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 만차스 통신 - 제16회 일본판타지소설대상 대상수상작
히라야마 미즈호 지음, 김동희 옮김 / 스튜디오본프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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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을 하도 많이 질러대다 보니, 이 책을 내가 도대체 왜 샀는지, 언제 샀는지 내가 산게 맞기는 한지 싶은 책이 정말 혹가다 한권씩 생긴다. 이게, 알라딘 중고샵을 이용하기 시작하고부터는, 사고 싶은 책이 나오면 무료배송 2만원을 채우느라 또는 5만원 이상 추가 마일리지를 노리느라 급하게 걍 땡기는 책 한권 정도를 집어 넣어서 더 잦아졌다. 

이 책도 그래서 끼어들어왔는데, 읽는 내내 후회했다. 아, 차라리 시작하지말고 되팔아버릴 걸. 

가끔은 어느 분야에 학을 띠게하는 책이 있다. 그런 책을 읽고나면 한동안 그 책의 분류와 관계있는 책들 근처도 가지 않게 되는데, 이 책이 그랬다. 잘썼고 못 썼고는 다음문제고, 아니 오히려 잘 썼으니 그만큼의 파급력을 가지는 거겠지만, 그냥 읽고난 뒤에 어우어우어우... 하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그런 류의 책들.  

주로 일본 소설에서 그런 걸 많이 느끼는데, 한번씩 이렇게 학을 띠고 나면, 일본 소설은 쳐다도 보기 싫다. 한번씩 이런 지뢰가(글이 재미가 있고 없고를 떠나, 나의 정신에 미치는 악영향이라는 점에서 이건 핵폭탄급 지뢰다.) 걸려든다는 걸 알면서도 일본 소설을 읽고 있는 내가, 나도 내 스스로 웃긴다. 뭐, 변명해 보자면, 내가 주로 읽는 작가들(하루키, 바나나, 가오리, 에이미, 히토나리)의 작품은 적어도 이런 류의 정서와는 관련이 없으니까, 한번 읽기 시작한 작가는 웬만하면 차기작도 읽어주자 주의라서... 운운.  

일본이 아닌 미국에 거주하면서 글을 써내기도 하는 하루키부터 일본색을 버리고 싶어 바나나라는 이름을 선택했다는 요시모토 바나나 까지도, 그 기본 정서에 깔고있는 일본적인 어떤 느낌을 완전히 씻어내지는 못했다. 그런 일본 적인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산뜻하지가 않고, 끈끈하고, 기괴한 느낌이다. 음. 귀신이 아니라 요괴 라는 느낌이랄까. 좁디 좁은 바나 하나를 사이에 둔 이렇게 가까운 나란데도 이렇게 다를수가 싶을때가 있다. 뭐, 서양인이 보면 일본의 정서나 한국의 정서나 비슷할라나. 

에엥, 이야기가 영 딴데로 새고 있다. 

하여간 이 소설은 한동안 일본문학 근처에도 가기 힘들어질만큼 학을 떼게 만들었다. 으윽. 

그렇다고 재미없는 소설이라는 이야기는 아니고. 어떤 미스테리적인 요소가 강해서 그런지 끝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읽어나가게 된다.  

헌데... 작가의 처녀작이라 그런지, 여기저기 허점이 너무 많다. 주인공의 아버지와 고지마씨가 처음에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가 밝혀지지 않고 있고, 아버지가 고지마씨에게 왜 그렇게 약한 입장을 취하지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전반적으로 어떤 금전적인 도움을 받고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고지마라는 인물을 계속 미스테리로 남겨둔 채 끝까지 밀고나가는 게 이 소설을 끝까지 읽게하는 중요한 원동력이긴 하지만, 이놈의 고지마라는 인간의 정체는 끝내 밝혀지지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냥 변태적 취향을 지닌 화가, 이게 끝이라는 사실이 더 어이없다. 이건 뭐야 밝혀진 게 밝혀지지 않은 거나 상황이 달라지지가 않았다.  

