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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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구입할 땐 습관적으로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중의 서너권을 꼭 함께 구입하곤 한다. 어린 시절에 세계문학전집을 읽지 않았다는 것은 여전히 나에겐 어떤 부채의식으로 남아있는 모양이다. 어린시절에 그것을 읽지 않았기에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었음을 여러가지로 인정을 하면서도 말이다. 서재 책장의 가장 좋은 자리에 번호 순대로 졸졸졸 꽂혀있는 책들을 보면서도 선듯 손이 가지않는 것은, 아무래도 "봐야하는 책"이라는 생각에 사 두기는 했지만 "보고싶은 책"은 아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게다가 언제나 고전의 가치를 역설하면서도 '고전'이라는 말의 무게에 짓눌려 재미없고 지겨울거야, 라는 선입견이 작용하기 때문인지도. 이상하게도 늘 그렇게 된다. 고전은, 막상 읽어보면 정말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어내리게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쉽게 손이 가지는 않는다.

책장을 훑다가 무심결에 손에 잡은 책이었다. 요즘 읽다가 던져두는 책이 하도 많아서(아니면 중간에 술술 건너뛰든가) 나의 독서습관이 바뀌었나, 나쁜 버릇이 들어버렸구나, 반성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이 책이 나의 그러한 반성을 무용하게 만들었다. 결국은, 내가 문제가 아니라 책이 문제 있었던 거다.

각설하고, 1960년대 영국, 성개방 직후의 혼란스러움과 마약, 가족 해체 등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던 시기에 전통적인 가족 중심의 가치관을 소유하고 있던 주인공 남녀 헤리엇과 데이빗이 만나 가정을 이룬다. 그들은 주변의 우려에 찬 눈길도 무시한 채 빅토리아 양식의 거대한 (방이 10개가 넘고 다락방까지도 존재하며 15인용의 참나무 식탁이 있는) 집을 구입해 가정을 꾸린다. 피임약은 신뢰하지 않으며 자연의 섭리에 위배되는 피임은 생각해 보지도 않은 두 사람은 단숨에, 아이 넷(아들, 딸, 딸, 아들)을 낳고 "거대한 과일 케이크"같은, 모범적인, 타인의 부러움에 가득한 가정을 만들며 행복해 한다. 처음 이렇게 행복한 그들 가정의 모습은 몽고메리의 소설 『빨간머리 앤』에서 앤이 이룩한 가정 '잉글사이드'의 모습을 생각나게 만들었다. 행복한 웃음과 즐거운 여름 휴가가 가득한 집. 이러한 집에 태어나는 다섯째 아이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 그들이 얼마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가는가에 관한 이야기가 되겠구나, 라고 기대했는데 웬걸.

특이한 유전자를 가진 다섯째 아이 벤 덕분에 그들의 행복한 가정은 파탄을 맞는다. 태내에서부터 범상치않은 태동으로 엄마 해리엇을 괴롭혀 댄 벤은, 그로 인해 해리엇으로 하여금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양의 진정제를 집어먹게 만들었다. 진정제의 힘으로 일곱달 반의 임신기간을 견뎌낸 해리엇은 아이를 낳은 직후부터 아이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와는 전혀 다른, 원시적 폭력성을 그대로 소유하고 태어난 벤을 감당할 수 없었던 가족들은 결국 벤을 요양원(이라고 할 수도 없는 수용소)에 보내게 되고, 자기가 낳은 자식을 보내버렸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해리엇은 결국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벤을 집으로 다시 데려온다.

이때까지만 해도 어떤 반전 같은 것을 기대했던 것 같다. 벤은 사실 독특하지만 매우 빼어난 아이였는데 평범한 부모와 형제, 친척들이 그걸 몰라줬던 것 뿐이다, 라든가 어느 정도의 정신 질환(해리엇이 집어 먹은 진정제로 인하여)을 가지고 있는 아이여서 결국 가족들이 그 아이를 중심으로 다시 화합하게 된다든가, 아니면 최소한, 벤으로 인해 파괴된 가정을 견디지 못하고 해리엇과 데이빗을 떠나간 자녀들을 대신하여 벤이 부모의 곁에 남아 부모에게 뭔가 깨우침을 준다든가......

이 책은 독자의 그러한 깨우침을 무참히 부셔버리며 끝난다. 끝끝내 벤은 밝혀지지 않은 고대의 유전자,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 돌연변이일 것이다, 라는 해리엇의 짐작이 옳은 판단이었다는 쪽에 손을 들어주며 "거대한 과일 케이크" 같았던 가족들은 완전히 해체되고 와해되어 다 먹고 난 뒤 찌꺼기가 눌러붙은 접시마냥 처참한 모양으로 변화하고 만다.

자신들이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했던 해리엇과 데이빗은 결국 자신들이 가장 부정했던 가족의 모습으로 변화해 가고,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은 끝내 화해의 계기를 찾지 못하며, 벤은 여전히 부모(특히 엄마)와 별개의 자신만의 세계를 꾸려 살아나간다.

