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공포계 恐佈雞,  Intruder, 1997

감독 : 증근창

출연 : 우첸롄, 와이한 라이, 진호, 황문혜, 뇌원동, 임설, 원빈 등

등급 : NR

작성 : 2009.07.01.



“완전범죄를 위해 버려야 할 것들에 대한 교훈이 있었으니.”

-즉흥 감상-



  ‘애인님과 함께 보는 영화’ 시간을 통해 만나보게 되었다는 것으로, 더 이상의 긴말 할 것 없이 소개의 시간을 조금 가져볼까 합니다.



  작품은 비가 퍼붓고 있는 밤의 시간으로 집안에서 인생에 대해 대화중인 두 여인이 있었다는 것으로 시작의 문을 열게 됩니다. 그리고는, 오잉?! 주로 듣기만 하던 여인이 원래의 집 주인을 목 졸라 죽이게 되는군요?

  그렇게 새로운 신분으로의 삶을 통해 여러 남자들에게 전화를 걸던 그녀는 결국 하룻밤을 즐기기 위해 여자들에게 접근하던 남자와 함께하게 되고, 그날 밤으로 떠났던 그녀는 홀로 살고 있던 남자에게 다시 찾아와 그를 감금하기에 이른다는 것으로 본론으로의 문이 열리게 됩니다. 그리고는 그 모든 과정이 자신의 남편을 위한 위장신분을 만들기 위함을 밝히게 되는데요. 계속되던 비로 인해 남편이 제때 오지 못하게 되고 심지어는 감금 중이던 남자의 어머니가 찾아오게 되었음에 살해하게 되는 등 계획에 차질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런 한편으로는 자신의 위장신분의 여자를 찾아다니고 있던 남자가 그녀를 뒤 쫒게 되자, 결국 여인의 남편이 등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꼬여가고 있던 일정은 걷잡을 수 없이 뒤엉키고만 있었는데…….



  아 무서웠습니다. 정의가 사라져버린 유감스러운 도시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한 여인. 하지만 마음 속 어느 한구석에 남아있던 양심의 소리에 일을 그르치고 마는데요. 그런 그녀가 범죄의 길에 들어서게 된 이유에 대한 설명이 조금 부족하다 싶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감금당해 고통 받는 남자의 시점을 통해 영화 ‘미져리 Misery, 1990’가 연상되었다보니 혼자 살아가는 환경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타인에 대한 공포라는 점에서 익숙한 공감대를  가져볼 수 있었습니다.



  네? 다른 건 몰라도 그저 이상하게만 보이는 제목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시다구요? 일단, ‘Intruder’는 침입자, 난입자, 훼방꾼, 방해자 등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었으며, 恐佈雞는 두려울 공에 펼 포, 닭 계 자로 나름대로 직역해보아 ‘두려움을 모르는 닭’이 아닐까 합니다. 으흠. 하지만 영어의 의미는 작품의 내용과 관련이 있어 보인 반면 ‘닭’에 대한 부분은 아시는 분의 도움을 받아보고 싶어지는군요.



  제 기록을 읽어주시는 분들은 ‘정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법을 절대기준으로 사람을 죽인 자는 응당 그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살인’은 나쁜 것이라고 여러 ‘가르침’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만, 이번 작품의 주인공처럼 자신을 강간하려던 집주인에게 정의의 심판이 내려지지 않아 자신들의 손으로 어떻게든 처리하게 되었노라 말하는 그들의 입장보다도, 전후사정은 일단 남기고 결론만 마주하여 수배중이라는 상황만 봐서는 법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의 시간을 가지게 했는데요. 자극만을 추구하고는 소식통을 통해서는 나쁜 사람들만 수배된다고는 하지만, 아아. 모르겠습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라는 말이 있지만 정작 본인이 그런 상황에 처해보지 않고서는 절대 그 위치에서 생각할 수 없다는 점에 그저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건 그렇고 어디선가 익숙하게 들리는 ‘유감스러운 도시’에 대한 언급은 뭐냐구요? 아아. 그건 앞서 만난 영화 ‘유감스러운 도시, 2008’를 통한 말장난인 동시에, 이야기 속에서 그 누구하나 나쁜 사람이 없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사연들만이 존재함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도 지금 당장은 정말 할 일 없이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일지라도, 어느 한순간의 작은 뒤틀림으로 꼬여버리는 인생의 궤도 안에 서게 된다면, 으어! 상상도 하기 무서워집니다!!



