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의 순례자 - 부암동 푸른 마당에서 누리는 고혹한 자유
서화숙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읽은 날 : 2024. 9. 8

 

요즘 나는 종종 정원에 나간다. 내 집의 정원이었으면 참 좋겠지만, 일터의 정원이다. 일터라고 해도 벌써 20년 넘게 30년 가까이 드나들던 곳이라 이제는 내 정원 같은 생각도 든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 맘 내키면 나가서 잔디밭의 잡초를 눈에 띄는 대로 휙휙 뽑는다. 사무실에서 유리문 하나 열고 나가면 아주 근사한 잔디정원이 펼쳐지기에 누릴 수 있는 사치다. 잡초가 눈에 띄면 뽑고, 뽑다가 지겨워지면 말고. 사실 정원관리는 하는 분은 애초에 따로 있어서 맘 편히 내가 하고 싶은 만큼의 일만하고 손을 털 수 있으니 더 좋다. 정원일이 사람을 얼마나 즐겁게 하는지는 진짜로 그 일을 해 본 사람만이 안다. 그리고 거기에 취미가 있는 사람만이.

 

사무실에 나 말고도 직원이 둘 더 있는데 그들은 잠깐 몸을 움직이러 나가 한 10분 남짓 정원을 돌아다니며 아무데서나 내키는 대로 잡초를 한 움큼 뽑아 드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신기하단다. 종종 묻는다. 첨엔 풀을 왜 뽑니? 라고 물었다가 재미로 한다는 말에 정말 재미있니, 그게? 라고 질문이 바뀌었다.

 

나로서는 반문할 수밖에 없다. 그럼 이게 안 재밌니, 진짜?

 

내가 시골 살이를 꿈꾸는 이유는 정원을 가꾸고 싶어서가 가장 크다. 그러다 서화숙의 이 책을 봤을 때 내가 아는 동네 이야기가 나와서 반가웠다. 서울을 떠나지 않고도 정원을 가꾸는 삶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이 책을 열심히 탐독했다. 사실 딱히 서울에 천착하지도 않으면서 서울에서 정원을 가꾸는 삶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이유는 떠도는 삶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정착하고 싶은 어디도 없으면서(그렇다, 내 살던 고향동네도 이제 내가 정착하고 싶은 곳이 아니게 된지는 오래 되었다) 살고있는 이곳에서 떠나는 것만을 꿈꾸는 삶의 서글픔이란.

 

어쨌든, 마당에서 살구와 앵두를 따먹고 복분자와 딸기를 수확하는 삶이라니. 그럴 수 있는 곳 어디라도 나는 살 수 있다. 헌데 부암동, 나 알아. 친해 그 동네랑. 난 한때 평창동 주민이었거든. 내가 가꾸는 사무실 정원도 평창동이거든. 낯가림을 사람만이 아니라 지역에도 하는 나로서는 아는 곳에서 정원을 꾸밀 수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책에 나오는 클럽 에스프레소와 슈퍼와 그 빌라, 다 내가 아는 곳이라고. 그런데 그 부암동에서 정원을 가꾸며 사는 사람의 이야기라니. 세상 부러운지고. 이 책을 읽고 내가 뭘 했게? 맞다. 부암동 단독주택 가격을 찾아봤지, 네이버 부동산에서. 헛웃음이 났다. 하하하하하하.

 

서화숙 기자를 안다. 한국일보의 기자라는 사실도, 꽤 오래 기자 생활을 한 사람이라는 것도. 김어준 덕에 안다. <다스뵈이다>를 비롯한 김어준의 정치 문화 토크쇼(라고 하는 게 맞나?)의 단골 게스트였거든.