벤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훌륭한 가족 드라마였던 소설은 벤의 출생과 동시에 호러무비로 바뀐다. 작가 도리스 레싱의 차분하면서도 적절하고 간결하면서도 냉정한 묘사는 그 분위기의 반전을 훌륭하게 그려낸다. 행복해 보였던 가족의 이기심이랄까, 그 행복이라는 것이 얼마나 유약한 것이었던가에 관한 깨달음 같은 것도. 그리고 그 깨달음만을 남기고 소설은 쓸쓸하게 끝난다. 설마 이렇게 끝나진 않겠지? 설마, 설마, 설마... 했던 기대를 모두 무시한 채 작가는 아무런 희망도 기대도 없이 이대로 이야기를 끝내 버리는 것이다. 허무하다, 화난다 말하기 이전에 이런... 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소설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그들에 대한 아쉬움이.

가끔 우리는 잘 된 일에 관해서는 그것이 당연한 것인 것처럼 칭찬 한마디 없다가 잘못된 일에 관해서만 책임을 묻고 나무란다. 그런 상황을 접하면 마치 소설 속 해리엇의 외침처럼 외치고 싶은 것이다.

"이건 정말 희한해요. 이전에, 아무도 그 어떤 사람도 나에게 <네 명의 정상적이고 똑똑해 보이는 멋진 아이들을 갖다니 넌 정말 똑똑하구나! 그 애들은 모두 네 덕분이야. 훌륭한 일을 해냈어, 해리엇!>이라고 말한 사람은 없었어요. 아무도 이제까지 그런 말을 안했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아요? 하지만 벤에 대해서는-전 그저 죄인이죠."

고전의 힘은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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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8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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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글이든, 음식을 다룬 글은 대단히 관능적이다. 또한 마술적이다. 음식을 다룬 글은, 열과 물과 갖가지 재료의 어울림이 단순한 식재료에 요리라는 마법을 부려내는 것처럼, 그 요리가 사람들의 마음에 어떤 마법을 부려내는가를 주로 다룬다. 그리고 그 과정은, 대단히 관능적이다. 이 소설은 의외로 덴마크 작가 이자크 디네센의 『바베트의 만찬』과 조금은 닮아있다.

남미의 문학은 독특한 특성을 갖는다. 그것을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외국문학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뭔 말인지 잘 모르겠다. ^^;;; 어쨌든 보르헤스를 비롯한 남미의 문학들은 분명, 북미나 유럽의 문학과는 다른 독특한 분위기와 질감을 가지고 있다. 그 무언가 관능적이면서도 토속적이고 환상적인 느낌이 어쩌면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건가?

멕시코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마마 엘레나와 세 딸의 이야기는 다른 사람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독특한 질감의 이야기를 진행한다.

맛있고, 재미있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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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과 거짓말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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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김윤식 샌님이 박완서 샌님의 글에 대해 "천의무봉"이라 극찬한 일이 있는데, 이 글을 읽으며 문득 그 표현이 생각났다. 천의 무봉이라 칭할만큼 완벽하다는 뜻이 아니라, 조각조각 나뉘어진 이야기들을 엮어 이어나간 이어진 이음매자리가 놀랍도록 매끈하다.

워낙에 은희경을 좋아하긴 하지만 말이다. 탄탄한 구성, 신랄하고 날카로우면서도 아프지 않은 문체 등등에 많은 점수를 주었었는데, 이 소설은 그간 은희경이 가지고 있던 매력들을 아우르면서도 새로운 아우라를 발산해 낸다.

이 소설은 꽤나 집중을 요하는 소설이다. 까닥 흐름을 놓쳤다간 '산만하다'라는 평을 하기 딱 좋다. 소설의 이야기들은 흐트러져 있는듯, 따로 따로 흘러가며, 그 이야기들을 묶어주고 있는 것은 아주 가느다란 줄이다. 일종의 거미줄 같은. 그래서 쉽게 보이지 않는다. 한권의 소설 안에서 주인공 3대조의 이야기가 모두 나오게 되며, 그 3대조의 이야기가 생기게 되는 근본 원인은 그 3대조의 다시 3대조 위의 할아버지 부터의 이야기다. 게다가 이야기의 중심을 잡고있는 것 또한 사람이 아닌 K읍이라는 지방의 한 소도시고, 때문에 이런 류의 이야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당황하게 된다. 사람이 아닌 도시가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라니 황당하지 않은가.

거미줄은 얼핏, 불규칙한 구도로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 거미줄도 자세히 살펴보면 분명한 규칙성을 가지고 있다. 힘받이 줄도 따로이 존재한다. 표면으로 드러나는 것은 불규칙한 그물일지라도 그 그물을 존재하게 만들어주는 중심 줄은 분명 존재하는 것이다.

