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어 죽지 않으면 다행인 - 이후북스 책방일기
황부농 지음, 서귤 그림 / 알마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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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어 죽지 않으면 다행인by 황부농

 

읽은 날 : 2025.7.28.

 

작년 여름의 끝물에 읽은 책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는 전국에 있는 작은 책방들의 탐방기이기도 했다. 전국 각지의 작은 책방들을 소개하는 그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책방이 아니다)은 제주도의 작은 책방을 소개하는 중에 있었다.

2011, 서울 살던 젊은 부부는 제주도에 내려와 게스트 하우스를 연다. 아이까지 낳고 제주에 정착해 살아보려 하니 가장 아쉬웠던 게 책을 맘껏 사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단다. 그래서 서울에 사는 친구와 동업으로 제주에 책방을 연다.

 

그리하여 서울에 있는 여자와 제주에 살고 있는 여자가 몹시도 소심하게, 만일 책이 팔리지 않으면 우리 둘이 나눠 갖자는 마음으로 책방 문을 열었다.

백창화, 김병록 ,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남해의 봄날, 2015, p.155

 

소심하게 연 책방이라 책방 이름도 <소심한 책방>이다. 하하하

이런 마인드로 살아갈 수 있다면, 산다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이 서울 부부가 제주에 내려와 게스트 하우스를 열게 되기 까지의 사연은 알 수 없지만, 그 이후 흘러가는 사고와 사건의 흐름은 유쾌하다.

책 사기가 어렵네? 그럼 내가 팔지 뭐.

혼자 열 용기가 안 나는 데? 그럼 친구랑 같이 동업하지 뭐.

책이 안 팔리면 어쩌지? 그럼 동업자랑 둘이 나눠 갖지 뭐.

이 심플하고도 유려한 생각과 실천의 결합이라니. 책방을 하지 않았어도 어차피 샀을 책을 책방을 한다는 이유(핑계)로 당당히 사게 될 때는 분명 통쾌한 맘이 들었을 거다. 세상과 나에게 당당해지는 그 기분이란, 겪어보지 않았음에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배웠다. , 책방을 하게 되면 책을 당당히 구매할 수 있겠구나, 하는. 책방을 할 이유가 또 하나 늘어나는 순간이었다.

 

기억이란 참 재미있는 것이어서, <소심한 책방>이라는 이름은 잊었는데 그들의 그 소심하고도 당당한 한마디 팔리지 않으면 우리 둘이 나눠 갖자”(‘내가가 아닌 우리 둘이라는 데서 오는 이 가벼움이라니. 망해도 나 혼자 망하는 것도 아닌데 뭐가 걱정.)만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그 주변의 정보들을 희미하게 지워 나갔다. 여성, 제주, 친구 이런 정보들이 그 유쾌한 문장의 그림자처럼 남았다.

 

그러다 이 책을 읽었다. 황부농 이라는 책방지기가 상냥이라는 친구? 동업자와 함께 (우리 둘!) 망원동에서 독립서점을 열었단다. 이 친구의 글을 읽다보면, 제주에서 뭔가를 하다 망... 했고(아닐수도 있고, 어쨌든 제주의 일을 접고) 서울에 올라와 책방을 한다고 정리되었다. 여성이고, 제주고, 책방지기. 기억이 내 맘대로 조작되기 시작한 거다.

 

그러니까, 제주의 <소심한 책방>은 내 맘대로 이미 망해 버렸고, (하하하, 죄송합니다. 제주 <소심한 책방>2025.8.2. 현재 아주 성업중인 듯 합니다, 검색결과.) 그 책방을 하던 친구 둘이 그 책들을 사이좋게 나눠가지는 대신 서울로 이고 지고 올라와 망원동에 책방을 열었구나, 하고 내 맘대로 남의 가게 사연을 조작해 버린 거지. 아니, 어쩌면 제주에서 서점이 너무 잘 되어서 서울로 진출하기로 한 것일지도 몰라, 라는 생각도 하며.