 

평창동 1호 주민에 가까운 우리 선생님은 나처럼 정원 가꾸는 취미가 있으셔서(실은 나의 정원 취미도 이분에게 물려받은 것이긴 하다) 정말 근사한 잔디정원을 평생 평창동에 가꾸셨다. 한번은 이분이 정원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젊은 남자애가 지나가며 삐딱한 말로 그러더란다. 돈을 얼마나 벌어야 이런 집에 살수 있을까. 하고. 우리 선생님은 그 젊은 남자애를 불러들여 말해주었단다. 맞벌이 부부가 몇 십년을 열심히 벌어서 장만한 집이라고. (강인숙, 글로 지은 집, 열림원, 2024 참고)

 

서화숙 기자도 마찬가지다. 남편도 기자생활을 했고. 서화숙 기자보다 좀 일찍 때려치웠다만, 부암동 집을 마련할 무렵에는 두 사람은 어쨌든 맞벌이 부부였다. 세 명의 아이를 낳고, 시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열심히 한 기자생활로 마련한 집. 맞벌이를 하지 않은 나로서는 그저 손가락 입에 물고 부러워하는 것 외엔 달리 할 말이 없는 노력의 대가와 소산. 서울 시내(정확히는 터 잡고 계속 살아오던 지역, 도시)에 아파트 생활을 하던 사람이 정원이 있는 집을 꾸민다는 건 역시 어려운 일이구나 하는 깨달음.

 

이 책 직전에 읽은 엄마도 꿈 꿀 권리가 있다.라는 책의 저자 임지수는 무려 2만평짜리 정원(농장)을 가꾸고 살지만, 이 사람은 서울을 떠난 장수에서 꿈을 이루었다. 그녀가 서울에서 멀어진 거리만큼 부러움도 희석되었다. 이건 맞벌이하지 않은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 , 타샤 튜터의 집 같겠다,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중에 나도 시골살이를 하면 임지수처럼 살아야겠다. 습관처럼 중얼거린 말. 나중에.

 

나의 나중은 언제 올까. 나와 같은 고민을 했던 임지수는 답을 찾았다.

 

무언가를 더 이루고 더 많이 가져야 서울 생활을 완벽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고, 그 연후에야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정작 꿈꾸는 삶을 향해서는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있었다.

산속 오두막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나보다 무엇을 더 가진 것이 아니라, 소박한 삶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날 기차 안에서 깨달았다. ‘그래,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행복해 질 수 있는데, 나는 그 행복을 나중으로 미루고만 있었구나.’

 

임지수, 엄마도 꿈 꿀 권리가 있다, 터치아트, 2018, p.21

 

출장길의 기차 안에서 이 깨달음을 얻었던 임지수는 더 이상 나중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여기의 행복에 충실하기로 한 결과가 장수의 ‘farm 나무와 풀이다.

 

뜬금없는 소리같지만, 삶의 많은 부분은 결국 상상력의 문제라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나는 욕실을 건식으로 쓰고 있는데, 그 말을 듣는 사람들 대부분은 놀라움으로 눈을 크게 뜨고 되묻는다. “그게 가능해?” 우리집을 방문한 사람 중엔 얼마나 가나 보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마도 새살림이라 야심차게 급조한 건식욕실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딱히 인테리어를 이유로 건식을 쓰는 건 아니고 욕실화 특유의 그 축축한 느낌을 싫어하는데 건조하게 유지할만큼 바지런한 성격이 못되니 아예 욕실화를 없애버린 거다. 이유는 이게 전부다.

 

매번 건식 욕실에 대해 놀라워하는 한편 부러워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이 건식욕실을 어찌 유지하며 사는지를 상세히 설명해주지만 나와 동일한 주거조건(2개의 욕실과 분리된 세탁실)을 가진 사람들도 손사래를 친다. 내가 건식욕실을 강요하는 것도 찬양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건식욕실이 부럽고 가지고 싶다면 그냥 해 보면 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거다. 막상 해 보면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로(이렇게 쉬운일이었단 말인가 싶어) 쉬운 일을 시도조차 해 보지 않고 지레 겁먹어 손을 드는 걸 보면 답답하다.

 