  그럼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문득 영화 ‘양들의 침묵 The Silence Of The Lambs, 1991’이 떠올랐다는 것으로서, 이번 기록은 여기서 마쳐볼까 합니다. 물론, 내용이 아닌 ‘장면’에서 말이지요. 크핫핫핫핫핫!!

 

 

TEXT No. 0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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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생매장 Buried Alive, 2007

감독 : 로버트 커츠먼

출연 : Erin Lokitz, 토빈 벨 등

등급 : NR

작성 : 2009.06.30.



“가족의 전설은 때론 그대로 묻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니.”

-즉흥 감상-



  ‘애인님과 함께 보는 영화’ 시간을 통해 만나보게 되었다는 것 말고, 다른 긴 말 할 것 없이 소개의 시간을 조금 가져볼까 합니다.



  작품은 거품이 하나가득인 욕조에 누워 매끄러운 다리를 손질중인 여인의 모습으로 시작의 문을 열게 됩니다. 그리고는 한 남자가 나타나 사랑을 속삭이더니, 오잉?! 그녀의 얼굴을 욕조에 눌러 담가버리게 되는군요?

  그렇게 그것이 꿈이었다는 것은 일단 넘기고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는 청춘남녀들의 모습으로 본론으로의 문이 열리게 되는 작품은, ‘금과 저주’라는 가족의 전설을 추적하는 청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게 됩니다. 하지만 계속되던 어떤 ‘무엇’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목적지에 도착하는 그들이 있었다는 것도 잠시 그들만의 파티가 있게 되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계속되던 조짐은 결국 죽음으로의 손길로 그들을 쓰다듬기 시작했는데요. 뒤늦게나마 상황의 심각성을 눈치 첸 그들은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을 치게 되지만, 예리하면서도 현란한 도끼질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일 뿐이었는데…….



  흐음. 글쎄요. 애인님의 언급으로는 ‘덜 유명한 ‘생매장’이에요.’라고 하시기에 정보를 검색하다보니 90년과 97년으로 같은 제목의 영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90년도 판의 감독이 제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프랭크 다라본트’ 님 이라고 하니 언젠가 만나보고 싶어지는군요.



  아무튼,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면, 음~ 정말이지 시간이 아까운 영화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보는 내내 주인공 남자가 죽음의 선물을 뿌려대는 정신병에 걸린 진범일 것이라 생각하며 나름대로의 반전을 기대하고 있었건만, 드러난 진실은 멀더와 스컬리를 부르고 싶었을 뿐이었는데요. 기억에 남는 것이라고는 여학생 클럽에 가입하기 위해서 훌렁훌렁 벗어재끼는 두 여인의 자태뿐이었으니, 아아. 그 정도만 해도 그리 할 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제 기록을 읽어주시는 분들은 나름대로의 ‘가족의 전설’을 가지고 계시는지요? 아, 물론 족보만 열어보아도 ‘신화’에 가까운 시작에서부터 관직에 종사하셨던 조상님들에 대한 기록들이 하나 가득 담겨 있을 것입니다만, 그런 것 말고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비밀이라거나 숨겨진 보물에 관한 이야기 등과 같은 무엇인가 신비로운 것을 말하는 것인데요. 이번 작품은 ‘금’과 관련된 욕심으로 하여금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저주’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보니, 문득 저희 가족은 이런 ‘가족의 전설’이 없을까 궁금해졌습니다. 하지만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딱히 들어본 것이 없었으니 다른 분들은 어떠실까 하는데요. 덤으로는 제가 나름대로의 ‘가족의 전설’을 한번 만들어볼까도 생각해보게 되었다고만 해보렵니다. 크핫핫핫핫핫!