 게다가, 내가 이해를 못한 건가, 이와지마와 유키코, 주인공 셋이 왜 재의 도시를 떠나야만 했는지도 모르겠고, 첫번째 단편에 등장한 주인공의 형이 왜 그런 종류의 요괴(? 라고 밖에 표현을 못하겠다.)가 되었는지, 왜 부모님은 그 요괴를 그냥 두고만 보는지도 알수 없고, 죽음 이후에 주인공을 그렇게 대하는 부모와 누나의 태도는 더 미스테리다. 형은 그냥 단순한 정박아였던 건가? 어쨌든 갱생원(? 교도소랑 비슷한 곳 같은데)에서 몇년만 살고 나올정도로 어쩔수 없는 상황, 또는 실수 였던 것을 누구나 아는 상황에서 왜 그런 태도를 취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주인공의 입장에서 서술되었기에 그런건지,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 같던데, 주인공은.  

모든 것이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은 것이 이 소설의 기괴한 분위기를 더욱 강화시키는 것만은 분명하니 밝히지 않는 것이 작가의 또다른 의도였다고 보기에는, 음.  

여하간.  

어익후. 싶은 소설이었다.  

가끔 생각한다. 융의 이론대로 집단 무의식을 적용하자면, 내가 일본이 싫고, 일본적인 뭔가가 싫은 것은, 유전자에 각인된 프로그램인거 아닐까 싶은. 

ps. 근데 또 내 노트북은 VAIO 라는거~ 카메라는 캐논이고. 앞으로도 노트북은 바이오로, 카메라는 캐논이나 소니로 갈 예정이라는 거. 우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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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 움베르토 에코의 세상 비틀어 보기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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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은 재미있지만 어렵다. 분명 재미가 앞에 놓이는 뛰어난 작품임에는 이견이 없지만, 어렵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는 없다. 가끔 몇몇 작품들은 그 작품의 재미를 느끼기 까지 가파른 산을 꾹 참고 열심히 올라야 하는데, 에코의 소설이 그렇다. 그 처음을 넘기기가 쉽지가 않은지 내 주변엔 에코를 읽으려다 포기했다는 사람이 많다.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장미의 이름> 역시 초반부의 산을 넘어야 한다. (딴소리지만, 움베르토 에코와 숀 코넬리가 닮았다 생각하는 사람? 수염 때문인지 나한테는 늘 둘이 겹쳐보인다.) 산을 넘고난 다음엔, 미치지 않기가 불가하기도 하지만. 

이 책은,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에 접근하기 전에 입문서로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에코식 문장, 에코식 유머를 가볍게 접할 수 있어서 낯설음을 많이 지워준다. 물론, 움베르토 에코의 팬이 읽는다면 완전 배꼽잡고 넘어갈만 하고.  

똑똑한 사람이 구사하는 유머는 정말 유쾌하다. 가끔 특정인물이나 무언가를 갈굼의 대상으로 삼아 바보취급을 하며 놀리는 것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개그를 보고 있으면, 웃으면서도 뭔가 찜찜한 뒷맛이 남는데, 이 책에서는 그런 찜찜한 뒷맛이 없다.  

하긴, 사실 이 책도 그다지 쉬운 책은 아니다. 에코의 다른 책에 비해 그나마좀 쉽다 정도지. 유머러스한 에세이 치고 책장이 술술 넘어가진 않는다. 그러나 읽어내고 나면 뿌듯함도 있고, 읽는 동안의 몰입도도 꽤 강한 편. 

이 책을 읽고나면 느낄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가 왜 유명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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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제왕의 생애 (반양장)
쑤퉁 지음, 문현선 옮김 / 아고라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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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는 사실, 궁정 음모극을 몹시 좋아하는데, 굵직굵직한 남성적인 이야기 보다 박종화의 『금삼의 피』같은 여성적인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게다가 화사한 떨잠과 어여머리와 금박휘황한 의상에 관한 이야기까지 나오면 금상첨화이려니, 하며 본다. 당연히 사극도 좋아한다. 궁중의 비사, 음모에 관한 이야기가 잔뜩 나오는 인현왕후 이야기나 문정왕후 이야기는 더 좋다.