답답하다라고 써 놓고 나라고해서 별 다를 게 있나 하는 생각을 한다. 시골살이를 하고 싶으면 그냥 하면 된다. 적당한 땅을 찾고, 매매하고, 거기 들어가서 살면 된다. 정원 있는 서울살이를 하고 싶으면 지금 사는 아파트를 팔고 정원이 있는 단독을 사면 된다. 나도 건식욕실에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과 똑같다, 자신 없어. 자신이 없으면 어쩌겠어, 이대로 사는 거지 뭘. 그게 아니라면 그렇게 간절하지 않은 거든가. 내가 뭘 원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당신이 무언가 좋은 생각을 내야 한다면 산책이 좋다. 어슬렁어슬렁 걸으며 그 생각을 굴려보길 바란다. 당신이 잊어야할 것이 있다면 꽃을 돌보는 일이 좋다. 까다로운 식물을 돌봐야 하는 일에 신경을 집중하다 보면 잊을 것이 잊힐 것이다. 당신이 직면해야 하는 문제, 해법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가 있을 때는 잡초를 뽑으면 된다. 결국에는 당신의 두뇌를 속이는 것, 잠시 다른 길로 유도하는 것, 그리고 마침내 문제를 직면해도 될 만큼 마음이 여물었을 때 그걸 열어보는 것, 그렇게 마음을 여물게 하는 명상을 나는 마당을 순례하면서 했다.

(p.282-284)

 

서화숙은 이렇게 마당을 순례하면서 혼자가 되더라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을 해야 할 만큼 정신이 강건해 졌고,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시간을 가졌다.(p.286) 정원의 순기능이다. 내가 사무실에서 종종 뛰쳐나가 잡초를 뽑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일이 뭔가를 내가 나에게 물어보는 시간. 내가 왜 시골살이를 꿈꾸는지를 물어보는 시간. ‘나중에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시간. 정말로 현재는 안되는 것인지 두려워서 미루는 것인지를 내가 나에게 진지하게 묻고 있는 중이다.

 

결국 모든 것은 상상력의 문제인 것을.

 

ps. 역시 딴소리 하나. 기자 출신 작가들의 글은 참 단정하다. 그래서 별 다섯개

 

2024. 9. 9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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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의 허기 - B급 주방장 박찬일 에세이
박찬일 지음 / 경향신문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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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읽은 날 : 2024. 9. 7

 

입맛은 보수적이다. 나는 19살에 하숙을 시작했는데, 3년간 살았던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는 강원도 분이셨다. 강원도는 척박한 기후 탓에 식재료가 다양하지 못해 음식문화가 그다지 발달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그분의 손맛은 기가 막혔다. 특히 김치 종류를 정말 잘 담그셨다. 음식 솜씨가 그다지 좋지 못한 엄마 아래에서 자란 나는, 자연스럽게 그분의 음식에 길들여졌고 그분의 김치를 김치맛의 기준으로 받아들였다. 경상남도 쪽의 김치는 멸치 액젓을 많이 쓰고 간이 강하다. 날이 더우니 변질을 막기 위해 그렇게 된다. 김치는 위로 올라올수록 싱거워지고 물이 많이 생긴다. 경상도에서는 처음부터 국물김치를 담지 않고는 김치에 물기가 별로 없는데 서울식 김치는 아예 김치를 담고 국물을 만들어 붓기까지 한다. (김치명인 이하연의 명품김치, 웅진 리빙하우스, 2009, p.45 서울, 경기식 배추김치 레시피 중 거의 마지막 단계 생수에 소금을 녹인 다음 김치소를 넣고 남은 그릇에 부어 남은 양념을 헹궈 김치통에 자작하게 붓는다참조) 다만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는 그때 이미 서울 생활 30년이 다 되어가는 분이셨고 오랫동안 하숙으로 집안을 일으키신 분이라 그분의 음식이 강원도 음식이었을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평균적인 서울식 음식을 하지 않으셨을까.

 

하숙을 끝내고 자취의 생활이 이어졌다. 먹는 일에 그다지 살뜰하지 못했던 나와 집에서 이미 10명 가까운 대식구의 식생활을 책임지고 있던 엄마의 조합은 김치 공수를 아주 드문일로 만들었다. 그 즈음의 나는 김치를, 아니 집밥 자체를 거의 먹지 않았다. (나는 그때도 지금도 라면 먹을 때 김치를 먹지 않는다. 별 이유는 없고 딱히 김치를 먹어야 할 이유를 몰라서.) 어쩌다 김치를 먹고 싶을 땐 사다 먹었다. 종가집 김치 만세. 그러다 스물 여섯 살 무렵, 여섯달 정도 서울 가정식 요리를 배우러 다니면서 내 요리 인생이 시작되었다. 그 뒤 해외로 떠돌던 시절, 나는 온갖 김치를 다 내 손으로 담아 먹었는데 김치 명인 이하연 여사의 책이 내 김치 바이블이었다. 귀국해서는 다시 종가집 김치를 찬양하는 중이다.