  아아. 어제 짬뽕 맛 집을 두 군데나 돌고 세 번째로 들린 집에서는 쫄깃쫄깃 달짝지근한 탕수육까지 먹고 와서인지 화장실을 몇 번이나 들락거렸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생매장’에 대해 문득 ‘링 ルング’시리즈를 떠올려볼 수 있었는데요.산채로 매장당하여 원한을 키워나간 그녀들이 있었다는 것도 잠시, 이번 작품은 그런 원한의 집대성보다도 ‘골룸’의 반지에 대한 집착으로 마침표를 찍어버린 듯 해 뭔가 뒤죽박죽인 작품을 하나 만났다는 기분만이 여운마냥 떠돌고 있습니다.



  그럼, 그나마 양호하게 최후를 맞이하신 ‘직소’ 영감님 최후에 대해 명복을 빌어본다는 것으로서, 이번 기록은 여기서 마쳐볼까 합니다. 물론, 제작과 관련된 모든 분들께도 고생하셨다는 소리 없는 박수를 함께 동봉해서 말이지요.

 

 

TEXT No. 0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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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레이드 투 레스트 Laid To Rest, 2009

감독 : 로버트 홀

출연 : 바비 슈 루더, 케빈 게이지, 레나 헤디, 숀 월렌 등

등급 : R

작성 : 2009.06.28.



“생활화된 습관. 때로는 그것이 화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즉흥 감상-



  ‘애인님과 함께 보는 영화’ 시간을 통해 만나보게 되었다는 것으로, 다른 긴말 할 필요 없이 소개의 시간을 조금 가져볼까 합니다.



  작품은 해골마스크를 은으로 도금하며, 녹화해둔 여인들의 죽음을 보여주는 화면과 함께 작업도구를 챙기고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으로 시작의 문을 열게 됩니다.

  그렇게 문득 정신을 차리고는 자신이 어딘가에 갇혀있음을 인식하게 되는 여인이 있었다는 것으로 본론으로의 문이 열리게 되는데요. 여차저차 관에서 탈출하게 되는 그녀가 주인공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도 잠시, 119에 전화를 하던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다는 사실을 직면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자신을 도와주려던 노인이 ‘무엇’에게 살해되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는 것으로 필살의 탈출을 시도하게 되는데요. 일단은 ‘무엇’을 피해 장의사 집을 탈출하게 되는 그녀는 사람들을 하나둘씩 만나게 되지만, 그런 그녀를 도와주려던 사람들까지 무차별적으로 썰리는 사태가 발생하게 됩니다. 하지만 살아남아야 했기에 발버둥을 치게 되던 그들은 결국 반격할 기회를 잡게는 되지만…….



  아아. 정말 잘 썰립니다. 살점과 피가 쫙쫙 뿌려지더군요. 망설임도 없습니다. 그냥 푹! 푹! 써걱써걱! 그렇다보니 만일 식사를 하시면서 이 작품을 만나려고 하시는 분 있으시다면 일단은 다 드실 것을 권장해보고 싶어지는군요. 물론 임산부나 노약자분들에게도 같은 경고를 해드리는 바입니다.



