를 줄이기 위해서다. ​그리고 언어의 한계는 상상과 인식의 한계상황을 불러온다. 어휘력은 낱말에 대한 지식의 총합이며, 문장을 낱말로, 서술을 명사나 형용사로 줄이는 기술이기도 하다. 또한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간단한 표현이라도 고도의 두뇌활동이다.

"눈으로 읽은 적 없고 귀로만 들은 말을 손으로 적으려니 벌어지는 웃기는 맞춤법이다. 거의 책을 안 읽는 사람이라고 싸잡아 단정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p.117

"한쪽에서는 글자를 줄이다 초성으로까지 줄여 쓰는데 다른 쪽에서는 불필요한 경어와 존대로 문장이 엿가락처럼 늘어진다." p.119

"우리말은 형용사와 동사가 잘 발달해 구태여 피동형으로 만들 필요가 없다." p.120

"말과 글은 주어가 목적어를 하게 하는 것을 기본 구조로 파생한다. 그래야 목적과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p.120

"누군가의 생각이나 마음을 알고 싶다면 갖지도 않은 독심술을 부리지 말고 말(글)을 건네자. 그 말(글)이 가진 힘을 믿자. 우리가 어휘력을 키우고 싶은 궁극적인 목적도 결국 소통에 있지 않던가." p.133

그렇다 결국은 소통이다. 내 말을 잘 알아듣든, 못알아듣든 궁극의 목표는 의사소통이다.

모국어 사용자들은 언어를 온몸으로 흡수한다. 왜냐하면 말맛을 알기 때문이다. 말뜻과 말맛 중 하나만 택해야 한다면 말맛이 우선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텍스트보다 콘텍스트에 본능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요즘 회사에서 교정일을 조금 하고 있다. 문서 교정을 하고 있는데, 간혹 문법적으로는 틀리지 않았지만 뭔가 어색한 문장을 만나게 된다. 그럴 때는 아예 해체해 놓고 문장을 바꿔버리는데 소리내어 읽어본 후 어색한 것은 삭제하거나 조정을 한다. 이 책의 저자도 그런 방법을 이야기한다.

"문제는 문장 자체는 번듯한데 무슨 말을 하려는지 종잡을 수 없는 글이다. 전체를 갈아엎어야 한다. 원고를 쓴 이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냐고 묻는 것이다. 말하면서 생각났는지 생각해서 말하는지 몰라도 한결 명확한 내용으로 들려준다. 내용을 간략하게 줄이고 압축할 수 있는 것도 어휘력이다." p.183

나도 자주 하는 일이다. 최초 문서 작성자에게 연락해서 무엇을 전하고자 하였는지 묻는 것이다. 애초에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고 나면 문장을 수정하는 것이 수월해진다. 수식어 없이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어휘를 찾고, 형용사를 용언으로 바꾸면 문장이 간결해지고 뜻이 분명해진다고 한다. 그렇다고 부사와 형용사를 모조리 걷어내자는 말이 아니다. 문장의 적재적소에 형용사를 다채롭게 구사하면 문장이 특별해 보일 수 있다.

"인간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자기에게 일어나지 않은 것을 일어난 것처럼 상상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한다. 사람들은 자기 이외의 것들을 상징을 통해 이해한다. 글자가 기호라면 글은 상징이다. 글자를 읽는 것과 글을 읽는 것은 다른 차원에 있다. 저자도, 독자도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것은 글자가 아닌 글을 읽는 것, 상징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텍스트가 기대고 있는 콘텍스트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P.258