 

친정과 시댁은 같은 지역에 있고, 남편과 나는 학번이 네 개 차이난다. 남편이 4년 먼저 서울에 온 거다. 남편도 나와 마찬가지로 고등학교 졸업으로 떠나온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디아스포라의 세월을 살고 있다. 불쌍한지고. 그의 대학시절 하숙집 아줌마의 출신지역은 어딘지 모르겠으나 그도 나와 비슷한 지경의(사실은 울 엄마보다 시어머니의 음식 솜씨는 더욱... . 평생 돈을 버는 일로 바쁘셨으니 음식 따위 하실 일이 없으셨을 거다.) 엄마를 둔지라 자연스럽게 서울 음식을 음식의 기준으로 잡았다.

 

나도 이렇고 남편도 이러니 평생 경상도 김치를 그리워할 일은 없을 줄 알았다.

 

한데 2-3년 전부터 나는 명절에 친정에서 늘 김치를 한 통씩, 그것도 아주아주 큰 통으로 받아오고 있다. 처음에는 묵은지를 먹고 싶어서 얻어온 거였는데, 얻어온 친정김치(때로는 큰언니의 산청 시댁김치일 때도 있다)로 끓인 김치찌개는 눈물이 날 정도로 맛있었다. 돼지 목살을 듬뿍 넣고 푹 지져낸 김치찜의 걸쭉한 국물을 흰 쌀밥에 얹어 비빈 걸 한입 가득 넣었을 때, 오래 끓여 물러진 김치의 긴 줄기를 밥 위에 척 걸쳐 입에 가져갈 때, 남편과 둘이 동시에 아 이 김치찌개 진짜 맛있다, 찬양을 하던 그 순간에. 생각했다. 아 당신과 내가 늙었나 보다, 고향 음식이 맛있다니.

 

입맛은 보수적이다. 변한줄 알았으나 결국은 그 자리로 돌아간다. 내가 처음 먹었던 그 맛을 기억하고 그 최초의 기억으로. 또한 음식은 과거 회귀 본능을 가지고 있다. 과거에 맛있게 먹었던 음식을 먹으면 사람을 그 음식을 맛있게 먹던 그 순간으로 돌려놓는 놀라운 마법을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악착같이 음식에세이를 쓰고 읽는다. 음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을 매개로 한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고 이야기하고 싶어서.

 

박찬일의 글이 청승스럽다라고 이야기 했다. 아마도 박찬일이 자꾸만,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과거의 이야기들을 끄집어 내기에 청승스럽다고 느꼈던 것 같다. 출간순서로야 이 책보다 한참 뒤의 책 이지만, 내가 읽은 순서로야 이 책보다 먼저인 그의 책 밥 먹다가, 울컥에서 박찬일은 말하고 있다. “나는 결국 평생을 살아도, 옛날만 사는 것 같다.”(p.8).

 

이 책에서 박찬일은 끊임없이 자신을 과거로 돌려놓는 옛날을 살게 하는음식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니 허기질밖에. 옛날에 먹었던 그 음식들을 지금 되살려 먹을 방법은 거의 없으니 말이다. 그가 여전히 덤덤해서 더 청승이 느껴지는 어조로 과거에 먹었던 음식에 대한 추억담과 과거에 자주 갔던 식당에 대한 이야기와 어린시절 부모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읽고 있다보면 때로는 마치 내가 그 자리에 가 앉은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나도, 초등학교 앞에 오던 해삼 멍게 리어카를 본 기억이 있고, 토마토를 썰어 넣은 냉면을 먹은 기억이 있거든. 토마토 냉면은 그렇다 쳐도 해삼 멍게 리어카라니, 이분과 나는 띠동갑쯤 되는데도 그 기억을 공유할 수 있는 건 아마 내가 바닷가 출신이어서 그럴 거다.

 

다시 한번, 입맛은 보수적이다. 음식에 대한 추억은 사람을 그 시절로 끌고 간다. 젊어질 수는 없어도 젊을 때 먹었던 음식을 다시 먹을 수는 있다. 비록 그 음식을 먹고 도로 묵이라고 해라.” 했다던 선조와 같은 말을 하게 될지라도.