 

그런 가슴이 아플수도, 가슴이 웅장해 질 수도 있는 내 맘대로의 사연이 있는 작가의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으면서, 남편과 종알거렸다. 정확히는 내가 생각하는, 언젠가는 내가 열지도 모르는 책방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이후 북스에서는 커피와 자몽에이드를 판단다. , 카페와 책방을 겸하고 있는 모양이다. 책과 음료란 독자 입장에서 잘 맞는 커플인 동시에 서점 주인 입장에서는 최악의 궁합이기도 하다. , 왕십리 역사 내 영풍문고 안에도 카페가 입점해 판매중인 책(정확히는 견본삼아 살펴볼 수 있는 책)을 커피를 마시면서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영풍이니까 가능한 거고, 책을 한 권만 주문하게 되어 목소리가 줄어든 소심한 책방지기가 있는 이후북스에서 그런 게 가능한가. 생각하다가, , 북카페처럼 차를 마시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은 중고책으로 따로 둘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그럼 나중에 내가 차릴 책방에서는 어떤 형태로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남편에게 내 나름의 책 판매 전략을 말했더니, 어 그거 말 된다고, 괜찮은 전략이라고 고개를 끄덕여 주길래 흐뭇해 하다가(충무공은 무려 상경대 출신이다! 나 상경대 출신에게 경영전략 잘 짰다 칭찬받은 문대 출신), 아니 근데 내가 이 책을 판다고? 아직 책방을 열지도 않았음에도 이 애지중지 모아놓은 절판 애장본을 팔 생각을 하니 미리부터 가슴이 아파서 애틋하게 내 책장을 바라보다가, 아무래도 이 책은 팔 수가 없을 거야, 못파는 책들은 미리 딱지를 붙여야하나 생각 하다가, 딱지를 붙이면 책등이 미워질텐데 책장을 분리하나 생각하다가, 팔지는 못해도 읽게는 해 줘야 하나 생각하다가. 하하하하하하

 

어린왕자의 그 유명한 구절을 떠올린 거다. “네가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할 거야.” 라는.

 

나에게 독립서점에 관한 책들은 다들 이런 효용을 가진다. 아주 구체적으로 나의 미래를 생각해 보게 만드는. 그리고 세시의 기쁨을 온몸으로 실감하게 만드는. 물론 여러 가지 정황상 내가 책방을 할 가능성은 별로 없지만(나는 낯선 사람이 내 공간에 들어오는 것을 상당히 무서워한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오프라인 상점은 최악의 선택이다, 나에게) 우리는 종종 책으로 사방의 벽을 둘러 친 조그만 카페를 경영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지역은 어디로 할까, 맥주를 팔아도 되나? 주류 판매 허가는 따로 받아야 하나? 나는 정원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러려면 시골, 산골로 들어가야 하겠지? 거기 책방을 열면 누가 오기나 하겠니, 그냥 카페의 탈을 쓴 개인 서재겠지. 뭐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사상누각을 지었다 허물었다, 네 시에 올 너를 기다리며 이미 기뻐진 세 시의 우리 둘

 

책방에 관한 꿈을 꾸는 주제에, 하하하하, 독립 책방 투어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어서, 아마 이후북스에 가는 일은 없겠지만, 책은 뭐, 나쁘지 않았다. 정말이지 딱 책방지기의 책이었다. 그러니까, 책 판매자의 책이었다. 내가 판매하는 물품에 대한 애정이 물씬 느껴지는 책이었지만, 내가 판매하는 물품에 대한 정보는 부족했다. 아마도 나는 지금 이 책방지기가 무슨 책을 읽고 있고, 어떤 책에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를 함께 읽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독립 출판물을 많이 다루는 이후북스 책방지기의 입장에서는 제작자와 너무 밀착되어 있는 판매자인지라 말을 하기가 참 어려웠겠다 하는 생각도 든다. 나도 어떤 책을 욕할 땐 그 작가도 편집자도 모르는 사람이라 마구 하는 거지, 아는 사람이면 입을 열기 어렵지. 하하하.

 

가볍게, 가볍게 잘 읽었다. 이후에 황부농의 책을 굳이 더 찾아 읽게 될 거 같지는 않지만. 이후북스의 번창을 빕니다. 이 책을 낸 이후에 이후북스는 진짜로 제주 지점을 낸 것 같더라. 소심한 책방 검색하다 혹시나해서 같이 검색해 보니 제주에도 서점을 열었더라고.

 

얼마전 어느 통계에서 대한민국 독서율이 성인 1인당 10.5권이라는 충격적인(진짜로 충격적인!) 숫자를 봤는데, 독립서점이 자꾸만 생겨나는 것 같은 느낌은(물론 문을 닫는 서점들도 정말 많다고 한다) 이건 대체 뭘까 싶기도 하다마는.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것이니까요. 우리 많이 팔고 많이 삽시다. 그리고 독서는, 산 책중에 골라서 하는 겁니다. 하하하.

 

2025.8.2.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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