  방금 적은 부분도 그렇지만 그냥 사람 죽이는 영화였다는 것 말고는 다른 할 말이 없기에 제목부터 분석을 해볼까 하는데요. 나름대로 직역해보아 ‘안식을 위한 드러누움’정도가 되겠습니다. 하긴, 시작이나 마지막이나 중심인물들이 누워있었으니 진정한 안식은 죽음으로부터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이 감기록을 작성하기 바로 앞서 영화 ‘13일의 금요일 Friday The 13th, 2009’을 만나버렸던지라 얼굴 한번 보이지 않는 ‘무엇’이 우리의 불사신 제이슨과 친구가 될 수 있진 않을까 싶었는데요. 그럼에도 즉흥 감상을 통해 해골마스크에서 해골면상으로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이번 작품의 ‘무엇’에게 명복을 빌어볼 뿐입니다. 덤으로는 주인공 여인의 잃어버린 진실이 그 무엇보다도 충격적이었다고만 적어볼까 하는군요.



  제 기록을 읽어주시는 분들은 이런 썰어대기 바쁜 작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평소에 쌓여있는 걸 풀 수 있다는 대리만족? 범죄심리학을 공부할 수 있는 영상수업? 그것도 아니라면 사람을 처리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으로의 모색? 모르겠습니다. 그 어떠한 철학도 발견할 수 없이 그저 튀기는 것만 하나가득인 이번 작품으로는 그저 멍~하니 시간만 흘려보낼 뿐이었는데요. 흐음. 그는 왜 자신 이외의 사람들을 처리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저 궁금하다고만 해두겠습니다.



  문득, ‘절정’이라는 단어가 떠올렸습니다. 남부러울 것 없이 이 세상 모든 것을 해보았건만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자극이란 결국 한계가 있었기 때문인지, 그런 절정으로의 자극을 추구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무차별살인을 저지르고 말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는데요. 영화 ‘헬레이저 Clive Barker's Hellraiser, 1987’만 보아도 그런 절정으로의 자극을 찾던 중으로 지옥의 문을 열었다지만, 아아. 절정이라. 모르겠습니다. 저 또한 나름대로의 절정을 뒤쫓는 자이기는 하나, 이렇게까지 타인을 사물로서 인식하고 파괴하여야만 하는 것인지 그저 안타깝기만 했는데요. 아무리 ‘나’와 다르기에 쓰레기 같아 보일 수도 있는 인생들이라지만, 개개인의 생명이 중요하다고 배워온 저로서는 별로 이해하고픈 작품이 아니었다는 것으로, 이번 기록은 여기서 마쳐볼까 합니다.

 

 

TEXT No. 0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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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Villmark, 2003

감독 : Pål Øie

출연 : Bjørn Floberg, Kristoffer Joner, Eva Röse, Sampda Sharma, Marko Iversen Kanic 등 

작성 : 2009.06.27.



“때론 본능에 충실할 줄도 알아야 할 것이니.”

-즉흥 감상-



  ‘애인님과 함께 보는 영화’ 시간을 통해 만나보게 되었다는 것으로, 더 이상의 긴말 할 필요 없이 소개의 시간을 조금 가져볼까 합니다.



  작품은 연못을 시작으로 울창한 숲을 보이는 것에 이어, 그런 연못을 가까이 했으면 안 되었다는 한 남자의 독백으로 시작의 문을 열게 됩니다. 그리고는 각각의 이유로 인적이 뜸한 숲속에서 살아가는 방송에 참여하게 된 사람들의 소개가 있게 되는군요.

  그렇게 길을 달려 약간의 등산을 하고는 오두막집에서 여장을 풀게 되는 사람들이 있었고, 약속된 4일간의 시간이 되기까지 그곳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으로 본론의 문을 열리게 됩니다. 하지만 오두막집에 도착하면서부터 어떤 이상함을 감지하게 되는 그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차츰 그 어떤 이상함과의 조우가 빈번해지기 시작하였음에 그것을 해결하기위한 나름대로의 노력을 하게 되는데요. 결국에는 자신들 이외의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하였다는 것도 잠시, 그들은 죽음으로의 카운트다운 속에 있음을 실감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이 작품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종잡을 수 없더니 감상문을 쓰기 위해 다시 돌려보게 되면서는 분위기 있고 인상적이라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일단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노르웨이 영화라서 적응이 안 된 탓도 있겠지만, 가장 신경 쓰였던 것은 일종의 ‘생존 체험’과 같은 방송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카메라를 들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는데요. 그것을 제외하고는 점점 고뇌에 빠져들게 되는 각각의 인물들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 말고는 괜찮다는 기분으로 만남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습니다.