그럼에도 작년(또는 재작년쯤?)에 산샤의 『측천무후』를 읽었을 때, 음, 나와 중국 궁정의 이야기와는 맞지 않는 군 하였었다.

전 세계적으로 “내시”라는 존재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역사의 전면에 그 내시의 존재가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곳이 중국인 것 같다. 그. 내시. 라는 존재의 기괴함을 생각해 보라. 남자이되 남자가 아니고, 그렇다고 여자도 아니고, 몸은 남성인데 성기가 없음, 그 하나로 인하여 수염마저 나지 않고, 외모도 목소리도 점점 여성화 되어가는 그 존재. 그들의 영혼은 여성이었을까 남성이었을까.

한국, 조선의 궁중 비사가 대부분 상궁 마마님들에 의해 벌어진다는 것과는 달리, 중국의 궁중 비사는 그 기괴한 존재 내시들에 의해 일어난다. 그래서 중국의 궁정 이야기는 내게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하게 읽힌다. 하여, 산샤의 측천무후 이후, 읽지 않기로 마음 먹고 있었는데, 이 소설을 집어든 이유는 일단, 쑤퉁의 소설이었기 때문이고, 가상 역사 소설이라는 점이 마음을 끌었다. 누천년의 중국 역사 안에서 가상의 나라를 만들고 가상의 황제를 만들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하는 호기심이었다. 산해진미를 만들수 있는 재료를 잔뜩 쌓아놓은 다음에 만들어 내는 요리에 대해서는 늘 기대가 가득하게 마련이니 말이다.

이 소설은 섭국 이라는 가상의 나라, 제 5대왕 단백의 일대기다. 부왕의 오자(五子)로 태어나 할머니가 조작한 부왕의 유지에 의해 14살에 왕위에 올라 24살에 폐위되는 왕. 1인칭으로 서술되는 이 이야기 안에, 단백의 왕으로서의 치세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당연하지, 그동안 정치는 할머니 황보부인이 하였으니. 단백은 그저, 황제로서, 무지하여 잔학할 수밖에 없었던 황제로서 살아가다 폐위된다. 폐위된 후 평민으로 살아가다 줄타기 광대가 되어, 동경하였던 새와 같은 자유를 줄 위에서 맛본다는 이야기.

쑤퉁은 이 소설을 “꿈 속의 꿈” 과 같은 이야기라 말하고 있는데, 그 말이 딱 맞다. 이 소설 한편을 읽고 나면, 한편의 총천연색 꿈을 꾼 듯, 인생 무상에 관해 한번쯤은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제왕이었던 남자가 줄타기 광대로 인생을 마감한다는 점에서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그럼 너무 도식적이라 재미가 없지.) 그저, 산다는 게 뭘까, 에 관해 생각을 해 보게 되는 것이다.

왕의 장남으로, 부왕이 지정한 차기 제왕으로, 누가 보아도 훌륭한 왕재였던 단문(섭국의 6대왕이 된다.)의 치세 때에 섭국이 망한다는 것을 생각해보아도.

글은, 전체적으로 꿈처럼 기괴하면서도 우아하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게, 우아하여 궁정극 특유의 분위기가 난다. 화려하면서도 규칙적이고, 규율속의 파격이 있는 우아함.

썩 괜찮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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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하오 미스터 빈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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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요즘 젊은 사람들 답지 않게 신문을 받아본다. 그것도 조선일보. 특별히 남편과 나의 정치적 성향이 보수적이라서가 아니라(사실 보수적이긴 하다.) 조선일보 판촉 사원이 롯데백화점 상품권으로 유혹을 했기 때문에. 별로 읽을 거리가 없긴 한데, 주말 섹션 하나만은 볼만하다. 그 중에서도 북섹션.

이 책 『니하오 미스터 빈』도 어느 주말 아침, 조선일보 북섹션에 실려 있던 책 소개 기사를 보고 주문했던 책이었다.