 

이 책에서 박찬일은 단순히 음식 이야기만을 하는 것을 넘어서서 요리사로서의 인생과 경험에 대한 이야기도 여기저기 자세하게 많이 풀어 놓는다. 다른 책에서는 별로 자신의 식당 경영 이야기나 음식 철학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편인데 이 책에서는 유독 현실비판적인 구석이 많다. 사라져가는 노포에 대한 아쉬움이라든가, 다량의 화석 에너지를 태워가며 해외에서 공수되는 식재료에 대한 비판. 거기에 이어 저 잘생기고 착하며, 더구나 요리 솜씨도 좋고 말도 잘하는 한국인 셰프들을 좁은 스튜디오에 몰아넣고 농담이나 나누는 존재”(p.249)로 만드는 현 세태에 대한 비판까지. 이 글을 읽다보면, 이 사람은 세상 사는 게 참 답답하겠다, 그러니 청승스러워질밖에.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두려워할 줄 아는 건 지혜의 진면목’(p.189)이라는 그의 말처럼 현실을 직시하는 지혜가 있기에 두려워지고 두렵다보니 이 두려움을 모르던, 또는 이 두려운 상황이 벌어지기 이전의 옛날을 자꾸만 이야기하게 되는 건지도. 그리고 일갈하게 되는 것이다. ‘식탁에도 도덕이 필요하다’(p.211) 라고. 비건이 될 자신은 정말 없지만(우울할 땐 고기 앞으로 가야하니까) 내 식탁의 도덕에 관해서 생각해 볼 때다. 엄마의 식탁이 그 없는 음식 솜씨에도 얼마나 도덕적인 식탁이었던가를 생각해보면, 어쩌면 내 입맛의 보수성은 그 도덕성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말이다, 도덕은 가장 최고의 식도락을 즐길수 있게 하기도 한다. 비행기 타고 날아와 농축된 석유를 먹는 것과 다를 것이 없는 푸아그라니 세계 3대 진미 중의 하나라는 송로버섯을 먹는 것만이 식도락이 아니다. 진짜 식도락은 제철 음식을 딱 그 계절에만, 아니 심지어 겨우 며칠동안에만 먹을 수 있는 그 음식을 그 자리에서 먹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죽나무 순을 날로 먹어본 적이 있는데, 그 가죽나무 순을 따다 주신 분이 말씀하셨다. 이걸 따서 비닐에 넣어서 가져오는 동안 맛이 약간 변해버렸다고. 가죽나무 순이 열기에 데었다고 표현하셨다. 그렇다고 아이스박스에 넣어서 오면 맛이 더 변한단다. 그리고 심지어 가죽나무 순을 이렇게 날로 회처럼 초고추장에 찍어먹을 수 있는 건 한해 중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뭐 그 가죽나무 순 먹겠다고 또 화석연료 때어가며 그분이 사는 산골마을에 찾아가면 그 가죽나무 순도 농축된 석유를 먹는 것과 뭐가 다를까마는. 어쨌든 그런 진짜배기 미식에 대한 생각들을 했다.

 

다시한번, 박찬일의 에세이는 참 좋구나.

 

2024. 9. 8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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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과 부동명왕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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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고, 따뜻하고, 외롭고, 쓸쓸하고, 그러면서도 늘 재미있는, 미미 여사 다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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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과 부동명왕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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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날 : 2024. 9. 6

 

미미여사의 에도시대 시리즈물을 한국에 출간된 것에 한해서는 다 읽었다. (사실 현대를 배경으로한 책들도 다 읽었다.) 한국인의 정서로서는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이야기도 있었고, 같은 동양인이라는 측면에서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이질성을 무시할 수 없었고 이러한 이질성과 거리감이 괴담이라는 장르를 즐기는데는 플러스 요소가 된다. 그야말로 이야기를 이야기로서 즐길 수 있는 딱 그만큼의 이질감과 거리감이라고 하면 맞겠다.