  네? 다른 건 몰라도 제목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것 같다구요? 하긴, 영어사전에 나오는 단어가 아니었다보니 좀 더 광범위한 탐색의 결과 노르웨이어로 ‘야생’이라는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요. 그런 제목과 함께 최소한의 안전지대라 할 수 있는 오두막까지 그 신성함(?)을 잃게 되었음에, ‘야생'에 노출된 사람이 어떻게 변해가는 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뭐랄까요? 당연히 어떤 일을 처리해야했지만 본능이 어떤 위험을 알려오고 있었음에 딜레마에 빠져버리고는, 그 어떤 선택도 하지 못한 상황에서 결국 본능이 경고하고 있던 위험이 눈앞에 닥치게 되자, 비명을 지르는 것 말고는 다른 것을 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졌음에 위의 즉흥 감상을 완성해 볼 수 있었다고만 적어보렵니다.



  아무튼, ‘파이널 쏘우 Are You Scared?, 2006’때부터 생각하던 것으로, 제 기록을 읽어주시는 분들은 TV에 출연할 수 있는 기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위험부담 없이 출연 하는 것만으로도 거액의 출연료를 준다면 기꺼이 응하시겠습니까? 개인적으로는 워낙에 남을 믿지 못한다는 것은 다음 문제로, TV등의 대중화 매체에 연결된다는 것에 대해 깊은 불신이 있는지라 일단은 거절부터 할 것 인데요. 다시 말해,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대해 최고의 자리를 향하는 것은 존중할 지언정 단순히 멋지기 위해 일단 자신을 내세우고 보는 것에는 별로 생각이 없습니다. 물론 ‘돈’이라는 것의 위력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글쎄요. ‘쉽게 온 것은 쉽게 나간다.’는 말을 좋아하는 편인지라 당장의 빛남은 없을 지라도 은은하게 오래도록 빛나는 불꽃이 되고 싶다고만 적어보는군요.



  으흠? 적다보니 저만의 세상에 흠뻑 빠져든 것 같은데요. 이번 작품은 그런 TV출연과 관련한 내용이 아닌, 위에서도 언급한 ‘야생’에 노출된 인간이 어떻게 살아남는 가에 대해 나름대로 진지하게 생각해본 것은 아닐까 한다는 것으로서, 이번 기록은 여기서 마쳐볼까 합니다. 아, 물론 출연진들이 아닌 ‘무엇’의 시점으로도 이번 영화를 다시 만들어보았으면 해보는군요.

 

 

TEXT No. 0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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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악마의 무덤 The Devil's Tomb, 2009

감독 : 제이슨 코너리

출연 : 쿠바 구딩 쥬니어, 레이 윈스톤, 론 펄먼, 타린 매닝 등

등급 : NR

작성 : 2009.06.25.



“차라리 영화 ‘이벤트 호라이즌 Event Horizon, 1997’을 다시 보겠네!!”

-즉흥 감상-



  ‘애인님과 함께 보는 영화’ 시간을 통해 만나보게 되었… 네?! 아아. 죄송합니다. 염장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일주일 평균 세편 이상의 영화를 보시는 애인님의 속도를 따라잡기란 생각보다 벅찬 기분이 없지 않은데요. 개인적으로 만나본 영화에 대해서는 기회가 되는대로 소개의 시간을 가져보겠다는 것으로, 일단은 이번 작품에 대해 조금 적어볼까 합니다.



  작품은 어디선가 전송되어진 영상을 확인하던 남자가 영상을 보낸 곳이자 문제가 발생해버린 장소로 해결사들을 보내기로 했다는 것으로 시작의 문을 열게 됩니다.