중국 작가의 책은 위화, 쑤퉁을 거쳐 이 작가가 세번째.
위화와 쑤퉁이 중국에 거주하며 중국어로 작품활동을 한다는 것과는 달리, 하진은 미국에 거주를 하며 중국어가 아닌 영어로 창작활동을 한다. 모국어가 아닌, 학습된 언어로 창작을 하는 사람들의 특징인 것일까, (한국인 이창래-영어로 글을 쓴다, 벨기에인 아멜리 노통-프랑스어로 글을 쓴다.) 문체가 몹시 단정하다. 마치, 문법책에 나오는 문장들처럼. (물론 번역가의 영향도 있을테지만.)

그 단정한 영어로 그려내는 세계는 의외로 대단히 중국적이다. “중국적” 이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여러가지로 생각해 보았지만, 글쎄. 한국의 “한의 정서”라는 걸, 한국인은 분명히 감지해 내고(물론 외국인도 감지해 내겠지.) 존재를 알고 있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설명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중국적인 정서라는 것 또한, 분명, 중국만의 특이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위화, 쑤퉁, 하진의 소설에서 구사하고 있는 유머는 분명 한국인 작가들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것이 어떻게 다른지는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다. 그저, 다르다. 국민성이 다른 것과 같이.

웃음조차, 대륙적이라고 할까. 말 그대로 스케일이 다르다. 웃음의 스케일이. 웃음을 이끌어내는 방식과, 웃음을 유발해내는 상황 등이, 아, 정말 중국적이군 싶게.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와 비슷한 유형의 유머이긴 한데, 이 소설의 주인공 샤오 빈은 위화의 허삼관과 닮은 듯 하며 다르다. 허삼관이 만들어 내는 유머 뒤의 찡한 눈물 같은 게 없다고 해야하나. 무게감은 비슷한데, 그 뒤의 느낌이 다르다.

일종의 슬랩스틱 코메디를 보듯 깔깔 웃어가며 볼 수 있는 책이다. 분량도 적당하고, 한 두시간 정도 몰입해 읽기 딱 좋다.

하진, 이 작가, 글 참 맛깔나게 잘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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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렌즈 - 2007 제31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이홍 지음 / 민음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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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좀 뜸한 것 같지만 한 10년쯤 전에, 트렌디 드라마라는게 한창 유행을 한 적이 있었다. 최진실이니 김남주니 하는, 지금은 늙어버린 여배우들이 주연을 맡아 열심히 일을 하는 여성 직장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당시에 유행하는 아이템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드라마들이어서 그 드라마의 주연 여배우가 입은 스타일이 그대로 유행이 되곤했다.(하기야 그건 요즘도 좀 그렇긴 하다.) 그땐 미장원가서 머리를 할 때도 딱 한마디면 됐다. "고소영 머리 해주세요." (흠. 알고 있는가? 밝은 색으로 염색을 하고 층을 내어 자른 생머리 스타일을 당시엔 고소영 머리라고 불렀는데, 20대 초반 여대생들에게 선풍적인 인기였다.)

요즘 드라마는 그런 천편일률성이 많이 사라진 것 같다. 헌데... 그 트렌디 드라마의 천편일률성이 고스란히 소설로 넘어와버린 느낌이다. 이런. 소설에서 그런 걸 느끼다니 당혹스럽다. 이거야 원, 여성 소설가=트렌디 하다 라는 공식이 성립될 정도.

처음 정이현이나 고은주 정도만 해도 신선했다. 특히 정이현의 2003년 소설집 <낭만적 사회와 사랑>이 주는 상큼함은 놀라울 정도였다. 얼마나 신선하고 재미있었게. 그게 2005년 고은주의 <여자의 계절>로 이어지더니, 2006년 박주영의 <백수생활 백서>가 나왔을때는 식상했고, 2007년 이홍의 <걸프랜즈>는, 아이고 두(頭)야... 싶다. 제발 새로운 소설을 써줘. 당신들의 신변 잡기는 그만 보고 싶어! 라고 외칠까, 일기는 일기장에! 라고 외칠까... 하다가.