어른의 어휘력, 이 책을 읽는 동안 우리가 배우고 익히는 모든 것들을 학교만 졸업하면 싹다 잊어버리는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책을 읽고 새로운 어휘를 습득하고, 사용하지만 쉽지 않다. 나는 이 책의 제목이 마음에 든다. '어른의 어휘력'. 대학입시가 아니라 살면서 우리가 필요해서 쓰는 어휘력이다. 가장 쉽게 익힐 수 있는 방법이라면 독서만한 것이 없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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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 그들은 왜 칼 대신 책을 들었나 서가명강 시리즈 14
박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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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리 라이벌의식을 갖는 '상대'가 있다. 다른 이가 했을 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데 그 '상대'가 그렇게 했다고 하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한국과 일본이 그러하다. 스포츠에서 한일전이라도 벌어지면 전 국민이 하나가 되어 응원을 하고, 지기라도 하면 역적이 되어버리는 분위기 말이다. 두 나라 사이에 얽힌 문제들은 언제쯤 풀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이 책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설계하고 이끈 사무라이에 관해 이야기한다. 내가 알고 있는 '사무라이'는 비열한 이미지가 크게 차지하고 있었다. 사무라이에 관해 자세히 알지도 못했고 그나마 접할 수 있었던 것은 희화화된 사무라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스트 사무라이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물론 보지 않았다),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있는 닌자들을 떠올렸을 정도로 나는 잘 알지 못하였다.

근대 일본은 메이지유신으로부터 시작하였다고 한다. 나는 일본의 천황제라든가, 정치세습이라든가 하는 것이 참 독특하다고 생각하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래도 근대 일본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서가명강 시리즈는 책을 읽기 전에 주요 키워드를 설명해준다. 이 키워드는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연호(年號)는 특정 군주 즉위 후 통치 기간을 일컫는 용어다. 일본 역사상 천황의 가문이 한 번도 바뀐 적이 없기에 천 년이 넘게 이어져오는 전통이라고 한다. 막부(幕府)는 12세기부터 19세기까지, 천황을 신앙적 존재로 두고 실질적으로 국가를 다스렸던 무사 정권을 말한다. 이 막부 시대가 끝나고 메이지유신이 선포되면서 근대 일본이 열리게 되었다. 근대 일본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천황의 존재는 그대로 두었다는 것이 특이하다. 일본 봉건 시대의 무사계급을 사무라이라고 한다. 사무라이는 도쿠가와 시대에 이르러 농촌이 아닌 도시로 이동하여 살게 되고 주군에게서 봉록을 받는 존재로 바뀌었다.

도쿠가와 막부가 무너지고 왕정이 복고되면서 정치, 경제, 사회, 군사 전 분야에 걸쳐 서구화에 성공한 메이지유신은 지배 계급인 사무라이들의 주도로 이루어진 개혁이다. 1853년과 1854년, 미국 동인도함대의 함선이 일본으로 와 미일화친조약을 맺었고, 이 사건을 기점으로 막부의 쇄국정책이 끝났다. 에도 막부 말기 메이지유신의 사상적 토대가 된 것은 '존왕양이'이다. 그리고 1867년 에도 막부의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국가통치권을 메이지 천황에게 반납한 대정봉환 사건은 에도 막부와 막부 시대의 끝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이 주요 키워드를 중심으로 하여 요시다 쇼인, 사카모토 료마,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를 소개한다.

19세기는 일본에서 유학과 주자학이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메이지유신은 서구의 문물에 자극받아 이루어졌지만, 유학, 그 중에서도 주자학과 같은 수준 높은 교육과 학습이 없었더라면 일본인들이 근대화로 나아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사카모토 료마도, 이토 히로부미도 모두 '독서하는 사무라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나 오다 노부나가와는 종류가 다른 사무라이다. 유학이라는 건 사람을 정치에 관심 갖게 만든다. 유학에 접한 사무라이들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전투 대신, 천하대사의 정치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p.29