  그렇게 사막의 어느 지점에서 평생을 용병으로 살아왔다는 한 남자의 독백으로 시작의 문을 열게 되는 작품은 그의 대원들을 소개하는 것도 잠시, 그들이 의뢰받은 목적지로 향하게 되는데요. 거친 모래바람을 뚫고 문제의 장소에 도착하게 되었지만 예상하고 있던 상황과는 달리 지진의 피해는커녕 그저 상태가 양호하다는 사실에 일단은 긴장을 풀게 됩니다. 하지만 목적으로 두고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해 지하기지를 복구하고 탐색을 시작한 그들에게 어떤 초자연적인 현상이 인사를 건네게 되자, 그들은 살아남고자 그리고 임무를 완성하고자 최선을 다하게 되지만…….



  결론은 위의 즉흥 감상과 별반 다를 것이 없겠습니다. 그들 각자가 지니고 있는 내면의 공포를 환영을 통해 마주함에 죽음으로의 전진을 계속하게 되었다는 것을, 우주공간에서의 ‘이벤트 호라이즌’과는 달리 지구의 지하 시설에서 하고 있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었는데요. 다시 봐도 영상자체가 예술이라 생각되던 작품과는 달리 이번 작품은 음~ 그저 싱거웠습니다. 거기에 용병들의 대장으로 나오는 사람의 지겹게 반복 전진하던 과거회상은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계속되면서는 은근히 짜증나기 시작했는데요. 결국에 드러나는 마침표를 통해서는 이 작품이 무엇을 말하고자 한 것인지 감을 잃고 말았다고만 해두겠습니다.



  잠시 멍~ 하니 있다가 작품에 집중을 해봅니다. 이번 작품에 대해서는 사실 ‘론 펄먼’이라는 연기자가 나오기에 관심을 가져볼까도 싶었지만, 그가 등장하는 대 부분의 작품이 그렇듯 이번 작품에서의 그의 모습은 분명 중요해 보이는 위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싱겁게 처리되었음에 안타까웠는데요. 아직 못 만나본 ‘헬보이 2: 골든 아미 Hellboy 2: The Golden Army, 2008’와 다시 만나 보고픈 ‘미녀와 야수 Beauty & the Beast in the Tunnel, 1987’를 통해 그의 멋진 연기를 마주하고 싶을 뿐입니다.



  아무튼, 제 기록을 읽어주시는 분들은 ‘악마의 무덤’이라 하면 어떤 내용일 것이라 예상하셨을지 궁금해졌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잠자리 마크로 유명한 ‘tombo’를 먼저 떠올렸던지라 ‘악마의 잠자리’를 연상하며 접했다고 부끄러운 고백을 적어봅니다. 그러면서는 만화책 ‘봉신연의 封神演義’에 등장하는 ‘여와’와 비슷한 ‘무엇’의 모습에 ‘연속극 ‘스타게이트 Stargate’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작품인가?’도 싶었지만, 등장인물들이 하나 같이 우주에서의 방문자가 아닌 ‘천국에서 버려진 천사’라고 우겼음에도 뚜렷한 결말이 나오지 않아 가망성이 없는 후속편을 기다려보게 되었다고만 적어보는군요.



  아아. 모르겠습니다. 준비물과 도전의식은 좋았지만 과정과 균형을 상실한 완성은 그저 안타까웠는데요. 그럼에도 열심히 만든 흔적이 하나가득이었다는 점에서 소리 없는 박수를 보내볼까 합니다. 다 이런 과정을 거쳐 그 후에 나오는 작품이 더 빛을 발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그럼, 이 현재의 시간 속.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일에 열심인 모든 분들께 싸우자(?)를 외쳐본다는 것으로서, 이번 기록은 여기서 마쳐볼까 합니다.

 

 

TEXT No. 0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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