흠. 그래도 재미는 있다. 천편일률적인 드라마가 매번 제작 방영되어도 매번 인기있듯, 맨날 그나물에 그 밥, 글 쓰는 사람만 다를뿐 내용은 똑같은 인터넷의 신변잡기 게시판에 매일이다시피 발도장을 찍게 되듯, 하기야 재미있으니 반복되는 것이기도 하겠지 말이다.

다시, 소설이야기로 돌아가서.

가끔, 어떤 소설은, 그 소설의 내용과는 전혀 맞지 않는, 나 개인의 경험이 덧씌워져 읽히기도 한다. 소설의 상황과 비슷한 상황을 겪었거나 해서가 아니라, 소설에서 지나가는 아주 사소한 에피소드 같은 것 (중심 이야기와는 전혀 상관없이 말이다)에대한 경험이 겹친다고 해야하나.

이 소설은 34살 먹은 중견기업의 "유진호 대리"를 중심에 둔, 34세 오세진, 29세 한송이, 22-3세 보라(성이 안나온다) 세 여자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유진호 대리는 세다리를 걸치고 있는 중이다. 주인공인 29세 한송이 양과 그나마 가장 긴밀한 사이인 것처럼 보이지만 나머지 두 여자(세진과는 첫사랑이란다.)와도 정리를 하지 않는다.

나는, 우유부단한 남자는 딱 질색이고, 애정의 감정선이 단정하지 못한 것만큼 싫은 것도 없어서, 남편이 좋았다. 이 남자는, 적당히 약았고, 적당히 닳았고, 적당히 단순하며, 적당히 순수한 면이 남아서, 양다리를 걸치는 것이 "귀찮아서" 라도 하지 않을 남자라는 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의 애정선이 단정해 진 것이 나에 대한 순수한 애정만이 아니라고 한다고 해도 뭐, 어떠랴, 중요한 건 이 남잔 단정한 연애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헌데, 이 단정하고 모범적인(자랑질 미안하다-_-) 내 남편과 유진호 대리가 한순간 겹쳐보였다. 오호라.
유대리는 승진을 했고(과장이 됐네?) 한송이에게 청혼을 한다. "승진을 하면 결혼이 좀 더 쉬울줄 알았"기 때문에.
이 부분을 읽다 나는 박장대소 했다. 사람들의 생각은 참 다양하구나.

결혼을 한 그해에, 나는 숨쉴 틈도 없이 바빴다. 이미 벌여놓은 일만도 한가득이어서 새로운 일을 끼워 넣는다는 건 정말 무리한 상태였다. 내년 봄으로 결혼을 미루자는 나의 이러한 말에, 남편은 수줍게(마치 이 소설의 유대리처럼 말이다!) 웃으며 말했다.

"내년 봄에 나는 과장이 되요. 결혼 소식이 사내 인트라넷에 뜰텐데, 서대리 결혼, 이러면 초혼 같지만, 서과장 결혼, 이러면 재혼 같잖아요?"

ㅎㅎㅎ 그래서 그해 가을에 우린 결혼했다. 회사에서의 승진이 결혼과 연관지어지는 사람이 또 있구나 싶어서 웃겼었다.

이 부분을 읽고나서 보니, 이 소설이 새롭게 다가왔다. (안타깝게도 후반부다.)
이게, 이 소설의 강점이 될지 약점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소설이 소설로 읽히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 게시판에서 종종 만났던 누군가의 연애담 한편을 읽는 기분이 들었달까. (하기야 요즘 인터넷 게시판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은 웬만한 작가의 필력보다 나아보일때가 있다.) 그래서, 한남자와 연애중인 세 여자가 서로 친구로 잘 지낸다는 파격적인 스토리가 전혀 파격적으로 다가오지 않고 "오지게" 재미있기만 하다.

마지막까지 그 오진 재미를 끌고가지 못하는 건 신인작가의 한계인 듯 하고.

재미있게 읽을만한 소설이다. 트렌디 드라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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