독서하는 사무라이. 이 책의 부제 '그들은 왜 칼 대신 책을 들었나'에서도 강조하는 내용이다. 사실 칼을 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책을 읽어서 사상의 토대를 튼튼하게 만들고, 책을 읽으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혔기 때문에 변화의 시대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메이지유신은 지배층인 사무라이층 내부의 다툼과 그 영향으로 일어났다. 변혁은 이루어졌지만 보수세력이 점진적인 방법을 통해 수행하였기 때문에 사회질서가 무너지지 않고 안정성을 유지하며 진행할 수 있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일본 대중은 정치참여에 관심이 덜하다고 한다. 한국인들의 정치성향은 2명만 모여도 드러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요시다 쇼인은 서양 관련 서적을 구해 필사하고 읽었다. 주자학, 양명학, 국학, 미토학, 병학을 가리지 않고 섭렵했으며 서양 정보를 모았다. 그는 옥중에서도 죄수들을 상대로 [맹자]를 강의했고, 수감 기간 동안 독서에 열중해 554권의 책을, 1856년에 505권의 책, 1857년애 385권의 책을 읽었다. 고향에 돌아온 후 3년간 약 1500권의 책을 더 읽었다고 하니 독서광이라고도 부를만 하다. 요시다 쇼인은 학문은 곧바로 정치와 연결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여 공부의 장을 정치토론의 장으로 만들고 이를 장려하곤 하였다.

인구 100만의 도시 에도는 수많은 사숙과 독서모임이 유명학자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사무라이들은 한학, 난학, 병학, 의학 등을 공부하였고, 이런 모임에서는 정치 얘기가 벌어졌다.

"현재 일본 사회가 국제적인 마인드를 중시하고 아시아와의 협력을 중시할 때는 료마가 곧잘 소환된다. 반대로 일본의 민족주의를 강조하고 아시아에 대해 날선 자세를 보이는 정치세력은 요시다 쇼인을 즐겨 소환한다. 쇼인은 강렬하고 어둡지만 료마는 명랑하고 밝다." p.166

역사 인물을 지금의 정치에 끌어들이는 것은 다들 똑같은것 같다. 라스트 사무라이, 사이고는 사후 우상화되었다. 메이지 정부에 반란을 일으킨 역적임에도 나라의 생존을 위해서 열심히 서구화를 추구했지만 그 과정에서 피치 못하게 발생하는 민족적 상실감을 사이고를 통해서 만회하려고 했다.

사이고 다카모리는 양명학과 주자학을 배웠다. 20세 무렵 공부 모임에서 주자학과 양명학의 대표적 고전을 학습했는데, 여기에는 역시 오쿠보 도시미치도 있었다고 한다. 사이고는 사숙을 열어 젊은이들을 가르쳤고, [한비자], [근사록], [자치통감강목] 등의 책도 반복해서 읽었다.

유학을 비롯한 학습활동이 활발해지고, 신분보다는 개인적 능력이 지위를 결정하면서 하급 사무라이 출신의 리더들이 정치적으로 대두되었던 것이다. 오쿠보는 왕정복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사이고가 무력 동원의 수훈갑이라면 그는 정치공작 면에서 일등공신이었다. 쿠데타 세력은 '유신'을 표방했다. 700년간 계속된 사무라이 지배를 무너뜨리고 신분제를 혁파하고 서양화를 추구하였지만, 유신으로 천황에게 대권을 돌려주었다.

책을 읽고 학습을 한다는 것은 사상적 기초를 튼튼히 하고, 국제 정세를 꿰뚫어볼 수 있는 시야를 확대할수 있다. 봉건제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커다란 변혁의 순간에도, 오도가도 못하는 코로나 정국에서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 이 도서는 21세기북스의 협찬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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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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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쯤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책인데, 이번에 독서 동아리에서 마침 이 책을 선정했다. 교정 교열을 전문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그동안 해 온 일과 지금 하고 있는 업무에서 관련 있는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내가 아는 것은 확인을 하고, 내가 몰랐던 것은 다시 공부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 책은 함인주라는 작가와 주고받은 글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한 축에서 진행되고, 또 한쪽에서는 문장을 다듬기 위해 알아야 할 문법적 용례들을 설명한다. 나도 회사에서 직원들의 글을 교정하고 새로운 문장으로 바꾸거나 빨간 색으로 표시해서 넘기곤 한다. 그럴 때 한 번씩 듣는 말이 '굳이 이렇게 고쳐야 하나요?'이다. 즉, 그렇게 바꾸지 않아도 알아볼 수 있는 문장 아니냐는 것이다. 보통은 그 분야의 사람들끼리만 알아듣는 단어를 사용해서 일반 사용자들에게 불친절한 문장을 쓰거나 사소한 맞춤법조차 신경 쓰지 않은 품격 없는 글을 보곤 한다. 교정을 해서 보내면 적어도 다음번에는 사소한 맞춤법 정도는 신경 써서 써 보내면 좋으련만. 아직은 나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특별히 몰랐던 것을 처음 알게 된 내용은 없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제시된 비문을 직접 수정해보면서 읽었다. 저자가 교정한 문장과 조금 다른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동일했다. 이 책을 나처럼 늦게나마 읽으려는 사람이 있다면 비문을 직접 교정해 보는 것도 좋겠다.

