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보다 오래 남는 사진 찍기
강영의 글.사진 / 북하우스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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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 차분하게 정독한 것은 아니다. 순서대로 빠짐없이 읽기는 했으되, 사진들을 쫒아가며 슬렁슬렁 읽었다. 여행 사진이라는 게 그렇다. 내가 가본 곳이 아닌 이상, 나와 털끝만큼이라도 인연이 있지 않은 이상, 그것은 그냥 기념사진에 다름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사진들이 좋았던 것은, 그녀가 만나 짧은 인연을 맺었을 그 이름모를 사람들의 모습이 빛났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의 글이 좋았던 것은, 여행에서의 사진찍기에 대해 그녀가 했을 많은 고민들이, 내가 고민했던 그 많은 것들과 너무나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짧은 여행의 경험에서 '꼭 보고 가야할' 관광지 다녀보았고, 그곳에서 여보란 듯 기념사진 찍어보았다. 그러나 그러한 사진은 여행이 끝난 후에 다시 들여다 보면 공허하고 메마른 것들이 되어 버렸다. 오히려 길을 잃고 우연히 들어간 작은 골목에서 생활의 맛을 진하게 느낄 수 있었고, 아장아장 걸어다니던 이국의 꼬마와 엄마 를 담은 한장의 사진에서 여행의 참맛을 느끼기도 했다. 빠짐없이 관광 포인트를 돌아보겠다는 욕심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이었는지 깨닫기까지 꽤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이제 나에게 맞는 여행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그러나 여행사진에 대한 것은 아직도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 책의 지은이,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용기가 아직은 많이 필요하다. 풍경사진보다는 인물사진이 훨씬 내게 의미있다는 것을 알게된 이상 교감하는 사진을 찍고 싶은데,그러한 사진을 찍기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한두번 촬영을 거부당하면 정말이지 땅끝까지 소심해져 버려서 한동안은 인물이 들어간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운이 좋아 촬영 동의를 받았더라도 그들을 촬영한다는 것을 너무 의식해 뻣뻣해져 버렸다. 열심히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 땀흘리는 사람들 얼굴에 사진기를 들이댄다는 것은 너무나 죄스럽기도 했다. 때론 그들은 내게 모델비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경험들이, 고민들이, 그녀의 책에 모두 나와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위안이었다. 내 고민이 나 혼자만 겪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녀처럼 교감하는 사진을 잘 찍어낼 수 있을 거라는 안도감. 그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아직은 소심하고 소심해서 뒷모습만 찍어대고, 용기를 내도 좀더 쉬울 것같은 아이들 사진 뿐이지만 말이다.

내눈에는 내 여행사진 다 흐믓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사진은 이것이다. 작년에 신혼여행으로 갔던 베트남 무이네, 길을 잘못들어 도착한 초등학교 앞에서 만난 아이들이다. 학교 앞을 가득 메우고 군것질을 하는 아이들을 따라 함께 이상한 불량식품을 사먹으며, 서로 통하지도 않는 말을 지껄여 가며 사진을 찍었다.
예쁘다.



P.S. 그러나 사진에만 매몰되는 여행은 조심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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