 

책 날개 미미여사의 작가소개와 더불어 항상 나오는, “에도 시대는 사람의 목숨을 간단히 뺏을 수 있는 시대였기 때문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연대감이 매우 강했습니다.” 라는 말은 위화감이 느껴졌다. 이 짧은 문장의 전반부는 문장자체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만 그 내용은 상상의 영역을 넘어선다. ‘사람의 목숨을 간단히 뺏을 수 있는 시대라는 것. 전쟁을 치르는 중도 아닌데 그럴수 있다는 게 대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게다가 후반부는 미미 여사의 글을 읽는 내내 묘하게 거슬렸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연대감을 느끼기엔, 미미여사의 에도시대는 각자도생의 느낌이 너무 강해서.

 

일본은 한반도는 겪지 않고 지나간 중세를 꽤 오래 겪었다. 중세와 봉건은 동의어가 아니다. 국토가 아래 위로 길고 험한 지형이 군웅할거의 시대를 만들지 않았나 싶다. 각 지역을 지배하는 패자(성주, 지배자, 토호)가 있고, 그 패자에게 모든 것이 묶여 있는 사람들, 거주 이전의 자유도 직업선택의 자유도 없다. 신분이 세습되기로야 조선의 봉건사회도 마찬가지였으나 직업 자체가 세습되지는 않았다. 조선의 농민에게는 과거 응시권이 있었고, 과거에 급제하면 신분이 달라졌다. 일본은 그렇지 않았다. 이라기보다는 농에 가까운 신분이었고, 부모로부터 세습되는 직업을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인 조선에서 모든 백성은 왕의 백성이었다. 일개 지방 향반(그래봐야 지도 왕에게 지 목숨을 맡긴 왕의 백성중 하나)이 함부로 그 목숨을 취할 수 없었다. 조선왕조 실록에 보면 어느땅 아무개 향반이 자기네 노비를 함부로 죽인 사건에 대한 숱한 재판 기록이 있다. 사유재산으로 취급되던 노비의 목숨조차 왕의 관할이었다. 그래서 조선시대는 사람의 목숨을 간단히 뺏을 수 없는 시대였다. 일본과 매우 다르게. 중세를 지나고 있던 일본은 그 땅의 주인에게 그 땅에 살고 있는 주민의 생사여탈권이 주어졌다. 통치형태의 차이에서 오는 생명의 경중 차이다.

 

미미여사가 다루는 에도시대는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 에도 막부가 세워지고 도쿠가와 이에야스 가문이 중앙집권을 시작한 이후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중앙집권을 시작하고 있을 뿐이다. 아직 그렇게 강력한 중앙집권(중앙집권의 가장 큰 상징은 각 지방에 중앙 정부의 관리를 파견하는 것이다. 에도 시대는 그러한 중앙집권이 완성되지 않은 시대였던 것으로 보인다. 뭐 일본사에 대한 큰 지식은 없으므로, 미미 여사의 글을 비롯한 그 시대를 다룬 일본의 소설들을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다.)이 완성되지 않은 나라여서 나의 목숨은 내가 사는 땅의 통치권자에게 달려있다. 이 책의 두 번째 이야기 <단단 인형>에서 다루고 있듯, 한 고을의 사람 전체를 쓸어버리듯 없애버리는 이야기도 별로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야기를 듣는 도미지로의 반응대로라면, 그다지 드문 이야기도 아니어서 한국의 사람들이 어사 박문수 이야기와 전우치 이야기, 춘향전의 어사출도 장면에 익숙하듯 에도시대 사람들에게는 그런 이야기가 익숙한가보다. 차이가 있다면 한국의 어사출도는 끽해봐야 한두사람의 목숨이라면 일본의 이야기는 마을 전체의 이야기라는, 살해의 스케일이 다르다.

 

조선의 정서에 익숙한 한국사람으로서는 사람의 목숨을 간단히 뺏을 수 있는 시대에 대한 감이 모호하다. 그런게 가능한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대체 어떤 의미인가가 와닿지 않는다. 농자천하지대본을 외치는 조선에 익숙하니. 겨우겨우 중세 농노의 개념과 비슷한 일본의 중세를 이해하면 음, 그런가 싶기도 하지만 위화감은 달라지지 않는다. 거기서 미미 여사는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유대감을 그리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그 유대감이라는 게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늘 자신에게 천형처럼 주어진, 또는 자연재해처럼 주어지는, 뜬금없는 불행에 맞닥뜨린 사람이 홀로 그것을 헤쳐 나가고 견뎌내는 이야기로 읽혔다. 자신의 운명에 홀로 맞서 꿋꿋히 이겨내는 사람의 이야기는 그 나름대로 감동을 주었지만 유대감연대의식은 글쎄. 도무지 어찌해 볼 길 없는 거대한(그리고 폭력적인) 힘 앞에서 묵묵히 견디는 사람에 대한 응원은 가능하지만.