관형사 '모든'으로 수식되는 명사에는 복수를 나타내는 접미사 '-들'을 붙이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다. '무리'나 '떼'처럼 복수를 나타내는 명사도 마찬가지다. 이미 복수형을 하고 있는데 뭐 하러 '-들'을 또 붙인단 말인가. p.29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하고 엉뚱한 자리에 끼어들어서 문제가 될 뿐이지 그 자체로 문제가 되는 낱말이나 표현 같은 건 없다. p.47

블로그나 인터넷에 글을 쓸 때는 거의 퇴고를 거치지 않고 그냥 업로드해 버리는데, 이 책을 읽다 보니 한 번 더 확인하고 업로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쓴 글은 나의 얼굴이다. 저자가 지적으로 게을러 보이게 만드는 표현이라고 했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대하다'의 활용형인 '대해(서)'나 '대한'만큼 문장 안에 자주 등장하는 낱말도 드물다. 문제는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까지 무슨 장식처럼 덧붙인다는 데 있다. 더구나 '맞선', '향한', '다룬', '위한' 등등의 표현들로 분명하게 뜻을 가려 써야 할 때까지 무조건 '대한'으로 뭉뚱그려 쓰면 글쓴이를 지적으로 게을러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p.66-p.67

'-들 중 한 사람, -들 중 (가운데) 하나, -들 중 어떤'도 그렇다.

그녀는 전형적인 독일 여자들 중 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정형적인 독일 여자였다. p.78

'가장'이라는 부사로 수식할 수 있는 대상은 하나뿐이다. 최고를 뜻하니 둘이 될 수 없는 건 당연하잖은가. 하지만 워낙 자주 쓰다 보니 '가장'이 여럿을 수식하는 표현이 이젠 입에도 익고 눈에도 익어버렸다.

그는 내 가장 친한 친구들 중 한 명이다.

그는 개 가장 친한 친구다. p.79

'-같은 경우'는 아래와 같이 바꾸는 것이 자연스럽다.

나 같은 경우에는, 중국 같은 경우는, 그 같은 경우

내 경우에는, 중국의 경우는, 그 경우에

나는, 중국은, 그는 p.85

'-에 의한, -으로 인한'도 '때문이다', '비롯되다', '빚어지다' 따위로 바꿔 쓸 만하다. '-에'와 '-으로', '-에'와 '-로'도 구분해 써야 한다. 자주 틀리는 조사 중에는 '-에'와 '-에게', '-에게서'가 있고, '-(으)로부터' 등이 있다. 책에는 다양한 예문이 나오는데, 스스로 수정해 보면 어떤 문장이 자연스러운지 알게 된다.

한때 나는 외국인 유학생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했다. 그때 외국인들이 자주 틀리거나 어려워하는 문법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다 보니 이제는 외국인이 아니라 한국인도 그걸 어려워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외국어 실력을 키우느라 우리글과 말은 한쪽으로 제쳐 두지는 않았는지 반성할 일이다. 한국어는 순우리말만을 말하지는 않는다. 한자어도 우리말이고, 외래어도 우리말이다. '시키다'를 붙이는 많은 낱말들이 한자어와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보면, 한자어의 정확한 뜻을 몰라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닌지 궁금하다.

잘 쓴 글은 읽기 쉽고 내용이 명확하게 전달된다. 요즘 우리는 말보다 글을 더 많이 쓰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짧은 문장이라도 정확하고 분명하게 내용을 전달하려면 몇 번을 생각하고 살펴야 한다. 의사소통에 '말'만큼 '글'이 중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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