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렌즈 - 2007 제31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이홍 지음 / 민음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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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좀 뜸한 것 같지만 한 10년쯤 전에, 트렌디 드라마라는게 한창 유행을 한 적이 있었다. 최진실이니 김남주니 하는, 지금은 늙어버린 여배우들이 주연을 맡아 열심히 일을 하는 여성 직장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당시에 유행하는 아이템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드라마들이어서 그 드라마의 주연 여배우가 입은 스타일이 그대로 유행이 되곤했다.(하기야 그건 요즘도 좀 그렇긴 하다.) 그땐 미장원가서 머리를 할 때도 딱 한마디면 됐다. "고소영 머리 해주세요." (흠. 알고 있는가? 밝은 색으로 염색을 하고 층을 내어 자른 생머리 스타일을 당시엔 고소영 머리라고 불렀는데, 20대 초반 여대생들에게 선풍적인 인기였다.)

요즘 드라마는 그런 천편일률성이 많이 사라진 것 같다. 헌데... 그 트렌디 드라마의 천편일률성이 고스란히 소설로 넘어와버린 느낌이다. 이런. 소설에서 그런 걸 느끼다니 당혹스럽다. 이거야 원, 여성 소설가=트렌디 하다 라는 공식이 성립될 정도.

처음 정이현이나 고은주 정도만 해도 신선했다. 특히 정이현의 2003년 소설집 <낭만적 사회와 사랑>이 주는 상큼함은 놀라울 정도였다. 얼마나 신선하고 재미있었게. 그게 2005년 고은주의 <여자의 계절>로 이어지더니, 2006년 박주영의 <백수생활 백서>가 나왔을때는 식상했고, 2007년 이홍의 <걸프랜즈>는, 아이고 두(頭)야... 싶다. 제발 새로운 소설을 써줘. 당신들의 신변 잡기는 그만 보고 싶어! 라고 외칠까, 일기는 일기장에! 라고 외칠까... 하다가.

흠. 그래도 재미는 있다. 천편일률적인 드라마가 매번 제작 방영되어도 매번 인기있듯, 맨날 그나물에 그 밥, 글 쓰는 사람만 다를뿐 내용은 똑같은 인터넷의 신변잡기 게시판에 매일이다시피 발도장을 찍게 되듯, 하기야 재미있으니 반복되는 것이기도 하겠지 말이다.

다시, 소설이야기로 돌아가서.

가끔, 어떤 소설은, 그 소설의 내용과는 전혀 맞지 않는, 나 개인의 경험이 덧씌워져 읽히기도 한다. 소설의 상황과 비슷한 상황을 겪었거나 해서가 아니라, 소설에서 지나가는 아주 사소한 에피소드 같은 것 (중심 이야기와는 전혀 상관없이 말이다)에대한 경험이 겹친다고 해야하나.

이 소설은 34살 먹은 중견기업의 "유진호 대리"를 중심에 둔, 34세 오세진, 29세 한송이, 22-3세 보라(성이 안나온다) 세 여자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유진호 대리는 세다리를 걸치고 있는 중이다. 주인공인 29세 한송이 양과 그나마 가장 긴밀한 사이인 것처럼 보이지만 나머지 두 여자(세진과는 첫사랑이란다.)와도 정리를 하지 않는다.

나는, 우유부단한 남자는 딱 질색이고, 애정의 감정선이 단정하지 못한 것만큼 싫은 것도 없어서, 남편이 좋았다. 이 남자는, 적당히 약았고, 적당히 닳았고, 적당히 단순하며, 적당히 순수한 면이 남아서, 양다리를 걸치는 것이 "귀찮아서" 라도 하지 않을 남자라는 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의 애정선이 단정해 진 것이 나에 대한 순수한 애정만이 아니라고 한다고 해도 뭐, 어떠랴, 중요한 건 이 남잔 단정한 연애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헌데, 이 단정하고 모범적인(자랑질 미안하다-_-) 내 남편과 유진호 대리가 한순간 겹쳐보였다. 오호라.
유대리는 승진을 했고(과장이 됐네?) 한송이에게 청혼을 한다. "승진을 하면 결혼이 좀 더 쉬울줄 알았"기 때문에.
이 부분을 읽다 나는 박장대소 했다. 사람들의 생각은 참 다양하구나.

결혼을 한 그해에, 나는 숨쉴 틈도 없이 바빴다. 이미 벌여놓은 일만도 한가득이어서 새로운 일을 끼워 넣는다는 건 정말 무리한 상태였다. 내년 봄으로 결혼을 미루자는 나의 이러한 말에, 남편은 수줍게(마치 이 소설의 유대리처럼 말이다!) 웃으며 말했다.

"내년 봄에 나는 과장이 되요. 결혼 소식이 사내 인트라넷에 뜰텐데, 서대리 결혼, 이러면 초혼 같지만, 서과장 결혼, 이러면 재혼 같잖아요?"

ㅎㅎㅎ 그래서 그해 가을에 우린 결혼했다. 회사에서의 승진이 결혼과 연관지어지는 사람이 또 있구나 싶어서 웃겼었다.

이 부분을 읽고나서 보니, 이 소설이 새롭게 다가왔다. (안타깝게도 후반부다.)
이게, 이 소설의 강점이 될지 약점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소설이 소설로 읽히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 게시판에서 종종 만났던 누군가의 연애담 한편을 읽는 기분이 들었달까. (하기야 요즘 인터넷 게시판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은 웬만한 작가의 필력보다 나아보일때가 있다.) 그래서, 한남자와 연애중인 세 여자가 서로 친구로 잘 지낸다는 파격적인 스토리가 전혀 파격적으로 다가오지 않고 "오지게" 재미있기만 하다.

마지막까지 그 오진 재미를 끌고가지 못하는 건 신인작가의 한계인 듯 하고.

재미있게 읽을만한 소설이다. 트렌디 드라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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