 

표제작 <청과 부동명왕>은 한자 표제를 볼 생각을 하기 전엔 ()과 부동명왕이라고 생각했다. 에도시대 중국은 청나라이기도 했으니 청나라와 관련있는 얘긴가 했고, 뭐 그런 걸 떠나 그냥 푸른색을 뜻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부동명왕의 이미지가 나에게는 푸른색이기도 해서. 헌데 청과(靑瓜 물외, 오이, 노각)’였다.(제목을 잘 봐야한다, 처음부터. 그러니까.) 노각 모양이 정수리 뒤에 붙어 있는 무면(無面)의 부동명왕이라니. 귀여우셔라. 그리고 여기서 드디어 미야베 미유키가 그리고 싶었다던 유대감을 읽었다. 홀로 견디는 사람과 그 홀로 견디는 사람을 도와주는 다른 사람, 그리고 그 홀로 견디는 사람에게 의지해 자신의 재앙을 견디는 사람, 자신도 견디는 중이면서 재앙을 견디는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 처음으로 미미여사의 글이 따뜻했다.

 

뭐 다음 수록작 <단단인형>에 가면 또 바로 홀로 견디는 여인 오빈이 나와버리지만. 이사와야의 몬이치가 미루라무라 마을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거기에 대한 보답으로 오빈이 만든 단단인형이 몬이치의 자손들을 돕는다는 이야기는 연대와 유대감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연약한 한 개인의 용기와 정의감에 대한 이야기와 한 여인의 보은에 대한 이야기로 읽혀서 애틋하면서도 맘이 아팠다. 오빈의 삶이 대체 어땠을까 싶어서. 무슨 마음으로 살았을까, 외로웠을 텐데 하는. 미미여사의 글이 종종 이렇게 아프게 읽히는 이유는 이런 단독자의 외로움 때문이다. 아마도 다들 이렇게 외롭게 견뎌왔기에 미시마야 흑백의 방이 생기고 오치카와 도미지로와 같은 청자가 필요한 거 아닐까. 연대하지 못하고 유대감이 없기에. ‘하고 버리고, 듣고 버리는청자와 화자의 일회성의 관계를 연대나 유대로 말하기는 어렵다.

 

우리말 속담에 곳간에서 인심난다라는 말이 있다. 삶의 압박이 너무 심해지면 사람들은 주변을 돌아보지 못한다. 사랑이란 나를 중심으로 한 비롯되는 동심원과 같아서 사람들은 다들 몇 개의 층위를 가진 동심원을 자신의 주변에 두르고 그 원안에 들어온 사람만을 사랑하고 그들과만 연대할 수 있다. 자기애로 시작하는 동심원은 자녀, 배우자, 혈육, 친구, 민족 등의 층위를 가지고 넓어져 간다. 삶의 고난이 커질수록 그 원의 층위는 얇아지고 지름은 줄어든다. 당장의 내 삶이 힘들 때, 사람들의 인심은 각박해진다. 목숨을 간단히 뺏길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삶의 압박이 또 있을까. 사랑의 곳간을 채울길이 막막한 거다.

 

리뷰라는 게 그렇다. 글을 쓰다보니 새삼 알겠다. 미미 여사의 글을 이렇게 좋아하는데, 신간이 나온다는 말이 반가울만큼 기다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묘한 이질감과 위화감을 느끼는 그 이유가 리뷰를 쓰다보니 정리가 된다. 나로서는 연대라고 믿지 못하는 것을, 연대라고 믿고 강조하기 때문이다. 기묘한 엇박의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2024. 9. 6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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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과 부동명왕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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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마음속이든 물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하지만 묻고 대답을 얻는다 해도 전부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매번 묻다가는 귀찮아서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러니 말없이 서로 양보하고, 서로 배려하면서 살아갈 수밖에없다. 본심 같은 건 캐물어 봐야 소용없다. 그것이 움직이지 않는진실이라고는 말할 수 없으니까. 진실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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