이 소설이 가지는 거미줄같은 구성에서 그같은 힘받이 줄은, 서너개다. 하나는, K읍의 역사, 두번째는 K읍에 전해져 내려오는 4형제 전설, 또 하나는 주인공 영준이 제작하는 영화. 특히 영준이 제작하고 있는 영화 《비밀과 거짓말》은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핵심에 맞닿아 있으면서 주인공인 K읍이 하고자 하는 말을 효과적으로 언어화 한다. 은희경, 똑똑하다니까, 확실히. 흐트러져 있던 이야기를 묶어 하나의 주제로 엮어 내는데 액자의 구성을 하는 이 영화의 역할은 압도적이다. 이 영화가 없었다면 이 소설의 주제의식은 절반 이하로 약화되었으리라 싶을만큼.

재미있었다. 난 김별아의 『미실』보단 이 소설이 훨씬 낫더라구. 근데 왜 김별아가 1억을 받았을까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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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 여행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예담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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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보듯, 사람을 본다, 라고 김훈이 발문에 써 놓기는 했던데.

문득, 내가 왜 이렇게 미친듯이, 음식으로 치자면 폭식을 하듯 책을 읽어제끼나, 라는 생각을 이 책을 닫으면서 했다. 친구 누구는 한달에 한권 읽는 것이 목표라 하고, 누구는 일년에 열권 읽는 것이 목표라하고, 책 좀 많이 읽는다는 친구래야, 한달에 열권이 목표라는데, 나는 돈이 생기는 족족 책을 사들이고, 시간만 된다면 하루에 두권이고 세권이고 되는대로 읽어 제낀다. 아직까지는 머리가 녹슬지 않아 다행한 건지 그나마 내용이 뒤섞이는 일은 없지만, 누군가의 말로는 그러더라, 이런 총기도 멀잖았다고.

나는, 북홀릭, 활자중독, 돈 키호테 같은 신서증信書症 환자.

그래, 나의 증세는 알겠는데, 나의 증세가 생긴 이유는 뭘까.

정신분석이란, 모든 언행의 이유를 밝히는 학문이라 한다. 자신을 객체화시켜 분석하는. 내가 이토록 책에 집착하고 탐닉하는 이유는 뭘까.

나는, 나를 이해해 보고 싶고,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이해해 보고 싶다. 누군가의 말을 이해해 보고 싶고,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도 이해해 보고 싶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다. 내가 한 행동, 내가 한 말이 내가 읽은 책의 어느 구석에서 튀어나왔을 때, 그제야 나는 나를 이해할 수가 있다. 그 책의 구절에 의지하여. 끝끝내 나는 신서증 환자.

권여선의 책 『푸르른 틈새』에서 나는, 내가 했던 행동들과 똑같은 행동을 하는 주인공의 모습에 경악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녀의 행동을 이해하면서, 그제야 나의 행동과 나의 심리가 이해되었으니까.

내가 책을 읽는 건, 어쩌면 자가 심리분석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를 이해하고 싶으니까.

나에대한 자잘한 해석을 넓혀, 내가 야하고 뻔뻔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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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정원에서 - 죄악과 매혹으로 가득 찬 금기 음식의 역사
스튜어트 리 앨런 지음, 정미나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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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이 그랬다지.
"아담은 사과가 탐이 난 것이 아니라 단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탐을 낸 것이다." 라고. 그게 무엇이건 간에 금지된 것은 매력을 가진다. 본질을 알고 나면 더할나위없이 시시껍절할 지라도 본질을 알기 전까지 금지된 그 무엇은 이세상 그 무엇보다 매력있는 무언가가 되는 것이다. 단지 금기라는 이유만으로도.

이 책은 숱한 금기들 중 음식 금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다고 기운차게 출발 한다. 어떤 음식이 왜, 어떤 이유로 금기 음식이 되었는가, 하는 이야기. 그것도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7대 죄악에 맞추어, 어떤 음식이 금기시 된 이유에 관해 설명하겠다고 시작을 하지만, 웬걸. 읽다보면 음식 금기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과거 엽기적인 식문화에 관련된 나열이다. 특히, 기독교 지식이 전무한 사람들이 읽기에는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점이 많다. 읽는이가 어느정도는 기독교에 관련된 지식을 가지고 있으리라 전재하고 시작하니까. 물론 번역자 (정미나 : 『호박속의 잠자리』번역가^^)가 독자의 이런 고충을 미리 짐작했음인지 여러가지로 역자주를 달아주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게다가 단테의 <신곡>의 7대 죄악에 맞추어 음식에 대한 금기(그게 아니면 엽기적인 조리법이라 할 지라도)를 나누어 놓았지만 그 경계가 불분명하여 이야기들 사이의 체계가 잡히지 않는다. 차라리 시대별 분류법을 따르든가.

쵸콜렛이 금기식이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옥수수나 토마토가 그랬다는 건 신선한 일이었고, 당시의 화려한 만찬장면에 대한 묘사나 의외의 음식에 대한 설명등이 나름 재미있었다. 미시적 사회사를 보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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